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To Heart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나눠요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작은 문화 안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마음을 나눈다. 차곡차곡 대화가 쌓여갈수록 가족의 관계는 더 고유해진다.

다정한 타라홈에 놀러 오세요

김민영 ENFP | 일러스트레이터
리아 9세 RED YELLOW

가족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춘천의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집에서 인도에서 태어난 연구원 아빠, 일러스트레이터 엄마, 아홉 살 딸 이퍼리아, 세 살 강아지 쿠키와 살고 있어요. 우리끼리는 이 집을 타라홈이라고 불러요. ‘타라’는 리아의 태명인데요. 리아를 임신했을 때 산책하는데 남편이 별을 보고 타라라는 태명을 지어주었어요. 인도 말로 별이라는 뜻이래요. 그 뒤로 애칭처럼 부르고 있어요.

 

태어난 나라, 자라온 문화가 다른 두 분은 어떻게 만났나요?

남편과 저는 한국에서 만났어요. 남편은 이미 한국살이 3년차로 한국어에 능숙했고, 한국 문화에 꽤 적응한 편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인도 배낭여행을 두 번 다녀온 후 인도 문화에 푹 빠져 있었어요. 충무로 ‘오!재미동’에서 정기적으로 상영하던 인도 영화들을 보고 인도 음식을 먹으며 데이트했죠. 그러니까 남편은 청국장과 닭갈비를 좋아하는 반 한국인, 저는 인도 여성분들처럼 코에 피어싱을 하고 커리를 좋아하는 반 인도인이었다고 할까요? 친구들 말로는 저희 가족은 춘천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거 같대요.

 

결혼 후에 맞추기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결혼 후 제일 충돌한 건 저녁 메뉴였어요. 먹고 싶은 게 달랐거든요. 지금은 서로의 식성을 존중해 각자 만들어 먹어요. 한 식탁에 남편의 인도 커리, 저의 순대볶음, 타라의 파스타가 같이 올라오는 날도 있어요. 식탁의 세계화죠(웃음). 남편이 고향이 그리울 거 같아 그 부분이 제일 안타까워요. 코로나19 때문에 2년째 못 가고 있거든요. 인도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지만 그리움을 채워주기에는 아마 부족하겠죠. 대신 춘천에 사는 다른 인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에요.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아이들마다 기쁘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타라는 어떤 편인가요?

제가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봐서인지 타라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요. 바다에서 돌고래를 보거나 친구가 집에 놀러 와 재밌게 놀던 경험을 일기처럼 그려요. 저는 나중에 읽어보고 그땐 몰랐던 아이의 감정을 읽으며 감격하곤 해요. 또 가족 모두 요리를 좋아해요. 타라도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를 돕곤 하는데 어느 날 반 친구에게 마음이 상했던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내는 거예요. 속상했겠다고 위로해 주니 그때는 많이 슬퍼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이제 마음이 괜찮아져 말해주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아는 어린이가 되었어요. 벌써 혼자 슬픔을 삭이는 아이가 안됐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요.

 

키만큼 마음도 많이 자랐네요. 타라의 성장을 언제 느끼나요?

외동이라 늘 작은 아기 새 같은데 최근에 많이 컸다는 걸 느껴요. 원래 혼자 있는 걸 무서워했는데 요즘은 책 읽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자 방에 있는 시간도 생기고 마트 갈 때 남편과 저만 다녀오라고 보낼 때도 있어요. 조심성이 많은 아이라 믿고 조금씩 혼자 있는 시간을 주고 있어요.

 

타라와는 평소 언제 가장 많은 대화를 하나요?

주로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눠요. 아직 엄마, 아빠가 재워주거든요. 타라가 학교와 피아노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얘기해 주는 편인데 제 어린 시절도 떠올라 저도 그 시간을 좋아해요. 엄마 어릴 때는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많이 먹었다고 이야기해 준 뒤로는 수영장 다녀와서 함께 떡볶이 데이트를 해요. 타라의 소원은 학교 앞에 떡볶이집이 생겨서 친구와 하교 후 떡볶이를 먹는 거예요. 요즘은 학교 앞 분식점과 문방구가 사라져서 아쉽네요.

