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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아닌 작품을 찾는 행위
컬렉터 샤를 자나
예술과 건축 사이를 넘나드는 스타일과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결합으로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 샤를 자나는 멤피스 그룹Memphis Group의 창시자인 이탈리안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모던 클래식’으로 정의되는 그의 건축 작업들을 봐 왔을 때 미니멀리스트가 장식적 요소가 강한 멤피스 디자인에 열광하는 것이 의아하면서 그의 감춰진 취향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봄 햇살이 따뜻한 아침, 파리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és에 위치한 샤를 자나 갤러리 겸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다.
유럽 디자인계에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한국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려요.
파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건축 디자이너로 소개할게요. 파리에 회사를 설립한 게 1990년이니까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건축을 공부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버지가 아트 컬렉터였거든요. 그 덕에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는데, 80년대에는 이 분야에 대한 직업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가장 점수가 높았던 과목이 수학이라 당시 짧은 생각으로 미술과 수학을 접목할 수 있는 건축가란 직업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았죠. 그렇게 파리 보자르Beaux-Arts De Paris에 들어갔어요. 건축학을 전공하고 학교졸업 후 동기들 세 명과 함께 일거리를 찾으러 뉴욕에 갔는데 건축 프로젝트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당시 미국에서는 건축과 인테리어가 접목된 시스템으로 회사가 굴러갔으니까요. 프랑스에서 건축가는 그저 건물 외관만 담당하고, 장식가Decorator라는 직업이 말 그대로 내부 장식을 맡아 했었거든요.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된 직업군으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이게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 미국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포지션을 바꿨고, 그렇게 뉴욕의 큰 맨션하우스와 매디슨 애비뉴의 루이비통 매장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죠.
그렇게 시작되어 무려 35년이나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실내 디자인으로 관심이 넓어진 건 매우 즐거운 발견이었어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 덕분에 집 안에서 많은 디자인 제품들을 보면서 자랐는데, 뒤늦게 발견한 ‘실내 건축가’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제가 원하던 아트와 디자인 그리고 건축까지 접목할 수 있는 환상적인 직업이었던 거죠.
실내 건축가가 최근에 생긴 직업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네요.
80년대 건축가 친구들은 그저 테크닉과 콘크리트 같은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장식가 친구들은 커튼이나 쿠션에 대해서만 얘기했죠. 지금은 건축가들이 경계 없이 활동하고 있어 새롭지 않아 보이지만 제가 뉴욕에 있었던 35년 전, 아니 정확히 36년 전이네요, 그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분야였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직업을 고수하고 있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 직업의 장점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즐거움이 점점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데, 확실히 지금 일하는 게 30대일 때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안목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즐겁고 멈출 수 없게 되죠. 주변에 유명한 건축가들사진을 보세요. 모두들 늙었잖아요(웃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안도 다다오あんどうただお까지. 그들의 얼굴을 지금 떠올려 보세요.
건축 일 외에도 종종 갤러리에서 전시를 기획한다고 알고 있어요.
6년 전부터 2년에 한 번씩 전시 큐레이팅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취미 삼아 하는 일인데, 갤러리나 옥션 하우스 또는 뮤지엄에서 열리죠. 지난번 전시는 마레 지구의 갤러리 토르나부오니Tornabuoni에서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열렸어요. 1950년에서 1970년대 사이 가장 유명한 열다섯 명의 이탈리아 예술가와 건축가의 40여 가지 디자인과 가구들을 선보이는 전시였어요.
특별히 이탈리아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수집하기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보자르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아버지가 30년대 제품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저도 장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와 아돌프 샤노Adolphe Chanaux에 관심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클래식하고 장식이 많이 없는 디자인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30년대 프랑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음악과 문학 등 그에 관련된 책도 많이 모았어요. 사실 누구보다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신할 수 있죠. 그러다가 25년 전쯤부터 매년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참석하는데, 거기서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를 만나고 그의 작품들을 통해 7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에 새로운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브란치로 시작해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로 이어지면서 70년대 이탈리안 디자인을 공부하고 수집하기 시작했죠.
그렇다면 수집가로서 이탈리아 디자인의 중요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70년대 이탈리아의 급진적 디자인 운동은 디자인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에요. 문학은 물론이고 70년대 영화와도 모두 연계되어 있죠. 이 점을 깨달으면서 제품들이 단순한 디자인 오브제를 넘어 일종의 성명서처럼 느껴졌어요. 오늘날 많은 갤러리들과 디자이너들이 몰두하고 있는 소유를 위한 디자인이나 작품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같은 고민을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게 흥미롭죠. 소트사스가 한 말 중에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내가 만든 화병에는 늘 구멍이 있다. 하지만 난 당신이 여기에 꽃을 꽂는 걸 원치 않는다.”라는 말이에요. 이런 역설적인 철학이 이탈리아 디자인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아요. 외관상 보이는 특별함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철학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해요.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디자이너는 에토레 소트사스인가요?
안드레아 브란치도 정말 좋아하고, 요즘은 엔초 마리Enzo Mari 디자인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70년대 디자인 운동을 이끈 열다섯 명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을 다 좋아하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한두 사람으로는 디자인 사조가 생기지 않아요. 훌륭한 여러 디자이너가 한 지역에 뭉쳐야 가능한 일이거든요. 에토레 소트사스는 당시 천재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지만 예술과 건축 사이를 자유롭게 줄타기 할 줄 아는 가장 흥미로운 디자이너예요.
