Knocking On The Young Snack

떡볶이의 인기척 : 작가 요조

인터뷰에 앞서 부랴부랴 노원구로 향한 어느 날, 오래된 상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낡고 단정한 가게가 눈에 띈다. “원조떡볶이전문점 영스넥” 요조가 20년 가까이 드나들었다는 바로 거기다.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인 가게 문을 열곤 “모듬볶이 1인분 주세요!”부터 외쳤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에 젓가락을 연신 들이대며 “맛있다, 진짜 맛있네.” 중얼거리며 한 그릇을 단숨에 비우곤 여기서 인터뷰가 가능할지 사장님께 넌지시 여쭸다. “가수 요조? 요조가 우리 집 자주 와요. 여기 사인도 두 개나 있잖아. 떡볶이 책 봤어요? 사람이 아주 괜찮아. 가수가 아니라 작가 해도 되겠다니깐. 요조가 이따 온다구? 나야 좋아요. 너무 좋지.” 그날 저녁, 우리는 영스넥에서 모듬볶이 2인분을 나눠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영스넥은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떡볶이집이에요. 오랫동안 가장 자주 드나든 떡볶이집이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신세를 아주 많이 진 공간이죠.

세월의 때를 오래도록, 멋지게 묻혀가며 존재하는 것들이 거기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영스넥’을 단순히 내가 제일 오랫동안 다닌 맛있는 떡볶이집쯤으로만 언급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대략 이십 년의 시간이면 내 인생의 반이다. 지금까지 살며 섭취한 나의 끼니들이 나를 이루는 지분이 될 수 있다면 아마도 ‘영스넥’의 떡볶이는 첫 번째 엄마의 밥, 두 번째 내가 차려 먹은 밥에 이어 세 번째 영역을 차지할 것이다.

– 요조, <영스넥이라는 떡볶이의 맛의 신비>,
《아무튼, 떡볶이》, 107-108쪽.

여기가 바로 영스넥! 공간 소개부터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는 노원구의 낡은 상가에 있는 떡볶이집이에요. 제가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곳이죠. 저에겐 아주 중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옛말 중에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도 있는데, 저는 그 말을 믿는 편이거든요. 영스넥은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떡볶이집이에요. 오랫동안 가장 자주 드나든 떡볶이집이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신세를 아주 많이 진 공간이죠. 《아무튼, 떡볶이》(1) 에서 한 챕터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고, 그 책엔 영스넥 사장님과의 인터뷰도 실려 있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인터뷰하는 게 너무 뜻깊어요.

(1) 이 기사엔 각주가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그 이유는 《아무튼, 떡볶이》를 읽어본 독자라면 알 수도 있을 테다. 일종의 어설픈 오마주랄까. 

사장님 요즘 우리 집에는 교복 입고 오던 학생들이 결혼해갖고 가족하고 와요. 지금 삼십대, 사십대 됐지. (중략) 인제 포장도 해줘요. 왜 그렇게 됐냐하면, 남자 손님들이 와가지고 우리 아내가 임신을 해서 입덧을 하는데 여기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그런다는 거야. 그래서 퇴근길에 집에 가면서 사다 주려고 남편들이 그렇게 가게에 왔어요. 오랫동안 포장 없이 가게를 해왔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이제 포장도 해주고 있어요.

– <영스넥이라는 떡볶이의 맛의 신비>, 118-121쪽

20년은 정말 긴 시간이잖아요. 주로 어떨 때 오곤 했어요?

시도 때도 없이요. 친구랑도 오고, 매니저랑도 오고, 혼자서도 자주 왔어요. 시간이 나면 수시로 왔고, 이 부근에 스케줄이 있으면 바빠도 시간 내서 무조건 왔어요. 가끔은 집에서 포장해온 떡볶이랑 맥주를 같이 먹고 싶기도 하고, 집에서 편히 영화 보면서 먹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지금은 포장도 할 수 있지만 긴 시간 포장이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와서 먹어야만 했는데요. 생각나면 혼자 와서 모듬볶이 1인분 먹고 가고… 그런 적이 아주 많아요. 

 

사장님과의 인터뷰까지 책에 실은 걸 보면 각별한 사이인가 봐요.

