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mony Of Farmer’S Family

매일의아침 김주형 대표, 매일의공간 남애리 대표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왔다 가긴 힘드실 텐데, 하루 묵고 가는 건 어떠세요?” 상냥한 부부가 건넨 한마디를 발판 삼아 경주의 시골 마을 ‘성지리’로 향했다. 장장 네 시간이 걸린 기나긴 여정. 설레는 맘을 안고 도착한 마을은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득시글한 사람 대신 바람결에 흔들리는 보리의 춤사위가 보이는 곳, 자동차경적 대신 소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곳. 농부 부부와 다섯 살 난 여자아이가 살아가는 하얀 집에 도착하여 크게 숨을 들이켠다. 맑은 공기를 담아 인사하면 왠지 더 낭랑한 목소리가 나올 것만 같아서. 연습부터 해볼까? “아아, 주아야 안녕?”

농부 부부의

반짝이는 사계절

좋은 아침이에요. 인터뷰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는 처음이에요.

애리 안녕히 주무셨어요?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무서우셨죠?

 

무섭긴요, 잠결에 간간이 소 울음소리가 들려서 신기하고 좋았는걸요.

애리 새벽 4~5시에는 닭도 울어요(웃음). 농촌에선 아주 익숙한 풍경이고 일상의 소리인데, 불편하지 않았다니 다행이에요. 

 

산골이라 그런지 한밤에도 달이 밝더라고요.

애리 혹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작은 창 보셨나요? 거기 커튼을 달지 않은 이유가 침대에 누워 햇빛과 달빛을 누릴 수 있길 바라서였어요. 알람 소리에 일어나 출근하기 바쁜 사람들을 여기서만큼은 따사로운 햇볕으로 눈뜨게 하고 싶었거든요. 농담으로 ‘달빛이 눈부셔서 잠이 안 온다’고 할 만큼 자연과 가까운 동네예요.

 

겨우 하루 머물렀지만 경주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주실래요?

주형 저희는 경주에서 살아가는 농부 부부예요. 경주에서도 외곽에 있는 ‘성지리’에 터를 잡고 손수 지은 하얀 이층집에서 살고 있어요. ‘매일의아침’이라는 쌀 상회 브랜드를 만들어서 직접 수확한 쌀을 판매하고 있죠. 소비자들이 신선한 쌀을 맛볼 수 있도록 매일 아침이면 나락을 직접 도정해서 배송하는 게 저희 일이에요.

애리 남편이 농사짓고 도정한 쌀을 판매한다면, 저는 민박 브랜드 ‘매일의공간’을 운영 중이에요. 성지리의 아름다운 풍경, 새들의 지저귐, 따뜻한 볕과 산책하기 좋은 길을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죠. 매일의공간을 예약한 손님들은 저희 집 2층에 머물게 돼요. 조식도 저희가 먹는 밥으 로 제공받고요. 그래서 숙박업소보다는 가정집에 방문한 느낌이 더 강할 거예요. 아, 그리고 이 모든 활동에 다섯 살짜리 딸 주아가 함께하고 있어요.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에서만 살아온 말괄량이죠.

 

어제 처음 보았는데 벌써 정이 든 귀여운 아이 말씀이시죠? 주아 이야기에 앞서 두 분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SNS를 보니 ‘농자이너’라는 별칭을 사용하시던데 이전 직업이 혹시 디자이너였나요? 

주형 부모님이 쭉 농사를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경주에서 농사일을 돕곤 했지만, 사회생활은 웹디자이너로 시작했어요. 프리랜서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일터에서 아내를 만나게 됐죠. 결혼하고는 경주에 신혼집을 짓고 가업을 이어 전업 농부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애리 저는 대구 토박이인데 취업을 경주로 하게 됐어요. 디자인 회사는 아니고 반조리 식품을 개발하는 곳이었는데, 저는 메뉴 개발자로 일했고 남편이 웹디자이너였죠. 퇴사하고 나서도 경주가 너무 좋아서 고민 없이 여기에 신혼집을 꾸렸어요. 결혼 전엔 농부 생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잘 맞아서 금방 적응하게 됐고요.

