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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정원
우리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정원
최근 몇 년 사이 ‘정원 붐’이 불고 있는 듯하다. 나는 정원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에 그 인기를 체감한다. 의뢰가 들어오는 일이 많아지고, 관련된 수업을 요청하는 곳도 늘어간다. 분주하게 정원을 만들거나 그에 대해 가르치고 나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감동은 조금 다른 곳에서 온다. 일이 덜 고되거나 수익이 효율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다. 정원을 둘러싸고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식물 덕분에 우리의 마음이 통했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때, 우리 사이엔 또 다른 정원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함께 있기에
솔직해질 수 있는 곳, 정원
사람들은 종종 사회생활에서 맺은 인연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만 못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게 된 건, ‘정원사의 작업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정원사란 쉽게 말해 정원 또는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직업이다. 디자인, 시공에서부터 유지관리 전문가도 있고, 식물원이나 수목원 등지에서 식물 관련 일을 담당하는 때도 있다.
넓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지만, 결국 식물로 통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원사이다.직업의 특성상 의뢰인, 손님,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제법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그들과 나 사이의 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터놓기 전에 초록, 꽃, 식물, 정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와 나 사이를 두르고 있는 얇은 막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초여름, 전혀 공통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열세 명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직업, 성별, 나이, 사는 곳 모두 달랐지만 우리에게는 ‘정원을 보러 가겠다’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먼 타국의 정원을 함께 둘러보았고, 짧은 여행을 끝내자 자연스레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후로도 우리는 여행하듯 만나곤 한다. 장소는 서울 근교의 수목원일 때도 있고, 강원도 산골의 농장일 때도 있고, 시내 고깃집일 때도 있다. 장소는 다르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영국의 정원을 거닐 때, 그 표정이다. 고작 여섯 밤을 함께 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게 된 걸까. 아마, 꽃들의 향연에 마음을 빼앗기던 시간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게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각기 달랐겠지만, 그 공간을 함께 걷던 기분을 평생 나누고 싶어 우리는 그 끈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충고한다. 미워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대할 때 애인을 대하는 마음으로, 애인에게 하듯이 말을 건네면 어렵지 않게 친해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상대가 누구든 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꽃을 대하는 마음으로 대하기를.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정원에 정성을 쏟고 애정을 쏟듯이 사람을 대하기를. 발견의 여행 중에 바라보는 세상이 꽃 빛으로 물들어가는 변화를 만나게 될 테니.
– 주례민의 《그린썸, 식물을 키우는 손》 중에서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 좋아지는 일.
정원을 함께 만드는 일
올해 초여름, 더위를 앞서 급하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의 한 센터에서 가드닝 관련 수업을 듣고 있는 수강생들에게 정원을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수강 대상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대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드닝 교육을 하고 있지만, 60대 이상의 연륜이 있는 분들은 처음이었다. 그 수업을 듣는 열여섯 분의 나이를 더하면 1000이 넘어갔다. 더군다나 디자인을 다루기에 수강기간은 너무 짧았다. 어려운 주제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과 대면한 첫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우린, 교수님이고 선생님이고 겁나는 거 없어. 쉽게 해줘. 쉽게. 우리가 여기 아쉬워서 있는 게 아니라고!”
첫 수업 내용이 어려웠는지 대놓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우리 아버지보다도 열 살은 많은 최고령자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간에도 난 고집스럽게 수업을 이어갔다. 목표는 뚜렷했다. 내가 없어도 이분들이 스스로 정원을 만들 수 있기를. 귀찮은 과정들을 겪어야만 하는 이유를 결국 아시게 될 거라 믿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어렵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어느덧 수업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 한쪽의 버려지고 지저분한 곳을 화단으로 만드는 마지막 수업. 조장의 손에는 지난주 완성한 최종 도안이 들려져 있었다. 오전 내내, 단단하게 굳은 흙과 씨름하며 완성한 꽃길을 보고 지나가는 주민이 한마디씩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르신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뿌듯한지 표정이 밝았고 목소리에 자신감도 묻어났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 같은 것은 이미 아랑곳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같이 호미질하는 동무도 좋아지고, 지나가는 사람도 좋아지네.”라고 말하던 어르신은 이내 나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셨다. 진심이 담긴 음료수와 그분들의 따뜻한 표정을 보고 나자, 그간의 티격태격하던 과정의 어려움은 웃음으로 지나칠 수 있었다. 그동안의 변화를 지켜보았던 나는 그분들의 가능성에 감동하였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가 좋아하는 일. 잔잔한 미소의 바이러스가 퍼지듯, 꽃 향이 퍼져가는 모습이었다.
