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A PHOTOGRAPHER

파리에서 만난 사진가

파리에서 만난
사진가

베를린 여행이 끝나기 며칠 전, 짐을 싸다가 한 사진작가의 책을 발견했다. 베를린에 머무는 두 달 동안 몇 번이나 읽은 책. 다른 도시로 이동한 후, 한 달은 더 유럽에 머물러야 해서 짐을 덜고 싶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줄까.’ 꼭 필요할 것 같은 사람을 떠올려봤다.

누군가에게
반하는 순간

떠오른 사람이 한 명이었기에 길게 고민하진 않았다. 베를린에 오기 전부터 지인들이 몇 번씩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혹시 포토그래퍼 ‘ㅅ’ 알아? 다음에 소개해줄게. 둘이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될 거야.” “베를린에 간다고? 거기 사진 찍는 내 친구 ㅅ이 살고 있는데 가면 꼭 만나봐.” 짐에서 덜어내고 싶은 책이 마침 사진작가의 수필이었기에 ㅅ이라는 사람에게 전해주면 될 것 같았다. 지인들이 내준 숙제를 해결하는 마음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으레 첫 만남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소개팅을 나간 사람처럼 몇 번이나 립스틱을 고쳐 바르며 카페에 앉아 ㅅ 씨를 기다렸다. 동양 여자 한 명이 카페로 허겁지겁 들어섰다. 광대에 힘을 주며 인사를 했고, 준비해간 책을 건네고, 맥주를 마셨다. 대화를 막 시작할 무렵에는 내내 긴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반하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첫눈에’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법처럼 상대를 좋아하게 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홀딱 빠져들어 눈을 뗄 수 없을 때가 있고, 상대의 눈동자에 온통 내가 들어찰 때도 있다. 운이 좋으면 양쪽 눈에 서로가 보이기도 한다. 이번이 그런 타이밍인 듯했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어렵사리 꺼낸 몇 가지 말에 ㅅ 씨는 끄덕여줬고, 나 역시도 그녀가 던지는 질문에 애쓰지 않고 답할 수 있었다. 헤어질 무렵, ㅅ 씨는 파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저 보름 후에 파리에 가거든요. 넓은 숙소를 혼자 쓸 것 같은데, 괜찮다면 오셔도 돼요. 아니, 오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만난 사이라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제안이란 걸 알면서도 대뜸 그런 말을 했다. 보름 후, 우리는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가 셔터를
누를 때면

베를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파리에서도 이어졌다.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진 적도 있고, 기껏 밖에 나갔지만 대화를 나누느라 목적지를 잃은 날도 있다. 다음 날 갈 곳을 정해도 어차피 가지 못하니 계획 같은 건 포기하고 밤마다 술을 마셨다. 그녀는 사려 깊었다. 배가 고프다고 느낄 무렵엔 요리를 하고 있었고, 말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침묵을 건넸다. 어느 날 아침, 마감할 원고가 있어 몰래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술로 쓰린 속을 붙잡고 원고를 쓰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가 책상 위에 놓였다. 꿀을 섞은 민트 차라 숙취에 좋을 거라며 원고를 다 쓰면 아침을 먹자고 했다. 조심스레 컵을 내려놓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 친구를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녀가 사진가라는 걸 잊어버릴 무렵, ㅅ의 가방에서 카메라가 나왔다. 조심스레 카메라를 꺼내 천천히 뭔가를 찍었다. 내내 요리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던 그녀가 자신의 본업에 몰입하는 순간을 처음 봤다. ‘아, ㅅ은 사진가였지.’ 가만히 지켜봤다. 무엇을 찍었을까, 그녀가 찍은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ㅅ의 옆모습을 한 번 바라봤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멈춰서 뭔가를 찍으면 자연스레 곁에서 기다려줬다. “ㅅ 씨는 사진가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같이 있는 동안 사진을 몇 장 찍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제가 있어 방해가 되었어요?” “그런 건 아닌데 요즘은 잘 안 찍게 되네요. 

