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Far Away From Home

집 너머의 집

ⓒ안경

때때로 우리는 집이 아닌 곳에서 집의 감각을 느낀다. 사소한 대화와 무심코 터져 나오는 웃음,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마음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감정 말이다. 집 너머에서 또 다른 집을 발견한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안경

전체 | 코미디, 드라마 | 일본

ⓒ안경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

별다른 이유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고요한 곳으로 가고 싶은 날. 타에코는 커다란 캐리어에 짐을 채워 남쪽 바닷가의 조그마한 마을로 훌쩍 떠난다. 그저 조용한 관광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민박집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살펴보니 미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민박집 주인장 유지는 이곳이 관광이 아닌 사색을 위한 공간이라 말하고, 생물 선생님 하루나는 동네 마실 가듯 민박집에 찾아와 이리저리 귀찮게 말을 건다. 타에코에게 그들은 터무니없고 불편한 사람들이다. 아마 속으로는 집을 떠나온 걸 조금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유지와 하루나는 이곳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바닷가 마을에 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빙수 가게 주인 사쿠라.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동그란 안경을 쓴 사쿠라는 아침마다 타에코의 방에 들어와 아침을 알리고, 동네 사람들을 모두 모아 ‘메르시 체조’도 한다. 온화한 미소와 단단한 마음을 가진 그녀에게 타에코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간다. 멍하니 사색에 잠겼다가 함께 모여 식사하기. 심심할 즈음 낚시를 하거나 느린 속도로 대화하기. 속도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처럼, 아주 천천히 그곳의 시선에 스며든 타에코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사쿠라의 빙수를 맛있게 먹는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곳

 

“선생님. 여행은 문득 시작되지만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 거죠.”
“알고 있어.”
“선생님.”
“응?”
“저는 슬슬 돌아가겠습니다.”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제자 요모기는 타에코에게 이런 말을 남긴 채 돌아간다. 어느새 여름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사쿠라도 별다른 인사 없이 민박집을 떠난다. 하지만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다. 봄이 다시 찾아오면 덩그러니 바닷가를 지키던 빙수 가게에 사쿠라가 돌아올 테니까. 그리고 그곳엔 이미 타에코와 유지, 하루나가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곳이 집이라면, 사쿠라와 타에코에게는 남쪽 마을의 작은 민박집이 그들의 집 아니었을까.

남매의 여름밤

전체 | 드라마 | 한국

ⓒ남매의 여름밤

어쩌다가 한집에 모여서

가득한 짐과 함께 하얀 트럭에 올라탄 남매 옥주와 동주, 그리고 아빠. 세 가족은 철거를 앞둔 집에서 벗어나 예고 없이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으로 향한다. 끈적이는 여름 공기에 시원한 콩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빠가 괜한 소리를 한다.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니 혼자 계시기엔 조금 신경 쓰인다며 여름 방학 때까지만이라도 이곳에서 지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이번에는 고모가 남편과 갈라설 다짐을 하고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온다. 가짜 운동화를 파는 아들과 아옹다옹하는 두 손주, 솔직하지 못한 딸까지. 백발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에 누가 들어오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한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생신을 시끌벅적하게 축하한다. 동주는 무려 개다리춤까지 췄다. 모두의 ‘임시 거처’가 된 이곳에 좀더 마음을 붙인 날 밤, 옥주는 거실에 홀로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나날이 쇠약해지시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고모와 아빠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후 집을 팔려 하고 동주는 이혼한 엄마를 자꾸 만나 선물을 받아 온다.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거면서, 도대체 다들 왜 그러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얘들아. 너희 아빠랑은 얘기했는데, 너희 의견은 어떤지 궁금해서.”
“뭐를?”

“할아버지. 여기 계속 계시는 게 나은지 아니면 요양원으로 옮겨서 모시는 게 나은지.” 

“그걸 왜 우리가 결정해?”

 

마음을 솔직하게 터뜨리지 않고 자꾸만 결정권을 넘기는 어른들의 모습에 답답하기만 한 옥주. 옥주와 동주뿐 아니라 아빠와 고모 사이에도 생채기가 오가지만, 그래도 한집에 사는 가족이니까 라면 한 그릇이나 맥주 한 캔을 나눠 먹으며 날카로운 마음을 이리저리 다듬는다. 할아버지와의 작별을 맞이하는 가족들은 서로를 묵묵히 돕고, 집에 돌아와 곳곳을 훑는 옥주의 시선에는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유독 서럽다.

테스와 보낸 여름

전체 | 드라마 | 네덜란드, 독일

ⓒ테스와 보낸 여름

엉뚱한 소년, 더 엉뚱한 소녀를 만나다

“최후의 공룡은 죽을 때 알았을까? 자기가 마지막이었다는걸.” 소년 샘은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 중이다. 무려 가족과 함께 떠난 평화로운 휴양지의 바닷가에서 말이다. 마지막 공룡의 마음을 헤아리던 샘은 언젠가 세상에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해 ‘외로움 적응 훈련’을 진행한다. 수첩에 혼자 보낸 시간을 기록하는 샘의 눈과 입꼬리에서 왠지 모를 즐거움이 묻어 있는 건 비밀이다. 그때 샘 앞에 나타난 포니테일 소녀 테스. 잡동사니가 가득한 집에서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걸친 테스는 첫 만남부터 샘에게 살사 춤을 함께 추자고 한다. 모른다고 하니, 배우면 된다 대답하는 시원한 성격도 덤이다.

바람결에 부딪혀 사사로운 소리를 내는 숲과 너른 바다, 아늑한 집에서 샘과 테스는 엉뚱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사실 테스에게도 비밀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친아빠를 이벤트에 당첨된 것처럼 가장해 별장으로 초대한 것. 그곳에서 테스는 자신이 친딸임을 고백하려고 한다. 샘은 자신의 프로젝트보다 크고 놀라운 걸 진행하는 테스를 도와주려 하지만, 당당하고 활기찼던 소녀는 친아빠 앞에서 자꾸만 주저한다. 테스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우리 둘이서 무언가 해낼 수 있을까?

마침내 얻은 해답

 

“세상에는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고 우표를 모으는 사람이 있지. 어디서 들었는데 누군가는 킨더 조이를 모은다고 하더라. 최대한 많은 추억을 모으렴.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순간들 말이야. 너무 늦기 전에.”

 

남몰래 외로움 적응 훈련을 이어가던 샘은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발이 빠져버린다.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에 겁에 잔뜩 질린 샘을 구한 건 마을 외딴곳에 사는 힐러 할아버지.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는 누군가와의 추억이 있다면 외롭지 않다고 조언한다. 그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은 샘은 테스와 친아빠가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파티를 열고,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외로움 훈련은 그만둔다. 단 일주일뿐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의 집과 동네에서 추억을 쌓은 이번 휴가는 샘에게 가장 이상한 시간이자 최고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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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