정원이 누군가의 생활 일부가 되기를 바라며 일을 하는 나조차 일상으로서의 정원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그러다 일에 지쳤을 때, 한숨 고르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작업실 앞 화단의 잡초를 뽑고 마른 풀을 골라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만들어가는 정원, 또는 함께 만들어가는 정원을 위해 고민하지만 결국 그 고민 속에서 위로를 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에 들어와 있는 풀들로 자신만의 오롯한 일상을 가꿀 수 있는 정원, 그 속에서 위로받고 마음을 보살필 수 있는 정원이야말로 생활 속에서 누리는 정원이 아닐까.
– 주례민의 《그린썸, 식물을 키우는 손》 중에서
다시,
알프스 곳곳에 핀 꽃으로
누구는 ‘좋아하는 식물과 함께하니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부럽다고 말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 달 전, 그간 과중된 업무로 쌓인 피로를 풀고자 오스트리아로 여행길에 올랐다. 온종일 풀을 보고 만졌기에 초록에서 해방되어 다른 여유를 만끽할까 싶지만, 결국 찾아간 곳은 자연 그리고 친구였다.
내가 찾아간 건, 알프스 산맥으로 둘린 조용한 마을에 사는 독일 친구였다. 그도 나처럼 조경을 전공했고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매일 식물과 함께하는 일을 하면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주말에도 자연으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꼭 나와 닮아 있었다. 우린 함께 그의 집 주변의 자연을 돌아보았다.
사실 주변의 자연이랄 것도 없는 게 그의 집 자체가 자연을 닮아 있었다. 정원과 식탁에는 말리고 있는 톱풀, 홍화, 여러 가지 허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잘 말린 꽃과 잎을 병에 넣어 수시로 마시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보니 문득, 알프스까지 그 친구를 찾아가게 한 엽서가 생각났다. 그에게는 주변의 산 능선을 따라 트레킹을 즐기는 취미가 있는데, 그때마다 넓은 경치가 펼쳐진 사진들을 엽서로 보내오곤 했다. 나는 그 엽서 몇 장에 이끌려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우리였지만, 식물과 자연 앞에선 결국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원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들은 ‘정원’에 대해 묻기 위해 나를 찾아온다. 정원문화란 무엇인지, 정원을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정원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하지만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정원보다 그것을 둘러싼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혼자서 정원을 가꾸는 작업을 할 때보다 함께 만들고 공유할 때 더 즐겁다. 함께 정원을 가꾸다 보면 결국엔 풀 한 포기처럼 나 자신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고, 그땐 자연스럽게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사이에 흐르던 긴장된 전류도 부드럽게 풀어짐을 알아차리곤 한다. 정원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안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소통을 이뤘을 때, 비로소 ‘정원문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정원을 다른 말로 풀이할 수 있다면 ‘관심’이라 말하고 싶다. 식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우리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옆 사람에 관심을 돌리게 되어 현재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정원은 발견하기 위한 아름다운 여행이고, 함께 하는 여행자와 느끼는 즐거움은 우리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정원사로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가꾼 정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모두가 그 과정에서 생겨난 ‘우리 안의 정원’에 함께 머무는 모습. 그것을 바라본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또 정원사가 될 것이다. 그다음 생에도 그럴 것이다. 한 번으로 족하기에 정원사란 직업은 너무 크기 때문이다.
– 칼 푀르스터
그린썸, 식물을 키우는 손 주례민 지음 | 위고 | 286쪽
나 역시도 그녀를 처음 찾았을 때 “정원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내 평생에 정원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꾼 화분들이 전부였으니까. 그녀가 전 세계를 돌며 둘러본 정원문화를 좀 설명해주면, 나도 집 앞 공간의 흙을 주물러 멋진 정원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 같은 집과 그 앞의 너른 마당은 어쩌면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 당장 창가에 놓인 손바닥만 한 화분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사랑으로 보살핀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의 작은 정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원을 가꾸는 일의 행복을 알게 되고 조금씩 우리의 정원의 크기를 늘려보고 싶다면, 그녀가 얼마 전에 출간한 이 책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부터 다른 나라의 정원문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정원사의 작업실 ‘오랑쥬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5번 길 8-4
Tel 031 8017 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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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선아
글·사진 주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