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ation Becomes Clothes

상상이 옷이 되는 순간
제로 투 파이브, 디스코 키즈 우해미 대표

말보다 그림이 편할 때가 있다.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을 적절한 이미지로 나타내면 여러 설명을 곁들일 필요가 없으니까. ‘제로 투 파이브’의 옷을 볼 때도 그랬다. 쨍쨍한 햇볕 아래 움직이는 밝고 건강한 몸놀림이 연상되었다. 우해미 대표는 어린이가 입은 ‘옷의 이미지’를 상상하길 좋아한다. 순간적인 감정이든 오랜 경험으로 요약된 기억이든 그 상상의 형체를 가다듬어 감촉의 옷으로 만든다.

‘어린이’라는

존재가 입는 옷

반가워요.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컬러가 내뿜는 유쾌함이 전해져요. 특히 싱크대 컬러가 정말 과감해요.

어릴 적부터 뉴트럴 색상보다 원색을 좋아했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MTV를 많이 봤고요. 해외 뮤직비디오의 팝한 색상과 화면을 좋아했죠. 결혼하기 전에는 제 방 벽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내 영역 안에서 취향을 드러내다가, 신혼집을 인테리어 하면서 카페처럼 만들어봤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게 된 건 집은 집다워야 한다는 거예요. 모든 가족 구성원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로 꾸려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을 인테리어 하면서 제 취향대로만 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싱크대 컬러만 욕심 내고 나머지는 깔끔하게 두기로 했죠. 소품으로 포인트를 줘서 언제든 색을 덜어낼 수 있는 집을 만들려고 했어요. 제가 원래 노란색을 좋아했는데, 이사할 즈음 초록이 끌려서 싱크대 색으로 정했어요.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했지만, 살면서 더 좋아졌어요. 무광이라서 조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것도 매력 있고요.

 

컬러 다음으로 마당에 시선이 갔어요. 거실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쉼이 될 거 같아요.

맞아요. 제가 좀 게을러 아파트가 제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는데, 아이가 커가면서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1층 집을 알아보다 우연히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되었어요. 주택을 원했던 건 아닌데 운 좋게 주택과 아파트의 절충점인 뜰이 딸린 아파트 1층을 구하게 되었죠. 원래 싱크대가 일자 구조였는데, 마당과 마주보는 구조로 놓으면 저나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하더라도 마당이나 거실에서 노는 아이를 마주보는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제가 아파트 키드라서 자연을 예민하게 감각하며 살지 못했는데, 계절마다 달라지는 뷰가 새롭고 좋아요. 작년 한 해 마당으로 정말 큰 수혜를 입었어요. 워터파크도 못 가는 아이에게 풀장을 만들어 줬거든요. 다른 동에서 저희 마당이 안 보이는 구조도 만족스러워요. 여러번 이사를 하다 보면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깨닫게 되더라고요. 조망권이 중요해서, 앞에 간판이 생기거나 건물이 들어올까 봐 걱정이에요. 다음에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 공원 앞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공간에 놓인 작은 소품부터 가구, 키즈 제품, 아이들 교구도 감각적이에요. 아이 물건이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으면서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요. 가족의 물건을 고를 때 무엇을 고민하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물욕이 많고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길을 걸어 다녀도 소품샵이 있으면 눈이 저절로 가고 평소에도 늘 뭔가를 검색하고 있어요. 많이 사면서 어떤 것을 사야 하는지를 많이 익혔어요. 가게에선 너무 예쁜데 우리 집에 왔을 때 어울리지 않아서 결국 손이 안 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다시 팔거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제는 정말 우리 집에 어울리는지, 내가 잘 사용할지 먼저 고민해요. 가구는 특히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요. 저희 가족은 입식을 불편해해요. 긴장하고 지내는 편이 아니라 늘 드러누워야 해요. 그래서 테이블도 낮은 걸 샀어요. 주방의 WYU 컵은 친구가 준 건데, 아이가 너무 좋아하고 잘 사용해서 같은 작가의 다른 모양도 샀어요. 잘 사용하는 것 위주로 늘려가려고 해요. 충동적인 성향이라 꼭 필요한 것을 사려고 많이 노력 중이에요.

