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아이다움 : 베베드피노
wee magazine vol. 18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옷이 있다. 선명한 색감과 생기 도는 움직임. 옷만 봤을 뿐인데 아이의 행동이 겹쳐 보인다면 베베드피노의 옷이 분명하다. 아이의 성장을 베베드피노에 켜켜이 쌓아왔다는 이은정 대표. 일산의 호젓한 주택가에서 발그레 웃는 아이들을 함께 만났다.
처음 아이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요.
회사에 바쁘게 다니다 2010년에 첫아이를 낳았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 여러 변화가 생겼는데 아이만 바라보며 집에 있는 게 쉽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산후우울증이 꽤 심했던 거 같아요. 아이를 재워놓고 육아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게 낙이었어요. 그러다 블로그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이 옷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북유럽 브랜드가 좋았어요. 그렇게 찾은 걸 블로그에 하나씩 소개했어요. 당시엔 그런 브랜드들이 백화점에도 없고 온라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 보니 방문자가 늘더라고요. 아이 키우는 엄마들과 정보를 주고 받으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 책임감이 생겼어요.
그러다 친한 이웃들에게 스카프빕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을 찾아보니 패턴이 조금 유치하고 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죠. 제가 좋아하는 레오파드나 카모플라주, 깅엄체크 같은 원단을 고르고 제작을 의뢰했어요. 또 직접 만들다 보니 저만의 상징을 표시하고 싶더라고요. 첫째 이름이 ‘솔’이에요. 남편이랑 얘기하다 보니 아기 소나무란 뜻의 스페인어가 좋더라고요. 그게 ‘베베드피노’였어요.
선물 받은 이웃들이 좋아했어요?
너무 좋아했어요. 우연히 만들게 된 건데 사고 싶다는 문의가 많았어요. ‘이 반응은 뭐지?’ 하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더라고요. 그때 다시 회사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아이를 봐줄 만한 마땅한 분이 안 계셨고, 첫째다 보니 제가 키워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 반응을 얻으니 제가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기쁜 마음으로 스카프빕 이후 블루머를 만들었어요. 북유럽에서는 허리랑 아랫단에 스트링 넣어서 휘뚜루마뚜루 입히던 거였어요. 옷 안에 입히기도 하고, 외출복으로 입히기도 하면서요. 텐셀 원단으로 만들었는데, 시원해서 엉덩이 발진이 덜 생기고 기저귀 갈기도 편하다며 너무 좋아들 하셨어요. 냉장고 블루머라고 불렸죠. 두 번째까지 반응이 좋으니 용기가 나고 신이 났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겠다는 믿음도 들었고요. 그렇게 하나둘 착장 맞춰서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외국 브랜드에 접근이 쉬운 편이었네요. 아이를 낳기 전에도 패션 쪽 일을 했나요?
처음에는 화장품 MD로 일했는데 남편 권유로 패션 쪽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바잉 MD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외국 브랜드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오랜 시간이라고 할 순 없지만 상품 기획, 바잉에 이르는 MD의 전반적인 일을 했어요.
디자이너로 일하던 남편도 함께하게 되었다고요.
처음엔 저 혼자 블로그로 1년, 카페로 1년을 했어요. 블루머를 비롯한 다양한 아이템까지 만들게 되었죠. 당시는 주문서를 메일로 받아서 하나하나 엑셀 파일로 옮겼어요. 카페 회원이 2만 명이 넘어가자 디자이너인 남편을 설득했어요. 아이랑 같이 시간을 가지면서 옷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1년만 같이 해보자고요. 그 당시 남편은 패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제법 인정받고 있었거든요. 제 욕심일 수 있지만 해보고 안 되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원단 회사에 다니던 도련님까지 캐스팅했어요(웃음). 생산 일을 하진 않았지만 원단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그쪽을 잘 알거든요. 그렇게 MD, 디자이너, 생산 세 파트를 구성하고 브랜드화했어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사람부터 모은 셈이네요.
저도 그게 신기한데, 제가 큰 회사에 다녀봤으니까 그 부서의 일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지만 시스템은 대략 알아요. 나름의 역할을 정하고, 어떤 상품을 기획할지 정하고, 사진도 찍고 샘플실에 의뢰하고 제작을 해나갔어요. 이미 팬들이 있고 소소하게나마 인지도도 있어서 사이트 전환하기가 쉬운 부분도 있었어요. 남편과 저는 어릴 때부터 친구여서 시너지와 영감을 잘 주고받는 편이에요. 저랑은 완전 반대 성향인데 둘 다 옳다고 하는 일은 되게 잘되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기획, 디자인, 마케팅을 하고요. 남편은 회사 내 체계를 잡는 일과 경영에 신경 쓰고 있어요.
