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TRAIN

열차 안에서

열차 안에서

열차가 낯선 곳을 향해 출발할 때, 덜컹거리는 창문 너머로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풍경이 스쳐 갈 때 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열차가 이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갑자기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흐르는
어느 여름날, 각자 다른 이유로 열차에 오른 이들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운전면허가 독립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작은 차를 끌고 돌아다니며 이제 어른이라고, 자유라고 말하던 시절, 나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면허 취득을 종용하는 친구들 앞에서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빽빽하게 늘어선 차들 사이에 끼어있느니 차라리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싣는 편이 더 낫겠다고 중얼거렸다. 누군가 대신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길 바라는 게으르고 의존적인 마음은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로 위를 내달리는, 뻥 뚫린 어둠을 거침없이 통과하는 열차 안에서 나는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앞에 우리의 의지는 관성에 따라 흘러가는 연약한 움직임에 불과했다. 기차는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고, 우리 삶도 내일을 향해 달려갈 테니까. 열차는 지금 이 순간과 다가올 ‘다음’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나는 잠시나마 이 시간을 붙들고 싶어졌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밝은 미래를 위한 준비나 계획 따위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행복을 찾고 싶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독립과 자유가 아닐까.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얼마 전, 열차 안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법에 대해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햄버거를 먹고 있었고 입안 가득 베어 문 것을 다 먹기도 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어떻게 첫 마디를 꺼낼지, 마주 앉아가는 좌석에서 왜 시선 처리가 중요한지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다 실제로 열차에서 만나 사귀게 된 커플이 결혼에 골인했다는 소식을 접한 우리는 아주 익숙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농밀한 대화를 나누고, 도시를 거닐고, 위태로운 약속과 함께 작별을 고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사실 열차를 낭만적인 장소로 여기게 된 건 이렇게 몇 편의 영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시간에 순응하며 살다가 문득 ‘지금, 당장’을 외치며 떠나는 중년 남자의 일탈을 다룬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는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전에 잡고 있던 것들은 모두 놓아버린 채. 나는 점점 열차에서 일어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고, 그 안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듣고 싶을 뿐.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에서

정은경ㅣ34세, 편집 디자이너

여행 준비와 자료 스크랩, 제철음식 즐기기가 취미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좋아하는 것만 골라 하며 만수무강하는 꿈을 갖고 있다.

일상과 이상 6년간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에 대한 판타지는 어느새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고된 인도여행을 감행했다. 그저 일상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결정이었다. 사실 현지 카레와 라씨(인도식 요구르트)를 맛보고 싶기도 했다.

미셸 공드리 그는 영화감독이기도 하지만 가끔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2002년도에 발매한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Star Guitar’도 그의 작품이다.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열차를 타고 가는 그의 시선이 음악을 타고 흐른다.그 리듬감 있는 풍경을 경험하고 싶었다. 내가 실제로 겪은 열차는 평온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묘한 리듬이 있었다. 자연의 수평선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인도 열차 땅이 워낙 넓어 자동차로는 여행하기 힘든 나라. 현지 열차는 제시간에 도착하기 힘든 데다가 자주 연착이 되어 문제가 많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이동 수단이었다. 별 기대 없이 오른 인도의 열차는 마치 세계를 압축한 듯한 모습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열차의 낯선 풍경을 구경하며, 앞으로 혼자 해나가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사기 제대로 당했다. 옛 궁궐 라즈마할Raj Mahal이 있는 오르챠Orchha에서 출발해 에로틱한 유네스코 문화재, 카주라호Khajuraho 사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표를 발권하는데 역무원에게 기차표 사기를 당해 최하등급 나무로 만든 가장 안 좋은 자리를 배정받았다. 4인석에 7명이 함께 앉아서 갔다.