 

하는 일이 정말 많아 보여요. 포스트 서울 매거진, 제로 투 파이브, 디스코 키즈를 운영하시는 거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해 주세요.

‘제로 투 파이브’라는 아동복 브랜드를 꾸려가고 있고요. 작년에 친구와 프로젝트 형식으로 ‘디스코 키즈’라는 이름의 아동 제품을 만들었는데, 올해부터는 제가 혼자 진행할 예정이에요. 제로 투 파이브는 키즈에 가깝고 디스코 키즈는 주니어라인이 될 거예요. 또 포스트 서울 매거진에서 자체 출판하는 두 번째 실용서 라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빈티지 가구 입문서가 될 거예요.

 

제로 투 파이브와 디스코 키즈는 아이를 낳고 만든 브랜드로 알아요. 전에는 어떤 일을 했어요?

미술이론과를 졸업한 뒤 갤러리 잡지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잡지사에 발을 들여 7년 정도 기자로 일을 했어요. 기자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오래 하고 싶었지만, 하는 일은 너무 많은데 연봉은 오르지 않고, 내 노동의 가치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자괴감이 들곤 했어요. 그즈음 결혼을 했는데 제가 계속 야근하니까 남편이 “언제 와?” 하는 게 미안했어요. ‘맞아, 나도 남편이랑 있는 거 재미있는데?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내 일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퇴사를 했어요.

그런데, 왜 옷이었어요?

제가 하는 일이 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성으로 만져지냐 안 만져지냐의 차이인 거죠. 키즈 매거진에서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아이들만이 소화하는 비율이나 느낌을 좋아했거든요. 그 욕구를 풀고 싶어서 잡지사를 그만두고 아는 포토그래퍼와 함께 키즈 스튜디오를 꾸린 적이 있어요. 제가 스타일링을 하면 포토그래퍼는 화보처럼 감각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거였어요. 그동안 눈여겨보던 옷, 브랜드를 많이 풀어보고 배웠어요. 그런데 6개월 정도 일을 하면서 느낀 게 키즈 스튜디오는 서비스지 결과물이 아니더라고요. 엄마들과 얼마나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지가 중요한 일이었어요.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서 키즈라는 영역을 건드리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죠. 그 일을 덮어두고 몇 년을 지내다 저한테도 아이가 생겼어요. 옷을 만들고 싶은 것보다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아이 옷이라는게 봤을 때와 입었을 때, 활동할 때 전혀 다른 개념인 게 재미있었어요. 코디, 센스에 따라 2차 가공이 되는 그 지점이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움직임에 따라 다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또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태도도 달라지는 마법과도 같다고나 할까요(웃음). 

옷 다루는 일을 해보니 일하는 과정, 회전이 정말 빨라요. 시즌마다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고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는 게 매력적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들을 선택해서 이미지를 만들다가 “어, 이런 옷은 없네?” 하면서 제작하게 되었어요. 직접 만들어 보니 예상보다 더 재미있더라고요. 목표가 있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해가 지나면서 더 잘하고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종 “왜 어른 옷 안 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데요, 옷이라고 다 같은 옷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른 옷과 아이 옷은 카테고리가 다른 영역이에요. 보보쇼즈가 굉장히 예쁜데 개인적으로 성인 라인은 좋아하지 않아요. 성인과 키즈의 카테고리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이 옷을 입은 모습’을 좋아하는 거예요. ‘옷이 좋아’라는 개념과는 조금 달라요.

 

집의 공간처럼 만드는 옷에서도 원색이 주는 밝은 에너지가 느껴져요. 제로 투 파이브는 어떤 브랜드예요?

‘0에서 5세까지’라는 뜻으로 컬러플레이 브랜드예요. 아이들이 쨍한 색이 정말 잘 어울려요. 아이들은 과한 패턴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 나이 때 흡수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디스코 키즈는요?

정말 신기하게 아이들이 여섯 살쯤 되면 조금씩 원색이 안 받기 시작해요. 디스코 키즈는 제로 투 파이브가 가진 색을 잃지 않으면서 주니어 라인으로 확장해 가려고 해요. 제로 투 파이브가 레트로하고 80년대 구소련 느낌이라면, 디스코 키즈는 캘리포니아 스타일이겠죠? 제로 투 파이브에서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풀면서 디스코 키즈를 만들어 가려고요. 여름이나 가을 시즌부터 선보이게 될 거 같아요.

