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Old Value

시간을 견디는 집

HOUSE OF
OLD VALUE

시간을 견디는 집

세월은 집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더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과 함께 공간을 완성한다. 옛집이 지닌 자취를 질감으로 살리고, 쓰는 만큼 바래고 사는 만큼 닳아지는 공간은 단단하면서도 따뜻하다. 지금부터의 기록은 매년 진하게 우러나는 나뭇결에 시간의 숨결을 채워 넣는 가족의 이야기다.

사랑에 빠지는 집
신유미
KOREA

주트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신유미 씨의 집은 목구조의 온기와 낮은 건물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서촌의 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처마에 드리운 그림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높은 서까래 아래 일곱 살 수리, 세 살 수하, 백일을 갓 넘긴 수인이가 환한 얼굴로 맞이한다. 가족은 지난 10월 이사 온 이래 한옥에서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있다. 전통 한옥은 지을 때 나라에서 보조금을 받는 대신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 반려되면 보충해서 심의를 받고,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심사를 거치느라 설계부터 공사까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된 집이다.

서촌의 편안한 정취가 묻어나는 집이에요. 이곳에 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함께 일하는 시도니의 집에 간 적이 있어요. 프랑스 북부에 사는데, 그 지역 집은 특징이 있었어요. 계단이 아주 좁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구조가 긴 편이며, 집들의 벽하고 벽 사이에 틈이 없고 거의 100년 정도 된 집이었어요. 집 안에서 공책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집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어요. 예전에는 부엌이 다른 쪽이었다거나, 다른 구조를 가진 기록이 담긴 사진들이었어요. 이 사진들은 집을 사고팔 때 서로 전달한다고 해요. 나중에 공사할 때 참고할 수도 있고 집의 역사를 다음 사람에게 전해주는 의미도 있다고요. 그때 사는 아파트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경희궁 주변에 재건축을 한다고 집을 다 허물 때, 시도니가 우리나라에 놀러 왔어요. 오래된 아름다운 곳을 왜 허무는 거냐며 굉장히 의아해하더라고요. 

저도 그 전까지는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인데,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그쪽 지역이 역사가 깊은 동네였대요. 서대문 형무소 옥바라지 골목, 홍난파 가옥, 사대문 바로 밖이라서 서민들이 살았던 곳이에요. 영천시장은 김두한이 활동하던 곳이고요. 그 동네에 얽힌 역사가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살면서 전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집을 한옥으로 결정한 이유도 있나요?

다른 나라의 스타일이 아닌 진짜 우리 것을 아이들이 직접 느끼며 살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옥을 2년 정도 보러 다녔어요. 하지만 우리의 예산으로 집을 구하러 가면 적당한 집이 없다고 하기 일쑤였죠. 당시 이사할 아파트가 계약된 상태였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둘러보다가 이 집을 만나게 되었어요. 낡고, 쓰러져가는 한옥이었어요. 세입자가 살고 있어 안을 볼 수 없었지만 바로 계약하겠다고 했어요. 

이사 갈 아파트랑 이 집이 마침 평수도 같고, 매매가도 똑같았어요. 근데 아파트는 같은 평수를 22명이 나눠쓴다면, 여기는 우리 혼자 쓰는 거니까 이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또 위치도 좋고, 유치원도 가까워 생활하기 편리하겠더라고요. 철거하면서 예전 상량대를 내렸는데, 80년 정도 된 집이었어요. 여기에 이제 우리 가족의 역사가 더해지겠죠.

아이들은 몸과 마음으로 오래된 것의 가치를 느끼며 사는 거 같아요. 가족은 한옥에서 어떻게 생활하나요?

