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everybody had an ocean, then everybody’d be surfin’

양양으로 간다

서퍼들은 파도를 따라서 양양으로 간다. 파도가 썩 좋지 않은 날에도 양양에서의 시간은 풍만하다. 그곳에는 바다가 있고, 마을과 거리는 서핑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서핑

지난 주말에도 양양에 다녀왔다. 주말에는 파도 소식이 있으면 양양으로 간다. ‘윈드 파인더Wind Finder’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파도의 크기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서핑은 6년째 하고 있다. 부산의 로컬 서퍼인 허석환과 양양 기사문 해변을 찾았다가, 서퍼스라는 서핑숍에서 강습을 받았다. 처음에는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프보드 위에 올라서기는커녕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잘해보고 싶었다. 나 역시 조금은 유행을 좇아서 서핑에 빠져들었다. 〈독타운의 제왕들〉, 〈폭풍 속으로〉 같은 영화 속 서퍼들의 모습도 쿨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서핑은 한순간의 취미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는 생활 양식이다. 

서핑을 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정도 양양을 오간다. 일 년에 한 번쯤은 호주, 발리, 일본으로 서프 트립을 다녀온다. 양양 말고 부산이나 제주도로도 서핑을 하러 간다. 그러나 양양은 나처럼 서울에 사는 서퍼들이 찾아가기에 접근성이 가장 우수한 서핑 포인트다. 나는 대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5시쯤 양양으로 출발한다. 주말까지 교통 체증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천천히 운전해서 간다. 속도는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두 시간이면 목적지에 닿는다. 서울양양고속도로는 터널이 많아서 라디오는 수신이 불안정하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이동한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지난 주중에 생긴 일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굳이 빨리 갈 필요가 없다. 잠을 몇 시간 못 잔 상태지만 졸리지는 않다. 약간 들떠 있기 때문이다.

차 안에는 서핑 장비가 한가득 실려 있다. 웨트슈트에서 나는 고무 냄새, 서프보드에 발라놓은 왁스 향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진다. 아내와 반려견과 동행할 때도 많다. 아내는 서핑을 하지 않지만,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서핑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파도가 작아도 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 서프보드에 앉아서 양양의 바닷가 마을을 바라본다. 그러면 어느 가게가 새로 생겼는지, 사람들이 해변에서 뭘 하고 노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몇 해 전 겨울에는 기사문 해변에서 폭설을 만났다. 하늘도, 해변도, 바다도 하얗게 눈을 맞고 있었다. 파도는 거칠고 두꺼웠다. 그래도 서핑을 했다. 너울이 나를 무등 태우듯 높이 올려다 주었다. 마을 쪽을 바라보니, 한 가게의 지붕 너머로 눈을 맞고 있는 설악산이 보였다.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칠 때도 바다에 있었다. 날씨의 변덕이 심한 날에는 파도를 잘 타고 못 타고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연의 흐름 속에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같이 바다에 떠 있는 한 무리의 서퍼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음악 축제에서 떼창을 하는 무리 속에서, 집회에 나와 밤새 서 있는 수만 명의 무리 속에서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바다에서 아는 형, 동생을 만나면 크게 소리쳐서 부른다. 하나같이 얼굴이 까맣고, 머리카락이 길고, 작은 근육이 도드라진 사람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웃고, 다시 파도에 집중한다. 바다에서 울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이런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누구나 풍만하다.

서퍼의 가게

동해안을 따라서 양양에만 동호, 기사문, 동산, 죽도, 인구, 남애 등의 서핑 포인트가 있다. 이 중에서 서퍼들로 가장 붐비는 서핑 포인트는 죽도 해변이다. 불과 몇 년 전 죽도의 풍경과 지금은 무척 다르다. 내가 처음 이 마을을 찾아왔을 때만 해도 거리는 일 년 내내 조용했고, 서핑숍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요즘은 거리 어디에나 크고 작은 소요가 있다. 서핑숍은 수십 개도 넘는다. 주민들이 살던 민가는 매년 서핑숍, 게스트하우스, 카페, 식당으로 변했다. 이제는 죽도 어디를 가든 공사 중인 건물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이나 강릉 카페거리처럼 관광객이 찾아온다. 

서퍼의 가게에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일까?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세계 각국의 서핑 포인트에서 가지고 온 기념품이 가득하다. 탁자 한쪽의 향에서는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구와 소품들은 주인이 어떤 서퍼인지 말해준다. 어떤 스타일의 서프보드를 선호하는지, 외국 어느 지역으로 주로 서프 트립을 떠나는지 가게를 찬찬히 살펴보면 알게 된다. 때때로 이태원 술집처럼 취한 사람들로 가득 찬 가게 앞을 지나며 애틋하고 아까운 생각도 든다. 성수기 주말에는 친한 가게 주인들과 인사 한마디 나누기 힘들 만큼 번잡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서퍼의 가게가 있기 때문에 바다에서 나와 마을을 서성인다.

죽도 해변과 인구 해변 사이에 ‘레트로션’이라는 만화방 겸 레트로 게임방을 차린 이원택은 20대에 일본에서 프로 스노보더로 생활했다. 그는 스노보더이자 일본 문화의 열혈 팬이었다. 특히 만화, 게임, 영화 등을 좋아했다. 그 당시 이원택이 수집한 만화책과 레트로 게임기가 수백 권, 수십 개가 넘었다. 이것들로 지금의 레트로션을 만들었다. 이원택은 서핑을 하지 않는 서퍼의 가족을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레트로션처럼 양양의 가게에는 고유한 주인의 취향이 있다. 벽에 서프보드가 걸려 있어야 서퍼의 가게는 아니다. 송규호의 스톤피쉬, 장용진의 슈러스서프, 김봉철의 싱글핀 에일웍스, 박성진의 파머스키친은 서퍼의 가게다. 그들은 그림 같은 파도가 들어오는 날에는 문을 닫고 바다로 나가서 서핑을 한다. 그리고 오픈 시간이 한참 지난 저녁이 돼서야 가게에 불을 켜고 손님을 맞는다. 서핑은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도를 따라서 움직이는 삶을 선택했다. 

서퍼 손님들은 가게의 공기와 주인의 표정으로 서로가 연대하고 있음을 안다. 이곳에서는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거나, 누군가를 헐뜯거나, 시간이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다. 그 대신 서퍼들은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오늘과 내일의 파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다음 주에도 (파도 소식이 있다면) 양양에서 만나겠지. 그리고 한 동네에서 태어난 고향 친구들처럼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시간을 보내겠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파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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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