허기지지만 배부른 여행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열차에 올랐다. 이동할 때 꼬박 하루가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사기당한 열차 칸에 꼬깃꼬깃 앉은 인도인 가족들은 허기진 내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소금에 찍어 먹는 오이였는데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중 어떤 부녀는 다른 열차에서 다시 만났다. 12억이 넘는 현지 인구를 생각하면 엄청난 인연이라 여전히 신기하다.

뭐, 어때 인도는 인권과 편의, 상식을 뛰어넘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나라다. 그곳에 머물던 한 달 동안 겪은 일들은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초반에는 정신이 쏙 빠지도록 놀란 일에도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떠나기 싫을 정도였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은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깨끗했고, 차선 위에 질서정연하게 다니는 차들이 신기했다. 그쯤 되니 여행 전과는 반대로 일상이 판타지가 되었다. 발에 차일 만큼 많았던 골목의 검정 소가 보이지 않는 게 조금 서글펐던 것 말고는 예전보다 오히려 능청스럽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최효석ㅣ33세, CEO
열차에 올랐을 땐 서른 살의 가난한 백수였다. 36개국 45개 도시를 도는 여행을 마치고 당시 구축한 국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무역업을 시작, 지금은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인 키스톤 매니지먼트를 운영하고 있다.

청년 백수 모아놓은 돈도, 쌓아놓은 경력도 없는 미천한 상태. 서른 살에 떠난 청년 백수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부분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 연령 제한을 감안할 때 장기여행을 떠난다는 건 평범한 구직생활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가진 밑천을 모두 들고 일단 떠나보기로 결정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만큼 가지고 갈 것이 없어서 더 쉽게 나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만남 유라시아 지역을 다니면서 대부분 육로로 이동했던 나는 망설임 없이 열차를 선택했다. 비행기는 가장 빠르고 편한 수단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여행시간이 짧아 이동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열차는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여행자들을 닮았다. 외부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지만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다.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객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처음 만나는 동승자들과 몇 시간, 아니 며칠을 함께 있어야 하는 건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 시간을 모아보니 하나의 여행기라고 해도 손색없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유레일 패스를 타고 많은 도시를 방문했지만 나는 중국 북경에서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일주일을 내리달렸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절대 잊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기차를 타고 몽골 친구와 단둘이 첫날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열차는 그야말로 ‘대화’밖에 할 수 없는 장소였다. 그런 그가 먼저 객실을 떠나자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이후 6일간은 고요한 침묵과 함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평생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생각만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새로운 바퀴 열차가 중국에서 몽골 국경을 넘을 때 기장이 열차 휴식 시간을 알려왔다. 탑승자의 휴식이 아닌 열차의 휴식이라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내려서 본 횡단 열차는 대부분 무채색인 중국 기차들과는 달리 녹색과 노란색이 섞인 모습이었고 그 자체로 매력이 넘쳤다. 열차는 약 네 시간 반 동안 새로운 바퀴를 장착했다. 중국과 몽골의 선로 규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2~3번, 15분가량의 짧은 정차만 허락되는 열차의 시계를 감안하면 여행자들에게도, 열차에도 모처럼의 여유였다. 생각해보니 이 여행은 나에게도 다시 달리기 위한 튼튼한 바퀴로 바꾸는 시간이었다.

대륙을 달리다 우리나라의 중심인 서울에서 반도의 끝인 부산을 오가는 거리와 열차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 물리적인 양은 같지만 둘은 전혀 달랐다. 그 사이에서 깨달았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작은 부분만을 경험하며 살아왔는지. 그 후로 열차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달리고 또 달렸지만 나는 대자연의 위엄에 전율하느라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지은ㅣ34세, 뮤지션
음악을 하고 가끔 글도 쓴다. 외출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좋아한다.

열차의 로망 나는 탈 것 중에 기차를 제일 좋아한다. 배는 바람 때문에 밖을 보기가 힘들고, 비행기는 너무 빠른 데다 풍경이 비현실적이고, 자동차는 너무 변수가 많고 멀미를 하게 만드니까. 그런데 기차는 일정한 속도로 같은 궤도를 달린다. 비행기의 그것과는 달리 기분 좋은 소음과 리듬이 있어서 창밖의 풍경을 보기도, 음악을 듣기도, 책을 읽기도, 그저 멍하니 생각하기에도 좋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내 생각은 풍경과 함께 흐르는 그런 느낌.

