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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북위 41°.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펜실베이니아는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 크림 치즈로 유명한 도시 필라델피아가 있고 주州를 대표하는 꽃은 월계수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에 대해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봄직한 지명을 제외하곤 선뜻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그곳에 깊고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동양의 작고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느리고 긴 호흡으로 켜켜이 쌓인 지난 4년간의 추억을 곱씹는 시간. 보통의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의 발자취는 나직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미국땅 어딘가 존재하는 낯섦에 관한 오래된 서사는 그래서, 여전히 우리들에게 유효하다.
펜실베이니아는 대도시의 소란함과 작은 마을의 평온함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한국만큼이나 사계절이 뚜렷하고 가을에는 영화에서 자주 묘사되는 미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 낭만적인 여행지로 손꼽힌다. 특히 캠프힐은 부자동네는 아니지만 집주인의 취향대로 정성껏 꾸민 아기자기한 ‘Home , Sweet Home ’들이 즐비해 가벼운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혹여 가을 즈음 펜실베이니아에 머물 기회가 생긴다면 시버트공원에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겨보자. 다리 위에 걸터앉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스케이트보드 타는 남학생들을 감상하다 보면 느긋한 오후가 훌쩍 지나간다.
이맘때면 해리스버그도 산책하기 참 좋은데 서스쿼해나강 usquehanna River의 강변에는 단풍나무 사이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고 낙엽을 밟으며 손잡고 걷는 연인들도 부지기수다.
길만 건너면 도심이므로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해오기도 좋다. 산책이 지루하면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강둑에 앉아 유유자적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봐도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시티아일랜드로 통하는 철제다리가 나오는데 발 밑에 구멍이 뚫린 아치형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서스쿼해나강 수면에 비쳐 반짝반짝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노라면 그 어떤 시름도 한순간에 잊혀질 만큼 황홀하다.
서스쿼해나강이 산책하기 좋게 잘 다듬어진 강이라면 주니아타강Juniata River은 맘 맞는 친구와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 가기 딱 좋은 강이다. 넓은 잔디밭과 버드나무, 잔잔한 강물의 움직임은 조용하고 매우 비밀스럽다. 보기보다 물살이 세고 깊으니 무리해서 반대편까지 건너가거나 섣불리 뛰어드는 건 삼가야 한다.
영국왕 찰스 2세가 미식민지 건설자인 윌리엄 펜에게 준 숲의 이름에서 유래한 펜실베이니아주는 초기 미국 13개 주州 중 하나로, 독립선언과 합중국 헌법을 선언한 최초의 수도다. 113개의 주립공원과 앨러게니Allegheny국립산림을 포함한 장엄한 자연경관, 곳곳의 역사적 유적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는 작은 도시들은 관광지 혹은 휴양지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 남동쪽에 있는 도시 필라델피아는 아름다운 역사적 도시들로 둘러싸여 매우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또한 필라델피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필라델피아 플라워쇼Philadelphia International Flower는 펜실베이니아 컨벤션 센터에서 3월 초순에 열리는 꽃 축제로 꽤 유명하다. 매년 9월 초에는 예술가를 지원하고 첨단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축제가 열리므로 여행 일정을 짤 때 참고하면 좋다.
더치 카운티
더치 카운티의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의 ‘Dutch’에서 나온 게 아니라 독일의‘Deutsch’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에 최초로 이주한 사람들(Plain People이라 부른다)은 대부분 독일과 스위스 출신으로 종교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들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더치 카운티는 시간이 멈춰선 곳, 아미시 Amish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아미시는 전기나 전화,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18세기 당시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고 있는 독일계 이주자들의 후손이다.
구레나룻을 기른 남자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며 가스등으로 불을 밝히고 마차를 몰고 다닌다. 최근에는 이들의 생활을 살펴보려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도로변에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시골길을 따 피츠버그 라 펼쳐진 산뜻한 목장 등 이곳의 전통적인 풍경은 여전하다.