이렇게 오래 다녔어도 사장님이 저를 모른 시간이 훨씬 길어요. 예전에는 조용히 와서 조용히 먹고 조용히 가곤 했거든요. 나중에 데뷔하고 나서야 다른 손님들 덕분에 사장님이 저를 알게 되셨어요. 근데 사장님이 눈이 안 좋으셔서 지금도 한 번에 못 알아보세요. 사인을 두 번이나 하고, 책 쓴다고 인터뷰도 했는데도요(웃음). “저 요조예요….” 하면 그제야 반겨주곤 하시는데, 제 머리가 짧았다가 길었다가 색깔도 자주 바뀌고 그러니까 한 번에 알아보기 더 힘드신 것 같아요(웃음). 《아무튼, 떡볶이》가 나오고 나서는 인사만 하러 들르는 일도 많아졌어요. 올해도 새해 인사하러 들러서 선물만 드리고 갔고요. 사장님과 손님 그 이상의 관계가 된 것 같아서 저는 너무 좋아요. 정말.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인 가게가 있다는 게 부러워요. 떡볶이도 맛있고요. 요조의 ‘아무튼’ 시리즈(2)는 어쩌다 ‘떡볶이’가 됐나요?

아무튼 시리즈 제안을 받고 생각나는 소재가 몇 개 있었는데, 제가 잘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어요. 맥주랑 주성치(3)도 후보였는데 쉽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팟캐스트를 함께하는 장강명 소설가가 지나가는 말로 “떡볶이도 자주 드시지 않아요?”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떡볶이 생각을 못 했지?’ 싶었어요. 저는 이렇게 매사 남이 알려줄 때가 너무 많아요. 가까운 사람들이 “너 이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거 해봐.” 하는 길로 움직여서 지금까지 온 거죠. 중요한 터닝포인트에서 주체적인 선택보다 주변 사람이 권하는 대로 움직일 때가 많았는데, 그런 선택으로 지금까지 너무 잘 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보는 저를 신뢰하지 않게 됐어요. 오히려 남이 저에 대해 말해주는 걸 더 믿고 의지하게 된 거죠. 주변에 저를 잘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럴 때마다 너무 감사해요.

(2)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책으로 요조는 《아무튼, 떡볶이》를 썼다.

(3) 요조의 뮤즈. 요조는 주성치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녀는 주성치를 너무 좋아해서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노래(‘슈팅스타’)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주성치를 만나고 싶어서 홍콩으로 가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고. 그녀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서 《아무튼, 주성치》가 되지 못한 이유에 관해 “주성치는 마음이 너무, 너무 인제… 너무 좋아하는 대상… 아, 주성치는 내가 쓰기엔 과분하다는 느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출판사나 독자들이나 떡볶이 책을 쓴다고 했을 때 기대한 그림이 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더 좋아했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고…. 어쨌든 뭉뚱그려서 ‘의외인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의도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저도 당황스러운(웃음).”

대단한 인복 같아요. 그만큼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 것도 같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한겨레》 신문에서 1년 동안 인터뷰어로 지낸 적이 있는데요. 제안받았을 땐 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저 이런 게 들어왔답니다? 너무 웃기죠?” 하고 이야기했는데, 장강명 소설가랑 임경선 작가가 한목소리로 “해라.”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그렇게 얼떨결에 수락하게 된 일이었죠. 심지어 싱어송라이터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김민홍이 시켜서 하게 된 거였고요(웃음). 제 이름으로 정규 1집을 내기 전에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랑 앨범을 한 장 낸 적이 있는데, 민홍 씨가 갑자기 “다음 앨범은 네가 만들어.” 하는 거예요. 저는 기타도 못 치고, 악보도 못 보고, 노래는 만들어본 적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무작정 “넌 할 수 있으니까 네가 곡 쓰고 만들어서 네가 해.”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건데, 재밌지 않아요(웃음)? 어떻게 보면 되게 수동적인 거죠. 


할 수 있다고 믿어준 주변 사람들도, 그걸 해내는 것도 멋진 일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하라고 했다면 물론 안 했겠지만, 저에게 애정을 가지고 관심 있게 지켜봐 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믿고 움직이게 됐어요. 저는 이렇게 살아온 게 가끔 웃겨요. 떡볶이도 제가 좋아하는 거긴 하지만, 생각도 못 한 걸 장강명 작가가 잘할 것 같다니까 ‘아 그렇구나!’ 하고 믿고 쓰기 시작했고… 이렇게 책을 내는 데 성공했잖아요. 보통 사람이라면 점쟁이한테 물어볼 걸 저는 믿을 만한, 존경할 만한 지인들한테 물어봐요. 이젠 그들에게 물어보면 잘 굴러가게 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웃음).


