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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詩로의 산책
“애정하고 존경하는 아내에게” 아내를 향한 헌사로 시작하는 시집 《여수》(2017)의 첫 시는 표제시 〈여수〉다. 여수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로, 시인에게 이곳은 밤바다보다 낮의 공장이 도드라지는 도시였다. 〈여수〉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아내가 있는 도시까지 사랑하게 된, 무서운 사랑을 감지한 사람의 마음을. 화자의 사랑은 깊고도 넓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것은 아내이고, 아내가 살아온 도시이며, 처가가 있는 여수다. 아내가 속한 세계까지 살피는 사람은 사랑이 무섭다고 할지라도 시작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다. 화자의 사랑은 〈한강철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괴물을 피해, 수술을 앞둔 아이를 안고 달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사랑이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된 이후, 천천히 생겨난 더욱더 맹렬한 사랑이다. “괴물 여러 마리가 철교를 맹렬하게 건너고 있”지만 이를 피해 열차에 오른 사랑은 ‘더’ 맹렬할 수밖에 없다. 두 시에는 시인의 삶이 녹아 있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아내와 아이를 향한 무구한 사랑이 “끝이라 생각한 거리”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낯선 도시와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행이다. 옆 동네로 놀러가는 소풍이나 먼 나라로 떠나는 여정 같은 것. 하지만 시인이 도시와 만나는 방법은 여행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이자 삶의 간단한 (혹은 그렇지 않을) 한순간이었다. 빨간 버스를 타고 처음 가본 도시(〈부평〉), 망자를 기리기 위해 애도의 마음으로 찾아간 도시(〈목포〉), 졸며 운전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당도한 도시(〈강화〉), 입대를 앞두고 방문한 곳이자 길을 잃은 도시(〈압구정〉)…. 그 사사로운 이야기의 배경엔 언제나 도시가 있었다. 시인의 도시는 언젠가의 사적인 기억으로 만들어졌고, 언젠가의 공적인 역사로 깊어져 간다. 시인이 출장길에 “장대에 내 머리통이 꽂혀 있”는 잠깐의 꿈을 꾸는 것은 종착지가 ‘강화’이기 때문일 테다(〈강화〉). 시인이 출퇴근길에 보는 “얼어버린 한강”이 김신조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단도”로 이어지는 까닭은 당신이 달리는 곳이 ‘자유로’이기 때문일 테다(〈자유로〉). 이처럼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인의 사사로운 일상은 역사적 사건들과 끊임없이 교차한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딱지가 붙은, 국내에서 가장 적나라한 관광지로 알려진 서귀포 ‘건강과 성 박물관’에서 1948년의 4·3사태가 불쑥 나타나 “대검을 꽂아 넣”고(〈서귀포〉), 진주의 “동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두 근을” 사다가 문득 1923년으로 흘러가 백정들이 형평사를 결성하는 현장을 목격(〈진주〉)하는 식이다. 시인의 도시는 세월의 더께가 진 듯, 지긋해 보인다.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詩의 모습은 언젠가 보았던, 누군가의 할아버지를, 어쩌면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를 닮아 있다.
시집 《여수》에는 많은 도시가 등장해요. 시인의 도시를 더 알고 싶어요.
유년기의 도시라면 아무래도 태어난 곳인 목포와 할머니 손에서 자란 광주, 특히 ‘송정리’를 꼽을 수 있어요. 서울 안에 청량리가 있듯, 광주에서 오랫동안 동이나 구가 아닌 ‘리’로 불리던 곳이 있는데 그곳이 송정리예요. 목포에서 출발한 용산행 기차가 정차하는 곳이기도 하죠. 그곳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냈고, 이후에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많은 날을 머무른 도시, 혹은 동네예요. 최근에는 명절 귀향길에 잠시 들르기도 했네요. 많은 게 변했지만, 골목 안쪽은 그 시절 그대로라 조금 놀랐는데요. 그 골목에 ‘뽀뽀통닭’이라고 어릴 때 자주 먹던 치킨집이 있어요. 치킨보다는 통닭이 어울리는 집일 텐데요. 근처에 갈 일 있으면 한번 드셔보길 권합니다. 배달도 안 되고, 테이블도 없어요. 전화 예약 후 포장만 가능하죠. 세상에 이런 치킨은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그 치킨이 제 인생 닭이에요.
《여수》 속 도시들은 계획된 여행보다는 일상 그 자체에 가까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획된’ 여행이라고 했지만, 사실 장소에서 장소,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모든 이동이 여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좁은 의미로서의 여행에 능숙하지 못해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해오긴 했지만, 사실 여행할 기회가 없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움직임을 모두 여행이라 말한다면 조금 시시한 일이 되겠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모든 행로가 인생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 테니 말이에요. 그러나, 그렇게 될 리가 없죠. 오늘 아침에도 마을버스-경의선-3호선-도보를 거쳐 회사에 겨우 닿았는데, 그걸 여행이라 부르고 싶진 않아요. 저에게 여행이란 낯선 도시의 공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만족스러운 숙소에 잠시 머무는 거예요. 그런 전통적인 여행을 앞으로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더 자주 함께하고 싶네요.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방식으로 시가 전개되고 있어요. 공적인 사건에 사적인 감정을 더하면서 모든 지역이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데요.
가령 제가 좋아하는 중국 식당인 연희동 ‘이품’에 가거나, 그 옆에 ‘사러가마트’를 구경할 때면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다는 연희고지전투가 생각나요.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한 뒤 국군이 인천에서 서울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고 하네요. 국군, 인민군, 서울 수복, 승리와 패배…도 중요하지만, 두 발로 서 있는 이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사실에 이상한 마음이 쓰여요. 그리고 그 비슷한 동네에 독재자 전두환의 저택이 있고, 그가 연희동 골목을 드나든다는 사실 또한 이상하고 두려워요. 그 역사를 생각하는 저 자신은 그저 탕수육이나 먹으며 연희동에서 다시 연남동으로, 연남동에서 다시 홍대입구역으로 나아가 집에 돌아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죠. 그것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진)다는 묘한 섞임을 시로 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도시의 이름으로 시를 쓰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 같아요.
도시의 이름을 시의 제목으로 많이 가져왔지만, 정작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천이나 철원, 평택 같은 별다른 연고가 없는 도시는 물론이거니와 제가 태어난 목포도 마찬가지예요.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문화 사업을 위해 집을 여러 채 매입했다고 유명해진 골목을 호기심에 한번 가보았어요. 과장을 조금 보태 발로 세게 차면 으스러질 것 같은 옛날식 건물들이었는데요. 전에 알았다면 여기에서부터 다른 상상력이 전개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물론 그날은 근처에 있는 명물 빵집 ‘콜롬방제과’에서 바게트 몇 개만 사들고 돌아왔을 뿐입니다만….
《여수》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편은 무엇인가요?
〈한강철교〉예요.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심장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서 집을 오가며 완성한 시이기도 해요.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기에 조금은 복잡하고 감정의 진폭이 컸을 때거든요. 결국, 이 시를 완성함으로써 삶에 대한 각오나 결기, 태도나 관점 같은 게 아버지의 몫으로 다시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낭독의 황제’로 불리는 시인의 낭독을 지면에 싣지 못해 아쉬워요. 《여수》 속 시편 하나를 독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어떤 시를 고르시겠어요?
〈귀향〉이요. 시를 보면 “족발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일부러 그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그 부분을 힘주어 읽으면 어쩐지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따라 해보세요. “이런 족발 같은”
에디터 이주연
일러스트 김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