허쉬
미국의 초콜릿 수도 허쉬Hershey에는 초콜릿세상The Chocolate World 박물관과 놀이공원이 있다. 키세스 초콜릿 모양의 가로등이 즐비한 허쉬의 거리를 걷다보면 어느새 공기중에 떠도는 달콤한 초콜릿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 투어
펜실베이니아에는 프랭클린 과학박물관을 비롯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인류고고학 박물관, 카네기 박물관Carnegie Museum of Natural History, 마릴린 먼로 팝아트로 유명한 앤디워홀 박물관The Andy Warhol Museum 등 분야별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아 볼거리가 풍부하다. 자연사나 인류학,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여행 전 미리 관련자료를 찾아보고 가길 추천한다.
펜실베이니아의 가을
Pennsylvania autumn
펜실베이니아의 가을은 갓 새 학년이 시작되는 때라 매우 바쁘다. 특히 한국에서 막 미국으로 돌아온 유학생의 입장에서 펜실베이니아의 가을은 시차적응과 새학기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지만 급한 시기를 여차저차 넘기고 나면 알록달록한 단풍도 보이고 가을축제와 할로윈Halloween,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단골가게 플리마켓 & 코너스톤 플리마켓과 카페 코너스톤은 내가 자주 가던 단골가게다. 플리마켓은 양 손에 가득 찬 종이가방을 들고나와도 5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유학생들도 이곳에서 만큼은 소박하게나마 사치를 부릴 수 있다. 체코에서 놀러온 친구에게 줄 오래된 보석함을 산 곳도, 무엇보다 내가 유학생활 중 가장 잘 샀다고 여겨지는 XR-10 카메라를 3만원도 채 안되는 가격에 구입한 곳도 플리마켓이다.
코너스톤은 집에서 와이파이가 갑자기 끊겼을 때 비명을 지르며 노트북과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달려가던 곳이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리서치도 하고 리포트도 썼다. 아담하지만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서관과 카페 사이쯤 되는 분위기다. 금요일 저녁에는 재즈밴드를 초청해서 재즈라면 사족을 못쓰는 행카체코 교환학생에게 끌려가곤 했다.
가을산책
행카와 내가 주니아타강을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던 우리는 좀더 멀리 가보기로 마음먹고 마을수영장을 지나 근처 숲으로 들어갔다. 울퉁불퉁한 숲길과 점점 좁아지는 나무터널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마주친 말하는 토끼가 튀어나온대도 놀랍지 않을 신비로운 강이 나타났다. 주니아타강이었다. 저 멀리 띄엄띄엄 서 있는 집들 외에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신난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디밭에 드러누웠다. 노래를 틀어놓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다(We’re looking for something dumb to do Hey baby I think I wanna marry you) 행카가 뭍에서 주워온 거북이 ‘맘비’를 데리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동묘지에서 낮잠을
NAP AT CEMETERY
이맘때쯤 학생들은 SAT시험을 친다. 시험 전날에 뭔가 대박을 터뜨릴 것 같은 촉이 왔다. 뭐, 내 촉대로 따라가서 잘된 적은 없지만. 하여튼 근거 없는 기대를 가지고 시험을 쳤는데 말 그대로 죽 쒔다. 끝까지 볼 필요도 없이 첫교시부터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 시험장을 나서는데 구름 덮인 내 마음과는 달리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괜히 센치해져 집으로 안가고 무작정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낙엽에 뒤덮인 공동묘지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깨끗하고 큰나무들도 심어져 있어 분위기가 좋았다.
호기심이 생겨 몇몇 묘비에 적힌 글을 읽어보니 19세기에 살았던 사람도 있고 20세기에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하나하나 읽다보니 저 사람들은 적어도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자괴감에 빠져 내 묘비에는 ‘SAT망했음. 비웃어도 좋음.’ 이렇게 새겨지겠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조금 울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자다가 깨보니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했다. 자면서 추웠는지 나도 모르는 새 묘비를 바람막이 삼아 무덤 뒤에 누워 있었다. 퍼뜩 정신이 들자 소름이 돋아서 소리도 못 지르고 마구 달려나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멈춰서 한숨 돌리고 나니 ‘SAT 한번 망한 것쯤이야’ 싶기도 했다. 잠을 푹 자서 그런 건지, 울어서 그런 건지, 공동묘지에서 혼이 빠져라 달려서 그런 건지.