그렇게 선택한 일에 후회가 없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떡볶이라는 소재가 정해진 뒤엔 에피소드를 어떻게 정리하기 시작했나요?

저는 미리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책뿐 아니라 매사에 뭐든 그렇죠. 책이든 음악이든 그때그때 코앞만 보고 해오다가 나중에 쌓이고 나면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게 가능해져요. 완성되었을 때야 ‘아, 내가 이런 걸 이야기하려 했구나.’가 잡히고, 그제야 묶어보는 편인데요. 상당히 근시안적이죠(웃음). 그래서 ‘이런 아무튼 시리즈를 써야겠다.’는 그림은 없었어요. 


그럼 여러 떡볶이를 일단 쓰기 시작한 거군요?

맞아요.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쓰고, 정리하고, 모았죠. ‘떡볶이’ 했을 때 떠오르는 몇 가지 이야기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편집자가 원고를 보고 당황하더라고요. 우리가 기대한 떡볶이 이야기가 아니라며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저는 아주 보편적인 마음으로 접근했는데, 출판사나 지인이나 독자들이나 떡볶이 책을 쓴다고 했을 때 기대한 그림이 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더 좋아했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고…. 어쨌든 뭉뚱그려서 ‘의외인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의도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저도 당황스러운(웃음).


책을 여러 권 냈는데 여전히 뮤지션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떡볶이》 작가 소개에도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글을 쓴다.”처럼 노래가 먼저 등장하기도 하고요.

음… 그러네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작이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음반을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저한텐 무의식적으로 ‘난 음악 하는 사람이다.’라는 게 있어요. 지금은 워낙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이 가능해진 시대여서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중엔 저처럼 출발선을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가끔은 우스갯소리로 ‘홍서범의 뒤를 잇는 종합예술인’이라고 소개해볼까도 싶은데요(웃음). 이건 정말 장난이고요. 저는 어떤 일을 하건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이 우선 각인된 것 같아요. 


‘노래하고 글 쓰는 종합예술인’(웃음)? 작가, 도서 팟캐스트, 책방 주인, 독서 모임… 책과 관련된 활동을 정말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글쓰기에 관한 생각도 많아졌을 것 같아요.

계속 이쪽 분야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책을 접하게 되고 또 많이 읽게 돼요. 그러면서 문장을 보는 눈이 높아지면서 글을 쓸 때마다 ‘이게 아니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웃음). 그래서인지 제 문장들이 성에 안 찰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좀 괴롭죠. 뾰족한 수는 없어서 계속해서 연습하고, 써보고, 책도 더 많이 읽고… 빤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어요. 그리고 요즘은 ‘너무 힘들면 굳이 안 써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제가 등단한 작가라면 계속 써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에 함몰되기 쉬울 것 같은데요. 저에겐 써야만 한다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어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스트레스에서 눈을 돌리니까 약간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글을 쓰는 것과 노랫말을 쓰는 건 비슷하지 않나요? 스트레스의 강도도 비슷할 것 같은데.

어우(손사래), 많이 달라요. 일단 목적이 다르거든요. 노랫말의 목적은 멜로디 위에 얹히는 거예요. 노랫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있고, 멜로디랑 짝을 이루는 거라서 묻어갈 수 있거든요. 단적으로,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를 말하고 싶은데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내가 너를 음으으음~’ 하고 허밍으로 넘어가도 돼요. ‘내가 너를~’ 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되고요. 곡의 무드와 멜로디에 묻어가는 거죠. 노랫말은 이렇게 기댈 데가 있지만 책을 쓰는 건 정면승부 같은 거예요. 특정 떡볶이의 맛을 설명할 때 “이거 진짜 맛있겠죠?” 하면 그 맛이 어떤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읽는 것만으로도 ‘나도 먹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고민해야 했어요. 게다가 《아무튼, 떡볶이》는 떡볶이가 아니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흐르는 글이다 보니까 더 고민스럽더라고요. 저는 이런 맛 표현을 진짜 잘하는 사람이 이영자 씨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떡볶이》도 군침 도는 책이었어요(웃음). 책에 모든 이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어요(4). 약간 <인간극장> 같기도 하고요.