홋카이도 2집 앨범을 발매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주어진 상황은 벅찼고, 푸른 여름이 보고 싶었다. 원래 열차 타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외딴곳에 있는 한적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무작정 떠나버렸다. 그 판단은 옳았다. 

할머니 옆자리에 앉아 동행한 할머니께서 훈제 굴을 주셨다. 그게 심각하게 맛있었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갑자기 터져버린 내 하소연에 그저 듣고만 계시더니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그러고 나서 열차에서 내렸는데 마치 주술이 풀린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할머니는 일본의 동쪽 끝 마을에 사신다.

두 장의 앨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음악이다. 나는 일부러 씨디 플레이어를 챙겨서 여행 내내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들었다. 그렇게 듣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파고, 파고, 또 파는 느낌. 하나는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베스트 앨범이고, 다른 하나는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의 아주 예전 곡들을 모은 앨범이었다. 로버타 플랙의 목소리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처럼 위로가 되어주었고, 마키 노미야Maki Nomiya가 합류해서 세련된 음악을 하기 전의 피치카토 파이브는 청춘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음악 열차 안에서 결심했다. 돌아가면 홋카이도를 닮은 즐겁고 푸릇한 음악을 하기로. ‘오지은과 늑대들’이라는 프로젝트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작업을 통해 즐거움도 절망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워야 했다. 요즘은 달라진 듯 아닌 듯, 몇 발자국 옮긴 듯 아닌 듯, 그렇게 있다. 

인생의 각도 어쩌면 나는 20대의 흐름을 열차를 돌면서 정리했는지도 모른다. 매일 일어나서 열차를 타고, 어떤 마을에 도착해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다시 열차를 타고, 또 다른 마을에 도착해서 잠을 자고, 그 과정이 아무 것도 아닌 듯 느껴질지 몰라도 어떤 의식이 되어 내 인생의 방향을 1도 정도 바꿔준 것 같다. 계속 걸어가다 보면 그 작은 변화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동미ㅣ45세, 여행작가
여행하고 글 쓰는 것이 직업인지라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여행전문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독립해서 조금 더 자유로운 여행 중.

백두대간 협곡열차 경북 봉화의 분천역에서 강원도 태백 철암역까지, 골 깊은 협곡을 달리는 열차를 탔다. 청정 지역을 지나는 만큼 객차 지붕에 설치한 태양열 집열판으로 전기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열차는 천장에 달린 선풍기와 산바람으로 여름을 나고,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을 수 있는 목탄 난로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시속 3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리는 열차 안에서 문득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났다.

기찻길 옆에서 강원도 증산이라는 곳에 산 적이 있다. 정선과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곳에 기찻길이 있었다. 민둥산 기슭 언덕배기에 앉아 있으면 앞으로 마을이 흐르고 기찻길이 그 한복판을 에둘러 나갔다. 열차는 하루에 두세 번씩 지나갔다. 보란 듯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돌아나가다 우렁찬 기적 소리를 뽑아냈다. 미동의 흔들림도 없이 나아가는 그 자태는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근사하고, 가까이 가고 싶고, 한번 타보고 싶었다. 매일 같은 시간, 열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끝없는 의문부호를 가슴에 담고 살다 보니 여행이 업業이 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순전히 그 열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산골 마을 나는 협곡열차에서 분천역, 양원역, 승부역, 철암역으로 이어지는 짧은 구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200명 남짓의 고요한 산골 마을에 협곡열차가 지나면서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지난해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알프스 청정마을 체르마트와 자매결연을 맺은 분천역은 새로운 열차 여행지가 되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체르마트에서 보내는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으면 100일 뒤에 받아볼 수 있는데,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취와 스위스 기차역을 연상케 하는 외관이 꽤 운치 있었다.

