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단어

탈주

탈주

 

[탈주] 몸을 빼쳐 달아남.

 

출근길, 벚꽃 비 내리는 풍경을 본다. 원래 이쯤이면 노인과 아이들이 아파트 벤치와 정자를 가득 메우고 봄을 만끽한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마저도 띄엄띄엄,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이 일상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을 영 어렵게 한다. 이런 봄엔 책방도 단축 영업을 하고, 손님들과 거리를 두며 조용히 산다. 재미없게 또한 무력하게. 그러던 어느 날, K가 오랜만에 연차까지 내고 책방을 찾았다.

그의 회사는 요즘 일이 없다. 할 일 없이 사무실에 앉아 6시까지 시간을 죽이다 보면 K는 내면의 말(馬) 한 마리를 만나곤 한다. 작은 창가로 쏟아지는 볕을 받으며 말은 트랙 위에 선다. ‘탕!’ 총소리가 들리기를 고대하면서.

그러나 사무실에서는 ‘딸각’ 하는 마우스 소리나, ‘타닥’ 키보드 소리, ‘커억’ 팀장의 가래 소리, ‘쾅’ 하고 서랍 닫는 소리, 그도 아니면 규칙적인 프린터 소리만 ‘위잉’ 울린다. 답답한 K는 텀블러에 물을 채운다는 핑계로 겨우 자리를 한번 뜬다. 탕비실에선 총소리 대신 정수기 소리만 ‘졸졸’, 이상하게도 그 조심스러운 소리만 위안이 된다. 소심하고 볼품없는 소리가 꼭 자신처럼 느껴져서 그런 걸까.

K: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요즘.

나: 아마 다들 비슷할 거예요. 저도 그런걸요.

K: 한 마디로 갇혔다고 할까요?

나: 사무실에요?

K: 사무실에 갇힌 거면 다행이고…. 퇴근하면 되니까요. 음, 어쩌면 이 삶에 갇힌 것 같아요.

K는 새해의 재난을 통해 삶에 갇혀 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전까지 그는 정시 퇴근이 보장되고 주말에 출근할 일 없는 회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저녁에 운동, 주말엔 드라이브를 하며 남은 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의 삶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지내온 그다. 그러나 집과 회사만 무한히 오가는 최근에는 어떤 만족감도 느끼지 못한다. 숨막히는 이곳을 탈주하는 한 마리 말이 되는 상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 뱀띠라고요? 말띠라서 자꾸 탈주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죠.

K: 총소리는 언제 날까요? 들리면 바로 달려갈 텐데.

나: 그러고 보니 완전히 다른 길로 도망가고 싶은 건 아닌가 봐요.

K: 무슨 말이에요?

나: 총소리를 기다린다는 건 아직 경마장에 있다는 뜻이잖아요!

K가 자신의 말을 데려다 놓은 곳은 경마장이다. 윤기 나는 말갈기를 휘날리며 그저 달리고 또 달릴 수 있는 너른 초원이 아닌, 삭막한 경마장. 좁고 빽빽한 트랙에 위태롭게 서 있는 말이 눈앞에 그려졌다. 시야를 막는 차안대를 벗기고, 경마장의 큰 문을 열어 그 말을 풀어주고 싶었다. 힘이 없어 보이는 그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말 또한 초조한 마음으로 트랙에 서 있다. 건강한 말들이 왜 이렇게 초라한 곳에 있나. 퇴근 후 힘차게 초원을 달리던 말들의 기세를 꺾어 버린 건 재난이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앗아간 무시무시한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지난하게 반복되는 날들을 견디려면 휴일을 마음대로 빚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전염의 공포가 몇 달간 우리의 자유를 차압했고, 넷플릭스로 버티는 주말은 내가 고른 모양이 아니다. 만족스럽던 직장생활에 돌연 회의를 느끼는 이유는 소중한 자유 시간을 유용할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덧없는 삶에 ‘의미’라는 조미료를 치기 위해, 우리는 기필코 이 무력감에서 탈주해야 한다. 트랙에 겨우 서 있는 말들을 머나먼 초원까지 보내려면 ‘탕!’ 하는 무시무시한 총소리가 필요할 터. 진짜 원하는 길을 향해 달려갈 말들을 위해, 나는 단단한 문체를 가진 작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당분간 말들은 어딘가에 갇힌 채 탈주의 날만 기다릴 것이다. 그동안 ‘자유의지’를 가득 충전해두기로 한다. 총소리가 들리는 해방의 날, 아프리카 대초원까지 가는 길이 꽤 오래 걸릴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아니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짐짓 주장해야 한다. 어떤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행위자는 책임에 비례해 벌이나 상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내 연인을, 내 아내나 남편을 내가 골랐다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사랑의 엇갈림이나 맞물림조차 자유의지로 피하거나 이룰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어떤 선택(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도 우리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까. 인간이 자유롭다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 자기기만조차 이미 그리되도록 결정된 것이겠지만.

 

고종석 《사소한 것들의 거룩함》 중

We Around Project
<한밤의 구석진 고민 의자>

 

권투 선수가 링 위에서 싸우다 잠시 쉬어가는 구석의 의자 ‘코너스툴(Corner stool)’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어’로 된 고민을 가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읽고 쓰며 작은 의자에 머물다 간 그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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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성은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