그건 제 성격이 반영된 부분이에요. 성까지 붙여서 부르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성까지 부르는 게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제 메신저를 열어보면 성과 이름을 붙여 부르는 말풍선이 정말 많아요. 또, 책 안에서 거리감을 두고 싶은 생각도 있던 모양이에요. 나이가 어리건, 많건 간에 똑같이 실명으로 쓰면 객관적으로 보일 것 같았고 호칭으로 규정되는 관계에서도 자유롭고 싶었어요. 다섯 살짜리 아이랑 저희 부모님이 똑같이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약간은 딱딱하게 느껴지더라도 모든 등장인물이 제 친구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4) 신중택(아버지), 백기녀(어머니)처럼 실명 뒤에 괄호로 관계를 설명하며 사건이 진행된다.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해도 언급할 때마다 괄호의 내용이 바뀌는 게 이 책의 묘미다. 앞서 말한 (아버지), (어머니)가 신중택(집밥 만능주의자1), 백기녀(집밥 만능주의자2)가 되거나 김상희(친구)가 다음 문단에선 김상희(원수)가 되는 식.

 

사건과 인물이 대거 등장하지만 핵심은 역시 떡볶이예요. 이 책에는 길거리 떡볶이부터 즉석떡볶이까지 다양한 떡볶이가 등장하는데요. 언젠가부터 간식 같던 떡볶이가 요리 범주에 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맞아요. 물가가 변한 것과는 별개로 떡볶이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가격도 많이 올랐어요. 요즘 떡볶이를 보면 어린 친구들은 사 먹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들어요. 저희는 어릴 때 저렴한 가격에 쑥색 멜라민 접시에 담겨 나오는 떡볶이나 컵떡볶이 같은 걸 먹었잖아요. 저는 프랜차이즈인 두끼 떡볶이(5)에도 종종 가는데요. 갈 때마다 학생들이 북적거리더라고요. 저는 그 나이 때 몇백 원부터 2천 원 사이의 돈으로 사 먹던 떡볶이를 이 친구들은 훨씬 비싼 돈 주고 먹는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묘하죠. 

(5) 프랜차이즈인 즉석떡볶이 무한리필 뷔페로, ‘떡볶이로 한 끼, 볶음밥으로 두 끼’라는 뜻이다. 소스부터 떡, 사리, 튀김, 어묵까지 종류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원하는 조합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 성인은 8천 9백 원, 중·고등학생 7천 9백 원, 어린이는 4천 9백 원, 36개월 미만은 무료다.

 

떡볶이는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어서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집에서는 떡볶이를 주로 어떻게 만들어 먹나요? 요조의 레시피 전격 공개!

제 레시피요요? 진짜 별거 없어요. 전격 공개랄 것도 없죠(웃음). 그냥 채소 육수(6)우리고, 떡이랑 각종 채소를 넣어요. 파, 양배추… 버섯을 넣어도 맛있고요. 양파는 있으면 넣고, 없으면 굳이 넣진 않아요. 집에서 먹을 땐 마늘은 무조건 넣어요. 그 외 채소는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때려 넣는 편이고요(웃음). 그러고 나서 고추장을 풀어요. 그다음 후추! 저는 후추 들어간 떡볶이가 좋더라고요. 양념은 오로지 고추장으로만 하고 설탕은 안 넣어요. 혹시 텁텁한 게 싫은 분들은 고춧가루를 넣으면 되는데, 곱게 갈아서 넣으면 텁텁함을 잡아줘요. 아, 그리고…. 

(6) 그녀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여전히 미역국 안에 들어 있는 쇠고기 한 점이 먹고 싶은, 고기가 먹고 싶어 힘든 베지테리언. 자주 고기 생각이 나서, 원 없이 먹고 싶어서 매일매일 징징댄다고 한다.

 

그리고?

요리사 친구한테 배운 떡볶이 팁을 공개할까 봐요. 저도 아직 해보진 않았는데요. 들은 바로는 ‘간장과 설탕을 일대일’로 넣는 게 떡볶이의 기본이래요. 거기에 매운맛 기호에 따라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넣는 거죠. ‘간장:설탕=1:1’ 공식만 잘 활용하면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주말에 꼭 도전해봐야겠어요. 이쯤에서 취향 테스트를 해볼까요?

네?

 

떡볶이는 밀떡vs쌀떡?

밀떡. 어슷 썬 밀떡보다 원형으로 썬 밀떡이 좋아요.

 

즉석떡볶이vs그냥 떡볶이?

즉석파.

 

떡볶이는 혼자vs둘이vs여럿이서?

