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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식탁
달콤한 집에서 일어난
무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어린 시절 나는 동생과 함께 어느 노인의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허리가 지팡이처럼 굽고, 매부리처럼 휘어진 코를 가진 노인은 늘 자줏빛 어두운 거적때기를 몸에 두르고 다녔다. 노인은 말이 없었지만 과묵하진 않았고,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음흉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노인은 뭔가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여생을 오로지 나와 동생을 살찌우는 데 쏟아부으려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노인은 매일 지치지도 않고 맛있는 것을 요리했고, 식탁 위에 차렸고, 식사 시간이 되면 종을 울려 부엌에 모이게 했다. 노인은 우리가 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본 뒤 “더 줄까?” 하고 꼭 확인하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면서 수 끼의 음식을 소화시켰다.
노인은 밤이 되거나 아침이 밝으면 우리의 팔을 만지작댔다. 노인도 우리 팔뚝의 두께를 가늠하며 체중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더듬거리는 손길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뿌리칠 정도로 불쾌한 건 아니어서 우린 한쪽 팔을 노인에게 자주 맡기곤 했다. 노인은 매일 내 팔과 동생 팔을 번갈아 만졌다. 그건 노인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처럼 보였다.
나는 노인이 해주는 음식이 입에 잘 맞아서 열심히 먹고 또 먹었는데도 피둥피둥하게 살이 오르진 않았다. 물론 이 집에 들어오기 전보다는 얼굴에 분홍빛이 돌고 점점 윤기가 나기 시작했지만, 노인은 내 팔뚝을 만질 때마다 “아직 멀었다.”며 새로운 음식을 차려주곤 했다. 어떤 날엔 황금빛 무스가 얹어진 부드럽고 잘 으깨지는 메뉴였고, 어떤 날엔 클램차우더와 비슷한, 하지만 클램차우더는 아닌 따뜻하고 뭉근한 음식이었다. 우리는 살가운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음식이 맛있다고 노인에게 안기거나 애교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나는 노인의 집에서 밥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식탁에 함께이던 내 동생은 이상하게 나날이 말수가 줄었고 풀이 죽어갔다. 그 애가 하는 말은 하루에 두어 번쯤 “나 화장실에 데려다줘.” 정도가 전부였다. 동생은 나와 달리 살이 찌거나 활력이 돌지 않는 것 같아 보였는데, 동생에겐 노인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동생은 한식이 아닌 음식은 잘 먹지 못했으니까. 한식이라고 해도 식감이 물컹하고 너무 매운 건 또 먹지 못했으니까.
사실 동생이 기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았다. 특히 가장 싫어했던 건 피자였다. 그런 동생에게 고소하지만 느끼한, 자주 물컹하고 때로 매콤하고 종종 끈적한 노인의 음식들은 영 맞지 않았을 테다. 동생은 늘 나와 같이 식탁 앞에 앉았지만 내가 먹는 음식의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인가부터 빈혈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일이 많았고,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코피를 흘리고 있는 날도 있었다. 나는 동생을 위해 이 집에서 이제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이 해주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쉽사리 마음먹지 못하고 동생을 그대로 방치하게 됐다.
노인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건 수프였다. 노인은 수프를 만들 때면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잔뜩 넣어 끓였고, 언제나 노인의 키보다 큰 주걱을 넣고는 느리게 저었다. 아주 느리게, 오랫동안 솥 앞에서 젓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깨가 좋지 않다면서 주먹으로 아픈 곳을 팡팡 때리는 노인은 고통 속에서도 수프 만들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노인이 수프에 집착한 것은 내가 다른 음식에 비해 늘 한 그릇씩 더 먹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노인은 나를 살찌우기 위해 수프에 여러 가지를 담았다.
처음엔 브로콜리였다가 그다음엔 브로콜리에 단호박이었다가 그다음엔 브로콜리에 단호박에 감자였다가 그다음엔 브로콜리에 단호박에 감자에 모차렐라 치즈였다가 이내 브로콜리에 단호박에 감자에 모차렐라 치즈에 체더치즈까지 얹어 따듯하고 끈적한 수프를 끓여냈다. 그것은 한 그릇만 먹어도 하루 치 열량을 모두 충족할 만큼 칼로리가 높았지만 나는 두 그릇, 세 그릇씩 비웠다. 수프 덕분인지 찬찬히 살이 올라 조금 찌뿌드드하고 움직임이 다소 둔해진 몸을 갖게 됐다. 그러나 노인은 내 팔뚝을 만질 때마다 “아직 부족해….” 하고 중얼거렸다.
