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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의 흑백
고집의 흑백
I AM NOT A PHOTOGRAPHER
어느 사진가가 했던 말을 시작으로 흑백사진을 찍고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고집을 위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으로
쇼윈도를 꾸미듯이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한 포토그래퍼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친구는 조심스레 그녀의 예전 사진이 좋았다고 말했다. 들어보니 그 포토그래퍼가 SNS에 사진과 함께 글을 적는 요즈음의 방식이 아쉬운 눈치였다. “사진이나 그림은 설명 없이도 전할 수 있는데, 왜 거기에 글을 더하는 걸까?” 집으로 걸어가면서 친구의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SNS는 창작자에게 약과 독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의 창작물을 내보일 수 있고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작업을 알릴 수 있어 유용하다. 소통의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원하는 포맷이나 레이아웃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는 일이 때로 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해나가야 할 때가 있는데, 밀접하고 빠른 반응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거다. 하트 개수나 팔로워, 방문자 통계 같은 숫자로 보이는 일도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 안에서 창작물을 올리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고민이 있을 거다.
남의 얘기처럼 썼지만, 사실 내 얘기이기도 하다. 팔로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원고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이 두려워진다. 아끼는 사진을 올렸는데 하트 수가 적으면 어쩐지 서운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쩌다 셀카를 올리면 왜 그렇게 언팔이 많아질까. 쿨하게 외면해보려고 나름대로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가 만든 것을 알릴 수 있는 통로를 없애기는 아깝고, 여전히 그 세계에 머무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정말 소중한 것은 아껴 두게 되었다. 완성된 글이나 좋아하는 사진은 되도록 블로그나 잡지, 단행본을 통해서 선보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보여준다. 마치 비밀스러운 상점의 쇼윈도 같달까. 누군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한 것들을 꺼내 보기 좋게 진열하는 것이다. 그 가게에 있는 가장 좋은 물건일 수도 있지만, 들어와서 보기 전에는 가격도 알 수 없고 어느 물건이 더 있을지 알 수 없다.
흑과 백 사이의
고집이랄까
“흑백사진만 찍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집스럽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진을 시작했을 때 컬러사진은 상업용으로만 쓰이거나 인화가 아주 비쌌어요. 결국 그 당시엔 모두 흑백사진을 찍었는데 저는 고집 때문에 거기서 바꾸지 않은 거죠. 컬러사진과 인화 비용이 감당할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저는 흑백사진에 무척 몰두해 있었어요. 흑백사진에는 톤이 있습니다. 흑과 백 사이 무수히 드러나는 회색의 톤이 있죠. 어둠에서 밝음으로 펼쳐집니다. 음악에도 음조가 있지요. 소리가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가는 거죠. 각각의 음조마다 감성이 서려 있습니다. 사진에도 시각적인 톤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톤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사진을 매우 어둡게 만든다면 톤은 매우 어두워집니다. 어둠 속에 담긴 톤들이 조금씩 변하는 걸 보는 것이 진정 흥미롭습니다. 밝은 톤의 사진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예요. 밝은 톤 안에서도 변화가 있지요. 톤과 흑과 백에 대한 생각에 저는 대단히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진주 감독의 〈그저 바라보는 것의 신비〉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사진가 필립 퍼키스가 한 말이다.
어릴 때, 듣기 싫어하던 말 중 하나가 “선아는 고집이 세요.”였다. 선생도 부모도 친구도 모두 내게 고집이 세다고 했다. 그게 나를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고집을 꺾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구의 말이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내 생각과 다르면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더니 언제부턴가 내 주변에는 온화한 단어들이 머물게 되었다. 부모와 친구는 더는 내게 고집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바라던 일이었는데 왜 그게 불편할까. 구제불능이다. 말을 하다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고, 아니라며 눈을 부릅뜨기도 했었는데 왜 이제는 매일 웃고만 있을까. 머뭇거리거나 서성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마는 나 자신에게 속이 상할 때가 있다.
그런 와중에 필립 퍼키스가 흑백사진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보게 된 거다. 그 부분을 여러 번 돌려보았다. 자신의 고집을 이야기하는 노인의 눈과 주름, 손짓 같은 걸 보고 있으니 나도 흑백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졌다. 필립 퍼키스가 말한 흑백사진과 내가 찍는 흑백사진에는 차이가 있을 거다. 시간 차도 상당하고 세월이 만들어준 생각을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그의 말을 시작으로 흑백사진을 찍게 된 것은 “그냥”이다. 이유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싶었다. 색에 익숙한 세대이고, 굳이 흑백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만, 흑과 백 사이의 무수한 톤이라는 것도 알아가고 싶고, 그러다 보면 내게도 고집 비슷한 게 생길까, 하는 기대도 있다.
색들이 색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한동안은 흑백 필름을 샀다. 현상과 인화를 직접 해보기 위해 암실 수업도 들었는데,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들어 유지하기 어려웠다. 선생님이 암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의 창으로 옮겨둔 것이 포토샵이라고 알려줬다. 여러 도구나 빛, 시간을 활용해서 사진을 만지던 일을 간편하게 하나의 창으로 옮겨둔 것이다. 요즘은 컬러 필름으로 찍은 예전 사진들을 포토샵을 통해 흑백으로 바꿔보고 있다. 돈이 들지 않고, 원하는 방식대로 다양하게 작업해볼 수 있어 편리하다.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에 있는 흑백 모드로 촬영도 해본다. 흑백사진이 컬러로 변하는 걸 지켜보던 옛사람들은 어땠을까. 신기했을까. 컬러사진이 흑백으로 변하는 걸 지켜본 나는, 편안하다. 눈이 지나치게 색에 길들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색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어떤 일들이 단순해지는 것 같았다.
흑백사진 작업을 하며 알게 된 사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들 앞에서 내 고집을 뚜렷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거다. 나름의 세월에 걸쳐 나는 나를 바꿔왔고 이 방식이 내 잠자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굳이 고집을 부려 집에 가서 ‘이불킥’을 하게 되는 말이나 행동을 애써 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다만, 그런 방식 대신 내 일기장이나 컴퓨터 한구석에 고집을 기록해두고 있다. 누구의 시선이나 평가, 말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 나만의 일을 해보는 거다. 필립 퍼키스 할아버지의 나이 정도가 되면 어쩌면 “이것이 내 고집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드는 이만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거다. 만들어진 것을 보는 이에게도 고집이 필요하다. 타인이 무엇을 만들었든 ‘나’는 ‘나’의 삶을 토대로 당신이 만든 것을 이해해보겠다는 자신감이라던가, 한 장의 사진을 빠르게 스쳐 보내지 않고 오래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에 의미를 만들어주겠다는 의지라던가. 그런 식의 태도가 또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