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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무를 꽃을 위한 축제
잠시 머무를
꽃을 위한 축제
꽃이 아름다운 건 꽃의 색과 형태가 주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긴 기다림 끝에 잠시 피어났다 지고 마는 시간성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그래서 우린 잠시 머무를 꽃의 존재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축제를 열기도 한다. 몸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부쩍 따뜻하게 느껴지던 초봄,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봄꽃 축제, 큐켄호프를 보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났다.
튤립의
나라로
열일곱 시간의 여정 끝에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의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스키폴 공항 곳곳엔 큐켄호프Keukenhof 홍보 포스터가 크게 붙어있다. 큐켄호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꽃 축제 중 하나다. 매년 봄 3월부터 5월까지 8주간 열리며, 다른 어떤 식물보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춘식구근식물(봄에 꽃을 피우는 알뿌리 식물)이 공원을 가득 채운다.
큐켄호프는 ‘키친 가든’이란 뜻으로, 15세기부터 이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큐켄호프가 열리는 지역에선 과일과 채소, 식용식물들이 많이 재배되었기 때문에 수백 년간 키친 가든으로 활용되다가, 1949년부터 봄에 꽃을 피우는 ‘알뿌리식물’ 축제로 발전했다. 큐켄호프에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꽃인 튤립부터 히아신스, 수선화, 무스카리, 나리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큐켄호프는 암스테르담 외곽에 있고 교통편이 많지 않아서 평소에 방문하기엔 조금 성가신 곳이다. 하지만 축제 기간엔 암스테르담 시내 몇 군데와 스키폴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편리하게 축제장 입구까지 갈 수 있다. 큐켄호프로 가는 버스의 창밖으로 네덜란드 특유의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연두색 들판은 노랗고 빨간 튤립밭으로 변해간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한 밭이다. 그리고 ‘아, 내가 정말 튤립의 나라에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큐켄호프에 도착한다.
큐켄호프를
여는 사람들
직장에 다니던 때, 나는 늘 꽃 축제와 식물원 행사, 워크숍 등을 준비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어떤 축제를 가더라도 그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가장 먼저 보인다. 이렇게 거대하고 화려한 축제를 준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시간, 예산을 들였을지 말이다.
더구나 식물이란 오늘 씨앗을 심어 내일 꽃을 피우는 존재가 아니다. 봄꽃을 피우기 위해 큐켄호프를 준비하는 사십여 개의 팀은 전해 9월부터 3개월간 7백만 개의 알뿌리를 심는다. 그리고 그들이 공들여 심은 알뿌리는 다음 해 봄이 되면 꽃을 피운다.
식물을 재배한다는 건 단순히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주는 등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다한다고 그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매일 날씨를 확인하며 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면서 식물들이 제대로 뿌리내렸기를 바라고, 식물을 향한 무거운 짐을 마음에 내내 묻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다해도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큐켄호프를 위해 알뿌리식물들을 심은 원예가들은 축제가 끝나는 날까지 단 한시도 그들이 심은 알뿌리에서 마음을 떼지 못할 것이다. 원예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다. 날씨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이기에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황금시대
큐켄호프는 매해 특정 주제에 맞게 축제를 꾸린다. 올해의 주제는 ‘황금시대The Golden Age’다. 네덜란드가 무역, 예술, 과학 분야에서 번성했던 시대, 그리고 네덜란드의 식물학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 식물을 수집하던 시기를 회상하며 정원을 꾸렸기 때문에 다른 어느 해보다도 더 화려한 면모를 많이 보였다.
봄에 꽃을 피우는 알뿌리식물들은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외래식물이기 때문에 특정 품종들만이 주로 수입된다. 그래서 알뿌리식물이라 하면, 몇 가지 색이 식물의 대표 이미지로 떠오른다. 빨갛고 노란 튤립, 하늘색의 무스카리, 보라색이나 하늘색의 히아신스, 노랗거나 보라빛을 띄는 크로커스. 하지만 튤립도 히아신스도 크로커스도 실은 아주 다양한 색과 형태를 가졌다. 큐켄호프에선 이 식물들의 다양한 품종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먼 과거에 네덜란드가 경제적으로 부흥하던 시절, 터키로부터 튤립이 들어오면서 튤립은 네덜란드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식물로 성장해왔다.
튤립의 인기가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튤립을 사고파는 거래가 늘고, 결국 금이나 부동산처럼 튤립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후엔 희귀한 튤립품종이 수억 원에 거래될 만큼 네덜란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튤립버블’이란 경제학용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네덜란드와 튤립의 인연은 깊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튤립을 네덜란드 식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 튤립은 터키와 중앙아시아 원산의 식물이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튤립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튤립의 육종에 힘을 쏟았고, 세계적으로 8천여 종의 튤립 중 대부분은 네덜란드에서 육종됐다. 원래 인간은 갖지 못한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공을 들이고 집착하기 마련이다. 식물학과 식물 문화도 식물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이나 기후가 척박한 곳에서 오히려 더 활발하게 연구되고, 발전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식물을
바라보는 마음
수백 년 전부터 식물을 연구하고,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집 안에 들이는 식물 문화가 발전한 영국, 독일,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의 꽃 축제 풍경은 아직 식물 문화가 막 발전하기 시작하는 단계의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축제에 온 사람들은 식재되어 있는 식물 품종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고, 식물의 이름을 적는다. 애초에 축제에 온 이유가 자신의 정원에 심을 식물, 혹은 거실 꽃병에 꽂으면 좋을 식물,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다발로 줄 식물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식재되어 있는 모든 식물에는 이름표와 설명이 자세하고 정확하게 적혀 있고, 다양한 꽃이 섞인 채로 식재된 경우에도 그 모든 품종의 이름표를 하나하나 적어놓았다. 네덜란드의 식물 소비자가 다양한 품종을 소비하고, 이상적인 식물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큐켄호프의 이런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떄문이다.
큐켄호프Keukenhof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지역 리세Lisse의 큐켄호프 공원에서 매년 3월에서 5월 사이 8주간 열리는 봄 알뿌리식물축제. 공식적으로는 195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66년째 이어오고 있다. 매해 백여 개 이상의 회사가 참여하고 7백만 개체의 식물을 볼 수 있으며, 2십여 개의 플라워 쇼가 벌어진다. 2017년에는 3월 23일부터 5월 2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T. +31(0)252-2161
H. keukenhof.nl
에디터 정혜미
글·사진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