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Journey of the Brands in Motherhood

하나의 옷이 불러온 대화 : 버앤버브

wee magazine vol.18 wear

빈티지 옷을 볼 때면 늘 궁금하다. 옷이 불러온 호기심은 곧 애틋함이 되고 자꾸만 들여다 보고 싶은 옷으로 내 옷장에 자리잡는다. 버앤버브의 옷을 처음 봤을 때 오래된 옷장에서 발견한 듯한 향수와 반듯한 귀함을 느꼈다. 타박타박 자신의 취향을 이어온 박로지 대표에게 그 길에서 만난 옷과 가정,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박로지 | 버앤버브 대표

‘버앤버브’는 ‘감성에 감성을 더한다’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버앤버브는 저와 동생이 함께 운영해요. 저는 서양화를 전공해서 감성적이고 러프한데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동생은 땀 한 수 한 수 섬세하게 작업하고 치밀한 편이에요. 선을 그려도 저는 자 안 대고 슥슥 그리는데 동생은 반듯하게 그리죠. 저희 둘의 다양한 성품을 더해서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버앤버브 전에 ‘마이캐비넷’이라는 브랜드를 7년 정도 운영했어요. 동대문에서 만든 옷을 셀렉해서 소개하다 보니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재봉이나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생이 특히 힘들어했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예쁜 원단을 고르고 단추와 심지 부자재가 꼼꼼한 옷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버앤버브를 열었어요. 마이캐비넷과는 조금 다르게, 모던하고 심플하면서 은은한 콘셉트의 브랜드예요.

 

‘마이캐비넷’은 주로 어떤 옷을 소개했어요?

제가 20대에 좋아하던 일본식 레이어드 스타일이었어요. 싸이월드에 제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사람들이 제가 옷 입는 스타일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레이어드풍의 쇼핑몰이 많지 않았는데, 저는 그런 옷을 좋아했어요. 당시 저는 다음 디자이너로 일했고, 남편은 쇼핑몰 모델을 하면서 그쪽 일을 많이 알았어요. 같이 쇼핑몰을 만들었고 모리걸 스타일의 소녀스럽고 귀여운, 제가 즐겨 입는 스타일을 주로 소개했어요.

 

추억의 싸이월드예요. 그곳에서 로지 씨의 감성에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았어요?

20대에는 감수성이 최고조일 때잖아요. 회사가 홍대에 있다 보니 빈티지를 접할 일이 많았어요. 세상에 하나뿐이니까 나만 입는 거 같아서 좋더라고요. 그러다 파견 근무로 일본에 살게 되었는데 빈티지 가게가 많잖아요. 가격도 별로 안 비싸고요. 주말마다 빈티지 마켓에 돌아다니면서 하나둘 모으게 되었어요. 싸이월드를 하면서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저를 찍을 일이 많아졌어요. 제 얼굴과 신발, 옷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니까 더 예쁜 걸 찍어서 올리고 싶은 마음이생기더라고요. 그땐 어렸으니까, 남들이 안 하는 거, 더 빈티지스러운 걸 찾는 게 재미있었어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서 로모 카메라로 촬영하는 사진 동호회에 가입했어요. 개성이 강하고 주류가 아닌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림 그리고 게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친해지니까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더라고요. 빈티지를 공유하고 같이 사진 찍으러 다녔어요.

 

어린 시절부터 취향이 확실한 아이였나요?

저희 세대는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부모에 의해 정해진 게 많았어요. 저는 엄마가 일하셔서 할머니가 주로 정해주셨어요. 옷을 좋아했는데 할머니가 워낙 보수적이셔서 제가 하고 싶은 만큼 못 꾸며서 불만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되고 더 평범하게 안 입은 거 같아요. 좋아하는 걸 사보면서 취향이 생겼어요. 저는 그림 그릴 때도 선명한 것보다 좀 뭉개진 것 같은 추상화를 좋아했어요. 아직도 원색을 다루는 건 좀 서툰 편이에요.

 

버앤버브도 그런 느낌이에요. 고전적이면서 예스러운 그리움이 느껴져요. 쇼룸도 그렇고요. 이 공간은 어떻게 꾸민 거예요?

