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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의 회복
진지함의 회복
I AM NOT A PHOTOGRAPHER
일요일에는 사진 전시회를 보고 웃었고, 월요일에는 한 편의 영화를 보며 웃었다. 둘은 아주 다른 웃음이었는데 금방 웃은 일이 부끄러워졌다.
수백 명의 직원이
같이 거리를 걸었다
주말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반, 본사에서 전 직원이 모인다고. 무슨 일일까. 궁금함과 귀찮음을 동시에 갖고 출근했다. 회사 로비가 북적거렸다. “무슨 일로 모이는지 알아요?” 어느 직원은 새로운 부서가 생긴 내용을 공지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요즘의 이슈를 토론할 예정이라고 했다. 약속한 시각이 되어 대표님이 나타났다. 그는 문을 열고 회사 밖으로 나섰다. “다들 잘 따라와라!” 직원들이 뒤를 따라 걸었다.
다들 웅성거렸다. 학생 때 이후로 이렇게 걸어본 건 처음이라는 둥, 어디 예식장으로 회의를 하러 간다는 둥, 이대로 국토대장정을 하러 간다는 둥, 그렇게 소란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너다 줄이 끊겼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넜고 뒤를 돌아보니 앞서 걸어간 만큼의 직원이 건너편에 서 있었다. 이게 무슨 광경이지? 웃겨서 웃었다. 그렇게 20여 분을 의아해하며 걸어 도착한 곳은 영화관이었다. 영화관에 들어선 직원들은 대부분 나처럼 웃고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상영관이 꽉 찼다.
걸어올 때 ‘도대체 몇 명일까?’ 궁금했는데 상영관 하나를 가득 채울 인원이라는 걸 알고 나니 또 헛웃음 같은 게 나왔다. 대표님이 앞에 서서 말했다. “지금부터 <보헤미안 랩소디>를 볼 거거든. 다 같이 보고 싶어서 대관했으니까 재미있게 보고, 오전에 미팅 있거나 이미 본 사람들은 알아서 중간에 나가도 괜찮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퀸’이라는 밴드 이야기였는데 눈을 뗄 틈이 없었다. 집중해서 보다가도 ‘대표님은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이 영화의 어디가 좋아서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으려나.’ ‘저 등장인물과 주인공은 꼭 어느 팀장과 대표님 같네.’ ‘그렇지. 지금 우리 회사에는 저렇게 과감한 자세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했다. 주말에 개인적으로 보았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회사 메일에 ‘월요일 아침 9시 10분까지 영화관으로 오라.’는 메시지와 이유가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면, 역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아침 같은 여정을 거쳤을 때만 할 수 있는 생각을 했다
지나치게 진지하면
웃음이 나오고
영화를 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주말에 본 사진 전시가 생각났다. 온통 새하얀 갤러리는 사뭇 진지했다. 관람객은 친구와 나뿐이었고, 우리는 숨을 죽이고 한동안 전시에 집중했다. 전시장에서 나오려는데 전시 소개 글을 다시 한번 읽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 주제가 좋아서 그걸 찍고 싶었던 것 아니야?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했지?”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차라 “그러게?”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친구도 웃었다.
일요일에도 웃었고 월요일에도 웃었지만, 다른 웃음이었다. 시간과 마음을 쏟아 만든 진지함이 우습지 않게 전달되려면 만든 이는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 걸까. 진지함을 그대로 혹은 자세히 드러내는 일이 오히려 우스워질 때가 있다. 전시의 사진은 좋았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축약해서 소개하는 글이 미묘하게 그의 작업을 방해해버렸다.
왜 그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미로처럼 만들었을까. 간결하고 단순한 단어로 전달했으면 훨씬 담백했을 거다.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말하는 게 자신의 작품을 작아지게 만든다고 느낀다면, 적어도 적확히 알고 있는 단어로 말하는 편이 좋을 거다. 가진 단어의 수가 적다는 사실에 겁먹고 장황한 단어를 붙이면 일이 어려워진다. 아무것도 전할 수가 없다. 운이 좋지 않으면 오히려 관람객의 웃음을 사게 되기도 하고. 차라리 용기 있게 텍스트를 덜어내고 작업만 보여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한 회사의 대표가 말없이 전체 직원을 영화관에 옮겨둔 것처럼, 어떤 말보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그럴싸한 동선으로 전해보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진지한지 잘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한 채로 누군가는 웃게 될 일이다.
나는 아마
내일도
앞의 한 문단은 사실 걷어내고 싶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웃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영화관을 대관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어본 적도 없다. 빈 종이에 이렇게 생각을 굴리기만 하는 내가 누군가가 진지하게 해낸 몇 가지 일을 두고 쉽게 웃은 일은 어쩐지 불공평하다.
일요일과 월요일을 지나고 나니 알 것 같다. 아무래도 내게는 진지함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내게는 필요한 일이다. 비웃음을 사더라도 어디 한번 말해보는 거다. 그들의 행동을 평가하며 작게 웃는 일을 그만두고, 나도 뭔가 행동해보는 거다. 오늘은 일단 진지함을 회복하자는 의지만 갖고 자기로 한다. 누군가를 곁눈질하거나 탓하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잠자리에 드는 거다. 내일은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아마 내일도 열심히 적고 있지 않을까.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