혼자보단 둘이서, 둘보단 여럿이서.

 

떡볶이는 간식이다vs식사다?

식사다.

 

떡볶이엔 맥주vs탄산음료?

맥주.

즉석떡볶이파군요. 근데 즉석떡볶이는 보통 2인분부터 팔아서 혼자 먹긴 좀 애매하지 않아요?

메뉴엔 2인부터라고 쓰여 있어도 말씀드리면 대체로 1인분도 해주세요. 1인분이 안 되는 곳에선 먹다 남기자는 마음으로 2인분을 먹을 때도 있고요. 예전에 명일동에 종종 혼자 가던 즉석자장떡볶이 집이 있는데요. 거기서 떡볶이를 주문하면 큰 냄비에 사리와 떡과 각종 재료를 담아 가스버너 위에 올려주시곤 했는데… 학생들이 득시글한 분식집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좀 뻘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떠드는 와중에 저는 혼자 떡이 언제 익나, 육수가 언제 끓나 기다려야 했거든요(웃음). 하지만 그렇게라도 먹고 싶어서 혼자 많이 먹으러 다녔어요.


1인분도 주문할 수 있다니, 모르고 살아온 게 약간 억울해지려고 해요(웃음). 혹시 해외에서 떡볶이를 먹어본 적 있나요? 

대만 야시장에서 떡볶이 점포를 보고 놀란 기억이 있어요.아, 저도 중국 갔을 때 길거리에서 봤어요. 네모난 철판에 두 가지 맛으로 팔고 있길래 너무 신기해서 “저거 먹어보자!” 하고 사 먹은 기억이 나요. 지금 기억하기로는 한국 떡볶이랑은 다르지만 먹을 만한 맛이었어요. 약간 퓨전 같은 느낌이었죠. 한인 식당에서도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요. 한국 포장마차에서 2천 원 주면 나올 법한 양이었는데 만 원 정도 내고 먹었어요. 비싸고, 맛없고….

그러나 나는 옛날 ‘미미네 떡볶이’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을 이제 영원히 먹을 수 없다. ‘분위기’ 말이다. 홀로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홀로 책방에서 시집을 고를 때, 혹은 홀로 술집에서 생맥주 혹은 싱글몰트 따위를 홀짝일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분위기’ 하나를 같이 먹는다. 

– <떡정, 미미네>, 14쪽.

누구랑 먹느냐, 어디서 먹느냐,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음식 같아요. 책에서 언급한 ‘분위기’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위기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책에서 언급한 미미네 떡볶이가 가장 그래요. 지금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체인점이 됐지만 옛날 그 맛이나 분위기는 이제 없어졌거든요. 혼자 먹을 수 있는 바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었는데, 거기 앉아서 떡볶이랑 튀김이랑 맥주 한 잔을 홀짝이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맥주도 되게 맛있었거든요. 직원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분주하게 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도 좋아졌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약간 감동 같은 걸 느끼면서 제 일을 하러 나가곤 했는데… 그 순간이 그리워요. 지금 미미네에선 그런 분위기를 먹을 수 없으니까, 아 너무너무 그립네요.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62쪽.

사라지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운영하고 있는 책방 무사에 옛 간판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맞아요. 북촌에 있을 땐 ‘진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지금은 ‘한아름 상회’라는 간판이 그대로 살아 있어요. 제가 유난히 오래되고 시간이 쌓인 것들을 좋아해요. 사라진 가게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예전에 종로구 묘동에 단성사라는 단관 극장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근사한 건물이었거든요. 묘동에서 그 건물을 보는 걸 좋아했죠. 근데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높은 빌딩이 들어서더라고요. 단성사는 그 안에 멀티플렉스처럼 들어가게 됐고요. 어느 날 엄마랑 그 앞을 지나가면서 저거 보라고, 단성사 건물이 얼마나 오래되고 근사했는데 그걸 허물고 저렇게 흉물스러운 빌딩을 세워놓은 거냐며 뭐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넌 단성사에서 몇 번이나 영화를 봤는데?” 할 말이 없었어요. 그 말이 가슴에 확 박히더라고요.


어떤 의미에서 가슴에 박혔어요?