케이크는 나의 힘
CAKE IS MY FORCE
펜실베이니아에 오랜 기간 머무르면서 몸소 터득한 진리는 남는 건 먹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캠프힐 다이너는 우리가 요리하기 귀찮을 때마다(만든 지 일주일된 토마토 스파게티에 다들 한계를 느낄 때) 혹은 느지막이 일어난 토요일 아침에 종종 찾아갔던 곳이다. 전형적인 미국식 다이너로 오믈렛, 토스트, 햄버거 등을 판다. 종업원이 워낙 사근사근하고 엄마같이 굴어서(이를 테면 “아침부터 햄버거 같은 거 먹으면 안돼!” 식의) 자주 가곤 했다.
펜실베이니아 베이커리는 나름대로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베이커리다. 웨딩케이크 전문점이긴 하지만 조각 케이크나 타르트,쿠키 등의 디저트도 같이 팔고 간단한 커피나 음료도 취급한다. 저녁 먹고 나서 뭔가 입이 심심하다 싶으면 카디건을 걸치고 들르거나 오후에 숙제하면서 과일 타르트를 먹는 기분도 썩 괜찮다.
멧포드
싱글파더, 전직군인, 파일럿, 환갑, 자녀만 열 명, 스쿨버스 기사.
우리 아저씨는 딱히 연관성 있는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여기서 ‘우리 아저씨’란 나의 호스트 아빠이자 가디언을 말한다). 일단 자녀가 열 명이나 된다는 것에서부터 아저씨는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첫째가 마흔세살이고 막내가 열세살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저씨와 같이 살게 된 시점에는 아저씨와 막내딸 케일라, 이렇게 2인 가정이었다.
아저씨의 성격은 조금 괴팍한 편인데 환갑 넘어서 열세살짜리 사춘기 여자애를 키우려면 그 정도야 애교로 넘어가줄 만하다. 여하튼 내가 멧포드를 ‘하숙집 아저씨’ 이상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어느날 새벽녘의 사건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한참을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던 나는 도무지 다음날 학교에갈 기분이 안 내켜 아저씨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멧포드, 나 내일 학교 안…….”까지 말했을 때 울음이 터졌다. 계단참에 서서 엉엉 우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아저씨가 자기 옆자리를 팡팡 치며 흑인 특유의 말투로 “이리와! 여기 좀 앉아!”라고 소리쳤다.
눈물과 딸꾹질이 좀 잦아들자 아저씨가 넌지시 “남자친구랑 깨졌어?”라고 물어봤다. 말없이 한참을 울기만 하던 내가 겨우 눈물을 그치고 나서야 아저씨는 “내 샷건이 어디 갔더라.
걔 어디 산다고?”란 농담을 해 날 웃게 만들었다. 아마 그날 이후로 나는 아저씨를 진짜 가족처럼 여기게 된 것 같다. 여고생의 연애사를 진지하게 받아준 그때부터. 아직도아저씨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팝타트를 한 박스씩 보낸다. 내 결혼식에 꼭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행카
홈스테이 친구, 체코 교환학생, 붉은 머리, 채식으로 유지하는 날씬한 몸매. 행카는 체코에서 온 교환학생이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지만 동유럽 특유의 보헤미안적 기질을 굳이 숨기려 들지도 않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예쁘고 자유분방한 게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인공 홀리를 꼭 빼닮았다. 행카는 보통 한국에서 엄마가 “안돼!”라고 말하는 것들을 하자고 졸랐다. 그러면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래. 그런데 우리 괜찮은 거 맞지?”라며 묻곤 했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어느날, 행카가별을 보며 밖에서 자자고 했다. 나는 속으로 ‘추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이불과 베개, 양초, 커피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두터운 이불 아래 웅크리고 누워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별을 헤며 재잘대다 태어나 처음 은하수 아래서 잠들었다. 행카는 그렇게 내게 모든 순간을 풍부한 정서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물론 그날 밤의 낭만은 자다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며 대문을 두드리는 걸로 끝이 났다).
우리는 폭풍우 속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내가 비에 젖어 축축해지는 걸 꺼려하자 행카는 “넌 비를 좋아한 다면서 왜 비를 피해?”라고 물었다.
