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할 수 없는 마음

Inside, Outside

누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가끔은 솔직한 것은 외면이고, 거짓된 것은 내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인간은 어쩌면 어떤 것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오직 솔직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오래전에는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모두가 에쿠니 가오리를 읽고 있으니 나는 읽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알량한 자존심을.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읽는 내내 이 여자 뭐야, 라는 생각만 들었다. 기억에 남는 건 끝도 없이 길고 잦은 목욕 장면, 그리고 도미 요리인지 뭔지 하는 담백한 생선 요리를 먹는 장면뿐이었다. 우리가 그 소설을 읽을 즈음 내 친구들은 구질구질한 대학생 신세에서 탈출해 제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아마도 그 애들은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길게 목욕을 하고, 담백한 생선 요리를 먹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 그런 여자가 되는 것.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가 될 수가 없었다. 

나는 길게 목욕을 할 수도 없었고(집에 욕조가 없었다), 담백한 생선 요리가 뭔지도 몰랐고(생선조림 비슷한 것일까),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았으며,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는 고급 목욕탕에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세신사에게 제 몸을 맡기는 여자처럼 보였고, 팔이 빠져라 내 몸을 내가 미는 나는 (등도 내가 밀었다) 누가 자기 몸을 밀어주는 동안 엎드린 채 눈을 감은 여자들의 얼굴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생각했다. 게으르고, 뻔뻔해. 그것은 일종의 질투심이었을 것이다. 세상만사가 쉬운 사람들을 향한 질투심. 그런데 나에게 세상만사는 왜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다 늙어서 나는 에쿠니 가오리를 읽는다. 소설은 내게는 여전히 그냥 그런데, 산문은 아주 재미있다. 솔직히 말해서 에쿠니 가오리처럼 재미있는 산문을 쓰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내 자존심은, 그 알량하던 자존심은 어디로 가버린 건가.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얼마 전 딸과 함께 새로 이사 온 도시의 서점에 갔다 발견한 책이다. 제목도 역시 에쿠니 가오리였다. 뻔뻔했다. 몇 장 들춰보니 재미있어 보였고, 서점을 나와 어느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만나기로 한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면서 책을 좀 읽었다.

여전히 매일 두 시간씩 목욕을 하고, 아침과 저녁에는 과일만 잔뜩 먹고, 어디에 갈 때는 책과 비눗방울을 가지고 다니고, 좋아하는 놀이는 끝말잇기입니다.

 

–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중에서

아, 이 여자는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이 여자는 책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들을, 슬퍼하는 것들을 잔뜩 적는다. 그것은 오늘 저녁의 메뉴를 적은 메모지 같기도 하고, 여행지의 카페에 앉아 끄적이는 몽상 가득한 일기장 같기도 하다.

몇 개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책을 내려놓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좀 전과 똑같은 거리였다. 초라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한 노인이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벤치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고 있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아름다운 것들이라고는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 어수선한 역 근처 거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가 천천히, 그리고 기분 좋게 5센티미터 정도 들어 올려졌다가 폭신하게 내려앉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내키는 대로’라는 말이 무섭다. 내키는 대로 산다, 하고 말하면 자유롭고 쾌적하게 사는 듯 들리지만, ‘기’가 하라는 대로, 하는 대로 산다는 말이니, 적어도 내 경우, 그렇게 되면 대 참사다. 나의 ‘기’는 길을 자주 잃는다. 폭군인데 길을 자주 잃다니, 따라가는 사람 생각도 해 줬으면 좋겠다. (중략) 나는 내가 날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마저 전부 ‘내 기분 탓’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중에서

책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단골 인도 음식점 사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든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잔뜩 모아놓은 보물 상자를 연 듯하다. 그 보물 상자의 겉은 오래된 구두 상자나 찌그러진 과자통처럼 초라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아주 조그만 가게이고, 인도인 아저씨가 혼자서 꾸려간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또 뭐라 말할 수 없이 좋다. 몸짓과 말투가 부드럽고, 미소에는 늘 수줍음이 배어 있다. 조심스럽고 기품 있고, 장사하는 사람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느긋하다. 고귀하달까, 여유롭다고 할까, 아무튼 결정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우아하다.

 

–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중에서

작가는 그 가게의 화장실에서 손으로 쓴 안내문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비치된 화장지 이외의 것은 변기에 넣지 마세요. 또 실수로 떨어뜨렸을 경우에는 사양치 말고, 당황치 말고 물을 내리기 전에 가게 사람에게 말씀해주세요.”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사양치 말고, 당황치 말고.’ 배려에 찬 말이다. 주의하라고 써놓은 말인데, 오히려 이쪽이 감사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생각했다. 요리에는 역시 요리를 하는 사람의 인품과 성품이 배어 있다고. 주방에서 일하는 아저씨의 진솔하고 정성스러운 모습과 화장실에 붙어 있는 종이의 아름다운 언어, 풍성함과 기품은 절대적으로 이어져 있다.

