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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요리책
《할머니의 요리책》은 소규모출판으로 발간된 요리책이다. 삐뚤빼뚤한 할머니의 글씨체가 그대로 담긴 것이 이유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요리를 통해 드러나고,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녀의 마음은 책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할머니의 손맛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레시피인 줄만 알았는데, 실은 어떤 것보다 진득한 사랑의 기록이었다.
INTERVIEW 마그네틱5 박린, 김병덕
만나서 반가워요. 두 분이 함께 마그네틱5안에서 개인 작업과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처음으로 발간한 책이 《할머니의 요리책》인 건가요?
김병덕 아뇨. 책은 《할머니의 요리책》이 나오기 전부터 다양하게 만들었어요. 책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되었고요. 실은 저희가 서점에 입고를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서점에 위탁했을 때 어떤 분이 왜 우리 책을 사는지 상대적으로 알기가 어렵잖아요. 저희는 책을 구매하시는 분들과 직접 이야기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 와중에 감사하게도 《할머니의 요리책》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배송업무가 조금 힘들어지는 때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서점에 두면 많은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고를 시작했죠.
할머니의 소중한 레시피로 책을 만든 계기가 있을까요?
김병덕 린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할머니와 살고 있어요. 스물여덟 살까지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거죠. 할머니의 음식을 먹고 시장에 따라가면서 말이에요. 어느 겨울날 할머니가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수술을 받은 뒤로 거동이 불편해지셨어요. 할머니께서 1925년생이셔서 워낙 연세도 많은 편이다 보니까 회복이 더딘 거죠. 기력도 많이 쇠해지시고 서 계시는 일도 어려우니까 당신께서 요리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린이는 평생 할머니 음식을 먹고 자랐는데, 이젠 할머니 음식을 먹는 게 어려운 일이 되었어요. 언젠가 할머니 음식들이 잊힐 수도 있겠죠. 그래서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나온 책이에요. 책을 보시는 분들도 처음엔 “귀엽다, 귀엽다” 하다가 나중에 우는 분들이 많아요. 저희는 직접 그 모습들을 봤거든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요.
할머니는 그럼 요새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박린 집에만 계셔요. 제가 말동무 해드리기도 하고요.
김병덕 빙판길에서 넘어지시기 전까지 굉장히 정정하시고 건강하셨어요. 저도 음식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북에서 오셔서 그런지 음식 솜씨가 무척이나 좋으세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자를 직접 만나서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인상 깊었던 반응이 있다면요?
박린 마켓에서 만난 분이 생각나요. 책을 보시다가 갑자기 두 눈에 눈물 방울이 뚝 하고 떨어지는 거에요. 정말 놀랐어요. 그 순간의 장면이 계속 맴돌아요.
김병덕 공통점은 각자의 할머니가 떠오른다는 거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이야기,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 살아계셨을 적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요.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게 좋죠.
보는 사람도 이렇게 울컥하는데, 책을 만들면서도 울컥한 적이 있나요?
박린 언젠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 식탁에 같이 앉아 계셨어요. 엄청 많은 말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힘들지?”라는 한마디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거든요. 결국 할머니의 모든 요리가 저에게 위로였던 거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일이었잖아요. 책에도 요리마다 할머니와 있었던 일이 담겨 있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좋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부엌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이 책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울컥하게 했다고 생각하세요?
김병덕 밥을 먹는 것은 일상이에요. 소소하고 스쳐 지나가면 잊어버리죠. 그런데 누군가 나의 끼니를 챙겨준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한 일이에요. 지금은 당장 벌어지는 현재형의 일들이라 감사함을 깨닫기가 힘들죠. 나중에는 그 맛이 희미해질 거고, 혹은 먹었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다고 하면 서운하잖아요.
맞아요. 요리와 음식만이 가지는 특수한 감정이나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우리 엄마 맛이에요!” 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고 ‘소울푸드Soul Food’라는 명칭이 있는 것도 그렇고요.