마당이 중앙에 있어서 모든 방에서 마당을 볼 수 있어요. 마당을 사이에 둔 이 방과 저 방 사이의 거리감도 묘한 재미가 있어요. 창호지에는 애들이 구멍을 뚫어놓고 방충망도 골이 난 곳이 있어요. 그런 흔적이 묻어나는 게 귀엽고 좋아요. 잠은 제일 끝에 있는 방에서 가족이 모두 함께 자요. 거실 옆은 아이들 방으로 위엔 아이들의 비밀 공간인 다락이 있어요. 침실 위 다락에는 옷과 이불이 있고요. 한옥은 가변성이 많아요. 마당도 자꾸 바꾸고, 생활에 맞게 남편과 이것저것 구상하는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이 집엔 저희 가족뿐 아니라 새들이 머물기도 해요. 새벽에 새 소리를 들으며 수유를 하고요. 마당에 쌀을 뿌리면 새들이 와서 먹어요. 그 모습을 본 수하는 무슨 음식을 먹든 마당에 뿌려요. 안 주면 새들이 속상해한다네요.(웃음). 원래 없던 마당을 내다보니 집 내부가 좁아서 생활방식도 바뀌었어요. 식재료도 그때그때 사서 먹고, 쟁여두지 않아요. 김치는 겨울에 마당에 묻으려고요. 많이 부지런해졌죠. 마당도 의외로 손이 많이 가고 창도 많아서 다 닦아야 깔끔하거든요. 치우지 않으면 공간이 안 생겨 청소도 열심히 해요.

오래된 집에 가족의 이야기가 쌓여가는 게 흥미로워요. 실제 한옥에 살며 느낀 좋은 점과 불편한 점도 들려주세요.

우선 천장이 높아 좁지만 답답하지 않아요. 애들 할머니 집이 아파트인데 이젠 그곳이 낮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지을 때부터 단열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인지 겨울에도 춥다고 못 느꼈어요. 겨울에 눈이 왔을 때 거실에서 지켜보는 마당이 너무 낭만적이더라고요. 한옥에서의 삶을 기대했었는데, 상상했던 거보다 훨씬 좋아요. 

셋째인 수인이는 태어나자마자 이 집에서 생활했는데,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천장을 계속 보더라고요. 창호지를 유심히 보고요. 세종대왕이 창살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잖아요. 수인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이런 공간에서 자라니까 뭔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처음 오신 분들은 나무 향이 좋다고 하는데, 단점은 벌레가 나와요. 등에라는 벌레예요. 나무 안에서 자라고 있나 봐요. 약을 안 친 자연의 나무니까 이런 벌레도 사는 거겠지, 좋게 생각하려고 해요. 그리고 거실에 소파가 없다 보니 늘어지거나 눕지 못해 불편할 때도 있어요. 입구에 긴 의자를 빼고 소파를 사서 넣을까 생각 중이에요.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수리는 다락을 좋아해요. 다락방에 보면 벌레가 나무를 갉아 먹은 흔적이 있어요. 어느 날 남편이 발견했는데, 갉아 먹은 모양이 손가락 크기의 강아지 형태를 띠더라고요. 동생인 수하한테도 “강아지 어디 있어?” 하면 바로 발견할 만큼 정말강아지 모양 같아요. 다락은 아이들만의 아지트예요. 다락이랑 주방 사이에 창을 내서 엄마와 인사도 하고 그래요.

수하는 마당을 좋아해요. 땅도 파고, 자동차 놀이도 하고, 물도 틀고, 여러 가지를 해요. 맨발로 나가서 저기서 계속 머물러요. 마당 의자에서 잠도 자고 싶다고 하고요. 마당에서 주로 생활하는 수하는 햇살이 들어오면, “엄마 내가 햇빛 속으로 들어왔어. 햇빛이 나를 아~ 예쁘다 해.”라고 말하죠. 저는 시원하고 잠이 잘 오는 침실을 좋아해요. 마당에서 식구들이 모여 밥 먹는 것도 좋아요. 애들이 밥을 안 먹으려고 해서 마당에서 두릅을 튀겨준 적이 있어요.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때는 늘 마당에서 먹여요. 분위기에 취해 덩달아서 먹거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상략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인데요.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에요. 여기에 이 집 이름을 쓰고 나무 뒤편 공간에 편지와 사진을 넣었어요. 타임캡슐처럼요. 집의 이름을 지으려고 수리에게 물어봤더니, 바로 ‘사랑에 빠지는 집’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 아빠가 현장에서 바로 써서 올렸어요. 이사 가면 저 안의 우리 이야기가 다 없어질 거 같아서, 한옥은 팔면 안 되는 집이구나 생각했어요. 

