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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문 좀 열어줄래요?
가끔은 초인종이 울려도 아무도 없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다. 문을 잠그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는 곳. 그런 곳을 보여 달라고 조르는 게 무모한 일인 건 알지만, 그래도 궁금한 마음 달랠 길이 없어 노크해 보았다. 저… 괜찮으면 문 좀 열어줄래요?
창문이 주는 여지
시인 박세미의 집
집에 대한 나의 기억은 대개 창문을 통해 구성된다. 그것은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한 실체로서 당당히 기억을 불러들인다. 아무리 내부 공간이 똑같은 집이라도 창문이 뚫리는 순간 그 어떤 집도 같을 수 없다. 빛은 한 곳에서 오며 모두를 공평하게 비추는 것 같지만, 창문의 허락 없이 공간의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으며 창문을 통과하면서 유일한 각도와 크기와 모양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창문은 우리의 시선을 막아서지 않음으로써 바깥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창문이 들이쉬고 내쉬는 빛과 풍경으로 집은 호흡한다.
이사를 많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창문을 경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나의 부모가 인생의 황금기(정확히는 경제적 풍요기)를 걸을 때 나는 아주 큰 창문 앞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정원이 있고 높은 담이 있었지만, 피아노 선생님이 가시고 나면 나는 커튼을 모두 쳤다. 큰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느낌이 통창 너머로 쉽게 확장되는 것이 싫었고 어두운 곳에서 몰래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집이 망하는 것은 하루아침이었다. 아빠는 키우던 난을 모두 팔아 없앴고, 엄마는 내게 여기에 있는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네 식구는 작은 신발가게에 딸린 더 작은 단칸방에 입주하게 됐다. 그곳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창문이 하나있었는데 상가 뒤쪽 주택의 마당을 향해 있었다. 우리 집 마당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결코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는 곳이었지만, 기척이 들리면 황급히 창문을 닫아야 했지만, 나는 마치 비밀공간처럼 그곳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았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반지하 방으로 승격되었다. 신발가게에서 살 때는 상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지만, 이제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건물과 담 사이에 임시로 지어진 화장실에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현관문을 나가 계단을 올라가 건물 현관문을 통과해 건물 끝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방에서 바로 창문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었다. 아빠는 사다리를 만들어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다리를 타고 창문에 몸을 구겨 넣어 화장실에 갔다. 창문을 통과하는 것은 빛과 풍경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생리 현상에 복종하려는 인간의 몸만을 허락하는 창문이었다.
미래의 어떤 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오후 4시를 기억할 것이다. 대낮의 부릅뜬 백색의 빛이 아니라 살짝 감긴 황금빛이 창문을 통과해 툭 터져 들어오는 이 집의 시간. 물론 평일 그 시간 나는 회사에 있지만 나의 개가 대신 그 빛을 누리기를, 주말엔 함께 창문이 불어넣은 집의 호흡 가운데 누워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눈을 감고 앞으로 내가 열게 될 창문들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경력직 음악가와 사회초년생의 방
뮤지션 김정웅의 집
“정웅 씨는 4대 보험에 가입된 뮤지션이니 자부심을 가지세요.”
직장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그의 동생도 뮤지션인데 음악 경력 외의 스펙이 전무한 내가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재주도 좋다.”고 했다 한다. 나는 요즘 낮엔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 음악을 만든다. 정규 2집이 나온 건 1년 전. 그 뒤로는 한 달 반 정도의 주기로 신곡을 발매하고 있다. 작년 8월 입사 후에만 다섯 개의 싱글을 발표했다.
일을 마친 후의 집은 본래의 나로 돌아가 음악을 하는 공간이다. 집을 소개하자면, 거실에는 테이블과 피아노가 있다. 테이블에서는 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무언가를 보거나 읽는다. 휴일 낮 시간엔 대개 피아노를 연주한다. 당근마켓에서 20만 원에 구입한 95년산 국산 피아노는 내 음악을 녹음할 때도 자주 쓰인다. 90년대 피아노는 요즘 나오는 것보다 좋은 목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몇 달간 아동 대상의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엘리제를 위하여’, ‘트로이메라이’, 바흐의 ‘인벤션’ 등을 배웠고, 즐겁게 연주했다. 침실에는 퀸 사이즈 침대가 있다. 최근 직장에서 나오는 복지포인트로 침대를 바꾸고 안락한 잠자리를 꾸렸다. 회사원들에겐 월급 말고도 이런저런 혜택이 많다는 것을 몰랐다.