박린 과정에서 오는 소중함도 있어요. 재료를 썰면서 할머니의 옛날얘기부터 지금의 이야기들까지 도란도란 주고받기도 하죠.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요리하는 과정에 많으니까요.
김병덕 집에서 가족들 끼니를 챙기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고민 할 거예요. ‘오늘 뭐 먹지?’, ‘아침 먹으면 점심 뭐 먹지?’ 만들면서 ‘맛있어야 하는데….’ 걱정하고요. 그런 마음이 담긴 거잖아요.
책에서 실제로 따라 했던 요리도 있었나요?
박린 그럼요. 수제비랑 상추 겉절이는 직접 만들어 봤어요. 개인적으로 칼국수를 제일 좋아해요. 그냥 단순하게 멸칫국물에 만들어진 칼국수 있잖아요. 워낙 할머니랑 자주 해 먹기도 했고, 할머니 음식 중에서 제일 좋아요.
할머니와 사이가 굉장히 돈독하시네요.
박린 할머니는 저에게 특별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모두 축제하거나 운동회를 하면 할머니가 다 따라오셨거든요. 할머니가 오시면 선생님이 운동장에 의자를 갖다 주기도 하고요. 학교 다닐 때 간식을 아침마다 챙겨주시기도 했죠. 토마토나 떡을 항상 싸주셨어요.
할머니의 요리인생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에요. 할머니의 오랜 요리 인생이 린 씨의 그림 인생을 새롭게 만나 책으로 탄생했어요. 할머니께서 작가가 되신 건데, 반응은 어떠셨어요?
박린 할머니는 당신께서 글씨를 잘 못쓰신다고 많이 쑥스러워하셨어요. 글씨 틀리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셨죠. 책이 발간 되었을 때엔 삐뚤빼뚤한 글씨가 그대로 실린 것을 보고 사람들이 알아보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병덕 씨도 린 씨와 작업을 오래 하면서 할머니를 자주 뵈었을 것 같아요.
김병덕 멀리서 많이 뵈었죠. 아, 예전에 린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계단을 내려오시는 모습이 조금 힘들어 보였어요. 그땐 다치시기 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에게 계단은 오르내리기 버거우니까요. 그래서 제가 모셔다드렸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린이네 할머니셨어요. 신기하죠?
박린 할머니께서 그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떤 빡빡이가 도와줬다고(웃음).
할머니께 배운 삶의 지혜가 있을까요? 아주 소소한 것들이라도. 사실 제가 듣고 싶어서 묻는 거예요.
박린 할머니는 항상 학교, 학원, 심지어 헬스까지도 빼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쿠아로빅을 10년 넘게 다니셨거든요, 하루도 빼먹지 않고요. 굉장히 성실하세요. 그런 점들에 영향을 받았죠. 저도 보면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이든 안 빠지고 잘하려는 성향이 있어요.
김병덕 맞아요, 성실해요. 린이는 교회를 열심히 다녀요. 보통 예배는 한 시간 정도 하잖아요. 근데 꼭 30분을 늦어요. 우리 같으면 다음 예배를 가거나 미루거나 하는데 꼭 가요. 그리고 20분 듣고 나오고(웃음).
유쾌한 콤비네요. 마지막으로 잊히는 일들을 간직하고자 기록하고 싶다고 했어요. 이런 일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박린 그런 일들이 저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할머니와 요리를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돌이키고 떠올리고 곱씹는 거죠. 조금 더 흘러가지 않고 머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좋아요.
김병덕 내가 기억하는 것을 누군가도 기억하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요. 이 책이 나왔을 때 할머니의 자제분들, 큰고모나 삼촌들이 “나 어렸을 때는 있잖아” 하면서 더 먼 시절의 이야기를 이어주셨어요. 시대가 달라지니 다른 먹거리, 다른 일화가 등장하는 거예요. 이렇게 기억을 함께하고 싶어요.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