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켈티 프레임백
배낭여행의 상징
켈티 프레임 팩
아직 배낭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배낭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커다란 백팩이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가방은 사람들에게 천천히 알려졌고, 몇 년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어깨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세계를 여행했다. 침낭이나 텐트를 얹으면 허리춤부터 머리 위로 두 뼘이나 올라오는 커다란 크기의 이 가방이 속삭이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1952년,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던 배낭
프레임 팩은 알루미늄 프레임과 두툼한 어깨끈, 그리고 허리벨트가 갖춰진 커다란 배낭을 말한다. 프레임과 배낭을 분리할 수 있게 돼있고, 침낭이나 텐트 같은 장비를 단단한 프레임 위아래에 묶을 수도 있다. 무게중심이 위쪽에 있어 하중의 부담을 덜어주는데 허리 쪽의 벨트를 조이면 이를 또 한 번 분산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다만 평지가 아닌 경우라면 조금 기우뚱거릴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쉽게 말해 장애물이 많은 산을 등반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동하는 배낭여행, 백패킹용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배낭을 만든 사람은 딕 켈티Dick Kelty, 목수였던 그가 가방을 만든 이유는 여행을 좋아하던 친구들 때문이었다. 딕은 창고에서 직접 알루미늄 프레임을 용접했고 그의 아내인 네나Nena가 재봉질을 맡았다. 본격적으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 1952년에 스물아홉 개를 생산했고 각각 24달러에 팔았다고 한다. 이듬해에 90개, 그 이듬해에는 220개의 프레임 팩을 생산했다. 3년 동안 겨우 300개를 조금 웃도는 개수를 판매한 셈이니 ‘본격’이라는 말이 왠지 민망하긴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가 가방 하나하나를 직접 만드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마 이해가 될 것이다.
가방이 급속도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통신판매였다.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카탈로그를 제작했고 오래된 이발소를 인수해 공장으로 만들어 생산량도 크게 늘렸다. 미국 젊은이들의 관심 속에서 퍼져나간 프레임 팩은 ‘배낭여행’이라는 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69년, 켈티에서 새로운 캠핑용품이 출시되기 전까지인 10여 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프레임 팩은 켈티의 상징, 배낭여행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요즘은 이 가방을 메고 긴 여행을 하는 사람을 쉽게 마주칠 수 없을 것이다. 더 가볍고 실용적인 소재의 가방이 많을 테니까. 게다가 최근에 초창기 모델의 복각 제품이 출시되기 전까지는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 배낭이 오늘까지 여행자의 필수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 대신 이 가방이 말 그대로 어떤 ‘상징’이 되어, 지금은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사무실 유리 너머로 서울의 불빛을 보는 내게, 사람들의 퇴근길 지친 어깨를 보는 내 머릿속에 가끔 등장하는 엉뚱한 상상이 그렇다.
마운티니아 프레임 팩
Mountaineer Frame Pack
1952년 형 켈티 프레임 팩을 재해석해 만든 최신 모델
36l / 75x50x25(cm) / 나일론 소재
kelty.kr
머리 위로
솟아오른 큰 배낭
조금 타이트한 청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두툼한 양말과 끈을 꽉 조인 가죽 부츠, 챙이 넓은 모자, 콧수염, 선글라스, 그리고 켈티의 프레임 팩. 배낭여행이 시작되고 또 유행했다는 1960년대의 사진들을 찾아보면, 그런 모습을 한 여행자들의 사진을 몇 장 찾을 수 있다. 햇살을 받고 있는 웅장한 나무들, 혹은 얌전하게 누운 연두색 잔디들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있는 그들은 지금 보면 참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결국 ‘당장에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만다.
그래서 내가 서울의 직장인들을 보며 하는 상상은 바로 과거의 그들처럼 켈티 프레임 팩을 메고 있는 모습이다. 내 상상 속에서 사람들은 정장 위에도 배낭을 메고 원피스 위에도 멘다. 무섭기만 한 대리님, 얼굴 보기 힘든 회장님 어깨에도, 신입사원처럼 보이는 어수룩한 남자의 머리 위에도 프레임 팩이 보인다.
사람들은 버스에 오르기 전에 허리 쪽의 밴드를 꽉 조이는 것이다. 엉뚱하게, 나는 그러면서 모두가 여행자이길, 창고에 앉아 용접을 하던 딕 켈티의 마음으로 바래 본다. 모두 촌스럽게 입고서, 철없이 낭만만을 쫓았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가방이 정말 배낭여행의 상징이기 때문일까. ‘그래, 떠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모두가 떠날 일은 없더라도 내 마음만은 확고해진다. 수많은 아웃도어 제품들의 탄생과 발전 앞에서 왜 우리들은 오히려 더 웅크리는 걸까. 모두가 함부로 떠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예쁜 커튼만 고르는, 단단히 잠기는 창문을 찾는 우리들 모습이 아쉽다. 구글에서 찾은 오래전 사진 속, 머리 위로 솟은 프레임 팩의 몸통이 내게 말한다. 바깥에 또 한 번 봄이 왔다고. 지구가 수만 번째 아름다운 기지개를 켜는 중이라고. 1952년에 그가 처음 만들었던 스물아홉 개의 프레임 팩은 아마 수천 명, 수만 명에게 같은 말을 속삭였을 것이다.
에디터 전진우
자료제공 켈티KEL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