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even took pictures of them

그들의 카메라에 담긴 것

I even took
pictures of
them

그들의 카메라에 담긴 것

한 남자는 매일매일 자신의 작은 집에서 일어나는 별것 없는 일상을 담담히 찍는다. 또 다른 한 남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찍는다. 모리 유지의 《다카페 일기》, 그리고 스콧 슈만의 《사토리얼리스트》 얘기다.

우리 집은 골목길 한가운데 있다. 현관문과 창문은 모두 골목길 쪽으로 나 있다. 담은 1.5m가 채 안 되는 높이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집을 이렇게 지어놓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덕분에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우리 집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집 안에서 홀딱 벗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불쌍한 신세다. 문을 열다가, 또는 식탁에 앉아 있다가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이랑 눈이 마주쳐서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짓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나 역시 길을 가다가 문이 열려 있거나 창문이 열려 있는 집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삶을 몰래 엿보고 싶은 본능적인 충동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같은 이유로 나는 사진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 인테리어 책을 열심히 보거나 일상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책을 수집하는 이유도 남들 사는 걸 구경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살이 찔까 늘 전전긍긍하며 다이어트 중인 여자가 밤에 침대 곁에 몰래 숨겨둔 초콜릿을 와그작 먹어치우는 기분으로, 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너의 삶을 살라’는 이 시대의 명령을 뱃살처럼 껴안은 채 남이 사는 모습을 호기심과 부러움과 동경이 섞인 눈으로 탐식한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집을 인테리어 책에 나올 만큼 근사하게 꾸미고 유지할 수 있는 걸까? 식탁 위에 잡동사니나 우편물이 나뒹굴지 않게 하는 비결은 뭘까? 얼룩 없이 하얀 소파, 먼지 한 올 없는 선반의 비결은 또 뭐지? 아이들은 귀엽고 엄마는 행복하고 아빠는 듬직해 보이는 비결은? 그들의 인생이 내 인생보다 나아 보이는 비결은 대체 뭘까? 

그런데 사진은 때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 사진은 단지 순간을 포착할 뿐이다. 이전도 이후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9·11 테러 당시 불타는 뉴욕 무역센터 빌딩에서 떨어지는 한 남자의 유명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담담한 표정까지 생생한 그 사진 속에서 남자는 마치 어딘가를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몇 초 전과 몇 초 후를 찍은 사진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남자가 그 사진에서만큼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떨어지고 있었다. 죽음을 향해서 속수무책으로.

어쩌면 내가 즐겨보는 인테리어 책이나 사진책 속의 가족들은 그 촬영을 위해서 종일, 어쩌면 일주일 내내 허리가 휘도록 청소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청소 전문업체에 연락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집주인이 결벽증 환자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을 때만 행복한 척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집주인 부부가 서로 맞바람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미디어업계에 몸을 담게 되면 배우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보이는 것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람들만큼은 믿고 싶다. 바로 후쿠오카에 사는 모리네다. 집안은 개판이고 종일 애들은 빽빽 울어대고 그 틈에서 내 인생이 어쩌다 이런 지옥으로 떨어졌을까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던 수년 전의 어느 날에, 나는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사진책 《다카페 일기》 속의 모리네 가족에게 빠져들었다. 전철이 지나는 동네의 비좁은 2LDK(방 두 개, 거실, 식당, 주방으로 이뤄진 일본의 전형적 주거 형태) 맨션에 사는 이 일본인 가족은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다. 일하러 가고,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빨래를 널고, 빈둥거리고, 꾸벅꾸벅 졸고, 개를 키우는 일상의 연속이다. 이 가족이 남다른 게 있다면 포토그래퍼인 아빠 덕분에 그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이 아름다운 사진 속에 담겼다는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담담히 사진에 담기로 한다’는 글귀와 함께 2002년 10월 21일에 찍은 아내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것부터가 ‘다카페 일기’의 시작이었다. 천성이 외출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아빠는 밖에서는 부끄러워서 카메라를 들기 싫다며 집안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가족의 모습을 찍어댄다. 좁은 집이라 그 배경이 그 배경인데도 아빠의 사진은 생기와 활력과 유머와 따스함으로 넘친다. 

2004년 9월 16일
바다가 화를 내지 않고 평온하게 보낸 날은 저녁 무렵 창가에 부드러운 빛이 들어온다.
– 《다카페 일기》 중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은 자기에게 보이는 대로 대상을 찍는다. 그래서 같은 대상을 찍어도 누가 찍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모리 유지는 아마 실제로도 무척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친근함과 따뜻함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진을 보는 사람과 사진 속 사람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모리네 가족이 옆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끼게 된다면 그건 그의 따뜻함이 마법처럼 사진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이라는 《다카페 일기》의 소제목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행복이란 분명 이들의 삶 같은 것이다. 그건 너무나 평범한 삶이라서 후쿠오카에 사는 모리네뿐만 아니라 안양에 사는 나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크게 욕심을 낼 일도 분발할 일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물 흐르듯 담담히 살아가면 된다. 

스트리트 패션 포토그래퍼인 스콧 슈만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이유는 뉴욕과 파리와 밀라노 멋쟁이들의 패션을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해야 나도 저들처럼 타고난 멋스러움을 갖출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동양인의 태생적 신체 구조의 한계와 부족한 미모, 재력이 커다란 핸디캡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이거였다. 외모보다 내면이라는데 그게 사실일까? 근데 왜 촌스러운 사람에게는 호감이 안 가는 거지? 내가 너무 속물인가?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은 이유는 뭘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무리 흉내를 내도 나는 이 사람들처럼 멋있어지지 못할 텐데 그럴 바에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편이 빠른 게 아닐까? 근데 그건 대체 어떻게 찾는 거지?