수리는 줄넘기를 잘하고 싶어서 두 달 동안 줄넘기를 한 적도 있어요. 눈만 뜨면 마당에 나가서 줄넘기하고 깜깜해지면 방으로 들어왔어요. 마당에서 줄넘기를 마스터해서 쌩쌩이 꺽기까지 다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골목에서도 많이 놀아요. 주말이면 “누구야 놀자~.” 하고 아이들끼리 놀죠. 저 집 가서 놀고, 이 집 가서 먹고. 나중엔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서 같이 학교도 가고 그런다더라고요.

가족이 만들어가는 삶
슌고 키마타
JAPAN

슌고 키마타 씨의 집에는 부부와 일곱 살 딸, 네 살 아들, 네 식구가 산다. 부부는 자신의 삶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남편은 놋쇠 수저와 가구, 간판을 제작하는 일을 하며 주로 나무와 철, 황동, 알루미늄으로 다양한 것을 만들고, 아내는 천으로 가방이나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6년 전부터는 물건의 실제 사용 모습을 보길 원하거나, 오래된 집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소소SOSO’라는 이름을 걸고 그들의 집을 공개하고 있다.

마당에 드리운 빛이 인상적이에요. 이 집에 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이 집은 올해로 100년이 되었어요. 저의 4대 이전 조상이 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머니 집의 별채로 40년 이상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 상태로 남아있었어요. 아내와의 결혼을 계기로 이 집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새로운 것보다 오래된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는 집도 옛집을 고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누군가가 머물던 공간이면 중간에 개조되어 지금 같은 분위기는 만들 수 없었겠죠. 운이 좋았어요. 우리는 사용하지 않은 공간을 목수의 도움을 받아 썩은 기둥이나 벽 등 구조체의 부분을 고치는 대대적인 작업을 했어요.그 후에는 스스로 벽을 바르거나 창호를 만들면서 조금씩 살기 좋게 변화를 주고 즐기고 있죠.

옛집에서 가족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좋아하는 오래된 집에 살면서 언제나 기분 좋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집에서의 생활에 아주 만족해요. 우리 부부는 자신의 삶을 최대한 스스로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멋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건 찬장이에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원하는 것을 만들어 선보이다 보니, 실제 사용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고객이 생겼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 방문해 우리가 만든 것을 직접 볼 수 있게 하고 있어요. 부엌과 1층의 방은 자유롭게 고객이 왕래하도록 오픈해요.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라 항상 청소나 정돈에 신경 쓰죠. 그것도 기분 좋게 보낼 궁리 중 하나로 여겨요.

일본 전통 가옥의 장점과 단점이 궁금해요.

낡은 일본 가옥이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은 추워요. 여름철에는 실내의 문을 모두 열면 아주 개방적이어서 좋아요. 겨울엔 문을 닫고 장작과 난로로 몸을 녹여요. 마루가 있어서 날씨가 좋을 때는 밥을 먹거나 놀기도 하니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따로 없어요. 낡은 집이라 빈틈이 많고 바람이 강한 날은 모래 먼지가 방에 들어와서 청소가 힘들긴 하지만요.

가족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언제나 가족이 모이는 곳은 부엌이에요. 생활의 중심이기도 하죠. 사용하기 쉽도록 조금씩 배치를 바꾸거나 선반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이 집에서 나는 첫 겨울은 너무 추웠어요. 이듬해 장작 난로를 넣었고요. 매일 아침 아내가 식사를 만들고 내가 커피를 끓이며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은 정말 행복해요.

이 집에 살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야기가 있다면요?

가게를 시작할 때 사용할 수 없는 벽이나 기둥을 제거하고 새로운 기둥을 넣었어요. 수리하면서 앞으로의 생활에 기대가부풀었고 일본 가옥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어요. 그 기억이 지금도 기분 좋게 남아 있어요.