 

영감을 받는 인물이나 브랜드나 사이트가 있어요?

몇 년 전부터 구소련 시대의 물건이나 포스터 패키지에서 볼 수 있는 그래픽, 건축에 흥미를 느꼈어요. 풍족한 시기에 나올 수 있는 대량 생산의 맥이 있더라고요. 그 중 Phaidon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 《Designed in the USSR: 1950-1989》은 시간 날 때마다 펼쳐보곤 해요. 볼 때마다 새로운 형태, 색감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사회주의 건축 양식의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socialistmodernism도 꼭 챙겨보는 계정 중 하나예요. 자본주의 논리와 효율을 따른 건축과 달리 사회주의 이념과 도시계획을 담은 소련, 동유럽의 건축으로 꽉 찬 피드를 내리다 보면 굉장히 생경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눈을 뗄 수 없어요. 이 외에는 앙리 마티스나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예술가의 작품 자주 봐요. 색 사용이나 드로잉에서 나오는 질감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요. ‘이번 시즌에는 해변에서 이런 색감과 형태를 연출하면 좋을 거 같아.’ 하고 연상이 되더라고요.

지형이가 자라면서 제로 투 파이브 옷도 6세 이상의 사이즈가 생긴 것 같아요.

지금은 감사하게도 제가 만든 옷을 입어주지만 안 입어주는 날이 오겠죠. 그래도 계속 어린이 옷을 만들고 싶어서 시스템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근처에 작은 창고 겸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3월부터는 거기서 일하고 있어요.

 

그럼, 품목도 늘어나나요?

아니요. 과도한 생산을 지양해요. 필요 이상의 생산은 지나친 홍보로 이어지고 처음 의도가 퇴색되는 이유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상시 판매와 프리오더, 두 가지 형태로 생산을 조율하고 있는데 사이즈가 다양한 키즈 웨어의 특성상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고, 과잉 생산으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나름의 판매 방식을 세우고 있어요. 브랜드가 더 알려지고,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편 같아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 고민을 잘 안 해요. ‘해보고 아님 말지.’하면서 뭐든지 일단 질러보는 편이에요. 친구들은 시작하기 전에 좀더 생각을 해보라고 해요. ‘이거 해보고 싶어.’ 하면 다음 날 막 시작하고 있으니까요(웃음). 제가 외동딸인데 부모님이 방목형으로 키운 영향도 큰 거 같아요.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셨기에 물어볼 사람이 없는 거예요. 워낙 터치를 안 하셨고, 부모님에게 의논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논의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제 머리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게 익숙한가 봐요. 내가 판단하고 진행하는 게 너무 당연한 거죠. 저는 시작하는 것보다 지속하는 데 더 노력을 해야 하는 편이에요.

 

작은 브랜드라도 운영하려면 할 일이 정말 많잖아요. 디자인, 제작, 촬영, 홈페이지 관리, 배송, SNS 홍보 등. 모두 어떻게 해나가고 있어요?