 

아빠와의 대화 시간도 궁금해요.

저희 가족은 가벼운 등산과 산책을 좋아하는데 걸을 때는 늘 아빠가 타라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요. 신화, 자연과학, 어린 시절 나무 타고 놀던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들을 들려줘요. 저는 뒤에서 부녀의 모습을 보며 쫓아가거나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편이에요.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하네요. “나의 일부를 타라에게 전달하는 느낌이에요. 유전적으로 타라에게 인도인의 외모를 주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타라가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인도를 채워주고 싶어요. 어린 시절 뭘 하며 놀고 시간을 보냈는지, 뭘 먹고 자랐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인도 신화나 구전을 이야기해 주는데 타라가 재밌어해 기쁜 마음으로 들려주고 있어요.”

 

집에서 갈등이 생길 때도 있나요?

화를 내지 않는 남편을 닮아 타라도 온순한 성격이라 갈등은 없는 편이에요. 다만 정리 정돈이나 생활 습관 때문에 제가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혼나고 나서 그날은 잘하다가 다음 날이면 본래 습관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웃음). 잘못을 지적한 후에는 방에 가서 잘못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요. 반성을 다 하고 나면 타라는 저에게 와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고, 꼭 안아주며 상황을 마무리해요.

 

두려움, 분노,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건강한 성장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가 이런 감정을 맞닥뜨리는 사건이 있을 때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타라는 감정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인데 가끔 같은 반 남자 친구들이 장난칠 때 속상하다고 말해요. 그럴 때는 타라의 속상한 감정에 먼저 공감해 주고 안아줘요. 그리고 장난친 친구에게 타라의 감정을 말해 주라고 이야기해요. 그 친구는 재미로 하지만 타라는 많이 슬프다고요. 말이 잘 안 통하는 것 같으면 큰 소리로 화났다는 표현을 한다는데, 그러면 그 친구는 남자 화장실로 도망간대요. 제가 “어이쿠 그 친구는 타라 놀린 벌로 화장실 냄새를 견뎌야 하다니!” 하고 같이 흉을 보면 타라도 같이 껄껄 웃으며 넘어가요(웃음). 언젠가는 타라가 만화를 그렸는데 여자 친구들이 갑자기 나타난 괴물을 물리치는 동안 남자 친구들은 청소를 하는 장면이더라고요. 타라만의 분풀이 같아서 너무 귀여웠어요.

 

가족이 함께 행복을 느끼는 소소한 순간들이 궁금해요.

우리 가족이 느끼는 소소한 행복은 마당이 있는 타라홈에 있어요. 남편과 저의 신혼 때 꿈이 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거였어요.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꿈을 이뤄 타라가 다섯 살 때 이 집으로 이사 왔죠. 봄에는 나무와 꽃씨를 심고 텃밭을 가꾸고, 여름에는 채소를 수확하고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해요. 가을에는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담아 뒷산에 올라가서 컵라면을 먹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아빠가 끌어주는 눈썰매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녀요. 또 생산적인 노동을 좋아하는 가족이라 마당에 그네를 직접 만들고, 최근에는 남편의 오랜 계획이던 화덕을 만들었어요. 올봄 내내 남편과 직접 벽돌을 쌓고 내화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붙이며 작업하느라 완성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뿌듯해요. 타라가 직접 색유리로 꾸며서 더 특별하고 근사해졌어요. 덕분에 여름 내내 마당에서 직접 피자를 구워 먹었는데, 타라가 생각보다 피자를 잘 만들어서 놀랐어요. 코로나19 상황이 마무리되면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피자를 구워주고 싶어요.

우리 가족의 대화 도구
다락방을 오르내리는 가방

 

타라가 3층 다락방에 올라가 놀 때가 있는데 원하는 것을 편지에 쓰거나 그려서 줄을 매단 가방에 넣어 2층으로 내려보내요. 그러면 저희는 답장을 써주거나 리스트에 있는 물건을 넣어줘요. 가방이 채워지면 줄을 잡아당겨 가져가고요. 대부분은 간식이나 장난감인데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정리하는 건 남편 몫이라 귀찮을 만도 한데 잘 들어주네요. 몇 년 전 인도 여행할 때 길을 걷다가 3층 사는 아주머니가 양동이에 줄을 묶어 1층에 있는 가게에 내려주며 원하는 걸 사는 모습을 보고 타라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예요. 셋이 앞에 서서 재밌게 구경하던 추억이네요.