가족을 찾아 떠난 여정
데렉 베티
LAOS

캐나다에서 태어난 데렉 씨는 어린 나이에 독립해 자신의 삶과 새로운 가족을 찾아 떠났다. 태국을 여행하던 중 일행의 추천으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향하는 보트에 몸을 실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이방인을 바라보는 라오스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 미개발된 자연 그 상태의 풍경, 프랑스 건축과 라오스 문화가 섞인 도시, 순수하고 친근한 사람들에 강력한 끌림을 느꼈고 라오스에 정착하게 됐다. 라오스에서 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열한 살 워릭, 열 살 헌트 아들 둘과 네 마리의 거북이, 토끼와 함께 살고 있다.

집을 돌아보니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은 듯 보여요. 이 집을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 도시, 그리고 이 집에 살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가족을 찾아서 떠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본래 가정은 동서양 막론하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이겠지요. 하지만 현대 사회는 가족 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형제간의 우애와 질서는 무너졌어요. 저는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질서가 있고 서로 공경하는 동양의 문화를 사랑해요. 특히 아직도 일가친척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전통 가족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지난 10년 동안 루앙프라방에서 우리 가족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살았어요. 힘들었지만 정말 가깝게 지낸 시간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부인 렌과 길을 지나가다 지금 집의 대지가 매매로 나온 것을 보았어요. 처음에는 비쌀 거라는 생각에 연락도 안 해보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여전히 빈 땅으로 남아 있어서 연락을 했고, 마침내 우리의 드림하우스를 짓기 시작했어요. 라오스에는 건축 자재와 가구가 정말 부족해서 모든 자재를 제가 직접 골라 공수해야 했고, 맞춤으로 제작했어요. 

일을 하며 천천히 공사해 완공하는 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죠. 늘 꿈꿔왔던 정원이 있고,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거실이 있고, 아이들의 독립 공간인 방을 갖게 되었어요. 긴 시간 동안 라오스에 살며 새로운 가족과 집을 갖고 새 삶을 일구었지만, 때때로 나의 문화가 그립고 외로워요.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있는 이곳이 제집이죠. 처음 라오스에 정착하느라 여유 없이 바쁘게 지내던 시절엔 무려 6년 동안 캐나다를 방문하지 않았어요. 이제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고향을 방문하며 균형을 맞춰 나가려 해요.

족히 50년은 된 지역이라 들었어요. 집을 지을 때 고려한 것이 있나요?

루앙프라방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 도시예요. 그래서 개발에 제한이 매우 많아요. 아마 우리 가족이 루앙프라방이 아닌 다른 도시에 살았다면 매일 달라지는 도시 풍경과 고층 빌딩, 변화되는 도시의 모습을 보았겠지만, 이곳의 속도는 다른 나라나 도시와 비교하면 정말 느려요. 캐나다에서 마지막 살았던 집은 17층 아파트였어요. 당시 룸메이트와 함께 600달러를 지급했는데 아마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훨씬 비싼 가격이겠죠. 일본에서 살 때는 비싼 가격에 비해 정말 작은 방이었고요. 그래서 늘 정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일본식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내 공간을 가진다면 어떻게 디자인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지요. 

지금 우리 집 정원엔 일본식 돌길과 연못, 라오스식 오두막과 열대 식물들로 가득 차 있어요. 정원에 정성을 많이 쏟았는데 열대 나무를 비롯해 밤이면 향기가 나는 꽃이 피어요. 호주의 친구에 게 부탁한 레몬 나무 묘목이 자라 드디어 열매가 맺혔어요. 아이들이 동식물을 보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인 이곳엔 거북이 네 마리와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어요. 한편 라오스 전통 주택의 특징은 더위를 피하려다 보니 채광이 좋지 않고 어둡다는 거예요. 실내에 조명을 다 켜도 컴컴하죠. 

이 집을 지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게 채광이었어요. 밝은 공간에 있어야 아이들이 밝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방에 유리창을 다는 대신 블라인드를 설치했어요. 유리창과 블라인드를 비롯한 모든 것을 태국에서 골라 수입해 와야 했고, 당시만 해도 라오스 사람들이 유리창을 설치하지 못해 정말 애를 먹다 결국 제가 했죠.

