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Sweet Little Happiness

영국의 포토그래퍼 니나 안 가족

첫눈이 내리던 날

예쁜 복숭아 하나

반가워요. 선우가 18개월일 때 《wee》 매거진 인터뷰를 했었죠. 올여름 만 여섯 살이 됐다고요.

오랜만에 인사 드리네요. 우리 가족이 영국으로 온 지 벌써 2년 5개월이 됐어요. 눈이는 이제 영국 프라이머리 스쿨에 year 2로 등교해요. 우리와 늘 함께였던 토끼 ‘래버트’는 얼마 전에 하늘로 떠났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네요. 요즘 우리는 잠이 많은 햄스터 ‘피카’와 함께 잘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참, 선우는 ‘눈송이’, ‘눈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죠.

눈이의 본명은 알렉산더 선우 대링톤Alexander Sunwoo Darrington인데요.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별명으로 불려 왔어요. 눈이는 다행히 ‘선우’를 한국 이름으로, ‘알렉산더’를 영국 이름으로 잘 인지하고 있어요. 눈이에게 어릴 때부터 해주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첫눈이 내리던 날, 하늘나라 복숭아나무에서 놀던 아기 천사 눈이가 좋은 엄마를 발견하고 제일 예쁜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고선 엄마 배 속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집안의 전설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해서 시리즈라도 낼 지경이죠(웃음). 그래서인지 진짜 이름보다 별명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눈이가 요즘 푹 빠진 취미가 생겼다고 들었어요.

눈이의 최대 관심사는 ‘포켓몬 카드놀이’와 ‘서핑’이에요. 엄청난 집중력으로 포켓몬 카드 세트를 모으고 있어요(웃음). 언제 어디서나 포켓몬 캐릭터 안내서를 품에 안고 다닌답니다. 덕분에 이번 여름 방학 때 영어 리딩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오늘도 포켓몬 책을 들고서 아빠와 패밀리 캐러밴이 있는 스코틀랜드로 서핑을 하러 떠났네요. 작년에 키즈용 스몰 보드를 사서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겁이 없어서 금세 파도를 타더라고요. 스코틀랜드 바닷물이 한여름에도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전신 웨트슈트가 필수인데요. 눈이는 감기에 걸려서 콧물이 턱까지 흘러도 말릴 틈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요.

 

대단해요. 눈이는 호기심이 많은 성향인가 봐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푹 빠져들어 연구를 하죠. 어느 날 제가 혼자 있고 싶어서, “엄마는 그거 잘 못하니까 너 혼자 해볼래?”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눈이가 제 손을 가만히 마주 잡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완벽하게 할 필요 없어. 잘 못해도 되니까 그냥 한번 해봐. 그럼 엄마도 진짜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될거야.” 이 말을 듣고 감동받아서 설득당하고 말았어요. 마치 저도 마음 깊이 원했지만 잘 몰랐던 가치를 이제야 깨달은 느낌이 들었죠. 눈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커졌고요. 덕분에 제가 평생을 피해오던 물과 바다, 두려워하던 활동들에 도전해보고 있어요. 아직 서툴지만 올여름엔 수영을 참 열심히 했죠. 눈이를 키우면서 저도 많이 성장했어요.

 

어른인 저도 눈이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눈이가 활발하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하네요.

우리 가족은 아무리 날씨가 궂어도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가요. 셋이 함께할 시간이 생기면 그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눈이가 생각보다 금방 자라고 있어서 같이 행복한 경험을 많이 만들자는 생각이에요. 코로나19로 상황이 힘들 때는 틈나는 대로 집 앞 정원에 나가 꽃과 나무, 야채를 심었어요. 물을 주고 잡초도 열심히 뽑았죠. 우리는 눈이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요. “눈이 곁에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저 멀리 있는 눈이 친구들까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 우리는 눈이를 늘 도와줄 거야. 사랑해.” 이런 말들 덕분인지 눈이는 사람을 잘 믿고 모든 일에서 긍정적인 시그널을 곧잘 발견하는 것 같아요.

 

따뜻한 말들이네요. 엄마의 마음이 안정되어야 아이의 마음도 튼튼할 수 있는데, 눈이는 참 마음이 건강한 엄마를 둔 것 같아요.

