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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계절이 지나는 동안
깡마른 몸에 작은 키, 굽은 손가락과 등, 엇박자를 이루며 쩔뚝대는 걸음걸이. 겉모습만 본다면 모드는 누구라도 안쓰럽게 여길 만하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어린아이보다 생기 넘치는 눈과 조용한 미소를 품은 입가를 보았다. 그녀는 노인이 될 때까지 그 눈빛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장애를 극복하고 꿈을 이룬 화가가 아니라 작은 오두막에서 그림을 그리며 인생의 절반을 보낸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모드 루이스Maud Lewis는 1903년,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의 시골 마을인 사우스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선천적 기형 때문에 깊숙이 당겨진 턱에 먼저 눈이 간다. 그런 외형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모드는 가족들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수줍음 많은 성격은 아마 이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모드는 보통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이따금 피아노를 배우고,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 팔았다. 가끔은 오빠의 도움을 받아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고, 오빠에게 떠밀려 이모의 집으로 보내지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과 보호를 듬뿍 받는 아이로 살아왔다. 훗날 모드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준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래서 대부분 아름답게 묘사된다. 상처로 마음을 닫는 대신 활짝 열린 눈과 마음으로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낸 것이다. 모드가 가진 묘한 긍정의 에너지는 이미 장애에서 파생된 괴로움을 이겨낼 힘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랑받았던 시절이 존재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무제, 연도 미상, 파티클보드에 유화물감, 30.1x36cm, 더글러스 E. 루이스 박사 컬렉션
모드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시골 생활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사우스 오하이오, 야머스, 딕비와 마셜타운 등 그녀가 살았던 노바스코샤의 풍경들은 먼 기억을 들추거나, 창 너머로 본 것이거나, 그에 기반한 상상에서 온 것이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기에 기교 없이 그린 그림은 오히려 더 정감 있다. 모드는 기억 속 장면을 하나하나 되살려내지는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장면을 더 아름답게 표현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밝은 색채를 사용했으며, 자연의 ‘예쁜’ 모습들만 골라 여러 계절이 섞여 있는 풍경을 창조해냈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대신 보는 이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평화로움을 담았다. 모드에게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언제라도 행복을 꺼내볼 수 있도록 만든 장치였던 것 같다.
남편인 에버릿과의 살림이 그리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모드는 그가 종종 주워오는 선박용 페인트로 색을 칠하고는 했다. 작은 집에는 늘 탁한 페인트 냄새가 가득했지만 손이 닿는 곳 어디든 끊임없이 붓을 들었다. 죽어있던 물건들은 그녀의 손길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 좁은 집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낮은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성실히 일기를 쓰듯이, 지난 기억과 그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듯이 모드는 그림을 그렸다.
모드가 시골 생활의 즐거운 모습을 그린 것은 그런 소박한 즐거움을 그녀가 함께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병과 장애로 그런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드의 작품들은 즐거움을 간절히 바랐던 그녀의 심정과 어린 시절 아주 잠깐 맛볼 수 있었던 경험에 대한 일생에 걸친 그리움에서 나왔다.
– 랜스 울러버, 《내 사랑 모드: 나의 계절은 겨울에도 꽃이 피어요》
모드는 그림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고, 소박한 즐거움을 느꼈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불타오르는 예술혼은 그녀와 거리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일생에 걸친 그리움’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이모의 집에서 생활하던 모드에게는 독립과 소속감이 절실히 필요했다. 평생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왔기 때문에 점점 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모드는 서른네 살이 되던 1938년, 마셜타운의 생선 장수이면서 고독하고 괴팍한 외톨이인 에버릿 루이스와 결혼했다. 에버릿이 낸 가정부 구인 광고를 보고 무작정 그 집을 향해 걸었고, 머지않아 부부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모드는 가로 3미터, 세로 3.7미터짜리 작고 낡은 오두막에서 여생을 보낸다. 이미 너무 낡은 채로, 전기와 수도 시설도 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장점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집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두막을 아꼈고, 오두막은 두 사람을 품었다. 사연 있는 외톨이 셋이 모여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 것 같았다.
모드의 류머티즘이 점점 심해지면서 집안일은 에버릿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드의 그림에서 나오는 수익이 에버릿의 것을 웃돌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부터 에버릿은 모드가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두 사람은 평생을 그 세계에서 부부로, 동반자로 살아갔다. 에버릿의 외로운 오두막에 모드가, 모드의 빈 캔버스에 에버릿이 찾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 인생의 모양은 완전히 달라졌을지 모른다.
1 모드와 에버릿Maud and Ev, 연도 미상, 보드에 유화물감, 22.8×30.5cm, 울러버 가족 컬렉션
2 세 마리의 검은 고양이들3 Black Cats, 1966년경, 파티클보드에 유화물감, 30×35.4cm, 로버트&베티 플린 컬렉션
모드는 창문 옆 빛이 잘 들어오는 자리를 작업실로 삼았다. 여행은커녕 외출도 거의 없었기에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창 너머의 풍경뿐이었다. 32년 동안이었으니 128번의 계절이 그 창을 거쳐 간 것이다. 매일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는 건 쓸쓸한 일이었지만, 그 자리에서만큼은 살아있음을 느꼈기에 모드에게 오두막은 안락한 둥지이자 자랑스러운 표창 같은 곳이었다.
모드는 집 앞에서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를 이뤄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루이스 부인이고, 남편과 함께 자신들만의 집에서 사는 결혼한 여자라는 사실, 안정적이고 존중을 받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나는 여기가 좋아요. 어차피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니까요. 내 앞에 붓만 하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 랜스 울러버, 《내 사랑 모드: 나의 계절은 겨울에도 꽃이 피어요》
그녀는 그 집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채워갔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집 안 곳곳을 자신의 뜻대로 물들이면서, 그림을 그리고 팔면서, 또 수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으면서 말이다. 묻고 싶다. 언젠가 집을 떠나 휴가를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그녀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곳이요. 그곳들은 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그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나무와 새와 동물들과 에버릿이 늘 함께해줄 거니까요.”
내 사랑
에이슬링 월쉬 | 드라마, 로맨스 아일랜드, 캐나다 | 115분
영화 <내 사랑>은 모드와 에버릿의 관계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들의 첫 만남부터 결혼하기까지의 과정, 결혼 후의 갈등과 화해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두 외톨이가 괴팍하고 끈질긴 방식으로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애잔한 마음이 든다. 모드의 오두막이 주는 아늑함과 쓸쓸함은 영상으로 볼 때 훨씬 와 닿는다. 주연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의 열연도 직접 느끼기를 추천한다.
내 사랑 모드: 나의 계절은 겨울에도 꽃이 피어요
글 랜스 울러버 | 사진 밥 브룩스 | 그림 모드 루이스 | 옮김 박상현 | 남해의봄날
모드 루이스의 전기를 담은 최초의 책이다.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모드의 집에 자주 드나들던 저자의 이야기에는 다정한 시선이 묻어 나온다. 모드의 인생과 작품 70여 점이 적절히 섞여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행복에 관해서만큼은 모드가 얼마나 주체적인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녀의 인터뷰와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모드의 계절: 붓 하나만 있으면 행복해요》에서도 모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에디터 이다은
사진 밥 브룩스, 자료 협조 남해의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