이 집으로 이사 오며 가족의 생활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여기서 살기 전 네 식구가 생활한 집은 1층에 여행사 사무실과 주얼리 가게가 있고 2층에 생활 공간이 있는 상가형 건물이었어요. 시내 중심에 위치한 열린 공간이라 많은 사람이 오갈 수 있었어요. 또 라오스 대가족 특성상 이웃과 친척 간 교류가 많았죠. 좁은 공간이라 가족끼리 늘 붙어 잤고 가까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때때로 그립기도 해요. 하지만 좁은 공간이라 지인들을 초대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이웃과 교류가 많아서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담장이 있어 우리 가족의 사생활이 보장되죠. 가끔 정말 편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춤을 추며 정원을 관리해도 아무도 흉을 보지 못해요. 그때보다 집이 커지고 각자 독립된 공간을 가지게 되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워요. 집은 아주 중요한 공간이에요. 스스로 집 안에서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어야 자신의 인생과 생활이 안정되죠. 어두운 집 혹은 우리 생활방식과 맞지 않는 집에서 생활할 때는 늘 어쩐지 불편하고 남의 집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 지금은 밖이 아닌 집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한 마음이 들어요.

가족이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계단 쪽 책장이 있는 공간이에요.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라오스에서 영문 서적을 이렇게 모으기 쉽지 않았어요. 아마 루앙프라방에서 이런 책장을 가진 집은 드물 거예요. 그리고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곳은 거실이에요. 전체적인 공간을 자연의 색감으로 연출했어요. 흙색의 라오스 핸드메이드 타일,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 직접 공수해온 나무로 제작한 계단. 그린 색상이 부족해 보이지만 거실 사방에 창을 내 실내에서도 정원을 볼 수 있어요. 편한 소파에 누워 티브이 쪽을 바라보면 마주 보고 누워있는 조각상이 있어요. 거실에 있으면 마음이 트이고 편안해요. 두 아들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거실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 집에 담긴 특별한 추억도 궁금해요.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두 아들이 독립된 방을 갖는 게 처음이었어요. 늘 엄마와 껴안고 함께 자곤 했는데 첫째 아들인 워릭이 일곱 살이었을 때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야 했어요. 아들은 물론 엄마도 서로 떨어지기 힘들어했죠. 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 서서히 독립해야 할 시간이라고 단호하게 생각했어요. 이제 각자의 방에서 자는 데 익숙해졌지만 가끔 제가 집을 비울 때면 함께 잠들곤 한다는군요. 

작년 겨울, 캐나다에서 고향 친구 두 명이 루앙프라방을 여행 겸 방문했어요. 라오스는 더운 나라지만 지대가 높은 루앙프라방의 겨울은 꽤 추워요. 단 두 달 추위가 찾아오는 계절을 즐기기 위해 정원에서 모닥불을 피워요. 난로가 없는 라오스에서는 함께 불을 피우며 손을 쬐는 것을 ‘핑파이’라고 해요. 도란도란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참 낭만적이고 좋아요. 친구들이 머무는 동안에도 모닥불을 피우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죠. 영어권 친구가 집에 머무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워릭과 헌트가 아주 신이 났었어요. 아빠가 아닌 사람과 실컷 영어로 대화하고 뛰어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새로운 문화의 사람들을 접할 기회라 아이들이 아주 신난 것 같아요. 앞으로 자주 지인들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가족의 작은 오두막
라우라 안데르쏜
FINLAND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는 라우라 씨는 두 개의 집을 오간다. 하나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숲속에 있다. 헬싱키 도심에 닿아있는 숲에는 작은 지붕이 드문드문 숨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하얀 통나무집이 라우라 씨의 ‘묘끼’다. 오두막, 별장을 뜻하는 묘끼Mökki는 핀란드식 코티지Cottage로, 자연에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녀는남편과 두 아들, 두 살배기 막내딸과 함께 자주 이곳을 찾는다. 짙은 백야가 내려앉은 초여름 날, 라우라 씨와 가족들은 어김없이 묘끼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토록 도심과 가까운 곳에 가족 별장이 있어요. 어떤 공간인가요?