누군가한테 들은 얘긴데, 유럽에서는 서울의 이런 빠른 호흡을 재미있어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프랑스 같은 덴 20년 동안 변한 게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오래된 가게도 많고, 거의 보존의 나라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서울은 말 그대로 다이내믹한 도시인 거예요. 모든 게 빠르고, 현란하고, 자주 바뀌고, 텐션도 높고.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게 좋은 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바뀌고 변화하는 세상이 좋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다만, 저는 세월의 때를 오래도록, 멋지게 묻혀가며 존재하는 것들이 거기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단성사에서 영화를 본 건… 기억하기론 두 번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열심히 영화를 봤다면 단성사는 좀더 오래 그대로 있었을지도 몰라요. 엄마 말을 듣고, 나의 ‘좋아함’에 실천으로 책임지면 좋았을 텐데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저거 좋아, 예뻐!”만 하는 사람이었단 걸 깨달은 거죠. 그 이후 좋아하는 마음에 좀더 실천적인 행동을 하면서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그러다 보니 제 책방도 그런 식으로 운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래된 간판을 남겨두면서요.


이번 호 주제가 ‘예술가의 방’이잖아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드리면 어떨까 해요. “요조의 뮤즈 주성치와 함께 떡볶이를 먹는다면?”

악(비명). 진짜… 진짜 정신없이 먹을 것 같아요. 아니, 못 먹을 것 같아요. 얼굴 보느라 먹을 수가 없겠죠. 코로 들어가도 모를걸요? 주성치는 떡볶이도 엄청 멋있게 드시겠죠? 안 그래도 오늘 주성치 근황 사진을 보고 왔거든요. 여전히… 멋있더라고요.

《아무튼, 떡볶이》

요조 | 위고

영스넥의 다정한 시시콜콜

사장님 아휴, 우리 아들도 얼른 결혼을 해야 되는데 자꾸 생각이 없다고 그러네.
아드님 나중에 혹시 결혼하시게 되면 제가 축가 불러드릴게요.
사장님 어머나, 어머나, 정말?
김상희 아드님이 요조 음악 안 좋아할 수도 있어.
맞네.

– 요조, <영스넥이라는 떡볶이의 맛의 신비>, 《아무튼, 떡볶이》, 122쪽.

《아무튼, 떡볶이》에 꽤 큰 비중으로 등장한 사장님의 아드님 이야기를 우리는 영스넥에서 다시 한번 들어볼 수 있었다. 마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아드님은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요조처럼 바쁜 사람에게 어떻게 축가를 부탁하냐’면서도 좋아하셨다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일면식도 없는 그의 결혼식이 몹시 궁금해졌다. 요조가 어떤 노랠 축가로 선택할지, 그날 영스넥 사장님의 표정은 어떠할지.

사장님은 인터뷰 중간, 요조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내게로 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근데,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데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해요?” 사장님은 당신과 나눈 대화가 《아무튼, 떡볶이》에 모두 실린 걸 보고 이걸 어찌 다 기억했는지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사장님만큼 목소리를 낮춰 “이거, 녹음하는 거예요.” 하고 휴대폰을 보여드렸더니 아이처럼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신다. “그럼 그렇지, 그럼 그렇지!”

요조가 오기 전에 그녀와 이따 사진 한 장 남기자고 사장님께 권했다. “늙은 아줌마랑 찍어서 뭐 해. 예쁜 팬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손사래 치던 사장님은 요조가 “사장님, 저랑 오늘 사진 찍어요.” 하고 말하자 배시시 웃으며 바로 옆자리를 내어주신다. 두 얼굴의 귀여움!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잘 입고 올 걸 그랬다.’며 둘째 손가락을 펼쳐 디스코를 추듯 포즈를 취하는 사장님이 영스넥의 뜨듯함과 너무 닮아 있어서 코끝이 찡했다. 어깨동무하고 해사하게 웃는 그들을 보며 시간의 힘을 생각하고, 공간의 힘을 생각하고, 사람의 연을 생각한다. 아, 떡볶이는 위대하구나.

집에서 영스넥까지 두 시간 남짓. 떡볶이 한 번 먹으려고 왕복 네 시간을 쓰는 무모함을, 나는 앞으로도 몇 번쯤 더 하게 될 것 같다. 요령이 없어 떡볶이 맛을 근사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 누구든 한 번 먹으면 ‘엥?’ 하고 머리에 별이 한 번 튕길 맛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면발에 싹 스며든 양념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며….

영스넥

A. 서울 노원구 상계로 51 노원프라자빌딩 지하 1층
O. 월-금요일 11:00-20:00, 토-일요일 휴무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 장소 협조 영스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