결국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었고 옆에서 구경만 하겠다던 케일라도 합류해 셋이서 천둥보다 더 크게 미카의‘rain(Baby, I hate days like this!)’을 따라 불렀다. 옆집 아줌마가 너네 그러다 번개 맞는다고 소리질렀지만 “우리 번개 맞으려고 나온 거예요!”라고 받아치며 웅덩이 속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행카는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속옷이나 비키니나 뭐가 달라!”를 외치며 속옷만 입고 수영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그녀는 항상 저녁 먹기 전에 내 방문을 노크하며 “산책 나갈래?”라고 묻곤 했는데 당시 나는 과제부터 토플, SAT 준비까지 하느라 매번 이를 거절하기 바빴다.
그럼 행카는 지지 않고 내 방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네 인생 진짜 재미없겠다.”로 시작해서 “밖에 날씨 봐. 정말 아름다워! 이런 날씨에 공부는 어울리지 않아. 나가자! 오늘은 노을이 정말 예쁠 거야.”라고 끈질기게 날 유혹했다. 그러면 나는 참지 못하고 사진기를 챙겨 신나게 행카를 따라나섰다. 대부분은 행카가 옳았다. 노을이지는 산책로는 정말로 예쁘다. 이제 행카는 없지만 여전히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없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의 좌표
Travel Coordinates
공통분모
한 지붕 아래서 각자의 삶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하게 살던 우리(멧포드, 케일라,나)들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모두 여행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거기다 체코에서 행카까지 오고 나니 한술 더 뜨고도 남았다. 날씨가 미치도록 화창한 주말 아침, 여자 셋이 부엌에서 팬케이크나 먹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동네 잔디밭에서 원반이나 던지는 걸로 그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즉석에서 뉴욕으로 떠날 때도 있었고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체서피크에서 보낸 하루도 좋았다. 큰 배도 잔뜩 구경하고 거대한 쇼핑센터에서 윈도우 쇼핑도 맘껏 했다. 그리고 셋 다 걷는데 싫증이 날 무렵이면 하드락 카페의 커다란 기타사인이 보이는 부두에 걸터앉아 망고향 시럽을 얹은 빙수를 한입씩 베어 물었다.
12월 31일의 뉴욕 2010년의 마지막날은 뉴욕1에서 보내기로 했다. 멧포드 아저씨는 여자들끼리 즐거운 시간 보내라며 우리를 뉴욕 한복판에 내려다주고 떠나버렸다. 나, 케일라, 행카 그리고 체코에서 놀러온 행카의 언니 텔카 그렇게 넷이서 지도도 없이 뉴욕을 이리저리 맘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12월 31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한참을 인파에 휩쓸려 허우적대다 겨우 빠져나온 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낭만적인 눈 덮인 센트럴파크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싸움을 시작한 우리는 서로 격하게 눈뭉치를 집어던지다가도 지나가던 행인들이 흥미로운 눈초리로 쳐다보면 괜히 부끄러워 프랑스 관광객인 척 연기를하기도 했다. 엉터리 불어를 지껄이며 기어이 눈사람까지 만들고 난 뒤에야 다시 뉴욕 시내로 진입해 도착한 곳은 록펠러센터였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나홀로 집에2>에서 나온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진짜로 눈앞에 나타난 순간 우리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트리만 바라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뉴욕에서 보낸 그 12월 31일이 내가 미국에 살면서 가장 낭만적인 것을 보고 느꼈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1. 뉴욕New York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미드타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계 최대의 상업용 건물인 팬아메리칸 빌딩과 UN본부 건물, 뉴욕 증권거래소 등은 미드의 단골 배경으로 등장한다.
시내외의 수많은 공원 중에서도 맨해튼 중앙에 있는 센트럴파크와 브루클린의 남부 대서양 해안에 인접한 코니아일랜드는 특히 유명하다. 또 맨해튼 남쪽 바다에는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과 거버너스섬(연안경비대의 기지로 사적이 많다)이 있다.
플로리다에서 보낸 일주일
추수감사절, 우리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플로리다2로 휴가를 떠났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플로리다까지 비행기가 아닌 차로 대륙종단에 가까운 총 스무 시간의 주행이었다. 한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도 그 정도로 오래 걸리진 않으니 가는 내내 그런 고문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플로리다에 도착하니 그간 겪었던 고초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날짜상으로는 어엿한 가을인데도 반팔을 입고 돌아다닐 만한 날씨였다.