컬렉션에 대해 질문해 볼게요. 처음으로 디자인 제품을 컬렉팅 하기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스무 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이탈리아 디자인은 90년대부터 모으기 시작했는데 소트사스의 작업들은 주로 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 위주로 모았어요.
주로 어떤 방법으로 구입하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처음에 소트사스 제품들을 찾아다닐 때는 컬렉터가 많지 않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작품 가격은 높지 않았던 반면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웠죠. 지금은 컬렉터가 많아지면서 소트사스 작품은 취급하는 옥션도 덩달아 많이 생겼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갔어요. 그래서 흥미를 조금 잃었지요. 그런데 그거 아나요? 컬렉터들은 사냥꾼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걸. 먹잇감을 노리듯 타깃이 된 작품을 추적하고 관련된 갤러리를 컨택하고 미리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해요. 옥션 일정도 틈틈이 확인해서 정말 원하는 피스가 아주 높은 가격이 아니라면 도전하죠. 하지만 현재 소트사스 피스들은 가격이 너무 올라서 구입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가지고 있는 소트사스 작품의 개수를 기억하세요?
아뇨. 한 번도 세어보지 않았어요. 숫자는 정말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다 팔아버리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 딱 열 개만 추려서 가지고 있는 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해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동경하기 시작한 걸까요?
음… 그렇다기보다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 아버지 생각이 자주 나요. 컬렉터였던 아버지가 평생 소중히 모은 작품들이 밖에 나와 빛을 보지 못하고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창고 안에 보관만 되어 있었거든요. 그 생각을 하면 좋아하는 몇가지만 소유하고 매일 보는 방법도 또 다른 컬렉팅과 소유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컬렉터로서 구입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언제였는지도요.
(크게 웃으며) 어제요! SNS에서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플레이트를 샀어요.
SNS에서 구입했다고요?
SNS에서 누군가가 브루노 무나리 플레이트를 포스팅했고, 맘에 들어 메시지를 보내 구매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제 그 물건을 받았죠. 무나리의 심플한 디자인 원칙을 정말 좋아해요. 요즘 디자이너들은 바로크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더 크고 무겁고 복잡하고 비싼 것들을 만들려고 하는데, 무나리의 심플한 디자인 원칙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신선한 자극이 될 거예요.
직접 받아보니 화면으로 본 것처럼 마음에 드나요?
알루미늄이 너무 낡은 것 같아 열심히 닦아서 새것처럼 만들었는데 후회하고 있어요. 사용감이 있고 오래된 느낌이 좋았는데 말이죠. 어쩔 수 없죠. 앞으로 30년 정도 사용하다 보면 다시 그렇게 바뀔 거예요(웃음).
어려운 질문일 것 같은데 수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뽑자면 무엇일까요?
소트사스의 ‘토템 시리즈’ 세 가지요.
전에 신문에서 당신 키만 한 토템에 입을 맞추는 사진을 본적이 있어요.
촬영 중 토템 조각상에 키스하는 장면을 사진가가 잘 포착했어요. 아주 오래전에 구입했고 작품명이 이탈리아어인데 번역하면 ‘피임약 보관을 위한 대형 최음제 용기’라는 에로틱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소트사스가 왜 토템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요? 그가 미국에 있었을 때 많이 아팠고 의사가 알약을 아주 많이 처방해 주었다고 해요. 밤에 잠을 못 자고 그 알약을 한 줄로 나열하면서 생겨난 아이디어가 토템이에요. 그렇게 스물한 개의 토템을 만들어 이탈리아 토리노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죠.
컬렉터로서의 소비 외에 특별히 좋아해서 자주 구입하는 물건들이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옷이나 신발 또는 액세서리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아, 신발은 25년째 한 가지 브랜드만 신고 있어요. 뉴발란스 운동화요.
파리 사람들은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본인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평생 유지하는 것 같아요.
영국인들이 특히 더 그렇죠.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같은 테일러숍에서 옷 맞추는 걸 보면 유행보다는 전통을 더 중요시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프랑스에선 그런 전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요.
파리에서 자주 가는 숍을 알려주세요.
파리에서 괜찮은 남성용 편집숍 찾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 있나요? 대신 런던에 갈 때마다 말리본Marylebone에 위치한 트렁크 클로디어스라는 숍에 가죠. 일본 브랜드 45rpm을 좋아하고…. 아, 티셔츠도 늘 한 가지만 입어요. 제임스 펄스JAMES PERSE요.
요즘 모두가 하는 질문인데, 여름은 어디에서 보낼 예정인가요?
물론 이탈리아죠. 에올리안Aeolian이라고 시칠리아 지역의 화산무리 섬으로 갈 거예요. 가는 길이 녹록치 않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못 찾아오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사람들이 덜 움직이고 차분히 바뀌어 있을 거라고 했는데, 난 오히려 반대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올여름 유럽 사람들은 최대한 이동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고, 모든 휴양지는 바글거리겠죠. 에올리안섬은 찾아오는 길이 쉽지않고, 모래사장이 아닌 돌섬이라 조금 안심이 되긴 해요. 모두 안전한 여름을 보내길 바라요.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