모두 혼자 하는 건 아니에요. 로고 작업은 결이 잘 맞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작업하고 촬영도 포토그래퍼와 진행해요.옷을 디자인하고 제작 의뢰를 하고, 홈페이지 관리, SNS 계정 운영, 배송은 혼자 하고요. 처음에는 공장 사장님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일반적인 지시서와 너무 다르다고 알아볼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곳은 어떻게 하는데요? 폼을 주세요.” 하면서 합을 맞춰갔어요. 가장 힘든 건, 입혀봤는데 생각한 핏이 아닐 때, “여기가 이렇게 들어가는 게, 생각과 달라요. 조금만 줄이면 좋을 거 같아요.”라고 설득해야 하는 거예요. ‘아이 옷은 다 그게 그거다. 집착하지 말아라.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미묘한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나와서 속상한 적도 있었지만 계속 같은 패턴사님과 했더니 이젠 너무 잘 알아주셔서 합이 잘 맞아요. 저는 혼자 일을 하니 퀵서비스를 일상화해요. 항상 부가가치세 신고를 할 때 퀵서비스 사용 금액을 보고 놀라요. 저한테는 시간이 돈이에요. 스케줄이 안 될 거 같으면 퀵 일정을 잡아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동선을 짜요. 제가 다갈 수 없으니까요. 옷을 만드는 일도 잡지사에서 하던 일과 맥락이 같아요. “이런 의도로 해야지.” 하는 걸 커뮤니케이션하고 핸들링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일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한테 잘 맞는 일이고요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쉬운 일은 없지만 공정 중 원단이 가장 까다롭고 배울 게 많은 영역이에요. 얼마 전 일러스트레이터 박영준 님과 협업으로 원단 생산을 처음 진행해 보았는데 수축률, 후가공으로 인한 염색의 변화 등 예기치 못한 변수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결국 완성되어 출고되는 옷은 제 개인 작업이 아닌 누군가 비용을 지불하고 판매하는 물건이기에 공정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체크하게 되어요.

 

혼자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버거울 만도 한데, 계속하게 하는 힘이 궁금해요.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지?’ 생각해 보면 가족에게 받는 안정감과 행복이 가장 커요. 재미와 성취도 필요하지만 지속가능하게 일을 해서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능력을 성과나 매출로 인정받으면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예술을 하고 싶어 죽겠어.”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피드백을 받아야 정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여기서 뭐 하는 짓이지?’ 하는 게 당연해지는 거죠. 가족과 꿈꾸는 미래가 있으니 더 정진하게 돼요.

 

이제는 옷과 환경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아동복의 특성이 주기가 짧은 편인데,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아동복은 길게 입어 봤자 성장 속도가 있어서 1년이더라고요. 그래서 사이즈 업을 해도 예쁘고, 정사이즈도 예쁜 패턴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작년에 다람쥐 핏의 배기 바지같은 원피스를 만들었어요. 사이즈 업을 하면 배기슈트가 되고, 정사이즈로 입히면 배기팬츠가 되고, 짧게 입으면 칠부바지가 되는 거예요. 그럼 3년을 입을 수 있잖아요. 취향에 맞게 사이즈를 선택해도 되지만 아이들이 작게 입어도 얻어 입은 거 같지 않고 원래 이런 의도로 만든 옷으로 보이길 바라죠. 오버올도 단추를 옮겨 가며 입을 수 있고 조금 짧아도 레트로 느낌이 나도록요. 철 지난 옷이 아니라 이렇게 귀엽게 입는 옷인가 봐 하고 봐주면 좋겠어요. 아이템을 많이 늘리지 않고 3년을 입을 수 있게 봉제를 튼튼하게 하는 것, 과도하게 만들고 홍보해서 팔지 않는 것으로 저 나름대로 환경을 생각하려고 해요.

 

옷을 입는 사람으로서 버리지 않고 오래 입으려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상태만 좋다면 물려주는 방법이 제일 좋죠. 입던 옷을 다시 판매하는 것보다 좋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입으면 좋잖아요. 저는 옷의 품목을 줄이고 좋은 옷 몇벌로 관리에 신경을 써서 입고 있어요. 옷에 뭔가가 묻었을 때 바로 빨아야 새 옷처럼 오래 입을 수 있어요. 얼룩이 덜 제거되면 이제 그 옷은 막 입어도 되는 옷이 되는 거예요. 관리에 따라 옷에 느끼는 애정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건조기도 웬만하면 돌리지 않아요. 

지형이가 좋아하는 옷

“스파이더맨 옷을 입으면 평범했던 피터 파크가 수트를 입고 초능력을 가지는 순간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형이가 행복해하는 일

“음악 듣고 춤추기, 텔레비전 보기, 아빠랑 게임 하기가 좋아요.”

styling tips

컬러 플레이 | 큰 패턴이 그려진 옷을 시도하기 부담스럽다면 컬러가 강렬한 옷과 비슷한 색상, 혹은 보색을 조합해 보세요. 재미있는 코디가 완성돼요.

소품 더하기 | 뉴트럴 컬러를 선호하거나 과감한 색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면 옷에 힘을 빼고 색이나 디테일이 있는 소품으로 포인트를 더해주세요.