저는 일산 벨라시타에서 베베드피노를 처음 봤어요. 당시엔 국내에 흔한 디자인 패턴과 색감 매치는 아니어서 유럽 브랜드인 줄 알았던 기억이 나요. 베베드피노의 옷 앞에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니는데요. 그 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맞아요. 벨라시타가 1호점이었어요. 북유럽 옷들을 바잉하면서 친환경 소재와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색감, 디자인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 수식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수입 브랜드인 줄 오해를 많이 하셨는데, 요즘은 이런 감성의 브랜드가 많이 생겼어요. 그 시작이 저희라는 게 감사해요.
‘베베드피노는 이런 옷이다’라고 정의 내린다면요?
아이들 옷은 귀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색감이 화사하고, 활동성도 있어야 하고요. 베베드피노는 완전히 트렌디한 옷은 아니지만 장난스러우면서 세련된 색감과 감성이 담겨 있는 게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매년 올해의 컬러는 반영하지만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그 옷을 입었을 때 밝은 기운이 더 느껴지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 덕분에 시작한 브랜드잖아요. 아이의 성장에 따라 브랜드가 자라온 걸까요?
맞아요. 아이가 자라는 데 맞춰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늘려 왔어요. 제 아이 사이즈에서 시작해서 사이즈도 점점 늘게 되었고요. 고객들 아이도 자라면서 베베드피노에서 주니어 사이즈를 원하는 고객이 많아졌지만, 늘리진 않았어요. 베베드피노는 130까지만, 딱 거기까지가 귀여운 맛이라고 생각해요. 한 살만 넘어도 느낌이 달라지는 아이들 모습을 인정해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첫째 솔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 입을 옷이 없더라고요. 주니어는 스포츠 브랜드나 스파 브랜드가 다여서 한정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주니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는데, 처음엔 다들 말렸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필요하니까 아이스비스킷을 만들게 되었어요. 베베드피노와는 다른 느낌으로 미국 브루클린의 스트리트 감성을 담고자 했어요. 아트워크도 넣고요. 아이들도 엄마가 만든 옷이라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입었을 때 더 기뻐해요. 의견도 많이 줘요. “엄마 이런 것도 만들어봐, 이것도 팔면 좋겠다” 하면서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캐리마켓에 있는 프로펠러 모자도 아이가 좋아해서 입점하게 된 거예요.

캐리마켓은 편집숍이죠. 어떻게 열게 되었어요?
편집숍을 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어요. 저는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소박하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가로수길의 넓은 부지를 계약하고 왔더라고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날부터 3일간 밤잠을 못 잤어요. 거길 채워야 하는 건 제 몫이니까요. 어찌 되었건 조금은 다르게 해보자 싶었어요. 엄마들이 아이들과 서슴없이 들러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아이들은 수업도 듣고 전시나 행사에 참여하는 곳이길 바랐어요. 1, 2층에선 의류와 제품을 선보이고, 3층은 클래스를 열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작게 시작했지만 의미 있게 꾸려가는 브랜드들을 입점시키고 싶었어요. 저도 그런 상황인 적이 있어서 홍보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요. 제가 직접 브랜드들을 만나서 설득했어요. 지금은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자리 잡아서 백화점에 입점된 브랜드도 생겨서 기뻐요.
클래스도 처음 열 때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거라면 제가 해보고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함께 했어요. 무턱대고 아이들은 클래스에 넣고 엄마들은 쇼핑 다니는 게 아니고 이게 얼마나 좋은 체험인지 해보고 아이들에게 권하는 거죠. 저는 손재주가 없는데 뜨개질도 하고 직접 만들고 하니까 차분하게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이 너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어서 좀 앉아서 자신이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저희 아이들도 참여해봤고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필요해서 만든 공간인데, 잘한 거 같아요.
엄마 브랜드에 애착이 있는 편 같아요.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모 디자이너와 일하고 싶다는 기사도 봤는데요. 일하는 엄마, 부모가 만드는 아이 제품의 가치를 어떻게 여기나요?
