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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취미
나에게는 취미가 있다. 당신에게도 취미가 있다. 취미 없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세상사 너무 고달파서 취미 하나 갖지 못한 채 나이 든 사람, 내 주변에도 몇 있다. 정체를 밝힐 순 없지만 그중 한 명을 떠올려본다. 그에게는 취미가 없었다. 대신 그는 일에 파묻혀서 지냈다. 가히 “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수준이었다. 그는 주말에도 출근했다. 아주 가끔씩, 회사에 뭐 놓고 온 게 있어 주말에 찾으러 가면 그는 어김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평일에 아무리 못해도 100명은 바글거리는 공간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없다. 은퇴한 지 오래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상상해 본다. 그가 어떤 삶을 경영하고 있을지를 떠올려본다. 글쎄. 아무리 애써봐도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의 그가 나에게는 영 낯설다. 이유를 곱씹어 본다. 그렇다. 그에게는 일이 곧 취미였다. 살아가는 보람 거의 전부를 일에서 추수했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언제나 일을 대충 했다. “최선을 다하면 도리어 역효과야.”가 그의 주된 논리였다. 그의 소신은 “힘을 좀 빼고 일해야 오래 할 수 있다.”였다. 이 사람 역시 지금은 은퇴하고 없다.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조금은 알고 있다. 여전히 즐겁게 잘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그간 못했던 경험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일이 곧 취미가 아니었다. 일과 (휴식을 포함한) 취미를 황금분할로 나눈 뒤 (수치로 굳이 따지자면) 7 대 3 정도의 에너지를 쏟았다. 그는 가히 워라밸의 선구자였다.
목하 취미 전성시대다. 당장 인터넷 조금만 둘러봐도 당신의 취미를 계발해 줄 강좌가 넘쳐난다. 어쩌면 당신은 이런 현상에 딴지 걸고 싶을지도 모른다. 조금 과하다 싶은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한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우리는 보통 취미라는 게 뭔가 자연발생적인 과정을 거쳐 산파되는 거라고 여긴다. 아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취미는 자연발생적일 수도 있지만 계발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강조하고픈 오늘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앞에서 언급한 두 번째 지인이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는 일단 하고 봤다. 처음엔 영 맞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반복해서 시도해 봤다. 요컨대 누적의 힘을 신뢰한 셈이다. 누적의 힘은 강력하다. 어벤져스로 따지면 거의 타노스급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취미를 천천히 계발해 나갔다.
실패가 없었을 리 없다. 실패는 불가피하다. 내가 낸 책에도 썼듯이 구직에서 실패해선 안 될 것이다. 입시 실패 역시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취미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조금 실패해도 괜찮다. 만약 영화 보기를 취미로 삼아볼까 하다가 영 안 맞는다면 미술 관람으로 갈아타면 그뿐이다. 괜찮다. 이걸 갖고 부장님이 뭐라 할 리가 없잖은가. 미술 관람이 지루하다면 음악으로 가볍게 환승하면 된다. 과장님이 뭐라고 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 과장님이 이상한 거지 당신 책임이 아니다.
단, 명심해야 할 태도가 하나 있다. 달랑 몇 번 해보고 나랑 안 맞는다고 섣불리 단정하면 안 된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누적의 힘이 본격 발휘되려면 아무래도 시간 투자와 반복은 필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느낄 것이다. 허들이 점점 낮아지고 있구나 싶은 존으로 스윽 하고 입성하는 듯한 그 기분 말이다.
나에게는 오랜 취미가 하나 있다. 물론 음악은 아니다. 이건 직업이기도 해서 취미라고 하기엔 좀 곤란하다. 차라리 LP 모으는 게 취미라면 취미다. 나는 달린다. 그것도 꽤나 자주 달린다. 처음엔 좀 싫었다. 아니, 많이 싫었다. 달리기만큼이나 자주 하는 자전거 타기와는 또 달랐다. 너무 단순 반복적인 행위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구기 종목을 선호했다. 축구를 했고, 농구를 했다. 그런데 이제 마흔다섯 살이다. 농구와 축구를 하기엔 무릎 상태가 걱정스럽다. 그래서 달렸다. 처음엔 천천히 달리다가 속력도 내보고 하면서 반복, 또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나는 어느새, 달리는 순간을 고대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과연, 누적의 힘이란 무섭다. 거의 소름이 끼칠 정도다.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달린다. 다 달리고 난 뒤의 보람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어서다. 어쨌든 그 고통, 조금이라도 줄여야 더 달릴 수 있다. 뭐로 보나 자명한 이치다. 고통 감소를 위해 내가 선택한 건 당연히 음악이다. 음악이 선물하는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내일도 겨울바람을 뚫고 달릴 것이다.
살다 보면 뻔한 줄 알면서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치게 마련이다. 이 곡이 그렇다. 달리기할 때 ‘달리기’를 듣지 않는 건 왠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한때 이 곡이 “자살을 뜻한다”는 괴소문이 돈 적 있었다. 윤상 씨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그럴 의도는 1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당신도 괜히 가짜 뉴스 믿지 말고 이 곡 들으면서 달려보기 바란다.
다비드 게타의 음악은 마치 달리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들린다. 비단 이 곡만이 아닌 다른 곡들, 예를 들어 ‘Titanium’ 이나 ‘Lovers on the Sun’ 등도 달리기할 때 플레이하면 힘을 불어넣는 데 효과 만점이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도 달린다면 이렇게 세 곡을 순서대로 들어보길 권한다. 속도를 아주 자연스럽게 쭉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 빼놓으면 섭섭하다. 물론 곡 제목처럼 목적지가 있어 달리는 건 아니지만 이 곡만큼 달리기를 위한 최적의 리듬 패턴을 가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뭐랄까. 빵처럼 서서히 부풀어가는 리듬에 맞춰 속도를 조금씩 올릴 때 이 곡을 꼭 듣는다. 절정에서는 가슴 벅찬 기분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