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Easy To Fall In Love With Natural Wine

내추럴 와인을 아시나요?
차리다 스튜디오 심승규

© 김은아

내가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내추럴 와인이 좋은 이유를 열띠게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스스로 반문했다. 자신이 아끼는 것의 숨은 가치를 충분히 향유하는 사람, 그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세상 속 누구보다도 커다란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다. ‘규뱅’이 말하는 내추럴 와인의 세계는 한없이 깊고 진중했다.

“프랑스 내추럴 와인의 거장 피에르 오베르누아Pierre Overnoy가 그랬어요. ‘건강한 포도를 사용하고, 양조 기간 중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와인은 그 자체로 완벽한 삶을 갖는다.’고요. 내추럴 와인 메이커들을 ‘그저 포도가 와인이 되길 기다리는 바보들’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은 어마어마한 관찰과 노력이 필요한 거예요. 신념을 위해 ‘효율’이라는 쉬운 길을 마다한 사람들인 거죠. 그런 걸 떠올리면 사실 가볍게 마실 수가 없어요. 그 마음이 저한테까지 전해지거든요.”

오랜만에 인사 드려요. 72호에서 인터뷰로 만났었죠. 그사이 이사도 하셨어요.

코로나19와 함께 1년이 훌쩍 지났네요. 인터뷰 직후에 한남동에서 이태원으로 이사를 했어요. 두부와 함께 키우던 약콩이라는 반려견이 작년 4월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면서 급하게 새집을 찾아 옮기게 됐죠. 추억이 너무 많은 곳이라 계속 생각나서 마음이 힘들었거든요. 새로 이사한 집은 남산 공원과 가깝고 작은 마당도 있어요. 동생을 잃은 두부가 약콩이의 부재를 잊고 좀더 자유롭게 뛰어놀길 바라고 있어요.

 

그때 약콩이 이야기도 해주셨죠. 내추럴 와인에 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모습도 떠올라요. 와인은 알지만 ‘내추럴’ 와인을 잘 모르는 분들께 소개해 주실까요?

내추럴 와인을 여전히 엄청나게 마시고 있어요(웃음).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면 내추럴 와인과 ‘차리다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렇게 열심히 마시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최근에는 한 언론사의 의뢰를 받아 내추럴 와인 칼럼을 기고하게 됐어요. 첫 칼럼에서도 썼고,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하는 지인들에게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내추럴 와인은 ‘본래의 와인’이라는 거예요.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무려 기원전 6,000년부터 터키 북쪽에 있는 조지아라는 나라에서 와인을 마신 기록이 나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와인, 그러니까 화학 비료에 힘입어 대량생산한 포도를 인공 효모와 방부제 등으로 ‘제작’한 산업화된 와인의 역사는 불과 100년이 채 안 된 셈이죠. 인류가 지난 7,900년간 마셔온 와인이 우리가 지금 열광하는 내추럴 와인이에요. 완전히 새롭거나 일부 괴짜들이 만드는 와인이 아니죠. 다시 ‘본래’의 길에 들어선 거예요.

 

엄청난 역사가 있었네요. ‘규뱅’이라는 이름으로 내추럴 와인이야기를 기록하는 SNS도 운영하고 있어요.

규뱅은 제 이름 승‘규’와 프랑스어로 와인을 뜻하는 ‘뱅vin’에서 한 글자씩 따왔는데, 발음이 재밌어서 그런지 요즘은 차리다의 심승규보다 내추럴 와인의 규뱅으로 많이 불러주시더라고요(웃음). 내추럴 와인을 정말 자주, 또 상당히 많이 마시다 보니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고, 또 이 좋은 걸 저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규뱅’이라는 이름으로 내추럴 와인만을 이야기하는 계정을 만들게 됐어요. 인스타그램 아이디 @natural_gyuvin에서 제 열띤 애정을 엿보실 수 있답니다.

 

첫 게시물은 ‘르 마젤’ 방문기였죠.

르 마젤Le Mazel은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 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예요. 저희 부부가 르 마젤의 ‘레레슈Les Lèches’라는 화이트 와인을 계기로 내추럴 와인에 완전히 빠지게 됐거든요. 레레슈를 마시기 전에는 내추럴 와인에 사실 큰 흥미가 없었어요. 그냥 유행이구나 싶었죠.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9,000킬로미터나 떨어진 프랑스 남부의 시골까지 찾아가는 열정이 내추럴 와인 때문에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그런데 2019년 가을, 니스로 보름간 여행을 가서 조금 무료한 마음에 르 마젤을 검색해 봤더니 세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 거예요. 바로 메일을 보내 약속을 잡았죠. 어렵게 찾아간 보람이 있을 정도로 반갑게 맞아 주셨고 거기까지 찾아온 한국 사람은 저희가 처음이었대요. 차도 현대차고, 휴대폰도 삼성이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남매였어요. 지난 10년간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와인도 마셔보라고 주시는데 운전을 해서 니스로 돌아가야 하는 저는 어찌나 아쉽던지요. 그래도 양손 가득 와인을 품고 니스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꿈처럼 행복했어요.

 

궁금한 곳이네요. 르 마젤의 와인 라인업을 추천해 주실까요?

화이트 와인 라인업을 추천할게요. 레레슈는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샤흐보니에흐Charbonnières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요. 내추럴 와인에만 있는 테이스팅 노트 중 하나가 네일 리무버Nail Polish Remover 향, 즉 매니큐어 지우는 제품 냄새예요.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잘 안되겠지만, 내추럴 와인 중에서는 이 뉘앙스가 우아하게 피어오르는 멋진 와인들이 있어요. 샤흐보니에흐에도 그 뉘앙스가 있거든요. 아무것도 가공하지 않은 포도의 순수한 발효액에서 이런 맛과 향이 난다는 게 신기해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맛을 위해 와인잔을 신중히 고르잖아요. 승규 님도 그런가요?