저희 회사가 여자 직원의 비율이 아주 높아요. 법인 설립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 입사한 친구들이 결혼하고 출산 휴가를 간 경우들도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직도 제가 면접 볼 때 한 말을 기억해요 “너희가 애를 낳고 이렇게 일하는 건 나라에 큰일을 하는 거야. 자부심을 갖고 너희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도록 해주겠다.”라고 했거든요. 저도 겪어봐서 아이와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친구들이 지치지 않고 저처럼 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모든 임직원이 가정과 회사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함께 마련하고 있어요. 또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의 의견도 많은 도움이 되고요.
이제는 제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직원들 아이들이 피팅을 해요. 아동복은 엄마가 입혀주는 거니까 아이가 불편해하는 건 없는지 아이에게 코멘트를 받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직원들한테 “대표님, 이 옷 너무 잘 입혀요. 유용해요.”라는 말 들으면 너무 뿌듯해요. 서로 고민하고 만드니까 직원들도 확실히 진정성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육아와 일을 함께 해온 지 10년이 흘렀어요. 이건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게 있나요?
일을 계속 이어온 거요. 아이들이 어릴 땐 “엄마 나랑 있어줘. 엄마가 나 데리러 와주면 좋겠어.” 그랬어요. 오죽하면 우리 둘째 소원이 엄마가 유치원에 세 번 데리러 오는 거였어요. 작년이 가기 전에 해주긴 했는데 그걸 들어주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너무 바쁜 엄마 밑에서 자랐어요. 비 올 때 비 다 맞고, 준비물 안 챙겨 가서 속상해하고 그랬거든요. 제 아이들도 그걸 느낄 테니 많이 미안하긴 한데, 첫째 솔이가 초등학교 가더니 “엄마, 부모가 다 디자이너인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근데 엄마 아빠가 만든 옷을 입은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너무 많아.”라고 좋아하더라고요. 소심한 성격인데도 모르는 언니한테 가서 이거 우리 엄마가 만든 거라고 말해보기도 했대요(웃음). 친구들도 너희 엄마 멋있다고 했다며 어깨가 으쓱해져서 온 거예요.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지만 노력하고 있는 걸 아이들이 조금씩 알아주고 있어요. 얼마 전 둘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엄마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 그건 내가 인정해.” 울컥했어요. 우리 아이도 여자고 딸이고 나중엔 사회 일원이 될 테니까, 자기 일을 하는 자존감 있는 엄마로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바쁜 엄마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은 어땠어요?
엄마가 대구에서 화장품 쪽 일을 오랫동안 활발하게 하셨어요. 너무 바쁘셔서 부모님과 함께한 유년기 시절 기억이 많지 않아요. 저는 지금 이모님 도움도 받지만 엄마는 육아도 거의 혼자 하셨어요. 저희가 입이 짧아서 국을 세 개나 끓여놓고 출장 가시고, 잠도 못 주무시고 도시락 두 개씩 싸주고 그러셨어요. 어릴 때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늘 바쁜 엄마가 너무 싫었어요. 친구들은 너희 엄마 정말 예쁘고 멋있다고 얘기하는데도, 저는 다 필요 없다고 그냥 집에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나는 나중에 절대 바쁜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원망도 했죠.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정말 최선을 다하셨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빨리 엄마를 이해해주지 못해서 너무 속상했어요. 그즈음 아기를 낳아서 산후우울증도 심하게 왔고요.
이야길 들으니 친정 엄마의 모습이 대표님에게 많이 스며 있어요.
그런가 봐요. 참 혼란스러웠는데 저도 어쩌다 보니 일을 시작해서 바쁜 엄마가 되었어요. 아마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육아와 일의 균형과 조절을 저도 모르게 배운 거 같아요. 회사에 있는 동안 충실히 하고 집에 오면 힘들어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주말에도 아이들에게 충실하고 방학 때는 딱 붙어 지내고요.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우리 애들이 알아준다면 좋겠어요. 저는 되게 늦게 알았거든요. 제 아이들이 늦기 전에 저를 이해해준다면 만족한 삶,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방학 때마다 아이들과 한달살이를 하는 건가요?
겨울방학이 두 달이 넘거든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주말도 없이 학원 뺑뺑이 하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요. 교육에 있어서는 자꾸 팔랑귀가 되어서 이 교육관이 또 언제 바뀔지 몰라요(웃음). 교육에 관한 소신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남편과 의논하고 아이들과 외국에서 지내보기로 했어요. 즐길 수 있는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경험을 해보게 하려고요.