공간을 먼저 계약했어요. 원래 세탁소 자리였는데 빛이 참 잘 들어오더라고요. 오래된 건물이어서 공간에 맞춰 제가 가지고 있는 걸 조금씩 놔뒀어요. 학교 다닐 때 설치미술도 좋아해서 제 느낌을 담느라 고민하고 입체화하는 게 재미있어요.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많이 봐두고, 그걸 이 공간에 어울리게 풀어요. 여기는 옷과 어울리도록 비어 있는 듯 하나하나 채웠어요. 인테리어라는 게 다 되어 있으면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없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 안에서 하나씩 바꿔보는 것도 좋아해요. 어쩔 땐 저만 알아보게 바꾸는 것도 많아요(웃음).

디자이너인 동생과 함께 브랜드를 꾸린다고 했어요. 어떻게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작업을 하나요?

같이 일하기 전에는 동생이랑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한 살 차이여서 어릴 때는 티격태격 대면서도 같이 놀았지만 사춘기 지나고 20대까지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거의 말도 안 하고 지냈거든요. 동생은 회사원이었으니까 정장 풍에 심플한 옷을 좋아했는데 저는 원피스에 레이어드하는 걸 좋아했어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니까 같이 일한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제가 결혼하고 나서 동생이 마이캐비넷에 합류했어요. 카페 아베크엘도 함께 열었고요. 같이 일해보니까 동생은 매뉴얼을 만들고 체계 잡는 일을 잘하더라고요. 한번 개발한 메뉴는 레시피를 만들고 계속 체크해서 업그레이드 하고, SNS 태그 검색해서 모니터링도 하고요. 저와 남편이 잘 못하는 부분을 동생이 채워주니까 시스템이 생겼어요.

버앤버브도 마찬가지예요. 겉으로 보이기엔 제가 다 하는 거 같지만 제작과 회계, 관리 같은 일을 책임지고 해주니까 잘 운영되는 거예요. 동생은 주로 지적하고 저는 주로 혼나요(웃음). 처음엔 제가 뭐 만들자고 하면 “이게 지금 가능해?” 하며 저를 이해 못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보니까 동생도 저를 이해하더라고요. 같이 전시를 보고 여행을 많이 다녀요. 혼자 가서 너무 좋으면 동생을 데리고 다시 가요. 같이 보고 같은 걸 느끼기도 하고, 같은 걸 봤지만 다른 걸 느끼기도 해요. 그렇게 대화하는 게 디자인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디자인하고 콘셉트 잡는 걸 둘이 하니까 빨리빨리 만드는 장점이 있어요.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직원을 뽑아야 하나 고민이 있지만 아직은 편하고 재미있으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하려고 해요.

 

이번 시즌 테마가 궁금해요.

그동안 진행한 옷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많이 담고자 했어요. 봄이니까 꽃 원단으로 점퍼도 만들고 프릴도 과하지 않게 넣어봤어요. 사실 마이캐비넷 때는 이런 옷도 많이 소개했는데 버앤버브를 만들면서는 거기에서 좀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 컸어요.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던하고 심플한 어른의 옷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하루가 태어나니까 브랜드의 무드가 바뀌더라고요. 제가 엄마인 거는 숨길 수 없잖아요. 우리 옷을 좋아하는 분들은 저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엄마 로지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마이캐비넷부터 저희 옷을 좋아하신 분들은 10년이 넘게 저랑 같이 나이 드신 분들인데, 그걸 잊고 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빈티지 코트를 재해석해서 트렌치코트를 만들었어요. 어깨라인이나 셔링을 과하지 않게 하고, 뺄 건 좀 뺐어요. 깃이랑 소매, 벨트에 디테일을 강조했고요. 빈티지 느낌을 담은 평범하지 않은 트렌치코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옷을 만들 때 주로 소재에서 출발하는 편인가요?

맞아요. 원단을 먼저 보고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디자인은 주로 빈티지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얻고요. 지난 시즌 동대문 원단이나 영국 리버티 원단, 일본 원단 등 예뻐서 사놓기만 한 원단도 많아요. De Fleurs Dress는 원단을 사놓고 뭘 만들지 오래 고민한 옷이에요. 원단이 화려하니까 소재만으로도 분위기가 나올 거라 생각해서 디테일을 다 배제하고 심플하게 랩디자인 원피스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수입 원단은 한계가 많더라고요. 수량도 정해져 있고 오가는 시간도 있어서 앞으로는 원단을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가을, 겨울쯤에는 제가 그림을 그려서 스카프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아이 옷도 선보였어요.