몸으로 표현하는 자유로운 아이

양윤정 ISFJ | 디자인 저널리스트
밀로 10세 YELLOW

가족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프랑스 및 주변국의 디자인 관련 뉴스를 한국 매체에 기고하는 통신원 일을 하고 있어요. 밀로 아빠는 파리시 소속 조경사로 늘 식물과 함께하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죠. 밀로는 만 10세로 프랑스에서는 이제 막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어요.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아이들마다 기쁘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기 수월한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밀로는 어떤 편인가요?

엄마를 닮아 글과 그림으로 소통하는 어린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대와 달리 몸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텍스트 암기보다 그림이나 동작 암기에 능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감정 표현도 몸을 사용해 보여주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장소에 갔을 때 여기가 왜 좋은지 말로 설명하는 대신 춤으로 표현하죠. 마임을 하는 것도 즐기고요.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바다를 보니 참 좋지? 어떻게 얼만큼 좋아?’라고 묻자 ‘이만큼’이라고 하면서 몇 분간 춤을 추더라고요. 발레에서 배운 동작 같았는데 바다의 물결을 표현한 거라고 했어요.

 

국적도 나이도 언어도 다른 두 분이 부부로 연을 맺은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지금은 물론 가장 편안한 사람이겠지만, 서로를 대할 때 조심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우습지만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제가 심하게 성을 내기 때문에 남편이 조심하는 편이에요. 감히 그랬다가는 프랑스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몇 배로 들어야 하거든요. 국적이 다르지만 부부간의 갈등은 세상 어느 부부나 같은 것 같아요. 사소한 집 안 청소 문제부터 아이 교육에 관한 의견 충돌 같은 건데, 10년 넘게 함께 살다 보니 절충안이 저절로 찾아지고 있어요.

 

남편 분이 가끔 마음을 표현할 때도 있다고요.

남편이 종종 주방 테이블 위에 ‘어제저녁 맛있었어. 고마워.’ 같은 메시지를 남겨놓고 출근할 때가 있어요. 사소한 거라 크게 감동도 없고 고맙다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한 번은 오늘은 너의 날이라 축하한다는 글과 함께 현찰을 조금 놓고 간 거예요. 알고 보니 ‘성 이베트Saint Yvette’의 날이었어요. 프랑스 달력에는 성인들의 이름이 매일 표기되어 있는데, 제 프랑스 이름이 이베트거든요. 저는 남편 이름의 날은 기억도 못 하는데(웃음) 귀엽고 고맙더라고요.

밀로네는 주로 언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지 궁금해요.

얼마 전까지는 밀로와 손잡고 5분 정도 되는 등굣길을 함께 걸었어요. 그 길에서 둘이 대화하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아이가 열 살이 되어 혼자 등하교 하기 시작하면서 그 즐거움이 사라졌네요. 프랑스는 수요일에 열두 시면 학교가 끝나기 때문에 수요일 오후는 온전히 같이 보내는데요. 함께 미술관을 가거나 장을 보기도 하지만 업무 미팅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동행하기도 해요. 제가 하는 일을 함께 보고 경험하니 예술에 관심도 갖고 경외심도 느끼는 것 같아요. 밀로가 현대미술이나 디자인 작업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짧게라도 함께 토론할 때는 저도 즐거워요. 아이의 표현에 웃음이 터질 때도 많고요. 몸으로 하는 놀이는 제가 잘 해주지 못해서 남편이 담당해요. 자전거 타기, 하이킹, 낚시 같은 활동을 하면서 남자들만의 시간을 가지는데, 주로 천문학이나 지질학, 공룡,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가족이 함께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텐데요. 밀로네는 어떤가요?