우리는 멋진 스타일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완벽하게 아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야말로 종종 더 흥미로운 자기표현을 하도록 만든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나는 록 뮤지션인가? 아니면 축구선수? 혹은 둘 다?’ 이런 갈등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사토리얼리스트》 중에서

스콧 슈만의 사진이 다른 스트리트 패션 포토그래퍼들과 다른 것은 바로 이런 통찰력에 있다. 그는 반짝거리는 것들 아래 숨어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졌다. 그가 보는 것은 최신 유행 패션이 아니라, 옷 아래 숨은 그 사람이다. 그는 세련된 패션 피플들이 왜 세련됐는지, 때로는 별로 세련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지 사진과 글을 통해서 말할 줄 안다. 그가 말하는 사진 속의 사람들이 멋져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뛰어난 패션 감각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다 보면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서 샤넬이나 루이뷔통의 쇼를 보기 위해 잔뜩 멋을 내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패션 피플들과 인도, 페루, 모로코의 시장통과 골목을 오가는 전통의상을 입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못 느끼겠다. 돈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차이도,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도 느끼기 힘들다. 단지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각자는 모두 저마다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삶은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좋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한 가지 조건을 걸고 승낙했다. 잘 안 보이는 저쪽 구석으로 가서 찍으면 사진을 찍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훌륭한 스타일이란 눈에 띄고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젊은 여성의 경우는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 즉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의식적으로 남들과 구별되게 옷을 입는다는 사실이 자기만의 멋지고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 《사토리얼리스트》 중에서

스콧 슈만의 사진은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의 멋진 스타일보다는,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한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아름답고, 우리는 생면부지의 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고 직업은 무엇인지. 친구들과는 무얼 하고 놀고 요즘 읽은 책은 뭐고 걱정거리는 뭐고 꿈은 뭔지. 그것이 스콧 슈만의 힘이다. 

소중한 사람을 찍은 사진은 단지 그 사실만으로 소중한 사진입니다. 말을 걸지 못하는 짝사랑 상대가 찍힌 사진은 학급 단체 사진이어도 가슴이 설레죠. 그런 기분으로 항상 셔터를 누르시기를. 언제나 설레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 《다카페 일기 3》 중에서

모리 유지가 알려주는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좋은 사진이 가진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힘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대상을 향한 설레는 마음. 그것은 모리 유지와 스콧 슈만, 두 사람이 동시에 가지고 있다. 좋은 사진은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기술도 가리지 않는다. 좋은 사진은 반드시 진심으로, 진정성으로 승부를 겨룬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모리네 엄마는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도 자란다. 선머슴 같던 딸은 만화책을 즐겨보는 새침한 소녀가 되고, 볼살이 통통한 갓난아기이던 때가 어제 같은 아들은 장난꾸러기 소년이 된다.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개 와쿠친은 노환으로 죽고 그 자리를 다른 개들이 채운다.

집안 가득 비눗방울을 불어놓고 즐거워하는 웃는 얼굴도, 식탁 위에 엎지른 물도, 그 나이에 할 법한 엉뚱한 말과 노래와 행동도, 집안 가득 들어오던 나른한 오후의 햇살도 모두 다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장 어리고 예뻤던 시간이, 그리고 우리의 가장 젊었던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 아이들은 집안 곳곳에 성장의 흔적을 남긴 채 부모의 품을 떠날 것이다. 남은 아빠와 엄마는 둘이서 성실하게 늙어갈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또 그대로일 것이다. 인생은 작은 순간들의 합이라는 것을, 그 순간들의 반짝거림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을 모리 유지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족사진들이 증명한다. 

이른 저녁 시간에 목욕을 하고 베란다에서 시원하게 보내는 것,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는 것, 새 커피콩이 뜨거운 물을 머금고 놀랄 만큼 부푸는 것, 바다의 숙제 답을 몰래 가르쳐줘 일찍 끝내게 하는 것, 하늘이를 간지럼 태워서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것, 아내와 둘이 드라마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것, 그런 작은 선물을 많이 준비하면서 앞으로도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야지 생각합니다.
– 《다카페 일기 3》 중에서

결국 모리 유지와 스콧 슈먼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에 있을 이상적인 자신을 찾아 발버둥을 칠 테지만, 사실은 이렇게 빈둥대며 허송세월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나다. 나의 고군분투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계속해서 흐를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당연한 일이다. 그 모든 것이 중요하면서도 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이며, 그 현재를 보내는 방식이 모여 우리라는 인간이 누구인지를 말해줄 것이다.

다카페 일기

모리 유지 지음 | 북스코프 | 232쪽 | 148x210mm

사랑스러운 아내, 씩씩한 딸, 사고뭉치 아들 그리고 늘 곁에 있는 개를 담은 사진집. 그들이 함께하는 다정한 순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주변의 공기가 한층 따뜻해진다. 책은 분명 말이 없는데, 한 장씩 넘기다 보면 그들의 입 모양을 따라 어렴풋이 어떤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 윌북 | 519쪽 | 128x187mm

세계적인 패션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진작가 스콧 슈만. 거리를 거니는 멋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에 집중한 나머지 글을 놓치면 아쉽다.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패션에 대해 통찰력 넘치는 칼럼을 담고 있어 짤막한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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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선아

글 한수희 자료제공 북스코프·윌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