스위스 시계 분천역에 있으니 문득 스위스 융프라우의 열차들이 떠올랐다. 열차는 아주 정확한 시간에 맞춰 갈아타야 했다. 해당 역에서 24분 혹은 53분에 타는 식이었다. 게다가 역 이름은 왜 그리 긴지 외우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읽기도 힘들었다. 발만 동동 구르는 내게 현지에서 만난 아저씨가 비법을 일러주었다. “시계를 보고 있다가 여기 적힌 시간이 되면 무조건 내려. 그리고 갈아타. 기차역 이름 같은 건 몰라도 돼. 그저 시계만 믿어. 스위스 시계는 아주 정확하거든.” 

낙동강의 눈물 분천역 다음은 양원역, 국내에서 가장 작은 역이었다. 예전에 이곳 주민들은 늘 마을을 관통하는 열차를 바라만 봐야 했다. 열차가 마을 앞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처에서 장을 보고 올 때는 마을을 지날 즈음 무거운 보따리를 열차 밖으로 던져놓고 다음 역에서 내려 되짚어 걸어왔단다. 던져두었던 짐을 찾아보면 수풀에 찔려 죄 쏟아지고, 떡을 하려던 쌀가루는 터져서 낙동강에 흘러가기 일쑤였다. 이후 마을의 한 소년이 보낸 탄원서가 대통령에게 전달되어 33년 만에 양원역이 생겼다고. 당시 마을 사람들은 괭이며 지게를 들고 나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전하나ㅣ29세, 마케터
하루의 반은 도시에서, 나머지 반은 시골에서 보낸다. 철도청 단골 고객이자 도시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 촌사람.11개월째 열차를 타고 어라운드 사무실로 출근한다.

222킬로미터 내가 매일 열차로 오가는 거리다. 조치원역에서 출발해 서울역으로 가는 길에는 천안, 성환, 평택, 서정리, 오산, 수원, 안양, 영등포를 지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천안과 조치원 사이에 ‘전의’라는 역이 하나 더 나타난다. 하루에 열차가 몇 번 서지 않는 이 작은 역을 언제부턴가 기다리게 되었다. 아마 그다음 역이 내가 내려야 할 역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걸까.

열차 안에서 고요한 출근길, 아침 햇살이 비춰도 열차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다. 물론 그중에 나도 있다. 그 순간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 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저녁 기차 안에서는 마음이 평온해진다.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매일같이 퇴근길에서 느끼는 기분이지만 왠지 싫지 않다. 

막차를 타고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해본다. 무작정 그날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하는 표를 끊고 막차에 오른다. 밤늦게 도착한 곳은 캄캄하고 낯선 동네, 멀리 보이는 불빛을 따라 걷다 보니 허름하지만, 인정 많은 주인아줌마가 있는 어느 민박집에 도착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곳에서 며칠 머물다 돌아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

선물 하루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내내 뭔가를 열심히 적으시더니 작은 종이를 내게 건넸다. 직접 지으셨다는 시 구절이었다. 내용의 절반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그날, 그 열차가 아니었다면 그런 선물을 어디서 또 받을 수 있을까?

마음을 적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거나 괜히 열차가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수첩을 꺼내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거린다. 가방 안에 항상 넣어두는 책 내용을 옮겨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써보기도 한다. 때로는 그리운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도 있다. 열차 안에서 적어 내려가는 글은 평소와 같은 종이와 펜인데도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든다.  

계절들 종일 사무실에 있다 보면 부쩍 더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인지, 겨울인지 그저 살갗에 와 닿는 온도로만 느낄 뿐이다. 그런데 열차 안에서는 계절이 보인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좌석이 없어서 입석으로 탄 열차, 바깥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진짜 여름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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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혜진

글·사진 오지은 이동미 전하나 정은경 최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