밀로 아빠는 남프랑스 사람이고 라틴계라 감정 기복이 심하고 매우 솔직한 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반면 저는 그 반대인데, 갈등이 생겼을 때 그의 리듬에 맞춰 함께 동요한다면 집이 폭발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내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면 싸움으로 커지지 않는 편인데 아이와의 갈등도 비슷해요.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세 번 이상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말라’라는 규율이 있는데, 두 번까지는 웃는 얼굴로 말하지만 세 번째 주의에도 응하지 않으면 큰 소리가 나죠. 엄마는 평소엔 친절하지만 화가 나면 무섭다는 인식 때문에 아직 이 방법에 아이가 잘 순응하는 편이에요. 사춘기가 오면 다르겠지만 아직 아이와 큰 갈등은 겪어본 적이 없어요.

 

밀로가 열 살이 되면서 아는 것도, 궁금한 것도, 그만큼 실망하는 일도 많을 텐데요. 요즘 밀로가 정서적으로 크게 느끼는 것이나 그로 인한 변화가 있나요?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가장 실망하고 상처받는 부분도 관계에서 오는 것 같아요. 늘 긍정적이고 아직 천방지축인 것 같던 아이가 친한 친구가 쉬는 시간에 자기랑 안 놀고 다른 아이랑 놀았다고 속상해하는 걸 보고 ‘잘 자라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다음 쉬는 시간에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놀이를 제안해서 같이 하자고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해주는 게 제가 도울 수 있는 전부였죠. 물론 이 둘은 여전히 절친으로 잘 지내고 있어요. 그 외에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고, 변성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도 하고,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집에서 오래 있어보고 싶다는 얘기도 해요. 어른의 삶을 동경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지금부터 작은 상처와 시련이 꾸준히 찾아올 텐데 잘 극복하기를 바라요.

 

그런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어루만져 주는 편인가요?

제가 방패가 되어 아이의 시련과 상처를 막아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고 방관만 한다는 말은 아니고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부모는 존재만으로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릴 적 집에 들어오기만 해도 심적 안정을 얻었으니까요. 엄마가 지어준 집밥을 먹으면서 그날 하루 일과를 얘기하는 걸로 이미 치유받고는 했죠. 밀로도 그렇게 느끼기를 바라요.

 

엄마의 직업, 취향과 프랑스 문화의 덕으로 밀로가 예술의 아름다움을 가까이, 자주 접하는 것 같아요. 그런 아름다움이 아이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텐데요.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나요?

‘데커레이션’이나 ‘디자인’, ‘현대미술’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걸 보면 제 일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싶어요. 학구적인 아이는 아니지만 뮤지엄 가는 걸 즐기는 태도만으로도 부모로서 만족해요. 좋은 취향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 외에도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다양한 경험과 취미생활을 알려주고 있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환경을 온전히 활용하면서 자신이 가진 문화적 배경을 오아시스 삼아 살면 좋겠어요.

 

가족이 함께 행복을 느끼는 소소한 순간들이 궁금해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난 밀로가 저희 침대로 올라와 셋이 함께 누워 있는 순간이요. 그리고 가족 여행이요. 프랑스는 방학이 정말 자주 있어요. 여름에 두 달간의 방학을 제외하고도 2주간의 봄, 가을, 크리스마스, 겨울 방학이 있어요. 방학마다 짧게라도 가족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이가 자랄수록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서 여행이 점점 재미있어지고, 여행 중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즐겁거든요. 코로나19 기간에도 이동금지령이 내려졌을 때만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열심히 다녔는데, 식당도 체육관도 뮤지엄도 모두 닫던 그 기간에 여행도 다니지 못했다면 코로나 우울증이 왔을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가족의 대화 도구

손 메모와 손 편지, 그리고 음악

 

애교가 많은 남편은 핸드폰 문자보다 손 편지와 손 메모를 선호해서 그 방법으로 자주 표현해요. 시를 쓰기도 하고 음악을 만들어 기타를 치며 들려주기도 하고요. 그럼 아들은 기타 리듬에 맞춰 박자를 넣거나 춤을 추면서 분위기가 흥겨워지죠.

