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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장르, Corraini Edizioni
©Max Rommel
저 멀리 이탈리아에 있는 한 출판사의 책에 매료되어 메일을 보냈다. ‘당신들이 만드는 책이 궁금합니다. 그 수많은 책들은 어떻게, 무슨 이유로 만들어지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답은 간단명료했다. ‘우리는 예술을 담는 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인 책을 만듭니다.’ 답을 준 이는 출판사를 이끄는 피에트로 코라이니Pietro Corraini로, 그와 동료들은 코라이니라는 단 하나의 장르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Mantova에 위치한 코라이니는 자신들을 출판 연구소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지난 40년간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발명가, 그리고 작가들과 함께 일하며 출판, 전시회,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책은 독립적인 존재이며, 전 세계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지만 그 여행을 멈추는 순간 또 다른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전시가 될지 워크숍이 될지, 또 다른 책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코라이니는 어떤 책을 만들까? 웹사이트만 들어가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코라이니의 책들은 팝업북,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등 콘텐츠를 담는 방식이 무척 다양하고 자유로워서 한 가지 카테고리로 규정짓기 어렵다. 피에트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책을 만드느냐고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책, 믿음이 있는 책들을 만들어요. 어떤 서점들은 우리 책을 어느 카테고리에 놓을지 고민하다가 코라이니를 위한 코너를 따로 만들기도 하죠. ‘그림책’, ‘디자인’, ‘건축’ 같은 구체적인 구분이 아니라 그냥 ‘코라이니’의 공간인 거예요.”
코라이니와 함께 작업하는 마르티 귀세Martì Guixe, 파우스토 길베르티Fausto Gilberti, 폴 콕스Paul Cox, 해리엇 러셀Harriet Russell 같은 작가들은 모두 일러스트레이터지만 예술가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기에 그들의 작품을 어떤 틀에 맞추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파우스토 길베르티의 책 시리즈는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 파울 클레Paul Klee,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 등의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 교육적인 목적은 없다. 이런 책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라이니는 그들의 책에 예술적인 콘텐츠를 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드는 책 자체를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아티스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이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매거진인 《Un Sedicesimo》에는 신인과 거장이 모두 참여하지만 그들의 지위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힘이며, 프로젝트 자체라는 것이다.
좋은 그림책을 찾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피에트로는 “좋은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만약 아이들만을 위한 그림책이 있다면, 그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어요.”라고 힘주어 말한다.
제2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며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던 마술사,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그를 통해 코라이니를 알게 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코라이니는 1973년 아트 갤러리로 시작해 1988년 출판 하우스로 거듭났고, 1970년대 후반부터 브루노 무나리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 초대되어 여러 전시회를 진행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워크숍을 열었다. 그는 그 당시 아티스트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해냈다.
코라이니의 설립자인 마르치아 코라이니Marzia Corraini와 마우리치오 코라이니Maurizio Corraini는 대중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출판사나 아트 갤러리의 이미지에 자신들의 활동을 가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노 무나리의 ‘Block Notes’ 시리즈는 아이디어 모음집이자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독자들은 그 구멍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책의 세계로 초대받게 되는 것이다.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은 지금까지도 코라이니가 가야 할 길을을 곧게 터주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예술가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은 책과 게임과 어린이를 위한 프로젝트에 열중하는 예술가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가 남긴 강력한 메시지는 책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대하라는 겁니다.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다루는 데에는 완고함과 진지함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예술의 경계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했죠.”
©Giliola Chistè
코라이니가 수많은 책을 내는 이유는 책을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책을 사랑할 수 있느냐’다. 한국의 이수지 작가도 피에트로의 마음을 빼앗은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한 페어에서 그녀를 만난 후 《Alice in wonderland》를 시작으로 모든 책을 출간했다.
“아주 잘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저는 이수지 작가의 책 중 그 책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코라이니가 어떻게 책을 만드는지 설명할 때 항상 그 책을 예로 들 정도죠. 작은 출판사여서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지만 어떤 일과 사랑에 빠지면 지체 없이 진행해요. 그게 바로 다름을 만들어내는 지점이기도 해요.”
한국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곧 한국과의 관계다. 그들에게 한국은 최선의 방법으로 일하려는, 배려와 사랑이 넘치고, 양질의 작업이 가능한 나라다. 활기차고 질 높은 문화 속에서 아트북과 그림책, 어른을 위한 책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만들어내는 곳, 그것이 바로 한국을 바라보는 코라이니의 시선이다. 국제 홍보 및 기타 출판저작권 관리자인 지오바나 발린Giovanna Ballin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다양한 출판사들과 아주 중요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몇 년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도 했고요. 그건 저희에게 정말 중요한 이벤트예요. 코라이니 출판 하우스와 관련된 전시를 비롯해 앞으로도 한국에서 다양한 전시를 열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코라이니는 이수지 작가 이외에도 에스더 리, 안상수 작가와도 함께 호흡을 맞췄다. 한국 작가들과의 작업은 출판사의 다양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코라이니의 가치관과 우리의 감성이 맞닿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이 또 얼마나 다양한 책을 선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책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카테고리는 ‘코라이니’ 단 하나라는 사실이다.
©Max Rommel
1. 《Animals For Sale》 and 《The Green Conjurer》 글·그림 브루노 무나리
1945 시리즈 중 일부로, 다른 일곱 개의 앨범과 함께 선보인 역사적인 책이다. 어린이들이 한 장, 한 장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의 그림과 종이를 사용했다.\
2. 《Alfabetiere》 글·그림 브루노 무나리
아이들에게 단어의 소리와 모양을 놀 거리로 만들어주는 책. 글자를 잘라내어 책장에 붙이도록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면 읽기와 쓰기도 재미있는 발견이 된다.
3. 《The Circus In The Mist》 글·그림 브루노 무나리
어른이든 아이든 이 책의 환상에 완전히 빠져들 것이다. 파라핀 종이와 구멍이 뚫린 색지를 사용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독자들을 밀라노의 안개 속으로, 생생한 서커스의 현장으로 이끈다.
4. 《Intanto… Il libro più corto del mondo》 글·그림 폴 콕스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다. 찰나의 순간을 모두 다른 이미지로 표현해 각 이미지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작인 동시에 끝이 될 수 있다.
5. 《YAYOI KUSAMA》 글·그림 파우스토 길베르티
현대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재치 있고 재미있는 반전으로 재조명하는 파우스토 길베르티의 시리즈 중 한 편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6. 《CINDERELLA》 글·그림 스티븐 과르나치아
고전 동화 《신데렐라》를 현대적인 패션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작가는 신데렐라와 등장 인물들에게 화려한 쿠튀르 의상을 입혀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7. 《My story, La mia storia》 글·그림 지오세타 피오로니
지오세타 피오로니의 작품을 복합적이고 철저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삶과 추억의 단편이 담겨 있으며, 흥미로운 콜라주 형식으로 편집되었다.
에디터 이다은
자료 제공 코라이니 에디지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