패턴을 즐겨요 | 너무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패턴이라면 다양한 옷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유쾌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요.

내가 만든 틀에서

빠져나오는 일

밝고 호탕한 성격 같아요. 가정을 이루면서 개인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나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어요?

많이들 그렇게 오해하세요. 밖으로 보이는 면과 실제 성향이 조금 다른가 봐요. 가끔 마케터를 하면 잘할 거 같다고 하셔서 속으로 ‘제 진짜 성격 아시면 놀라실걸요?’ 생각하곤 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져진 거지 저는 말수가 적은 편이에요. 친한 친구를 만나도 주로 듣는 쪽이죠. 원래도 폐쇄적인 면이 있는데 아이를 낳고 사회적인 관계가 조금 더 좁아진 거 같아요. 친한 친구를 보거나 일하는 거 말고는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요. 제 에너지를 다 쏟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굳이 안 넓혀요. 라이프스타일은 원래 ‘내일은 없다’ 스타일이었어요(웃음). 결혼 전에는 돈보다 일에서 얻는 재미를 먼저 생각했다면 가족이 생기면서 건강도 생각하고 저축도 하게 되었어요.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많이 바뀌었어요.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 맞춰가는 과정은 어땠어요?

제 이상형은 정말 명확했어요. ‘A형에 공대생(웃음).’ 저는 B형이라 늘 감성적이고 넘실넘실하는데 그걸 잡아주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사람이 A형이라 생각했어요. 이상형을 만나려고 결혼 전에 소개팅을 30번이나 했어요. 그렇게 이상형을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신혼 때는 불화가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까 서로 할 일이 있고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게 생기면서 부딪히게 됐죠. 제가 생각하는 이상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건 제 욕심이잖아요. 제가 만들어 놓은 배우자의 틀이 있다는게 상대를 인정해 줄 마음이 없다는 의미라는 걸 차차 터득했어요. ‘서로 좋아하는 걸 해주기보다는 싫어하는 걸 강요하지 말자. 저건 건드리지 말자.’ 했더니 평화가 유지되더라고요. 

지형이랑 맞추는 과정도 제 욕심을 줄이는 거였어요.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아이한테 화가 나는 거잖아요. ‘지형이는 지형이고, 나는 나야.’ 계속 되뇌어요. 지형이는 조심성이 있는 성격이에요. 섬세한 편이라 화장실에 가서 양치를 하면 제 칫솔에 치약을 짜놓고 나와요. 일반 남자애들에겐 예민하다, 기민하다고 보이는 거 같아요. 감정적으로 예민해서 친구들끼리 놀다가도 이 친구가 어떤 의도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정말 잘 파악한대요. 양보도 잘하고. 그러니 본인이 힘들겠죠? 말로 표현 못하면 화가 나니까 울곤 해요. 그래서 제가 화를 못내요. 제 감정도 너무 잘 파악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좋지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아이한테서 내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게 거울처럼 보일 때 너무 불편해요.

한 아이를 길러내는 건 정말 쉽지 않지요. 의문스럽고 불편한 감정이 들 때는 어떻게 해요?

책이나 강연을 많이 참조했다가 ‘이 사람이 말하는 건 나와 내 아이에게 맞지 않을 수 있어.’ 하면서 골라내는 과정을 겪었어요. 저와 아이를 제대로 아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재작년부터 작년 여름까지 1년 정도 심리 상담을 받으러 다녔어요. 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나는 문제가 없는데 왜 실마리가 안 풀리지?’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관대하지 않고 독단적인 편이야.” “내가? 나는 누구보다도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저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남편과 아이도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나는 문제가 없다는 것부터 잘못 생각한 거죠. 심리 상담을 하며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제가 답을 하면서 스스로 깨달은 점이 많아요. ‘아, 내가 내 구미에 맞고 좋아하는 사람과 지내서 몰랐구나. 내가 남편에게 했던 독단적인 행동을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으면서 어느 순간 화끈거리더라고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서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잘 못하는 것이 뭔지 알고 인정을 하니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졌어요. 내려놓을 것도 많이 내려놓고요.

 

어떤 욕심이었어요?

