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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앤브레드
이태원에는 몇 년 전부터 많은 빵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개인 빵집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가게는 친숙한 이름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잼앤브레드’라는, 빵집의 기본 중 기본을 이름으로 내건 가게. 기본이라는 건 말 그대로 밑바탕이라서 누구보다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되돌아보니 어려운 숙제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기본을 지킨다는 건, 본연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진심을 뜻할 것이다. 기본을 말하는 빵집 잼앤 브레드는 따뜻한 빵으로 진심을 전하고 있다.
경험에 대한 태도
잼앤브레드는 작년 칠월에 태어난 작은 빵 가게다. 한남동 어느 골목, 붉은 벽돌로 된 담에는 아주 당돌한 모습으로 ‘빵’이라는 흰 페인트 글씨가 적혀 있고, 가슴을 내밀고 있는 쇼케이스 안에는 보란 듯이 풍성한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 간결한 외관 때문에 누가 봐도 빵을 파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다가 ‘꽤나 빵이 맛있는 가게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이렇게 일차원적인 가게 이름과 인테리어를 내세운 걸까. 그건 흡사, 비욘세의 듬직한 풍채만 보고도 ‘가창력이 좋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일과 비슷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곳의 빵이 맛없었더라면 실망이 두 배였을 거라는 얘기도 된다. 외모를 배반한 베컴의 가냘픈 목소리를 들은 어느 날의 충격처럼.
잼앤브레드의 대표 이규훈 씨는 빵의 맛을 위해서 무엇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한 가게의 이름도 그가 의도한 부분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매일 보는 것으로 하는 ‘또 다른 소통’이 목표였거든요. 그 수단으로 저희가 잘 만들 수 있는 ‘빵’이 된 거고요
보통은 브레드앤잼이라고 부르잖아요. 숟가락과 젓가락처럼. 그런데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에는 ‘잼앤브레드’라고 나와요. 순서를 바꿨을 때 함축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하더라고요.”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세는 여러 가지의 경우를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일 것이다. 이규훈 대표는 그러한 예로, 영국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국의 큰 장점은 영국인의 태도에 있어요. 사실 영국에는 유명한 음식이 별로 없거든요. 하지만 그 나라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 음식을 맛보고 ‘나, 그 나라 음식 먹어봤어!’라며, 그때의 경험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죠. 그런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자체가 좋은 에너지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한남동의 특징 중 하나도 그런 거예요.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동네 어르신들도 호기심을 갖고 찾아와 주시고, 코멘트를 해주시고 가시거든요. 그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긍정적인 맛
잼앤브레드의 빵은 ‘고소하다’, ‘담백하다’는 맛의 표현보다, ‘솔직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건강’이라는 키워드로 유명한 가게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물었던 건 건강한 빵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나의 질문에 조용히 웃으며 입을 떼었다. “저희는 밀가루, 버터, 설탕, 소금과 같이 빵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들은 충분히 사용해요. 건강의 의미를 떠나서 음식을 솔직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죠. 음식의 정체성에 맞는 정확한 재료를 쓰는 것이 가게의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아니고요. 저희 같은 경우는 천연 발효종으로 빵을 만든다는 장점이 있죠. 그리고 레시피 자체도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을 선택합니다. 발효의 시간을 단축하지 않고 빵마다 필요한 속도를 기다려주는 거예요.”
잼앤브레드의 메뉴를 만드는 건 그의 아내 김소정 셰프와 처남 김세준 셰프의 역할이다. 그들은 빵이 가진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는 만큼,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맛을 표현해냈다
그는 그 맛을 만든 건 ‘여행의 추억’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맛집을 찾듯 그들도 유명하다는 빵집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는데, 그때의 기억을 재현한 것이 지금의 레시피가 된 것이다. 그는 아내의 자랑도 잊지 않았다. “김소정 셰프의 가장 큰 장점은 음식의 긍정적인 포인트를 잘 집어낸다는 거예요. 내 입맛에 안 맞아도 좋은 부분은 분명 있거든요. 그것들을 해체해서 자신의 요리로 만들어내죠.”
동그란 안경을 연신 올리며 시원하게 웃던 그는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꺼냈다. “저희는 빵이 내는 기본적인 맛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 알아주길 기대하고 있고요. 0 아니면 1로 결정되는 맛을 떠나서, 그냥 그 음식이 갖는 좋은 성향이 잘 전달됐으면 합니다.” 머뭇거리면서도 자신의 소박한 바람을 말하는 모습은 어쩐지 내게 권했던 ‘허니라이브레드(벌꿀이 들어간 호밀빵)’의 담백한 맛을 떠오르게 했다.
엉뚱한 조언
“자네는 인생이 별로 달콤한지 않은가봐. 빵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걸 보니.”
이석원 작가의 소설 『실내인간』 중 한 문장이다. 그 글을 읽을 당시에 나는 ‘이게 무슨 똥 같은 논리야. 그럼 제빵사는 인생이 사약이겠네. 사약!’ 하며 코웃음을 쳤었다. 그런데 가만히 지난날을 곱씹어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빵과 같은 음식을 찾을 때, 대체로 화가 나 있거나 우울해 있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까지 오자 자연스럽게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네 머리가 터지는 것보다 바지가 뜯어지는 게 낫지 않겠니? 그러니까 당장 단 것을 내놔.’ 하며 말이다.
하지만 잼앤브레드의 빵은 완벽히 ‘단 것’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학생에 비유하자면 모범생, 연예인이라 하면 박해일(?) 한마디로, 자극보다 오히려 조금 심심한 음식이라는 뜻이다(물론 그들을 맛봤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기에 나는 조금은 나른하고 안정된 일상에서 잼앤브레드의 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내 앞에 주어진 업무가 없고, 출근의 압박에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토요일 오전 정도가 좋겠다. 잼앤브레드의 투박한 종이봉투에 좋아하는 빵을 가득 담고 가까운 공원에 앉아, 할 일 없는 백수처럼 하늘이나 보며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 질기고 딱딱한 표면을 뜯으며 ‘인생 참 퍽퍽하네!’ 투정하면서도, 결국에 드러내는 폭신한 빵 속을 혀로 녹이며 ‘그래, 언젠가는 오겠지. 그 행복.’ 하고 실실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석원 작가에게, 아니 소설 속 주인공 용휘에게 말하겠지.
“아저씨, 제가 겪어봤는데요. 단 거 먹는다고 인생 달아지지 않더라고요. 인생 별거 있나요? 쓰면 쓴 대로, 달면 단대로 살면 되는 것을….”
에디터 이혜인
포토그래퍼 박소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