사실 육아를 하면서 전업주부가 된 저를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눈이를 키우느라 톰과 둘이서 서로의 언덕을 자처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죠. 어쩌다 무리해서 일을 하게 되면 결과물이 기대 이하로 나오기도 했고요. 그땐 마음이 참 괴로웠어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생활 패턴이 달라져서 점점 멀어졌고요.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 질문도 하게 됐죠. 이런 고민의 시간을 지나 지금의 저는 복잡한 생각은 뒤로하고 단지 오늘을 잘 살아보자고 마음먹어요. 당장 성취 가능한 목표에 집중하기로 한 거죠. 아침 러닝 뛰기, 야식 먹지 말기, 영화 한 편 보기, 팟캐스트듣기, 영문 책 다섯 페이지 읽기처럼 쉽고 작은 일부터 시작했어요. 육아를 하면서 잃어버리던 삶의 감각들을 깨우려는 노력이었죠. 제가 눈이를 대하면서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거예요. 기분은 바로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그래서 필라테스, 줌바, 요가까지 다양한 운동에 도전했어요. 영국에 와서 정원을 가꾸며 식물을 소중히 하는 취미도 만들었고요.

자신을 챙기는 일이 곧 아이를 위해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이었네요. 이번 《wee》 매거진의 주제가 ‘정서’예요. 눈이는 스스로 감정을 잘 알아채는 편일까요? 아직 어리지만요.

글쎄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눈이는 어릴 때부터 달리다가 넘어지면 꼭 어디론가 달려가 숨어버리곤 했어요.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데도 꾹 참고 있었죠. 처음엔 왜 그러는지 이유를 캐물었는데, 아직 자기 마음을 잘 설명하지 못하더라고요. 눈이의 감정을 쉽게 넘겨짚고 싶지 않아서 이제는 “눈아, 아프면 크게 우는 거야. 이렇게 참지 않아도 돼. 아프면 엄마한테 꼭 와.”라고 말해줘요. 가끔 만화를 보다가 누군가 위험에 처하거나 슬픔에 빠지면, 두 귀를 꼭 막고 냅다 도망가기도 해요. 제가 느끼기에 눈이는 아직 슬픔과 이별, 아픔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요. 아마도 아직 여섯 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슬픔이 아니겠죠.

 

요즘 눈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요. 아이의 꿈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들이 있나요?

전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는데 요즘은 과학자를 꿈꾸고 있어요. 앞으로도 눈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계속 생겨날 거고 꿈도 몇 번 더 바뀌게 될 거예요. 저는 어떤 꿈이든 눈이의 현재를 지지하며 눈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충분히 존중해주고 싶어요. 작년부터 어린이 월간 과학 잡지를 구독해서 읽고 있는데요. 자기 이름으로 택배가 오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웃음). 그러고보니 제가 눈이를 위해서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정서적인 안정에 기반을 둔 것 같네요. 학습과 관련된 사고의 깊이는 체력과 정서적 안정에서 오는 거라 믿고 있어요. 눈이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집 안에서의 루틴을 만들어 주기도 해요. 목욕 시간, 베드타임 스토리는 일정한 시간에 되도록 맞추려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과 학습에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아요. 눈뜨면 내일 일어날 일이 너무나 궁금하다고 재잘재잘 방글방글 웃다가 잠드는 눈이의 한결같은 일상을 지켜주고 싶어요. 어제도 잠든 눈이를 보면서 꿈속에서도 행복하라고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이렇게 작고 귀여운 행복을 오래오래 만끽했으면 좋겠네요. 눈이에게 따뜻한 솜이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작가님 사진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던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사진에 담긴 눈이의 모습에서 ‘귀여운 행복’이 잘 느껴져요. 눈이 사진은 늘 마음이 가는 대로 찍고 있어요. 잘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의 정체는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경이로움’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표정, 귀여운 몸짓, 반짝거리는 순간들…. 모든 엄마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을 저도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눈이가 커서 보면 좋아할 순간들을 기록하려 해요. 훗날 혹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앨범을 꺼내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길 바라면서요. 제가 사진 속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제 시간의 일부분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때 그 순간, 눈이와 함께 느끼던 감정이 사진에 선명히 묻어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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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Photographer Nina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