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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마주한 나의 집

‘나의 모자를 두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나의 집 Wherever I Lay My Hat(That’s My Home)’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지리적 이점이나 경제적 가치를 떠나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머물 곳이 된다는 의미다. 거주지에 따라 가치관, 인간관계 나아가 라이프 스타일까지 달라진다고 했을 때,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무척 중요한 의미가 된다. 모자를 내려놓을 공간을 운명처럼 만나 집이라고 부르게 된 여섯 명을 만났다.

ikea.com
@jeju_treelab

애월의 사계절을 느끼는 연립주택
이언정 | 카페 ‘윈드스톤’ 운영 | 제주 애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숲으로 둘러싸인 연립주택에 살고 있어요. 거실 창으로 초록 나무들이 울창하게 보이는 풍경에 반해서 이사 온 집이에요.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어서 마치 휴양림에 온 기분이죠. 덕분에 집 안으로 길게 들어오는 햇빛도, 나무에 내려앉은 눈도, 비바람에 흔들리는 젖은 나뭇잎들도 한 폭의 그림이 되더라고요. 사계절의 풍경을 커다란 창 하나로 만끽하고 싶어서, 식탁을 주방이 아닌 창가에 두었는데요. 이 식탁은 제주로 이사 올 때 이케아에서 구입했어요. 우리 가족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곳이라 특별히 더 애정이 가요. 또 공간에 생기를 더하고 싶어서 크고 작은 식물들도 들여놓았어요. 줄기가 길고 잎이 넓은 휘커스 움베르타는 벌써 3년째 우리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네요.”

식탁 이케아 300,000원
휘커스 움베르타 제주식물연구소 170,000원

merrybonbon.com
habitat-design.com

나만의 쁘띠 프랑스, 단층 주택
김지연 | 전라남도 해남

“우리 집은 땅끝마을 해남에 있어요. 파리에 15년간 거주하다가 한국으로 들어왔죠. 그곳에서 연이 닿은 길고양이 밀키도 함께요. 지역과 세대 간의 격차를 줄여보자는 마음으로, 해남의 자연 속에 한옥을 단층 주택으로 개조해서 ‘쁘띠 프랑스 Petite France’를 만들었어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침실이에요. 밀키와 함께 누워 있거나 책을 보고 일을 하기도 하고 멍때기리도 하거든요. 침실에는 이 동네에서 발견한 버려진 의자부터 프랑스에서 받아 온 선물 등 다양한 소품이 있는데요. 그중 여행 갈 때 꼭 챙기게 되는 작은 쿠션이 가장 아끼는 소품이에요. 그리고 프랑스의 Habitat에서 구입한 액자는 해남에 올 때 가장 먼저 챙긴 아이템인데요. 눈이 많이 오지 않는 해남이지만, ‘사울 레이터Saul Leiter’의 포스터가 더운 여름에도 겨울의 산뜻한 차가움을 가져다줄 거라 기대하며 걸어 두었어요.”

쿠션 메리봉봉 48,000원
액자 Habitat 100€

kidkraft.com

가족의 시간이 묻어나는 아파트
박유리 | 충청북도 대전

“‘심심한 도시’라고 불리는 대전에 살아요. 오래된 아파트라서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지만, 남편과 두 딸이랑 함께 따뜻함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어요. 거실은 아이들 책과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텔레비전과 소파는 없어요. 스스로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며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공간이 되길 바랐거든요. 거실을 쇼룸이나 촬영 스튜디오처럼 꾸며 두고 딸들과 사진 찍으며 놀기도 해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주방 놀이 도구인데, 남편이 첫째를 위해 몇 시간 동안 조립해서 완성한 거예요. 이제는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거기서 매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죠. 장난감 옆에 둔 테이블과 의자는 이웃에게 나눔 받은 건데 우리집이랑 잘 어울려서 좋아해요. 그 테이블에서 언니가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면 동생이 아무 책이나 가져와서 같이 읽는 척을 하더라고요. 정말 귀엽고 행복한 장면이었어요.”