공부 욕심이 있었어요. 저는 아이에게 IT를 꼭 시키고 싶었어요. 공대에 보내고 싶다는 목표가 너무 확실했어요. 영어 유치원에도 보내고 몇 살에 대치동에 가야지 하는 로드맵이 머릿속에 있었어요. 남편한테 그랬듯이 제 안에 가두는 거잖아요. 남편의 교육관과 달라서 계속 충돌하다가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욕심을 내려놓았어요. 관계가 너무 틀어지더라고요. 먼저 아이를 키워온 친구들을 보니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사춘기 때 모든 문제가 다 드러나더라고요. 의사표현이 확실하지 않은 편인데 이 정도로 확실하다는 건 정말 싫다는 거구나. 아이의 속도에 맞추는 걸로 많이 내려놓았어요. 또 주변 아이를 보면 제 아이를 객관화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한글 공부를 해봤는데, 이 아이는 영어 유치원 가면 가만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오겠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한글만 조금씩 챙겨서 하는 걸로, 책만 읽어주자고 마음먹었어요. 초등학교 가서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어요.

아이의 속도에 맞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도 있을 거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좀 웃긴 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미래는 이런 세상이 될 거니까 우리가 이런 걸 제시해 줘야 해.’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뭐라고 아이한테 그걸 제시하지? 나중에 아이가 우리에게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부부가 교육관이 다르지만 잘 맞는 부분은 아이에게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거예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많이 하게 하는 거요. 사소하게는 아이가 친구와 싸웠을 때 스스로 해결하게 하려고 해요. 부모가 해결해 주기 시작하면 해결할 기회가 없잖아요. 조금 민망하더라도 상대 엄마에게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폭력이 오가거나 해결이 안 되면 그때 관여하자고 얘기해요. 그게 제가 못 받은 부분이거든요. 싸움이 될 만하면 어른들이 막아버려서 나중에 친구와 트러블이 생기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걸 배우면 사회생활도 잘 해결해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자생력을 기를 수 있게 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어요?

경제관념을 깨우쳐 주려고 해요. 지형이에게 용돈을 줘요. 숫자를 모르니까 물건이랑 대칭을 해줘요. “이 돈은 이 물건과 같은 값이야. 0이 몇 개가 붙었지? 이걸 지금 다 써버리지 않고 나중에 더 모아서 다른 걸 살 수도 있어. 결정은 네가 해.”라고 알려줘요. 지형이가 제로 투 파이브의 모델이 되어주잖아요.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끝나면 저는 거기에 합당한 비용을 줘요. 조금씩 노동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어요. “엄마아빠도 일을 해. 그걸로 우리가 이렇게 밥을 먹는 거야.” 아이가 촬영을 즐거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나한테 일을 시킨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적절한 대가를 주면 더 즐겁게 해요. 그러다 “엄마 오늘 나 되게 잘한 거 같지 않아?” 해요. 잘한 걸 인정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 그래? 네가 생각했을 때 뭘 받으면 좋을 거 같아?” 물어요. “킨더 두 개 정도면 될 거 같아.” “오케이.” 협상이 되는 거죠. 

제가 경제관념이 없어서 성인이 되어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무분별하게 소비하거나 절제가 안 됐어요. 고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절제도 습관이에요. 더 하고 싶은 일의 절제는 두 살 때부터 타이머로 교육했어요.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시간을 짐작하게 하는 실체가 없는데, 구글 시계를 사용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시계를 못 봐도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눈으로 보니까 잘 이해해요. “게임 30분 할 수 있어.” 하면 스스로 30분을 맞춰요. 시간이 되면 꼭 한 번은 울지요. 그러면 “5분 더 줄 수 있어. 그 이상은 안 돼.”라고 말하죠. 시각적으로 보이고, 거짓말 안 하고 약속하는 거니까 아이도 합당한 거겠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잖아요. 부부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요?