아이 옷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은 적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카페도 하고 성인 옷도 만들고 육아도 하고 살림도 하는데 아기 옷까지 하기엔 자신이 없었어요. 동생이랑 버앤버브를 만들면서 아기옷은 하지 않기로 말했거든요. 동생은 미혼이니까 아기 옷을 하면 우리 브랜드가 엄마 옷처럼 될까봐 걱정하더라고요. 그러다 리버티 원단으로 어른 옷을 먼저 만들었는데 아이랑 같이 입으면 너무 예쁠 거 같았어요. 동생이 조카를 예뻐하니까 하루한테 입혀주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샘플을 만들었는데 주변에서도 예쁘다고 하고 사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아동복을 잘하시는 분들이 많고 수입브랜드도 좋은 게 많아서 제가 굳이 그 시장에 뛰어들 필요가 있을까 했는데, 저랑 하루 좋아해주시는 분들만 좋아해 주셔도 되겠다 싶어서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데 판매를 하려고 보니 라벨을 달아야 하잖아요. 회사에서 디자인을 해오던 방식이 있어서 브랜드 네임도 만들고 콘셉트도 정해서, 할 거면 제대로 해야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근데 겪어보니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일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지 인위적으로 만들면 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인업이 다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우리 로고 달고 엄마 옷 하다가 한번씩 이벤트 성으로 아이와 함께 입으면 좋겠다 싶은 것만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러다 좋아해주는 분들이 생기면 그때 이름이나 다른 부분을 생각해보기로 하고요



아이 옷을 만들어보니 어땠어요?

아이 옷은 다른 세계라 만들기 쉽진 않았어요. 사이즈도 많고, 욕심 같아선 더 다양하게 하고 싶은데 수입 원단이니까 수량도 한정되어 있어서 아쉬웠어요. 엄마들 옷은 셰입이 예뻐야 하니까 스트링을 달았는데 아기 옷은 그런 장식들이 필요 없더라고요. 저희 브랜드가 워낙 심플한 옷이다 보니 뺄 게 별로 없는데 거기서 더 뺄 거를 찾았어요. 길이도 엄마들은 엉덩이 덮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들은 길면 거추장스러워서 활동하기 불편하잖아요. 아동복은 나중에 입힐 걸 생각해서 좀 크게 사니까 접는 부분도 신경 쓰고요. 만약 저한테 아이가 없었으면 몰랐을 거예요. 하루한테 입혀보고 주변 엄마들 의견도 듣고 하루가 가지고 있는 옷들과 비교해보고 만들었어요. ‘아, 아이 옷도 퀄리티가 좋구나. 이런 것 하나도 되게 배려한 거였구나.’ 만들어보니 알겠더라고요.

 

가장 애착이 가는 옷이 있다면요?

지금 입고 있는 로지 원피스요. 작년에 만든 건데, 하루 낳고 나서 엄마가 되니까 러블리한 게 입고 싶더라고요. 너무 러블리한 건 부담스러우니 몸매가 안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사랑스러운 옷을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동생이 지금까지 만든 옷과 많이 달라서 부담스러워하긴 했어요. 전반적으로 제 의견이 많이 들어간 옷이라 이름도 제 이름을 붙였어요.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작년 옷인데 올해도 생산하게 됐어요. 하루 안고 있기에도 편하고 은근히 살색이 드러나는 게 마음에 들어서 애착이 많이 가요. 리버티 봄버는 하루와 처음으로 같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니까 애정이 가고요. 동생은 이모가 만들어준 첫 옷이라 정이 간대요.

 

가족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하루가 태어나기까지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고, 블로그에 고백한 글을 봤어요.

저희가 2011년에 결혼했고 하루가 2018년에 태어났어요. 아이를 가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결혼 초기에는 마이캐비넷을 할 때여서 시간은 없고 일은 많았어요.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아기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아기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주변 친구들이 아이 키워서 학교 보내는 걸 보면서 계속 일을 하려면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주시면 감사한데 안 주시면 우리 삶이 있으니까, 생각했죠.