주방 놀이 장난감 Kidkraft $100 이상
테이블과 의자 무료 나눔

백 년의 시간을 머금은 알트바우
장지우 | 독일 본

“본의 바트고데스베르크Bad Godesberg라는 동네에서 지내요.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일찍 항복해서 파괴가 덜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동네의 건물 대부분이 지어진 지 100년은 훌쩍 넘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집도 그중 하나고요.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의 알트바우Alt bau에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내는 매일이 감사하죠.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식탁이 있는 방인데요. 큰 창을 통해 보이는 건물들이 멋스럽거든요. 지금 쓰고 있는 가구 대부분은 뮌헨에 살 때 인도네시아 수입 가구를 판매하는 숍에서 구입한 것들이에요. 방 한가운데 놓인 큰 식탁은 어딘가의 문짝을 개조해서 만든 거라고 하더라고요. 2미터가 넘는 크기인데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이사할 때 꽤 고생했어요(웃음). 지금은 저희 집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가구죠. 그리고 벽에는 퀼트 작품을 걸어 두었는데, 결혼할 때 고모에게 선물 받은 거예요. 무척 아끼는 작품이죠.”

식탁 뮌헨 가구숍 Kokon 1,000€ 이상
퀼트 작품 핸드메이드

eoulhb.co.kr
boconcept.com

아트 캔버스가 펼쳐진 맨션
김아연 | ‘멀킵’ 디렉터 | 싱가포르 힐뷰

“제가 사는 힐뷰 Hillview는 열대 동식물이 많은 지역이라 코뿔새나 가죽날개원숭이, 천산갑 등 희귀한 동물과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에요. 저는 집에서 혼자 페인팅 작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해서, 넓은 공간의 집을 원했어요. 이곳은 거실이 넓고 싱가포르 문화의 뿌리인 페라나칸 양식의 특징도 간직하고 있죠. 거실 내부의 벽이 창문처럼 되어 있어서 닫으면 벽이 되고 열면 주방이나 또 다른 방과 연결되는 구조인데, 휴양지의 이국적인 리조트를 연상시켜요. 거실에는 확장형 테이블을 두어서 미술 수업 때는 작업실로, 손님이 올 때는 모두가 둘러앉는 공간으로 활용해요. 또 작업 중인 그림들을 펼쳐 놓으면 그 자체로 알록달록하기 때문에 인테리어 아이템을 고를 때는 무채색이나 자연 빛깔의 나무색으로 통일하는 편이죠. 컬러풀한 작업을 많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빈 이젤들이 늘어져 있는 풍경이에요.”

이젤 Mabef $180
확장형 식탁과 의자 Bo Concept $6,000 

nordicnest.kr

빈티지 캠핑 의자가 놓인 영국식 가든 하우스
백민영 | 광고대행사 근무 | 영국 런던

“런던 남서부의 우스터 파크 Worcester Park에 살고 있어요. 같은 형태의 건물이 데칼코마니처럼 붙어 있는데, 건물 안쪽에 넓은 마당이 있죠. 이런 형태의 집을 영국의 보편적인 건축 양식인 ‘2호 주택 Semi Detached House’이라고 불러요. 산업혁명 시기에 지어진 집인데, 이 동네에서는 나름 신식 건물이죠. 영국에서는 락다운이 반복되던 팬데믹 이후로 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든이라고 생각해요. 공원에 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자연을 벗 삼을 수 있으니까요. 가드닝을 대하는 영국인들의 사랑은 무척 깊어서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몇 시간씩 정원 관리를 하시더라고요. 무척 행복한 얼굴로요! 저도 이것저것 식물을 심고 실험해 보면서 가까워지고 있어요. 또 유럽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빈티지 아이템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마켓을 둘러보며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르고 우리 집에 하나하나 채워 둬요. 운 좋게 구입한 Arabia Finland 컵에 커피를 담고 정원에 둔 캠핑 의자에 앉아 마시면 정말 행복해요.”

캠핑 의자 빈티지 마켓 £35
Arabia Finland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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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글 허수영 사진 이언정, 김지연, 박유리, 장지우, 김아연, 백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