나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곡을 쓰고 완성해 발표한다는 것이다. 여러 곡을 모아 앨범으로 발표하고 싶지만, 그건 요즘 추세도 아니고 앨범 단위의 긴 호흡의 작업을 집중해서 해낼 시간이 없다. 또, 마감일에 맞춰 한 곡씩 완성하는 데 익숙해지기도 했다. 작업 패턴은 연재 작가의 마음으로 일단 음반 발매일을 먼저 정한다. 두 세곡 정도를 동시에 써보다가 더 마음이 가는 곡을 발전시켜 녹음한다. 일정은 항상 빠듯하다. 마감 한 달 전까지 가사와 멜로디를 완성하고 대략적인 곡 구상을 완료하고 발매 10일 전까지 녹음한다. 믹싱과 마스터링은 진행 중에도 몇 번씩 수정하고 납기일을 하루 이틀 넘겨 유통사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빠듯한 일정에 맞춰주는 믹싱 엔지니어 감독님 덕분에 지금껏 제때 발매할 수 있었다. 언제나 마감일이 아슬아슬할 무렵 곡을 전달하기에 음원 유통사의 직원에게도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작업방에는 스피커와 컴퓨터, 녹음 장비와 기타 여섯 대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직업반 실용음악학과 시험을 봤다. 그 당시 아버지와 담임 선생님의 반대에 이틀간 집을 나가기도 했다. 결국 허락을 받았고 아버지는 그때 낙원상가에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주셨다. 이건 지금도 가장 아끼는 기타다. 라이브에서 메인으로 사용하진 않지만, 녹음할 땐 대부분 이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한다. 작업실 컴퓨터 뒤로는 큰 창이 있다. 그러나 반사음을 제거하려고 설치한 암막 커튼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다. 창문이 없는 벽면에도 같은 이유로 두꺼운 커튼을 설치해 두었다. 이런 환경때문에 작업방에서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스피커 맞은편에는 소파가 있다. 사촌 누나가 미국으로 이주할 때 준 건데, 원래 사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마음에 든다. 마감 며칠 전부터는 침실에 가지 않고 이 소파에서 잠을 청한다. 갑자기 수정해야 할 것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2월에 새 싱글을 발표했다. 제목은 ‘초년생’이다. 처음 밴드에 가입해 음악을 할 때,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 음반을 발표할 때, 사회초년생이 된 나의 감정을 더했다. 인생은 모르지만 어디서든 나름의 재미를 찾을 생각이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나는 앞으로도 음악가일 것이다.
넓어지는 집
일러스트레이터 휘리의 집
한 집에 오랫동안 살았다. 이 집에 처음 올 때는 다섯 명이었고, 지금은 두 명이 산다. 다섯에서 둘이 되는 긴 시간 동안, 말하기 벅찰 만큼 많은 사연이 지나갔다. 낡은 벽지가 바랜 자국, 한 번도 고치지 않은 문간, 어릴 때 붙여놓은 스티커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 집은 단 한 가족만의 기억을 품고 있다.
현재 함께 사는 가족과 이 집에서 있었던 추억을 종종 상기하는데, 그때마다 꼭 나오는 주제가 하나 있다. 예전보다 인원이 줄어든 지금, 오히려 집이 좁게 느껴진다는 것. 사람이 줄고, 그만큼 짐도 줄고, 구조 변화는 없는 집. 이 질문이 나올 때마다 둘이 머리를 갸우뚱하고는 말았다.
몇 년 전, 자주 놀러 가던 친구 집이 있었다. 당시 함께 하는 활동이 있어 일주일에 하루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집에도 두 사람이 살았고 공간은 우리 집보다 작았다. 그리고 늘 손님이 많았다. 며칠씩 묵는 에어비앤비 손님도 있고, 나를 포함한 친구들도 자주 놀러 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연말이면 복작복작 예닐곱씩 모여 요리해 먹고 온종일 떠들었다.
그 집에 두 사람만 있을 때도 가 보았고, 여럿이 머물고 있을 때도 가 보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손님이 있는 날에 유독 집이 넓어 보인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확신했다. 덩그러니 비어 있던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는 날. 아무도 관심 없던 작은 부엌 창을 내다보며 신기해하는 손님이 있는 날. 귀퉁이 작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친구가 온 날.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치던 사람들이 온 그날. 사람들의 관심과 온기가 구석구석 닿은 곳은 쓰임새가 생겼고, 집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마다 불을 켜고 우리 집을 들여다본다. 할머니가 쓰시던 방은 이제 안 쓰는 물건을 두는 창고가 되었다. 난방을 켜면 가장 먼저 훈기가 돌던 그 방. 이제는 아무리 온도를 올려도 좀처럼 냉기가 가시지 않는다. 방 안 구석구석까지 돌보던 온기가 사라진 만큼, 집이 자꾸 좁아져 간다.
에디터 이주연
글 박세미, 김정웅, 휘리 일러스트 오하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