가족의 대화의 장이 되어주는 그림일기장

이헌희 ENFP | ‘스너글북스’ 대표
하준 9세 YELLOW

가족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가족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파는 ‘스너글북스’의 대표인 엄마, 광고 회사에서 PD로 일하는 아빠, 매일 그림일기를 그리고 쓰는 아홉 살 하준이, 이렇게 세 사람이에요.

 

SNS에 꾸준히 올리시는 하준이의 ‘준스저널Jun’s Journal’을 재미있게 봤어요. 그림, 일기, 오늘의 단어·한자·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던데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하준이는 작년 코로나19와 함께 초등학생이 되었어요.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상황 앞에서 엄마이자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무력한 마음이 많이 들었죠. 그렇지만 계속 기운 빠진 채로만 지내기엔 아이와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잖아요.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사라져 가는 일상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일기’를 생각했어요. 저 역시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오기도 했고요. 정확히는 작년 3월 3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준이와 함께 그림일기를 썼어요. 한글도 다 떼지 않은 터라 무작정 시작했다는 말이 맞겠네요. 처음에는 그림도 글도 힘을 빼고 일상을 편안하게 기록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었어요. SNS에는 아이의 동의를 구해 꾸준히 올리고 있고요.

 

일기를 쓰면서 아이랑 무얼 나누고 싶었어요?

준스저널에서 ‘기록’만큼이나 중요한 건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에요. 물론 아이가 일기를 쓰는 동안 눈앞의 집안일을 후다닥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와 식탁에 둘러앉아 무엇을 쓸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그림 도구는 무엇을 쓸지 등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중요한 루틴이 되었어요. 그림과 글만 꾸준히 써오다가 그날의 단어, 한자, 음악 등 일기와 관련된 것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더해졌고요. 일기를 쓸 때는 그날의 주제와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해요. 주로 제가 선곡하는 편인데, 요즘은 하준이도 디제잉에 제법 욕심을 내고 있어요. “내 생각에 지금은 이 음악이 딱인 거 같은데?” 하면서요. 글과 그림에 음악까지 얹히니 저녁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해지죠. 비록 집안일은 잔뜩 쌓여 있지만요(웃음).

 

그 시간 동안 가족 모두가 느끼는 게 많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흔들리고 불안했던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고요. 무엇보다 매일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힘이 생겼어요. 스무 권이 넘는 준스저널을 통해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생긴 것 같아 무척 든든해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견주어 보며 낄낄대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해요. 매월 마지막 날에는 그 달에 쓴 일기를 함께 쭉 읽어 보는데요. “내가 이랬단 말이야? 세상에, 말도 안 돼!” 하면서 자기 일기에 푹 빠진 모습이 아주 볼 만하답니다. 날로 늘어가는 드로잉과 글쓰기 실력은 덤이지요.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기록해 준 하준이에게 고마워요. 올봄에 코로나19 여파로 스너글북스 오프라인 숍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주 내내 기분이 울적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하준이가 마음을 다해 그려준 아름다운 책방 그림과 일기가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원한다면 ‘함께 일기’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삶은 계속되고, 아이는 커나가고, 기록은 힘이 세니까요.

기록으로 대동단결한 가족에게도 크고 작은 갈등은 찾아오기 마련이겠죠. 하준이네는 갈등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가나요?

저희도 여느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시시때때로 싸우고 화해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우리가 전혀 안 싸울 순 없지만 잘 싸울 순 있다고요. 저도 예전에는 갈등 자체를 싫어하고 다툼이 생기면 피하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죠.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Mister Horizontal & Miss Vertical》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말 그대로 수평적인 것만 좋아하는 한 남자와 수직적인 것만 선호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예요.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아요. 그 아이는 수평과 수직, 가로와 세로, 둥근 것과 날카로운 것을 모두 품은 또 다른 한 사람이 되죠. 그렇게 세 사람은 손을 잡고 나란히 앞으로 걸어가요. 누군가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게 소통의 시작이자 끝인 거 같아요. 저희 집은 그날 싸운 건 그날 화해하는 게 원칙이에요. 자기 전까지 털어 버리지 않으면 캄캄한 밤에 혼자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거든요.