근데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니까 조바심이 들더라고요. 남편 닮은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들쑥날쑥 기복이 심하고 모난 성격이지만, 남편은 늘 일정하고 성품이 좋으니까요. 또 제가 한쪽 팔이 불편하거든요. 저 같은 아이가 태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되게 컸어요. 저 말고 남편을 닮길 바라면서 아이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일도 스트레스도 많고 나이도 많은지라 서너 번 유산을 했어요. 그사이 허리 수술도 해서 바로 아이를 갖기 힘든 시기도 있었고요. 유산을 하니까 상실감이 크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엄마가 되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살아오면서 제가 마음먹으면 제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되게 훌륭하진 않아도 이룰 순 있었는데, 생명에 관한 부분은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을 때 하루가 생겼어요. 그때부터는 아이를 지키려고 일은 다 내려놓고 침대에만 누워 있었어요. 근데 엄마가 되어보니까 저보다 더 힘들게 엄마가 된 분도 많더라고요. 다들 쉽지 않았겠구나 싶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삶이 많이 바뀌었죠?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가장 큰 변화는 정치와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사건도 아이를 낳고 보니 더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요. 사회의 소리에 예민해져서 신문 기사도 더 꼼꼼하게 보고, 교육 정책에 예민하게 반응해요. 국민 청원도 기를 쓰고 하고 주변에 알려요. 임신했을 때 누워 있어야 했는데도 촛불집회에 나갔어요. 제 아이가 살아가게 될 세상이니까요. 아이를 낳고 나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해요. 예전엔 집에서 주로 누워 있었는데,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아져서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돼요. 저는 살아가면서 집 밖에서 많은 걸 얻고 찾는 편이에요. 제가 그래서 그런지 아이도 산책을 자주 하고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거리를 걷는다 해도 나무나 햇빛을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자동차를 너무 좋아해서 지나가는 차 쳐다보길 좋아하는데요. 이제 두 돌도 지났으니 여행을 자주 가고 싶어요.

 

정갈하게 요리하던 모습을 기억해요. ‘로지식당’이라고 이름 붙였었죠. 요즘도 요리를 즐겨 하나요?

아직도 좋아하는데 로지식당을 할 수는 없어요. 아이를 낳고 보니까 우아하게 차려 먹는 건 사진 속에나 있는 거지 일상에서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우울해요. 예쁘게 차려 먹는 걸 좋아하는데 못 하니까요(웃음). 하루는 뭘 해줘도 잘 안 먹어요. 우유를 제일 좋아해요. 남편은 하루가 아직 엄마 음식 맛을 못 깨달은 거 같다고 안타까워하죠. 먹는 걸 노는 걸로 생각해서 입에 넣고 뱉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엄청 행복해하면서요. 그래서 의욕이 확 떨어져요. 로지식당도 남편이 잘 먹어줘서 열심히 만들고 올리게 된 거거든요. 잘 안 먹으니까 하루가 좋아하는 면 요리 위주로 하게 되고 맨날 밥공기에다 비벼주고 있어요(웃음). 두 돌이 되니까 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잘 먹는 아이가 있고 안 먹는 아이가 있더라고요. 디엠으로 로지식당에서 만드는 아이 메뉴 궁금하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근데 하루가 좀더 커서 잘 먹게 되면 다시 하게 될 거 같아요.

 

하루가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다고요. 가족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일주일에 세 번은 친정 엄마가 하루를 봐주셔서 저희가 일을 하고, 나머지 날은 저랑 남편이 하루를 보고 있어요. 보통 하루는 8시쯤 일어나서 아빠와 잠깐 놀아요. 제가 요리하면 같이 밥 먹고 간식도 먹고 남산으로 산책 가요. 거기서 땅도 밟고 산책 오는 강아지랑 동네 분들도 만나고 공원 가서 뛰어놀고 비둘기 쫓아다니고 그래요. 집에 와서 낮잠 자고 일어나면 전시도 보러 가고 카페도 가요. 아직은 부모가 좋아하는 거 위주로 하는데요. 가까이에 서울역, 시립미술관, 현대미술관, 전쟁박물관 등 갈 곳이 많아서 이 동네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네요. 같이 저녁 먹고 하루는 아빠랑 자요. 하루가 자고 나면 저는 사무실에 와서 일을 하거나, 하루 동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곤 해요.

 

‘오늘의 하루’ 말이죠?

네. 아이가 너무 빨리 크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순간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기록을 하기로 했어요. 물론 같이 있어주고 놀아주는 것도 중요한데 작년에 찍은 것만 봐도 너무 아기 같아서 소중하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이때 이렇게 걸었지. 육아 하다 보면 잘 잊어버려요. 인스타그램은 순간순간 기록하게 되고 예전 사진 잘 안 보게 되잖아요. 재미있긴 한데 그런 게 아쉬워요. 동영상 편집이 오래 걸리긴 하는데 자막이랑 폰트 넣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 넣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하루가 어떤 아이로 세상에 나아가면 좋을까요?

