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훈은 모아에게 사는 이유를 물었고 그녀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글을 쓰고 싶어. 언젠가는. 여행은 늘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싶고…” “그래. 하자. 하면 돼.” 여행하듯 살고 살듯이 여행하는 것. 부부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삶을 상상 속에 가두지 않기로 했다. 유럽 배낭여행으로 시작해 1년간의 밴 라이프, 프랑스 무샹에서 보낸 45일간의 일상, 제주 연세 집에서의 오늘까지. 모아와 남훈은 자신들을 ‘커플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대신하며 일상을 예술로 기록해 가고 있다.
원하던
고립이었습니다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린 날 모아와 남훈은 제주 집 속에 깊이 갇혔다. 원하던 고립이었다. 문을 열지도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내리는 눈 풍경을 바라봤다. 앞마당 너머 눈보라 속에 서있는 삼나무의 굳건한 모습. 자연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둘은 안정감을 느꼈다. “제일 좋아하는 풍경은 아침에 침실 블라인드를 걷으면 보이는 장면이에요. 창밖으로 눈 내리는 순간, 흐르는 빗줄기, 쏟아지는 햇살과 파란 하늘을 보면서 간절히 원했던, 현재 누리고 있는 오늘을 인식하곤 해요.”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는 남편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고 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가끔은 둘이서 요가도 하고, 날씨가 포근하면 마당에 나가 팔을 벌리고 일광욕을 한다.
요즘 두 사람의 고민은 제주에서 무엇을 관찰하며 기록해야 할지 찾아가는 것이다. 그저 날씨에 따라 그날의 할 일을 정하며 천천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1년간 밴에서 살았던 날들에 관해 묻고 싶어 연락했는데, 두 사람은 지나간 삶을 말하며 현재의 삶도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모아와 남훈에게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그대로, 끊임없이 이어감에 있을 것이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갑니다
“서까래와 기둥에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누군가의 흔적이 있었어요.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에 시멘트가 발리지 않은, 진짜 제주 돌담과 귤밭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죠. 네, 거기에서부터 우린 이 집에 반했어요.”
원하는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 지금’ 행하기 위해서 정했던 지난 날들. 밴과 무샹에서의 삶을 결정한 것처럼 제주 집에서의 일상 역시 시작은 같았다. 제주에 집을 구한 이유를 묻자 두 사람은 답했다. “무샹 같은 시골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싶어서 제주에 오게 됐어요. 원래는 한 달만 살아보려고 했는데, 운명처럼 발견한 집에 반해 일년을 살기로 한 거죠. 이런 시도가 모여 우리의 삶이 될 거라고 확신했어요.” 모아와 남훈이 사는 집엔 늘 마지막이 있다. 밴에서의 1년, 무샹에서의 45일처럼 여행을 하듯 끝을 기약하는 일. 그래서 더 값지고 절실한 매일이 이어진다.
서로가 집이 되어
살아갑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저에게 영감이 돼요. 아내가 쓴 글을 보면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것이 음악으로, 영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죠. 표정을 보면 사진으로 담고 싶어 지고요. 아내 자체가 저에게는 영감의 샘이에요.”
삶을 예술로 기록하는 모아와 남훈에게 영감의 시작은 서로다. 일도 일상도,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하든 함께하는 부부는 둘이어야 비로소 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뮤지컬 무대에서 함께 연기하며 만난 두 사람의 인연은 어느덧 19년이 되었다. 늘 함께 있지만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서로를 애틋하게 대한다. “저는 아내와 같이 있는 게 정말 좋아요. 오늘도 내일도 마지막일 수 있는데 떨어져 있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가끔 떨어질 날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준비하기도 해요. 그럴 땐 늘 ‘우리를 깊이 그리워하며, 서로를 기억해 주자.’고 말하죠.”
모아와 남훈은 팬데믹 시대에 집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대신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둘에게 서로는 그 자체로 집이다. 집이 바로 곁에 있으니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도 불안하지 않다. 배낭을 메고 걸으며 텐트에서 잠을 잘 때도, 다른 나라에서 몇 달을 지내고 제주와 서울을 오갈 때도. 시작부터 안정감이 두 사람을 맴돌았다. “지금까지 집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저희는 공간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그 집에서 서로 함께 보낼 시간, 각자의 시간을 쌓아가는 데 적합한 공간이 필요할 뿐이죠.”
“작은 마당과 텃밭에 좋아하는 채소를 키우며, 자연의 소리 한가운데에서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지인들이 묵어가는 작은 방이 있고 사랑하는 조카들이 쉬고 싶을 때 맘 편히 지내는 집. 햇살이 잘 들어 눈부신 낮에는 음악을 만들거나 글을 쓰는 밤에는 작은 빛과 함께 에리크 로메르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집. 끝으로 그 안에 사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우리 둘을 만나러 오고 싶은 따뜻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