 

–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중에서

이 사람의 책을 읽고 나면 세계는 조금 나른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조금 낯설어지고 그래서 무서워지고 그럼에도 아름다워진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의 푸른 빛 속에서 헤엄치는 만타가오리며 철갑상어 같은 것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꿈 같기도 하고 추억 같기도 한 그런 것들에 잠기는 기분이다.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지만, 표면이 달라져 버렸기 때문에 본질적인 것들마저 달라져 버리는 기분이다. 아니, 본질이야 아무렴 어때, 하는 무책임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위험하다.

로즈의 성정은 뾰족한 껍질에 싸인 파인애플처럼 자라났으나 그 변화는 느리고 은밀했다. 단단한 자존심과 회의주의가 서로 겹쳐지면서 로즈 자신에게조차 놀라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 중에서

어떤 사람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심지어 국적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태어난 해도 살아온 과정도 다른데도, 꼭 내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앨리스먼로가 쓴 소설을 읽을 때, 날카로운 씨앗을 속에 감춘 촌스러운 소녀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 단편집이자 연작소설인 《거지 소녀》는 가난한 시골 동네의 상점집 딸로 태어난 로즈의 이야기다. 로즈는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새어머니와의 기싸움에서, 아버지의 매질에서, 거친 학교의 폭력에서,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난 세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사람들의 냉소 어린 압박에서. 폐쇄적이고 체념적인 시골 동네라는 환경은 소녀의 성장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똑똑했기 때문에 동네를 떠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로즈는 이제 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 남자가 로즈를 사랑한다.

로즈는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질 거라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원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무엇이 있어서인데, 자기 안에 그것이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것인가?

 

– 《거지 소녀》 중에서

로즈의 애인 패트릭은 어마어마한 부잣집 도련님이다. 그리고 로즈가 그에게 한 일은,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로즈는 뻣뻣한 모범생인 그를 도발하고 그의 감정을 마구 할퀴어댄다. 그가 화를 내고 절망하고 로즈에게 덤벼들면 그제야 로즈는 안심한다.

슬프게도 나는 로즈를 이해했다. 자신의 콤플렉스로 상대를 괴롭히는, 상대의 추한 본성을 끌어낸 후에야 안도하는 로즈를 이해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행복하기보다는 절망할 때 그를 향한 사랑이 더 커지는 로즈의 마음을 이해했다. 로즈가 한 짓은 내가 20대의 첫사랑에게 한 짓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로즈는 말하고 움직이는 매 순간 그를 위해 자신을 무너뜨렸지만 그는 그녀를 뚫고 지나가 다른 곳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아무리 주의를 돌리려 해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녀 자신도 보지 못하는 순종적인 이미지를 사랑했다. (중략) 그녀는 그에 대해 그토록 회의를 품었지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았다.

 

– 《거지 소녀》 중에서

앨리스 먼로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식으로 비뚤어져있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잔인할 정도로 냉혹하다. 앨리스 먼로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장소에 불빛을 비춘다. 입만 열면 두꺼비를 뱉던 이야기 속 소녀처럼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 어둡고 축축한 장소에는 두꺼비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흉측한 얼굴로 흉측한 소리를 내는 두꺼비들이.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말이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로즈는 이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고이 간직하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어서 기뻤다. 물론 이야기 소재가 부족하다는 점이 고결한 억제만큼이나 큰 침묵의 요인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랠프 길레스피와 자신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의 삶을 가까이에서, 여태 사랑했던 남자들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느꼈다는 것, 자신의 자리 바로 옆 칸에 존재한다고 느꼈다는 것 말고는.

 

– 《거지 소녀》 중에서

로즈는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 모든 복합적인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지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로즈는 그것들을 덮어두기로 한다. 자기 안의 소중한 것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앨리스 먼로의 이야기는 진짜 여자들의 진짜 이야기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틀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러나 종종 그 틀의 유혹에 굴복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하지만 앨리스 먼로의 대단한 점은 틀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삶이라는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것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다.

그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털어놓지 않았던 얘기는, 때로 그것이 동정이나 탐욕이나 비겁함이나 허영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었다. 행복에 대한 환상 같은 것.

 

– 《거지 소녀》 중에서

나는 로즈가 외면하려 했던 행복에 대한 환상을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서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멋쩍은 기분이 든다. 에쿠니 가오리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환상에 젖은 나 자신을 꼴사납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은 내 안의 두꺼비들의 감정이다.

가끔씩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생크림 같은 세계를 둥둥 떠다닌다. 세신사에게 등을 맡긴 채 엎드려 눈을 감은 여자처럼 무책임해진다. 그러나 생크림은 곧 녹아버린다. 나는 그것을 슬픈 마음으로 바라본다. 얼마 후 앨리스 먼로의 세계가 시작된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냉혹한 세계가. 어둡고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진흙과 두꺼비들의 세계가. 그 세계에서 나는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고, 비록 피치 못한 상흔을 입었겠지만, 누군가에게 상흔을 입혔겠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는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었다. 빛나고 슬픈, 어쩌면 아름답기까지 한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까, 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 소담출판사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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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