저희가 이곳을 얻은 건 우연한 기회였어요. 시할아버님께서 핀란드-러시아 전쟁 당시 참전 용사셨는데, 그 보상으로 정부에서 묘끼를 하사했대요. 그 후 따님인 시어머니에게 관리를 맡기셨고요. 시어머니께서는 저희에게 물려주셨죠. 워낙 오래된 곳이라 낡은 부분은 허물고 마침내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었어요. 외관을 심플하게 꾸며서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전통 핀란드식 묘끼와는 차이가 있는데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뿌듯해요. 불과 2킬로미터 거리에 거주하는 집이 있어서 긴 시간 머물지는 않아요. 하지만 날씨가 따뜻하고 한밤중에도 환한 요즘엔 거의 매일 이곳에 와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배가 고프면 그릴에 음식을 구워 먹죠. 집에서 하는 캠핑 같아요.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에 자주 오진 못해요. 물론 난로가 있어서 이 작은 공간을 데우기에는 충분하지만요. 제가 나고 자란 미껠리Mikkeli라는 작은 도시에도 묘끼가 있었어요. 하지만 규모가 커서 관리가 까다롭고, 차로 두 시간 반 이상 달려야 하는 곳에 있어서 몇 번 가보지 못했죠. 이곳의 생활은 제게도 새로운 경험이에요. 

가장 좋아하거나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겨울이 길고 어두운 핀란드에서 햇살은 늘 귀하죠. 운 좋게도 이 집은 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지어졌어요. 요즘은 가족들과 테라스에 가만히 앉아서 따스함을 즐겨요. 아직은 이르지만 한여름 풍경을 가장 좋아하고요. 마당에 미니 풀장을 설치하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해요. 막내가 놀다가 잠이 들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와 맞닿은 곳에 사우나가 있어서 사우나를 즐기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도 하죠.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에 애착을 느끼는 것 같네요.

천천히 들여다보니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요.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관찰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건 제 삶의 방식 중 하나예요. 실내 인테리어를 즐기지만 자연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자연에 있으면 도심의 소리와 멀어져 잡념을 지우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온 감각으로 느껴요. 교감하는 거죠. 자연과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딸 민나와는 대부분 여기서 시간을 보내요. 숲을 걷고 나뭇가지나 솔방울을 바구니에 담기도 하면서요. 매일이 다른 놀이터고, 훌륭한 놀이도구도 많아요. 다만 아쉬운 건 두 아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이에요. 특히 큰아들은 사춘기를 겪고 있어서 이곳에 오기보다 개인 시간을 원하더라고요.

아쉬움이 느껴져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제 꿈은 핀란드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누리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머지않아 남편이 하는 공부 때문에 미국으로 갈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돌아오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학교에 가고 자유롭게 뛰어 노는 일, 가족들이 각자 영위하던 독립적인 생활에 제한을 받을 것 같아요. 제가 핀란드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안전과 평화 그리고 고요함이에요. 이곳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것 같아요. 

늘 중심에 가족이 있네요. 개인의 목표나 직업적 성취도 중
요하지 않나요? 

사실 저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 이 두 가지 외에는 원하지 않아요. 이름난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을 좇는 삶 같은 것보다 훨씬 중요하니까요. 남편은 늘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함께 잘 살아갔으면 해요.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사람과 패션을 좋아하는 저한테는 무척 신나는 일이죠. 보통 제게 일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아요. 결혼이나 중요한 파티 등 일생에 몇 번없을 그런 날이요. 저도 그 분위기 속에 함께하면 좋은 기운을 받는데, 그때마다 제 일이 더 소중하게 다가와요.

가족의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 어떤 시간이 이어질지 기대돼요.

얼마 전, 결혼 46주년을 맞은 시부모님께선 여기서 시간을 보내셨어요. 두 분은 나란히 앉아 샴페인을 마시며 기념일을 자축하셨죠. 이곳은 온 가족의 안식처예요. 이미 일상이 되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두 번째 집이나 다름없죠.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이곳을 물려줄 생각이고,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도 잘 사용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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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오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