비키니를 입고 크리스마스트리 옆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우리는 멧포드 아저씨의 오랜 친구인 팀과 리사네 집에서 묵었는데, 팀은 농담을 진지하게 말하길 즐기는 편이고 리사는 팅커벨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팀과 리사네 집 근처에는 작은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에는 매너티3가 산다고 했다. 플로리다에 세 번이나 가봤지만 아직 한번도 그 호수에서 매너티들을 본 적은 없다. 이 얘기 역시 팀이 진지하게 한 농담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에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하며 누워 있으니 플로리다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대부분을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계절을 뛰어넘어 한결같은 날씨가 마음에 들었다. 낮에는 해변에 누워 있다가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심심하면 모래성도 쌓고, 해파리 조각을 찾으며 노는데 싫증이 나면 다시 모래로 돌아와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플로리다에서 보낸 일주일
선셋비치로 가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밤이 되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잔디밭에 커피를 들고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일주일 내내 뉴스에 나온 동물원에서 도망친 침팬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팀이 기타를 칠 때도 있었다. 근처의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플로리다에서의 일주일은 대부분 해변에 누워 게으르게 보냈다. 플로리다를 떠날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나중에 늙으면(그렇다고 너무 늙어버리기 전에) 꼭 플로리다에서 살고 싶다. 항상 태양을 쬐면서 살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한 건 아니니까.
2. 플로리다Florida 스페인어로 ‘꽃이 피는 나라’라는 뜻으로 꽃의 축제기간을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 아열대나 열대성 해안 지방에 크고 작은 관광지가 많다. 대서양에서 플로리다 해협에 걸친 지역에는 할리우드, 마이애미비치, 키웨스트등 해안휴양지가 잇따르고 멕시코만 연안에도 탬파, 세인트피터즈버그, 클리어워터, 새러소터 등의 휴양지가 있다. 미국남부의 가장 부유한 주로서, 케이프커내버럴은 케네디우주 센터가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3. 매너티 듀공과 더불어 인어人魚를 연상시키는 수생동물
나는 외로움을 덜 타는 편이다. 하지만 갓 중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다 보면 진짜로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나마 나 같은 경우에는 싱글파더 가정이란 다소 특수한 테두리 안에 속한데다 다른 교환 학생이 있어서 그런 외로움을 상대적으로 덜 느꼈다. 내가 “으악! 엄마, 보고 싶어!”라고 징징대면 케일라가 “나도!”라고 받아쳤고 그럴 때면 옆에 있던 행카는“너네 진짜 마마 걸이다. 징그러.”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셋 다 기분이 영 별로일 때는 ‘Sick Day’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아침에 아저씨에게 셋이 나란히 꾀병을 부려 억지 휴가를 받아내기도 했다. 평일에 진짜 친한 친구들과 다같이학교를 빼먹는 쾌감은 외로움은커녕 다운된 기분을 업시켜주기에 제격이다(공범자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죄책감도 덜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학교를 빼먹고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Sick Day’인만큼 각자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거나 만만한 내 방에서 진종일 수다나 떠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 시각 바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만 한가하다는 느낌이 넘치게 즐거웠다.
그녀는 미국에서의 일상이 매우 단조로웠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를 하고 나면 저녁을 먹은 후 천천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라고 해봐야 금요일 저녁에 카페에 가는 것 정도. 나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그런 규칙적인 행동패턴이 좋았다. 그녀도 그런 질서 속에서야 자신이 그 곳에 속해 있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미국에 외따로 떨어진 그녀가 점점 이방인의 질서에 녹아드는 과정을 상상했다.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나는 여기서 매일 같은 하루를 보내요. 나는 여기에 살고 있어요.”라고 노래했다.
그녀의 사진과 글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낯선 곳에 며칠 머물렀다 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미처 볼 수 없었을 귀중한 것들이 띄어쓴 글자 사이사이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어 요령껏 골라내는 재미가 퍽 쏠쏠했다. 마치 내가 그곳에서 살다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밤. 어느덧 펜실베이니아의 가을이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하다.
이연희
2008년 1월부터 2011년 6월까지 4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유학생활을 했다.
현재 경북대학교에 재학중이며 올해로 스물한살이 됐다.
Blog cloudcounter.tistory.com
글. 사진 이연희
그림 유원미 기획 오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