그럼요. 최대한 좋은 와인잔에 마시려고 해요. 얇고 가벼운 유리잔만 보면 지갑을 열게 돼요. 와인을 잘 몰랐을 땐 와인 맛만 좋으면 되지 잔이 뭐 대수겠어 했는데 좋은 잔에 마시면 와인 맛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전에 부모님 댁에 가서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려는데 와인잔이 없는 거예요. 아쉬운 대로 두꺼운 컵에 따라 마셨더니 제가 기억한 그 맛이 아니었어요. 미묘한 뉘앙스도 느껴지지 않고요. 와인잔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잔은 오스트리아에서 만드는 찰토ZALTO사의 잔들이에요. 이 잔으로 처음 와인을 마신 날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요. 청담동의 한 와인바였는데, 와인잔을 둘러싼 오감이 이렇게 우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죠.

와인을 자주 마시려면 그만큼 몸 관리에도 신경 쓰실 것 같아요.

이 질문을 해주시길 기다렸어요(웃음).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아세요? 내추럴 와인은 숙취가 없다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정말로 숙취가 없거나 훨씬 덜 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추럴 와인은 재배 과정에서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양조과정에서 이산화황 같은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아요. 순수한 포도 발효액을 그대로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보니, 기분 좋게 취하긴 하지만 다음 날까지 따라다니는 기분 나쁜 숙취는 별로 없다고 이야기해요. 물론 무리해서 마신 다음 날은 체력적으로 힘들긴 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속이 쓰린 경험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여러분, 내추럴 와인 많이 드세요!

 

와, 오늘부터 맘놓고 과음할 수 있겠어요(웃음). 내추럴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어울리는 안주는 뭘까요?

사실 와인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안주가 치즈 혹은 서양요리인데, 내추럴 와인은 어떤 안주하고도 잘 어울려요. 화이트 와인엔 생선, 레드 와인엔 육류 같은 공식도 잠시 잊어도 좋아요. 불닭 먹을 때도 마시고, 회와도 페어링 하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도 곁들이는데, 아마도 내추럴 와인 특유의 감칠맛 때문에 조합이 자유로운 것 같아요. 산미가 높고, 신선한 과실향이 풍부해서 대체로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죠. 요즘은 채소나 두부 요리를 좋아해서 집에 있을 때는 프라이팬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가득 뿌린 뒤 빠르게 볶아 먹는 걸 즐겨요.

 

자주 가는 와인 숍이나 와이너리도 추천받고 싶어요.

와이너리는 가고 싶어도 자주 못 가지만, 와인 숍은 문지방이 닳도록 다니고 있어요.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좋은 비스트로에서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국내에 내추럴 와인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남산의 ‘바피크닉’도 좋고, 한남동의 ‘뮤땅’, ‘킴 한남’, ‘팁시’ 같은, 작지만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의 실력과 마음이 느껴지는 비스트로들도 리스트에 올리셔야 해요. (규뱅 추천으로 왔다고 하면 더 잘 해주실 수도?)

 

내추럴 와인이 왜 좋을까요? 단순한 맛을 넘어 내추럴 와인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해요.

내추럴 와인이 특별한 건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특별하기 때문이에요. 기존 와인 메이커들이 자연을 일종의 ‘통제 가능한’ 생산 수단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내추럴 와인 메이커들은 토양과 자연이란 통제가 가능하지도, 또 해서도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화학 비료를 일절 쓰지 않죠. 유기농을 넘어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이라고 불리는 농법이 있는데, 흡사 우리 선조들이 음력에 따라 농경을 한 것과 같은, 우주 전체의 순환을 고민하면서 포도를 재배하는 방식이에요. 흙의 미생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 농기계가 아닌 가축, 즉 말이나 소, 양이나 닭들과 함께 포도밭을 가꾸고, 식물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종 재배를 통해 포도나무 자체의 자생력도 높이죠. 모두가 다 그렇진 않지만, 컨벤셔널 와인 중에는 컨설턴트한테 레시피까지 제공받아 와인이 ‘제조’되고 있었다면, 믿어지세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와이너리나 주류 와인 업계 종사자들은 내추럴 와인을 애써 무시하지만, 내추럴 와인 메이커들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계속 내 신념을 위해 싸우겠다.”고요.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건 그들의 신념을 지지하는 일이기도 해요. 저는 그 신념이 너무 좋아요.

 

오늘 내추럴 와인의 진정한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도 한번 빠져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내추럴 와인과 관련된 꿈이 있을 것 같은데, 꿈을 이룬 날을 그려보며 마무리해 볼까요?

아내는 제가 내추럴 와인으로 무슨 일을 벌일까 봐 되게 걱정하는데, 《GQ》 편집장이었던 충걸이 형과 얼마 전 내추럴 와인을 마시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나눴어요. 언젠가 이탈리아의 아주 작은 포도밭을 사서 1년에 100병이라도 와인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요. 이탈리아 시골의 부동산에 가면 팔려고 내놓은 와이너리가 제법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니 그것만으로도 즐겁더라고요. 언젠가 규뱅의 이름으로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열심히 마시면서 제 취향을 더 깊게 찾아봐야죠. 아내가 너무 걱정하지 않게 조금씩 일을 키워 보려고요. 이 인터뷰를 보면 또 뭐라고 하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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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사진 심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