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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계절들
낯선 계절들
I AM NOT A PHOTOGRAPHER
어느 숲에서 찍은 필름을 발견했다. 찍힌 것을 불빛에 비춰 보며 ‘나는 왜 사진을 찍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계절이 만드는
리듬이 있다는 걸
계절에 맞게 살아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만드는 리듬 같은 것을 타고 여기까지 흘러온 거다. 이 사실을 최근에 알아차렸다. 누군가는 당연히 알고 있었을까. 나는 의식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올해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계절이 오는 일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해마다 적절한 때에 비슷하게 와줬고, 너무도 당연해서 애써 설명하지 않았다. “벚꽃이 피었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요?” 무리하지 않는 문장들로 계절이 오는 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로 두통이 오거나, 겪어본 적 없는 더위에 집 밖을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 상황을 지나보니 알게 되었다. 이 시간들이 매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와줬고, 그에 맞춰 살아오며 생긴 안정이 있었다는 걸.
물질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만이 한 사람의 삶을 돕는 것이 아녔다. 계절에 길들여져 사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와 평온을 주는지, 내가 알고 있는 한 계절이 낯설 때 오는 불안이 어떻게 일상을 뒤흔드는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숲에 머무르던 날의
필름을 보며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집에서 미뤄두던 필름을 정리하기로 했다. 창고에서 필름 박스를 꺼냈다. 400롤이 넘는 필름이 들어 있었다. 방바닥에 필름을 늘어놓고 한 롤씩 전등에 비춰 내용을 확인했다. 시간순으로 늘어놓고, 네임펜으로 봉투에 장소나 함께한 사람 등을 써넣고, 다 적은 뒤에는 순서대로 파일에 끼워 넣었다. 10여 년간 찍은 사진을 한 번에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땀이 흘렀다. 더위 속에서 단순한 일을 반복하며 땀을 흘리고 있으니 별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구가 아픈 거겠지. 이러다 내일 아침에 갑자기 폭발하면 어쩌지. 어느 영화처럼 창문으로 물이 들이닥치고, 지진이 나서 땅이 갈라지고,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어지러움이 이 땅을 휘저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필름이나 스캔 파일을 저장해둔 외장하드 같은 것도 다 사라질 것이다. 사진을 너무 믿고 있었나. 그것들이 추억을 대신해주거나 기억할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여겼는데, 쉽게 없어질 수도 있는 필름 조각이나 파일 하나에 지나지 않을 거란 상상에 허무해졌다. 이런 것들이 어느 날 다 사라져버리고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면 사진을 찍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 필름을 빛에 비췄다. 나무의 잔가지가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싶었는데 옆의 것들을 보다 보니 친구들과 갔던 숲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진 주변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텐트를 치고 산속에서 하룻밤 잔 날이었고, 뱅쇼 한 잔을 손에 들고 친구와 산책을 나섰다. 천천히 걷다가 잔가지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들려 잠시 멈췄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여러 나무가 겹쳐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다가 다시 앞을 보니 어느 틈에 같이 걷던 친구가 작아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친구들 무리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손에 들고 있는 컵은 아직 따뜻했다. 작아졌던 친구가 내 쪽을 향해 돌아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컵을 바닥에 두고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왜 찍는 걸까
이런 식으로 10년 그리고 또 10년, 찍다 보면 적잖은 양의 필름이 쌓일 거다. 소중함과 동시에 짐스럽게 느껴진다. 필름을 정리하며 발견한 사진에 반갑기도 했지만 충분히 지칠 만한 양이었다. 누군가 사진을 찍는 이유를 물어오면 추억이나 기억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특별히 답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만약 사진이 기억이나 추억을 위한 흔적이라면 그건 너무 미래에 있다. 기록이나 타인에게 전시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목적을 갖고 돈을 받는 일도 말할 것도 없다. 사진은 미래를 위한 걸까. 그런 이유로 카메라 앞에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나 사람, 사진을 찍는 ‘지금’을 먼 훗날로 미리 보내버린 것은 일종의 게으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동작을 생략해보고 있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네모난 프레임을 만들어 사진 찍는 시늉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프레임을 눈앞에 두고 그저 보기만 한다. 뭔가를 보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시간 정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기만 하는 거다. 필름뿐만 아니라 휴대폰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무작위로 욕심껏 틀어대는 에어컨이나 일회용 컵들이나 여기저기서 찰칵거리는 휴대폰 카메라의 소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면이 닮아 있다. 버려지는 컵이나 실외기 밖으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을 닮은 것들을 내 오랜 필름에서 보았던 것 같다. 셔터를 누르는 일을 생략함은 에어컨을 끄거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차원의 절약이나 보호는 아닐 것이다. 다만, 계절이 낯설어지거나 필름을 정리하며 느끼던 불안을 줄여보고 싶은 바람에 가깝다
겨울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여름밤을 좋아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아, 역시 여름밤이 좋다.’ 하고 느낀 날이 몇 없다. 눅눅한 공기 아래로 바람이 부는 밤, 그 틈으로 이리저리 걷는 일은 얼마나 소중했던 걸까.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알던 일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번 겨울에 전에 없던 한파가 온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변하는 공기의 냄새나 코트 깃을 잡고 거리를 거닐 때의 경쾌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드물 수도 있을 거다. 내가 알던 그 겨울은 이제 몇 달 중에 단 며칠에 지나지 않겠지. 이번 봄의 오후가 그랬고, 여름밤이 그랬던 것처럼. 불안을 막을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막막해져서 불빛에 비춰 본 필름에 있는 나뭇가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사진을 왜 찍는 거예요?”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중에서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