지금 3년 차 정도 되었어요. 한 해 한 해 나가면서 느끼는 바가 너무 커요. 첫째가 처음에는 부끄러워하고 말도 안 했어요. 무조건 저한테만 의지했는데, 어느 순간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걸 즐기더라고요. 항상 소심하다고 생각하던 아이가 리더십이 있고 욕심도 있는 걸 발견했어요. 제가 아이를 잘 몰랐구나 싶더라고요. 둘째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낯을 많이 가렸어요. 하지만 지기 싫어하고 더 잘할 거야 하는 욕심이 있어서 끊임없이 노력해요.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래 얘들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는 왜 몸이 힘들다고 축 처지고, 나만 이런 거라 생각하는 걸까.’ 반성도 해요. 외국 엄마들을 보면서 아이를 적당히 풀어주면서 사랑으로 봐주는 걸 배우고 아이들과 산책하면서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듣는 게 저도 너무 재미있어요. 이번에는 유럽의 문화를 접해서 좋더라고요. 저도 좋은 기운 얻고 영감을 받고요. 춥고 으스스한데도 좋아하고 잘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애들 또 이렇게 컸구나, 싶더라고요.
힘든 점도 있을 텐데요.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어요. 한국에는 육아 조력자가 많은 편인데 나가면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하거든요. 아침잠이 많은 제가 도시락 몇 개씩 싸고, 라이딩 하고, 아이들 하교하면 또 먹이고 장 보고 숙제 봐주죠. 가끔은 ‘나도 나름 고급 인력인데 여기 와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밀려오기도 해요. 그런데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사실 저도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잘되는 편이 아니라, 해외살이 자체가 우리에겐 도전이에요. 길을 잘못 들어서거나 위기 상황도 몇 번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첫째는 본인도 무서울 텐데 “엄마 내가 있어. 괜찮아. 잘될 거야.” 말해요. 제가 생각보다 아이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해외살이를 하는 게 남편한테도 미안하고 직원들한테 눈치도 정말 많이 보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엄마니까 아이들이 제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해요. 지금은 좋지만 아이가 언제든지 안 한다고 하면 안 할 생각이에요.
외향적인 성격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즐기는 편인가요?
어릴 때부터 친구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시간이 없고 바쁘니까 어울리면 즐거운 친구들을 모아서 봐요. 캐리마켓 시작하고 여러 브랜드 관계자, 클래스 선생님, 전시할 작가들을 만나곤 했는데 제가 그 인맥을 다 알 수는 없더라고요. 미팅으로 사람들 만나는 게 스트레스였던 적도 있는데, 친구들이 좋은 사람을 소개해줘서 비즈니스적으로 연결이 되곤 했어요. 저희 매장에 자주 와주는 연예인 친구들을 보고 저도 인사하고, 식사 한 번 하고 서로 행사에 참석해줘서 또 친구를 소개받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제 인프라가 많이 구축됐어요. 저보다 더 열심히 사는 친구들, 공감되는 친구들을 만나니까 좋은 에너지를 얻어요. 저도 좋은 에너지를 쓸 수 있고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진 않아요?
필요하죠. 제가 2년 전에 몸이 정말 아팠어요. 이러다 제가 사라질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위기를 겪었어요. 그동안 저 자신은 돌보지 않고, 회사와 아이만 돌보며 살았더라고요. 치료를 위해 필라테스를 하고 제가 모르던 피부과 질환도 치료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2시간이라도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 시간을 투자해보는 게 처음이었는데 나를 위해 돈 쓰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컨디션도 좋아져서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이제 40대에 들어서니까 단순히 예전처럼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아닌 거 같아요. 아이들도 컸고 남편도 같이 지지해주니까 혼자의 시간을 계속 가져보려고요.
육아가 끝날 무렵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대표님과 가족, 브랜드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 육아가 끝난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음… 그때가 되면 남편과 시간을 많이 보낼 거 같아요. 둘이서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요. 젊은 시절에는 경제적으로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아이들 키우면서 남편은 일을 해야 하니까 가족 여행을 두 번밖에 못 갔어요. 둘이서 가끔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 단 하루도 열심히 안 산 적이 없어.’ 예전 프로젝트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때 이런 걸 했을까, 놀랄 때가 많아요. 예전에는 소박하게 만든 엄마의 메이드가 느껴졌다면 지금은 브랜드의 퀄리티가 느껴지게 성장도 했고요.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요. 아이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한 분야에서는 열심히 일했고 사람들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었어. 그게 우리로 인해 시작되었어. 이 브랜드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거야.” 그걸 함께 공감해준다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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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