 

부모님이 하던 일을 그대로 잇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아침이란 브랜드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흥미로워요.

주형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짓는 걸 봐와서 농부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일한 만큼 수확이 있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 성실해야 하고 정성을 쏟아야 하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그런데 생산한 쌀을 국가에서 매입하는 공공비축미 시스템에서는 부모님이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수확한 쌀을 좀더 신선하게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서,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기 위해 매일의아침을 만들게 됐어요.

농부 이미지와 매일의아침이란 이름은 정말 잘 어울려요.

애리 둘 다 음악을 좋아해서 브랜드 이름을 지을 때 노래를 많이 참고했어요. 매일의아침은 ‘매일의 고백’이라는 노래에서 따온 건데요. 매일매일 같은 시각에 일과를 시작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아침’이라는 단어와 연결 짓게 됐어요. 

주형 ‘매일’은 활용하기에도 좋은 단어예요. 매일의아침에 이어 매일의공간이 탄생했고, 판매하는 상품도 매일의백미, 매일의현미, 매일의잡곡으로 이름 붙였거든요. 캐치프레이즈도 ‘매일 먹는 농부의 식탁’이라고 지어서 당일 아침 도정한 신선한 쌀로 더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자 했어요.

 

농부는 직장인처럼 연차가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체계적으로 일해야 할 것 같아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주형 직장인의 기상 시각이 평일과 주말로 나뉜다면 농부는 여름과 겨울로 나뉘어요. 하절기에는 새벽 5시 즈음 일어나고 동절기엔 6시 정도에 기상하죠. 일어나자마자 3~4분거리에 있는 본가에 가서 소에게 밥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농사일은 아직까지 아버지가 주체이고 저는 옆에서 돕는 식이라, 매일 아침 브리핑으로 오늘 할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그때그때 스케줄에 맞추어 움직여요.

나인투식스가 아니라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일하는 거군요.

주형 맞아요. 1년 단위로 흘러가고 있어요. 봄이 오면 벼농사준비를 시작하는데, 3월엔 논에 우분을 살포하고 4월엔 볍씨 파종과 함께 못자리를 하여 모를 정성껏 키워내요. 5월 말쯤 모내기한 뒤에는 제초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이때 농약 없이 우렁이를 사용하는 게 저희 농법의 특징이에요. 

애리 우렁이를 살포하는 시즌엔 논이 정말 예뻐요. 호수처럼 물이 좌르르 차오르는 시기죠. 그래서 단골들에겐 일부러 5~6월에 오시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으니까요.

주형 그림 같은 풍경이 지나고 나면 10월엔 가장 바쁜 추수가 기다리고 있어요. 추수가 끝나면 1년 농사가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웃음). 땅을 놀리지 않기 위해 보리를 심거든요. 성지리의 1년은 이렇게 꽉 채워 완성되는 거죠.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네요. 집 마당에 도정실이 있던데, 보통 농부의 집엔 도정실이 함께 있나요?

애리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는데, 있더라도 관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아요. 어두컴컴한 곳에 기계가 파묻힌 느낌이죠. 소비자에게 떳떳하지 못한 분위기가 있는 편인데, 저희는 이런 문화를 바꾸고자 깔끔하게 차려서 공개하기로 했어요. 쌀이 깨끗하게 도정되는 걸 소비자가 직접 보면 신뢰가 생길 것 같았거든요. 마침 마당에 공간도 넉넉해서 도정실을 직접 짓게 됐죠.

주형 카페가 원두 로스팅실을 오픈하는 것처럼 매일의아침도 도정실을 공개하자는 취지였어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도정실을 일일이 공개하는 상회는 잘 없거든요. 청결하게 관리되는 도정실을 보여드리면 브랜드의 가치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보는 도정실이 익숙하다 싶더니 정말 로스팅실 같네요. 그래서인지 쌀 포장이 꼭 원두 포장처럼 보이기도 해요.