평일에는 아이 유치원 가는 시간에 일을 하고, 네 시 삼십 분부터 여덟 시까지는 아이에게 집중해요. 남편이 일곱 시쯤 퇴근하면 같이 저녁 먹고 씻기고 늦어도 아홉 시에는 재워요. 처음 유치원에 가면서 낮잠 시간이 없으니까 아이가 무척 피곤해하더라고요. 저녁밥을 하는데 쓰러져 자고 있는 거예요. ‘이때 잡아야 해.’ 하면서 다음 날도 여덟 시에 자려고 같이 누웠어요. 바로 자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었는데, 계속했더니 잠드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한 달 정도를 그렇게 했더니 수면 패턴이 잡혔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주말마다 주말 농장 가서 뛰어놀았어요. 작년엔 그렇게 못 하니까 보드게임을 많이 했고 마당에 나가 놀았어요. 보드게임을 하면 아이들 성향이 나와요. 졌는데 울거나 쪼그려 앉는지, 이겼을 때 남을 놀리지 않는지.

 

지형이는 아빠랑 게임 하는 시간을 좋아한다고요.

남편에게 고마운 게 아이가 좋아하는 관심사를 같이 좋아하는 거예요. 게임을 남편이 가르쳐줬어요. 게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남편이 지형이를 무릎에 앉히고 게임의 배경의 되는 도시를 설명하며 교류를 쌓더라고요. 그래서 아빠를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히어로도 세계관이 많잖아요. 둘이 제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해요. 제가 “한글 놀이 하자.” 그러면 “으응?” 하는데 아빠가 히어로 얘기를 하면 아이가 난리가 나요.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엔 아빠랑 게임 하는 시간을 가져요. 

 

바쁘게 일하고 아이를 돌보다 보면, 정작 나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영화 <소울>을 보고 나를 나로서 충만하게 만드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조금 철학적인 질문인데, 삶의 의미를 묻고 싶어요.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생각해 보면 조그맣지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게 되어요. 제가 개인적인 성향이라 앞장서서 사회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깜냥이 되진 않아요. 그건 본인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그릇 안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죠. 아이를 낳으니까 다른 아이들이 보이잖아요. 보육원에 뭔가를 하고 싶어서 알아봤더니, 보육원은 헌 옷을 받지 않는대요. 헌 옷을 보내주면 아이들이 2차 상처를 받는다고 해요. 우린 쉽게 생각하잖아요. “아이 입던 옷 보육원에 기부할까?” 저는 옷 만드는 사람이니까 새 옷을 선물로 줄 수 있겠더라고요. 새 옷이 주는 짜릿함과 설렘이 있어요. 계절이 바뀌었을 때 예쁘게 새 옷 입고 나가고 싶잖아요. 어떤 옷을 입는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요. 제가 남자아이옷을 주로 만들어서 찾아보니 남자아이들만 있는 기관이 있더라고요. 운동을 많이 하니까 여름에 운동용 반바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작은 실천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고 있고요. 

이어령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의 오만함으로 내가 잘나서 이 정도 키워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그게 다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대요. 저도 아주 오만했던 사람이었어요. 돌이켜 보니 선물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기본적으로는 내 가족 상처받지 않는 것이고, 그다음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꿈은 뭐예요?

제 꿈은 우주 여행이에요. 돈을 벌고 싶은 게 우주 여행 때문이에요. 꼭 한 번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고 싶어요. 저희 세대에서 우주여행이 대중적으로 상용화될 거라는 예측이 있더라고요. 치열하게 살다 힘들 때면 우주 여행에 관한 영화나 책을 봐요. 시각화된 장면을 보면 ‘아 맞아, 우리 우주 안에 살고 있지. 내가 지금 이렇게 아파하는 게 정말 작은 점 같은 거겠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그러워지면서 괜찮아지더라고요.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요. 우리가 사는 곳이 이렇게 광활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본다면 정말 기분이 이상할 거 같아요. 가족이랑 나중에 별 보러 다니고 싶어서 작년에 지형이와 천문대 돌아다니는 계획을 세웠는데 코로나19로 거의 못 했어요. 요즘 지형이는 ‘스페이스 랩’이라는 우주 학원을 다녀요. 저도 망원경으로 달과 별을 본 적이 없었는데 같이 배우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화성이 밝았을 때나 일식도 같이 가서 보고, ‘달 안에 이게 있다고?’ 하며 같이 공유하면서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0to5.co.kr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SOL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