남편은 그러더라고요. 사랑받은 걸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요. 저희가 고양이를 참 좋아하거든요. 소소하게 고양이 밥 주고 길고양이 집 만들어주는 걸 하루가 다 봐요. 자기도 밥 준다고 가져갈 때면 너무 예뻐요. 좋아하는 마음으로 길 생활을 하는 고양이의 아픔까지 헤아려주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둘째 계획이 없어서 하루는 혼자 클 텐데, 그 점은 참 미안해요. 저는 자매로 크면서 불편한 것도 많았지만 동생만큼 저를 챙기고 잘 아는 친구는 없더라고요. 대신 세상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은 식물이나 길에서 만난 동물, 마음이 아픈 사람,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아이로 자라길 바라요. 물론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기본적인 성품이 좋은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 없이 성공만 한다면 슬플 거 같아요.

 

기획과 디자인을 하다 보면 자신을 잃지 않는 노력도 필요할 거 같아요.

가끔 20대의 제가 기록되어 있는 싸이월드에 들어가 봐요. 그때의 감수성이 부끄럽기도 한데 그립기도 해요. 지금은 일과 육아 같이 현실적으로 해야 할 임무가 많다 보니까 가끔 너무 메말라 있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그때는 필름 카메라로 열정적으로 찍었는데 지금은 휴대폰으로 빨리 찍고 말죠. 나를 계속 유지하려면,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 저를 좋아해주시던 분들은 대부분 제가 찍은 필름 사진들을 좋아해주셨기 때문에 다시 필름 카메라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남편이랑 했어요. 가지고 있는 폴라로이드 토이카메라 꺼내서 고치고 여행 가서 필름도 많이 사 왔어요.

저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 혼자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편이에요. 가끔 엄마나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에서 벗어나 제가 좋아하는 거, 제가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나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아이 낳고 나면 혼자 여행을 좀 다니겠다고 했는데, 남편이 기억해주더라고요. 제가 워낙 여행에서 많은 걸 느끼는 편이거든요. 늦은 봄이 되면 혼자 여행을 떠나보려고 해요.

 

쇼룸 한 편에 이젤이 보여요. 저기서 그림도 그리나요?

맞아요. 얼마 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려요. 동생과 남편이 그려보라고 권유했는데 그림은 시간이 많이 걸려요. 생각도 많이 하고 수정도 해야 하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못했었어요. 하루 낳고 시간이 없는데 오히려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엄마지만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게 그림 같아서요. 이번에 아베크엘 2호점 오픈하면서 제가 그림을 그렸어요. 주변에서 사고 싶다는 사람도 있어서 스카프도 만들어보려고 하고요. 이 공간이 원래 디자인 회의를 하려고 했던 곳인데, 제 영역을 넓혀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그것도 우리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엄마, 브랜드 대표로 살아가는 동그란 세계가 그려져요.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나이 들면 좋을까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하루가 다 자라서 부모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너무 슬프겠지, 그런 날이 오면 행복할 수도 있을까, 싶으면서도 알아서 독립적으로 크길 원하는 마음도 있어요(웃음). 저희 엄마도 어떻게 보면 제가 다 자라서 육아가 끝나야 하는 건데, 끝난 거 같지 않아요. 하루도 분명 저희 손을 떠나는 시간이 오겠지만, 제가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구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 자신으로는 계속 그림을 그리며 늙고 싶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 하루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고요. 24개월인데 이렇게나 부모를 따라 하는 거 보면 애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구나 싶거든요.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아직은 낙서 수준이고 집중이 짧아요. 그래도 이런 시간들이 쌓이면 같이 그림 그리는 날이 오겠죠? 그리고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과 같이 나이 들고 고민하면서 계속 일을 할 거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관심사 안에서 옷이 아닌 가방을 만들 수도 있고 홈웨어 브랜드를 할 수도 있겠죠. 일의 범위를 규정짓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이 일에 끝이 없을 거 같아요. 화려하게 뭘 이루려 하지 말고, 조금 팔더라도 우리는 이 길을 갈 거예요. 나중에는 집 하나 지어서 카페도 하고 숍도 하고 위아래로 동생이랑 같이 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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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