주형 소포장해서 더 그렇게 보이죠? 예전에는 진짜 원두 봉투에 담아서 나갔는데 요즘은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진공 포장하고 있어요. 쌀은 도정하고 한 달 이내에 먹는 게 가장 신선하고 맛이 좋은데, 보통 10킬로, 20킬로그램을 주문해서 두고두고 드시잖아요. 도정한 날짜에서 멀어질수록 밥맛은 점점 떨어지거든요. 저희는 소비자들이 더 맛있는 밥을 드실 수 있도록 500그램, 1킬로, 5킬로, 10킬로그램 단위로 판매하고 있어요. 모든 쌀은 당일 아침에 도정해서 바로 배송하고 있고요. 

애리 정기배송을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3킬로 혹은 5킬로그램짜리 쌀을 6회에 걸쳐 보내드리는 시스템인데요. 소비자는 대량의 쌀을 한 번에 배송받는 것이 아니라 쌀이 떨어질 때마다 소분된 쌀을 받아보게 돼요. 쌀은 쌀통에 넣어두고 묵힌다는 인상이 강한데, 저희는 쌀도 신선 식품이라고 생각해서 소비자가 당일 도정한 쌀을 배송받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매일의백미를 주문해서 먹어봤는데 밥풀에 윤기가 돌고 찰기가 있더라고요. 정말 맛있었어요. 오늘 차려주신 조식도 좋았고요.

주형 정말요? 주문하신 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맛있다는 말이 더 기쁘네요. 특별하게 준비하는 메뉴가 아니라 늘 저희가 먹는 반찬을 내어드릴 뿐이지만, 조식 먹으러 온다는 손님들도 있어서 그럴 때마다 참 뿌듯해요.

꼬마 농부의

천진난만한 하루

농사일에 민박, 디자인까지, 하는 일이 정말 많아요. 부지런한 부모님의 영향인지 주아도 일찍 하루를 시작하더라고요.

애리 오늘도 손님이 와 있다고 일찍 눈을 떠선 분주하게 움직였어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2층에는 거의 매일 손님이 계시거든요. 경주에서는 나름 예약하기 힘든 숙소예요(웃음). 그래서 보통은 손님과 가족의 아침밥을 준비하는 일로 일과를 시작해요. 주아는 요리하는 제 옆에 발판을 두고 올라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참견하기도 하고, 요리를 따라 하기도 해요. 아침밥을 먹고 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숲에 놀러 가기도 하죠. 온종일 ‘뭐 하고 놀까’ 고민하느라 바빠요. 

 

마당에 주아랜드라는 놀이터가 있던데, 혹시 직접 만드셨나요?

주형 네. 잔재주가 많아서 이것저것 만들게 되네요(웃음). 놀이터를 만든 지 2년째인데 주아가 이제야 노는 법을 터득해서 얼마 전에야 빛을 보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는 그네 타는 법을 몰라서 엎드려서 타곤 했거든요. 경주 생활에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주변에 주아 친구가 없다는 거예요. 동네에 아이들이 없으니 주아가 놀 만한 장소도 딱히 없어서 놀이터를 직접 만들어 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산 너머에 있는 어린이집 친구들이 놀러 오면 같이 놀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애리 동네에 또래는 없지만 동물 친구들이 있어요. 집 앞에만 나가면 거위도 있고, 닭도 있고, 소도 있고, 저희가 밥을 주는 고양이도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주아도 특별히 외로워하거나 쓸쓸해 하진 않아요.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동물들과 인사하며 다니는 게 주아의 일상이죠. “거위 안녕? 닭들아 안녕?” 하고요.

 

상상만 해도 귀여운걸요! 아까 주아가 텃밭일을 거들던데 뭘 심은 건가요?