그 집에서 나갈 마음을 먹게 된 어느 날에도 나는 수프를 세 그릇 반이나 비우고 후식으로 와사비 참치마요가 올라간 짭짤한 크래커를 먹고 있었다. 동생은 그날따라 더욱 빈약해 보였고, 나는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크래커를 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동생이 걱정스러워졌고 동생이 곧 죽을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에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동안 벗어 두었던 운동화에 노인 몰래 발을 끼워 넣었다. 그러나 운동화에 내 발은 들어가지 않았다. 노인의 집에서 지내는 사이 발까지 살이 올라 신발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맘을 크게 먹고 동생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자고. 동생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화장실에 가겠다는 동생을 보내며 집 밖으로 나갈 궁리를 시작했다. 동생은 화장실에 가는 몇 걸음 사이에도 여러 번 휘청였다. 힘이 없어 무언가를 잡지 않고는 일어설 수도 없는 동생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노인의 음식에 홀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해 두었다니. 동생과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밥을 먹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아마 이것이 노인과 제대로 한 첫 대화가 아니었을까.
“여기서는 숲의 냄새가 나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요?”
“조금만 살이 더 찌면 같이 산책하러 나가자. 바깥엔 파랑새도 있고, 푸른 나뭇잎도 있고, 군데 군데 버섯도 피고, 작고 여린 잎들도 많아.”
나는 노인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노인은 매일 커튼을 치고 아주 어둡게 해둔 부엌에 노란 조명만을 켜고 우릴 불렀는데, 가끔 커튼 사이로 나뭇잎이 보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결에 새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노인은 진실만을 말했지만 나는 노인만 믿을 순 없었다. 신발이 맞지 않을 정도로 살이 찐 나를 두고 “아직 멀었다.”며 고갤 젓는 노인에게 더는 의지할 수 없던 것이다. 바깥 공기를 쏘이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동생과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동생과 그곳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노인이 이 글을 읽을 리 없겠지만, 매일 다섯 번씩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던 사람에겐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동생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동생이 점점 활기를 되찾은 것과 달리 나는 다시 버석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먹는 요리가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노인이 해주던 윤기 나는 음식들이 그리워서 자꾸 그렇게 되었다. 나는 밥도, 김치도, 국도 좋아했지만 먹고 나면 어쩐지 허기진 기분이 들어 울적해졌다.
바질 이파리를 잘게 빻아 정성스럽게 바게트에 발라주던 노인, 블루베리와 귤과 설탕을 냄비에 잔뜩 넣어 졸여서는 따끈따끈한 잼을 만들던 노인, 직접 만든 화이트 초콜릿을 녹이고 연유를 올려 머그잔에 담아주던 노인, 밥알 사이사이 고소한 모차렐라 치즈가 스며들도록 오랫동안 약한 불에서 끓여 내어주던 노인….
노인이 차려준 밥상은 살을 찌우기 위한 요리였을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성이 필요한 요리들이었다. 노인은 나와 동생을 한 끼 먹이기 위해 사흘 전부터 요리를 시작했고, 그것은 거의 60시간이 걸려 완성되곤 했다.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담긴 요리들을 한 그릇, 두 그릇, 세 그릇… 하루에도 열 그릇 이상의 음식을 먹으며 지낸 것이다. 그러니까 노인의 요리에 길들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고, 결국 노인이 그립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게 노인의 모습이든 노인의 손맛이든 나는 그리움이라는 허기로 나날이 말라갔다.
사실 나는 노인이 나와 동생을 피둥피둥 살찌워 어떻게든 ‘먹으려고’ 했단 것을 알고 있었다. 노인은 오븐의 온도를 적당하게 올려 나와 동생을 밀어 넣고 구워버릴 심산이었겠지만, 그래서 매일 오븐을 닦고 예열하는 데 시간을 들인 거겠지만, 나는 무섭도록 맛있던 노인의 식탁이 그리웠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노인이 있는 부엌의 꿈을 꾼다. 우리가 그 집에서 나온 뒤 노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노인의 집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한참을 달린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선연하다. 동생과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본 곳엔 집인지 사탕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달콤한 덩어리가 있었다. 나는 자꾸만 등 뒤의 과자집으로 향하는 눈길을 추스르며 달리고 또 달렸다. 노인이 말한 파랑새가, 푸른 잎이, 군데군데 핀 버섯이, 작고 여린 잎이 정말 그 숲에 널리 펼쳐져 있었다. 노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내가 노인의 요리가 그리워 다시 그곳에 찾아간다 해도 노인은 나를 먹지 않을 것이다. 노인은 어쩌면 먹기 좋을 정도로 살이 찐 나를 보고도 차마 먹을 수 없어서 “아직 부족해.” 하고 중얼거리며 내 팔뚝만 만지작댄 건 아니었을까. 식탁 위에 쌓인 노인과의 시간은 그토록 무섭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과자집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노인과, 식탁과, 그곳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에 대한 예의였다.
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