몇 달 동안 한 롤도 찍지 않은 것 같아요. 직업 사진가인 친구들 사이에는‘외국 버프’라는 말이 있거든요. 살던 곳을 떠나오면 낯섦이 주는 기운을 받아 더 많이 찍게 되고, 아름답게 나오고 그런 것 있잖아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안 찍게 되더라고요. 찍으려고 해도 찍을 수가 없어요. 그대로 두고 지나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요즘은 그저 들여다 보고 이 상황에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려요.” 왜 찍을 수 없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물으려다 그만뒀다. 질문은 넣어두고 그녀가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에는 같이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무례하지
않은 사진

둘 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그녀는 사진을 전공한 직업 사진가였고, 나는 취미로 사진을 찍는 에디터였다. 취미로 사진을 찍어오며 궁금하던 것을 몇 가지 물었다. “혹시 사진학과에서는 초상권에 대해 어떻게 배워요? 궁금해서 찾아보면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애매하더라고요.” 아주 가까이서 찍힌 피사체가 사진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가 패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정도의 거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저런 공부를 혼자 해나가면서도 명쾌한 답을 얻진 못했다. 점점 더 허락 받지 않은 사진을 찍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뿐이다. 

가끔 너무 찍고 싶으면 뒷모습을 찍는데, 사실 뒷모습에도 초상권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누군가는 거리에서 만난 피사체에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전공 수업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배우는지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지금 고민하고 계신 딱 그 정도예요. 답은 없고, 찍는 사람의 마음에 맡겨진 부분이죠. 저는 피사체에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술에 취해 놀다가 신이 나서 막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것도 무례한 상황이 될 수 있죠.” 그녀는 얼마 전, 베를린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다.

“길을 지나다가 아름다운 노부부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셔터를 누르고 싶은 순간이 좀처럼 오지 않았는데, 그 순간은 찍고 싶었거든요. 그들을 지켜보다가 찍지 못하고 가던 길을 갔어요. 카메라를 들고 다른 쪽에 서있는데 누군가 반대편이 더 예쁘니 그쪽을 찍으라며 말을 거는 거예요. 돌아보니 아까 본 할아버지였어요. 용기 내서 당신들을 찍으려다 포기했다고 말했어요. 혹시 지금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흔쾌히 알았다고 해주었죠. 그 자리에서 제가 본 것과는 다르지만, 덜 무례한 사진을 찍었어요. 먼저 본 장면이 더 아름다웠을 거예요. 하지만 괜찮았어요. 저는 말하고 찍은 사진이 더 마음에 들어요.” 그녀와 헤어진 후, 여행을 하며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했다. ‘이번에 만약 어떤 사람을 찍게 된다면 찍고 나서 꼭 말을 걸어야지. 내가 지금 당신의 사진을 찍었다고. 이 필름 안에 있는데 원치 않으면 폐기하겠다고. 만약 괜찮다면 이 여행이 끝난 후, 스캔해서 당신에게 보내주고 싶다고.’ 몇 번이나 연습하고 곱씹다가 결국 아무에게도 말을 걸진 못했다. 언젠가, 꼭.

그녀는 좋은 사진을
찍고 있다

파리에서 그녀와 헤어진 후, 반년이 흘렀다. 그녀는 베를린에 살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몇 번의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며칠 전에 집 주소를 물어온 걸 보니 곧 우체통에 편지가 도착할 것 같다. 일하다 보면 업계 사람들에게 “혹시 추천해줄 포토그래퍼 있어?”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어떤 일이건 우선 생각나는 사람은 ㅅ이라 그녀의 이름을 자주 말한다. 외국에 있어 촬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쉽게도 매번 지나친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추천하고 싶다는 포토그래퍼 ㅅ 있잖아. 그 사람, 근데 어떤 사진을 찍는데?”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알았다.

그녀가 어떤 사진을 찍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을. 한 번도 ㅅ의 사진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함께 여행하며 중간중간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녀를 만나기 전, 잡지에서 우연히 본 사진 몇 장은 기억나지만, 그조차 가물거린다. 질문한 이는 너무 무책임하게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는데, 글쎄…. 보지 않아도 책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좋은 사진을 찍고 있다.

포토그래퍼 송곳

H. songg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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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