주형 오늘 심은 건 파 모종이에요. 식구들과 직접 채소를 재배하고 싶어서 마당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는데, 호박, 가지, 파프리카, 고추, 토마토… 엄청나게 많은 작물이 자라고 있어요. 어지간한 채소는 다 키우고 있죠. 주아는 평생 보아온 게 농부의 일상이어서 밭일이 보통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놀이처럼 대하기도 하죠. 흙을 놀이 매트 삼고, 삽을 장난감 삼으면서요.

흙에서 지렁이를 잡아 해맑게 웃으며 저에게 건넸는데 벌레도 주아에겐 친구처럼 보였어요. 사실 저는 지렁이를 무서워하거든요(웃음).

주형 아이고, 놀라셨죠? 주아의 이런 자유로운 성격은 환경이 절반 이상 만들어 준 것 같아요. 흙이 묻어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벌레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죠. 애리 요즘 도시 아이들은 자연을 체험하기 위해 예약하고 숲이나 밭에 가기도 한다는데, 주아는 그 아이들과는 반대로 자연과 먼 환경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주변이 온통 논밭이어서 농부 생활도 익숙하고 저희가 하는 건 뭐든 같이 하려고 하죠. 텃밭 가꾸기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위험하다고 말릴 법도 한데 함께 삽을 들고 밭을 일구는 부모님도 멋져 보였고요.

애리 주아에게 웬만해선 만지지 말라거나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아요. 뭐든 해봐야 위험한 것도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늘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궁금한 건 전부 해보는 아이지만 지금껏 무모한 행동을 한 적은 없어요. 위험 요소가 거의 없는 시골이어서 가능한 일 같기도 한데, 앞으로도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니면 굳이 말리지는 않으려고요.

주형 아이라고 무조건 보호받기보다는 직접 경험하고 부딪치며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아가 밝고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걸 지켜보면서 저희에겐 이게 옳은 방식이라고 여기게 됐고요. 주아는 밖에서 놀다가 흙이 묻은 채로 집으로 들어오거나 벌레를 겁 없이 손으로 쥐어보는 일도 많은데,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저희는 지금이 좋아요.

자유롭고 천진한 주아 성격은 주변 환경과 육아 방식이 만든 것 같아요. 하지만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외면할 순 없을 텐데요.

애리 아무리 좋은 혜택이어도 시기에 맞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아가 성장할수록 필요한 건 점점 더 많아질거예요. 교육만 해도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뛰어 놀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나중에 다른 게 필요해지면… 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려고요. 지금은 시골에서 얻는 게 훨씬 더 많다고 느끼니까요.

 

닥치지 않은 상황은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애리 맞아요. 저희 태도가 그래서인지 주아도 비슷하더라고요. 뭐든 긍정적으로 보고, 지금을 즐기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요. 도시 아이들은 주아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겠지만 주아는 성지리의 자연에서 많은 걸 배워요. 매일매일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걸 가까이서 보고, 꽃과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지, 어떤 풀이 자라나는지도 세심하게 관찰하죠. 가르쳐주지 않아도 “엄마, 저기는 보리를 심었네?” 하고 묻기도 하고 “아빠, 저 나무에서 꽃이 가장 먼저 피어!” 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해요. 그런 모습은 제가 봐도 참 신기해요. 

주형 부모가 아이에게 이것저것 권한다고 해서 없던 관심이 생길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뭐든 주아가 흥미를 보일 때 열심히 밀어주고 싶어요. 저희가 살아가는 곳은 시골 마을이니 굳이 도시 생활에 기준을 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좋은 거라고 믿고요.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을 주아가 많이 보고 느끼면 좋겠어요.

 

하지만… 주변엔 학교도 없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어떡하죠?