 

부정적인 감정도 건강한 성장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가 이런 감정을 맞닥뜨리는 사건이 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요.

아이가 커나가면서 감정의 결이 촘촘해지고 깊어지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요. 특히 낯설고 부정적인 감정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면 저 역시 마음이 쿵쾅거려요. 그럴 땐 무조건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이를 꼭 안고 등을 가만히 쓸어줘요. 우는 아이를 붙잡고 너 왜 우냐고 캐묻는 것보다 어리석은 대처는 없는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가 눈물을 훔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엄마인 저는 기다리고 들어주고 끄덕이기만 하면 돼요.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죠. 섣부르게 아이의 감정에 끼어들거나 훈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럴 때 그림책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는데요. 그림책방을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림책은 정말이지 최고의 소통 도구예요. 아이에게 무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거나, 남편과 잦은 이견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는 언제나 그림책을 먼저 펼쳐 들어요. 쉽지만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소통의 문을 두드려 줘요. 그림책 이외에도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옆에 두면 참 좋은데요. 아이도 엄마도 자기 마음을 잘 살피고 보듬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초등학생인 아이에게는 《아홉 살 마음 사전》, 엄마에게는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도 추천하고 싶어요.

 

아이나 남편분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나요?

제 목소리가 저음인데요, 아침에는 무조건 하이톤으로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해요. 하준이가 눈을 뜨면 “굿모닝! 잘 잤어? 오늘은 무슨 재미난 꿈을 꿨어?” 하면서 일부러 마구 부산을 떨어요. 날이 흐리건 맑건 매일 ‘오늘도 기분 좋은 날!’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밤에 잘 때는 그날 있었던 일 중에 좋았던 일 한 가지와 나빴던 일 한 가지를 서로 이야기해요. 좋았던 일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중히 담아두고, 나빴던 일은 ‘에잇, 그까짓 거!’ 하면서 훌훌 털어버려요. 이것도 하준이가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밤 잠자리에서 해온 리추얼이에요. 아이를 위해서 생각해 낸 건데 지금은 제가 더 많이 도움을 받고 있네요.

 

가족이 함께 행복을 느끼는 소소한 순간들이 궁금해요.

저희 집의 모토처럼 여기는 말이 있어요.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벽에 붙여두고 아침마다 한 번씩 되새겨요. “집에서 나와야 하는 소리는 세 가지다. 밥 짓는 소리, 책 읽는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다.” 코로나19 이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로 인해 가족이나 행복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아는 힘도 더 키워졌고요. 주중에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함께 일기를 쓰는 시간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골라 뒹굴뒹굴하며 읽는 스너글 타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요. 주말에는 요리를 좋아하는 아빠의 레시피로 만든 특별 요리를 잔뜩 먹은 뒤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게임하는 게 작은 기쁨이에요. 또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격렬하게 댄스 배틀을 하기도 해요. 1등은 언제나 이미 정해져 있지만요(웃음).

우리 가족의 대화 도구

블랭크 메모리 게임 카드

 

저희 가족은 여러 보드게임 중에서도 메모리 게임 카드 놀이하는 걸 즐기는데요. 다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스스로 그려서 만들 수 있는 카드를 찾고는 무척 기뻤어요. 주말에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림을 슥삭 그리고 나서 카드 놀이를 한판 하곤 해요. 우리 가족만의 개성이 묻어나 더욱 애정이 가는 도구예요.

편지와 그림과 상장

 

평소에 남편은 그림 그리는 걸 즐기고 저는 글쓰는 걸 좋아해요. 특별한 날에는 각자 선호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요. 결혼한 해에 남편이 그려준 제 초상화는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그리고 매년 연말이 되면 가족들끼리 한 해 동안 열심을 내어 준 서로를 위해 상을 주는 시상식을 열어요. 작년에 하준이가 저희 부부에게 준 상장과 따뜻한 포옹은 그 어떤 상보다 더 크고 의미 있었어요.

언제나 그림책


‘화’ 하면 생각나는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은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책이에요. 아이에게도 자주 읽어주고 제가 화날 때도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요. 읽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법 같은 책이에요. 두려울 때는《쿵쿵이와 나》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여요.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