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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11월 말이면, 1년 내내 창고에서 잠자던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어 오너먼트를 달고, 4월이면 연중행사로 꽃 시장에 들러 이 시즌의 작약을 한 다발 안고 온다. 화요일엔 다른 날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테니스코트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며 아침마다 한 드립포트 가득 연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끓여두고 거품이 가득 나는 코코넛 향 샴푸로 정성 들여 머리를 감는다. 어떤 외부 환경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것이 리추얼인지도 모르게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서울, 울산, 런던, 파리,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여덟 명의 리추얼 아이템을 여기 담았다.
커피 가는 소리와 인센스 향으로 채우는 아침
우승현 | ‘미스우 워크샵’ 운영 | 런던
모두가 아직 잠들어 있고 혼자만 깬 아침 거실로 나와 인센스 스틱을 태우고 스트레칭을 조금 해요. 커피빈을 갈아 모카포트에 커피를 끓이는데, 엄청 큰 소리로 분쇄되는 커피빈의 프레쉬한 소음과 인센스의 향으로 제 공간이 채워지는 게 좋아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401 1/2 스튜디오로 출근해 하얀 캔버스 위에 오일 파스텔로 그림 한 장을 그려요. 아침을 시작하는 풍경이 어땠는지, 선생님이나 친구와의 스몰토크는 어땠는지, 아이들이 학교에 잘 들어간 날과 또 그렇지 못하고 삐걱거린 날은 왜 그랬는지 드로잉을 하면서 돌아보는 시간이 저의 리추얼이에요.
Ritual Object
알레시 주전자 £138 모카포트 £159
늦은 저녁, 아로마오일 세 방울
정규리 | ‘아프리콧스튜디오’ 키즈 의류 디자이너 | 서울
낮에는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아이 하원과 함께 육아의 시간을 보낸 후 저녁 시간이 돼야 온전히 제 개인 시간을 보내고 일을 마무리해요. 아이를 재운 후 아로마 오일을 버너에 떨어뜨리고 아주 연한 커피나 크림 카라멜티를 내려서 서재에 들어와 차분하게 디자인 업무를 보거나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매일 가져요. 이솝 브라스 오일 버너에 캐서린 오일 세 방울과 베아트리체 오일 세 방울을 떨어뜨리고 초를 켜는 순간, 온 집 안을 채우는 감귤 향과 흙 내음, 그리고 시트러스 향이 더해져 하루의 피로한 심신을 상쾌하고 편하게 위로해 주는 듯해요.
Ritual Object
이솝 브라스 오일 버너 210,000원 이솝 캐서린 오일 버너 블렌드, 이솝 베아트리체 오일 버너 블렌드 각각 45,000원
명상 후 따뜻한 차 한 잔
배성지 | 미라클 모닝러 | 울산
동이 틀 때 일어나 남편을 출근시킨 뒤 열세 살, 열 살 아이들이 깨기 전에 인센스홀더에 좋아하는 향인 포르트 데 릴라 인센스를 꽂아 태운 뒤 가부좌 자세로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해요.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하루 중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마음을 정진하는 데 도움이 돼요. 명상 후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시며 다이어리를 써요.
Ritual object
포르트 데 릴라 인센스 스틱과 홀더 72,000원, 145,000원
씨앗을 뿌리며 구근을 심는, 계절 리추얼
김세내 | 가드너 | 파리
나무와 꽃들을 좋아해서 자연의 흐름에 따른 정원 가꾸기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추억과 기쁨을 주고 자연의 조화로움을 느끼게 해주어서 뿌듯해요. 9월 즈음부터 다음 해를 계획하며, 다양한 구근을 구입하기도 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구근들을 솎아주기도 해요. 땅이 얼기 전에 심어주면, 구근들은 건강하게 겨울을 나고 봄에 기쁜 소식들을 전해줘요. 올해는 작고 하얀 꽃인 스노드롭Snowdrop 구근을 구해서 심었는데 그 꽃들이 어찌 피어날지 너무나 기다려져요.
Ritual object
아이리스 구근, 스노드롭 구근 대략 15개에 8유로
퇴근 후, 일기 쓰는 밤
이윤희 | 치과의사 | 서울
제 일터가 기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곳이라서 조용한 길을 걷고, 차분한 공간에서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해요. 아이가 잠든 뒤 일하면서 느낀 소소한 감정들,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했던 순간이나 내 맘과 달라 힘들었던 때를 돌아봐요. 아이는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생각하며 휴대폰 사진첩에 있는 사진 중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출력해 집 안 곳곳에 붙여둬요. 어느새 이렇게 자랐구나 하고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Ritual object
휴대용 포토프린터 Selphy Square Qx10 165,000원
조도가 알맞은 램프 아래에서 기도문을 적는 하루
김은희 | 디자인 셀렉샵 ‘짐블랑’ 디렉터 | 함부르크
조금 일찍 일어나 저만의 하루 일과를 시작해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과 머리를 따듯하고 유연하게 만들고,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어둠 속에서 램프를 켜고 성경 말씀을 듣고 난 후 좋아하는 노트와 펜으로 오늘의 기도를 적고 잠시 명상을 해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이 시간은 정말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하루를 긍정적으로 시작하고자 하는 소중한 저의 다짐이자 매우 중요한 리추얼이에요.
Ritual object
뮬러 반 세브렌 스탠딩 램프 260만 원
프라그먼트 디자인 컬렉팅에 집중하는 순간
권정길 | 키즈 의류 브랜드 ‘히로’, ‘유스’ 디렉터 | 서울
최근 회사에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이 생겼어요. 출근하자마자 데스크 옆에 진열해 둔 프라그먼트 컬렉션을 정리하면서 하루 일과와 곧 오픈하게 될 glgk 오프라인 숍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는 저만의 리추얼 시간을 가져요. 프라그먼트 디자인은 일본의 디자이너 후지와라 히로시가 전개하는 브랜드인데요, 제가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모든 아이디어와 디자인 영감을 주는 의식 같아요.
Ritual object
피카츄 x 프라그먼트 35,000원
부드럽고 은은한 향의 바디로션 바르기
박진주 | 키즈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인더스토리’ 바잉 MD | 서울
향수처럼 강렬한 한방은 없지만, 바디로션은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있어 나만의 리추얼로 애용해요. 바디로션을 꼭 몸에만 바르는 건 아니에요. 회사에서 근무할 때, 막히는 차 안에서, 아이의 학원 픽업을 기다리는 시간, 미팅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손과 손목, 팔에 수시로 발라요. 그래서 휴대하기 편한 40ml를 선호해요. 작은 터치가 기분이 좋아 원래 있던 체취처럼 은은하게 퍼져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Ritual object
에르메스 ‘오 도랑쥬 베르트 바디로션 40ml 13,000원
에디터 김현지
글 허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