애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학교나 마트 같은 시설이 아주 멀진 않아요. 시골이긴 하지만 산골짜기 오두막은 아니니까요(웃음). 차를 타고 5분만 나가면 편의점도 있어요. 친구들은 ‘남들은 걸어서 5분이면 가는 곳을 차 타고 5분이나 나가야 하냐’고 놀리기도 하지만, 저희는 이런 삶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계속 작은 동네에서 살아와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주아도 지금껏 잘 적응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주형 살다가 필요한 게 생기면 조달하면 되고, 훗날 주아가 산 너머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차로 데려다줄 의향도 있어요. 아주 가까이 있지 않을 뿐 이곳 주변에도 시설은 충분하거든요. 저희가 불편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도시 사람들이 편의 시설에 너무 길들여진 건지도 몰라요. 

 

주아네 가족 이야기를 보고 농촌 생활을 꿈꾸는 가족도 생길 것 같아요. 요즘은 귀촌이나 귀농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요.

애리 하지만 섣불리 결정하진 마세요. 농촌살이를 시작하기 전에 본인이 ‘부지런한 사람’인지 꼭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해요. 도시 생활처럼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모든 관리를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걸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해요. 무턱대고 내려왔다가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랄지도 몰라요.

주형 ‘시골이 조용해서 좋다’는 마음만으로 이사하기에는 따져야 할 게 정말 많아요. 또, 귀촌과 귀농의 개념은 다르기 때문에 잘 생각해봐야 해요. 귀촌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농촌에서 살아가는 거라면 귀농은 농사일로 먹고사는 거예요. 귀농은 어쨌거나 몸이 아주 힘들죠. 저는 가업을 잇는 데도 힘든 점이 많은데, 연고 없이 농사일을 시작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농촌 사람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텃세도 있어요. 생각보다 심한 곳도 있어서 다른 농부들과 어울리는 일에도 신경 써야 해요. 물론 귀촌도 쉽게 생각하면 안 돼요.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의지와 ‘나는 부지런하다’는 준비가 되어 있어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만일 의욕은 있는데 자신이 없다면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서 살고, 주말 이틀은 농촌에서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조그만 밭이라도 직접 일구어보면서 다른 농부들과 관계를 맺고 차근차근 적응해 본 뒤 결정하시는 게 좋아요.

 

주아네는 앞으로도 성지리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것 같아요. 계획하고 있는 특별한 목표가 있나요?

주형 매일의아침의 도정실은 마무리 작업 이후 곧 체험장으로 오픈할 예정이에요. 종종 매일의공간에 어린이 손님이 방문하면 볍씨를 직접 만져보고 도정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고요. 앞으로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나락을 도정하고 그 쌀로 직접 밥을 지어 먹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요.

애리 주아는 산책하다가도 “엄마, 이건 벼지?” 하고 물어볼 정도로 쌀에 대해 잘 아는데 도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할 테니 매일의아침에서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싶어요. 참, 올해 8월이면 주아에게 동생이 생길 텐데요! 지금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중인데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저희도 기대돼요. 남동생이라는 소식에 주아도 기뻐하고 있죠. 만삭이 되면 매일의공간은 잠시 쉬어갈 예정인데, 얌전하고 순한 아이라면 산후조리를 마치고 금방 복귀할 수 있겠죠?

maeil-achime.com

집에서 할 수 있는 초록색 활동

“주아도 요즘 하고 있는 간단한 활동인데, 화분에 씨앗을 심고 키워보세요. 시시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초록 식물을 곁에 두는 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거든요. 직접 씨앗을 고르고, 심고, 싹트는 걸 보면 마음에 안정감이 생겨요. 식물의 생장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해서 아이 스스로 물을 줄 수 있게 하고 식물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만든다면 더욱 좋은 영향을 미칠 거예요. 주아는 ‘아침밥을 먹고 화분에 물을 준다’는 걸 규칙으로 삼고 매일매일 알아서 물을 주고 있어요. 아침이면 ‘무럭무럭 자라라’ 하고 노랠 부르면서 분무기로 물 주는 게 습관이 되었죠. 일반 화분도 좋지만, 달걀 껍데기에 흙을 담고 심으면 아이들도 훨씬 재미있어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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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정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