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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마을
로또의 주연
“「네잎크로바」를 찾으셨군요! 오늘은 즐거운 날. 행운이 가득한 날!”
어린 시절 티브이에서 왕왕 이런 노래를 듣곤 했다. 롯데에서 나온 껌들을 소개하는 CM송인데,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는 축약 버전이다. 어릴 적, 엄마가 껌을 살 때면 나는 옆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엄마가 고르던 껌이 대개 쥬시후레쉬였기 때문에 그 껌만 보면 자동으로 노래가 줄줄 흘러나왔다. CM송 노랫말을 곱씹어 보면, 맛과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게 롯데껌의 특징이었나 보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이 짤랑거리면 엄마를 떠올리며 친구들과 놀다 말고 슈퍼로 가 곧잘 껌을 샀다. 보석반지나 해바라기씨 같은 걸 사 먹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껌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내 것보다 엄마 것을 사는 게 좋았기 때문인데, 그건 효심보다도 순전히 내 재미를 위해서였다.
그 시절엔 100원짜리 세 개면 껌 한 통을 살 수 있었고, 껌 한 통엔 껌 일곱 개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소화가 더딜 때면 껌 하나를 절반으로 나누어 씹었고 오래지 않아 툭 뱉었다. 그러고는 뱉은 껌을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작은 공을 만들었다. 그걸 다시 사방으로 펼쳐 사각형을 만들면 중앙이 투명하게 늘어났는데, 이불 개듯 차곡차곡 접어 누르면 ‘뽁’ 하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씹다 뱉은 껌은 신기하게도 손가락에 들러붙지 않았다. 나는 종이접기를 하는 양 껌을 만지작대는 손 모양이나 ‘뽁’ 하는 소리가 재밌어서 엄마가 껌을 씹을 때면 옆에 꼭 붙어서 뱉을 시 간만 기다렸다. 내가 보석반지나 해바라기씨를 포기하고 엄마에게 껌을 사다 드린 건 오로지 이‘뽁’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몇 번쯤 엄마를 따라 해보겠다고 껌을 뱉어 돌돌 굴려 보았는데, 나는 엄마처럼 작은 공을 만들거나 잘 펼쳐 투명하게 만드는 데 늘 실패했다. 내 손 위에 올린 씹던 껌은 씹던 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금 만지작대다 보면 질펀하게 퍼져 양손을 더럽혔다. 끈적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씹는 껌보다 엄마가 씹는 껌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렇게 쥬시후레쉬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롯데껌만, 포장지를 벗기면 클로버 그림이 나온다는 거였다. 그 그림은 세잎클로버거나 네잎클로버였다. 세잎클로버 그림이라면 “행운의 네잎크로바는 어디 있을까!”란 문구를, 네잎클로버 그림이라면 “「네잎크로바」를 찾으셨군요! 오늘은 즐거운 날. 행운이 가득한 날!”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어떤 걸 뽑든 그 옆엔 가위바위보 그림이 있었는데, 나는 껌 종이를 뜯을 때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는 행운을 실험하곤 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열 개의 포장지를 벗기면 아홉 개는 ‘네잎클로버’였다. 애초에 네잎클로버 비중이 월등히 높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롯데껌 봉투에서 네잎클로버를 뽑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껌을 살 때마다 “내가 고를래!” 하면서 운을 실험했다. 여전히 나는 엄마의 소화를 돕기 위해 가끔씩 쥬시후레쉬를 산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네잎크로바를 만난다. 300원이던 껌은 어느덧 천 원이 되었고, 일곱 개이던 껌은 다섯 개 남짓으로 줄어 물가에 놀라곤 하지만, 나의 행운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친구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어보니 내가 부른 번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나 보다. 잘못됐다는 건 대강 알겠는데, 당최 뭐가 잘못된 거지? 멍청한 얼굴로 오도카니 앉아 있었더니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 시작한다. 나는 그날 로또가 정확히 무엇인지 처음으로 상세히 듣게 됐다. 로또는 1부터 45까지 번호 중 여섯 개를 선택하는 복권이란걸, ‘복권 판매점’이라 적힌 가게에서만 살 수 있단걸, OMR 카드처럼 생긴 데다 마킹하는 방식이란걸. 티브이에서 어렴풋이 ‘로또 당첨자 발표’라면서 공 같은 걸 꺼내 보이며 숫자를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 그래서 제비뽑기처럼 숫자들을 요리조리 굴려 뽑은 거였구나. 괜히 머쓱해진 나는 친구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왜 45갠데? 왜 하필 45까지인데?”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지만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런 데서 묘한 승리감을 느끼는 나 자신이 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친구에게 로또 규칙에 맞추어 번호를 몇 개 불러주었다. 결과는 낙첨이었다.
집에 돌아와 포털사이트에 “왜 로또는 45까지인가요?”를 검색하니 viol**** 님이 “적당해서요”란다. beet**** 님은 “프랑스 로또사에서 연구끝에 그렇ㄱ 룰을 정햇대여”란다. 프랑스랑 로또가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지만 너무 깊게 파고들면 삼천포로 새 버릴 것 같아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기로 했다. ‘동행복권 복권통합포털’로 연결되는 로또 사이트에서 로또의 공식 표기명을 볼 수 있었다. 로또 6/45. ‘1부터 45까지 45개의 숫자 중 여섯 개를 선택하는 방식이어서6/45구나, 직관적이네.’
살아오면서 돈에는 이상할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 원권을 선물이랍시고 쥐여줬을까. 복권이라는 건 동전으로 긁어 같은 그림이 나오면 당첨되는 건 줄로만 알았기에 로또 시스템은 희한하고 이상해 보였다. 45개 숫자 중에 여섯 개를 고르는데 당첨 확률이 이렇게 낮다는 것도 내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왠지 내가 하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번 롯데껌에서 행운의 네잎크로바를 찾은 나니까 로또도 왠지 기가 막히게 뽑을 것 같다는 (실물 네잎클로버는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은 잊은 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로또 번호를 고르는 방식으로 ‘자동’과 ‘수동’이 있다던데, 나는 무조건 수동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바일로는 안 된다기에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고 동행복권 복권통합포털에 접속했다. 복권을 구매하려면 회원 가입을 해야 했다. 나는 모든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익숙한 아이디를 적어 넣고 1분 만에 가입을 마쳤다. 소싯적에 한컴타자연습 상을 휩쓴 솜씨를 오랜만에 발휘하니 뿌듯했다. 타자 실력이 녹슬지 않았으니 행운을 찾는 감도 잃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했다. 촉박한 시간 안에서 회원가입부터 복권 시스템 접속까지 무리 없이 해내는 게 꼭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내주는 덕인 것만 같았다. 이 기분 그대로 로또를 산다면, 어쩌면 나도? 부푼 기대로 빠르게 복권 구매 페이지를 열었는데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튀어나왔다. 사이버 머니를 충전하란다. 남은 시간은 6분. 바지런히 손을 놀려 5천 원을 충전하고, 복권 다섯 장을 구매하기로 한다. 단돈 5천 원으로 너무 쉽게 부자가 될 것만 같아 누구에게 랄 것도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신중하게 번호를 골랐다. 짝수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짝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2를 특히 좋아해서 여기저기 2가 많이도 보였다. 좀 바꿀까 싶었지만 이대로 가기로 한다. 원래 처음 찍은 게 정답인 법. 수많은 ○○고사를 거치면서 알게 된 공식이었다.
로또 구매를 마치고 보니 제한 시간은 2분여 남아 있었다. 로또는 무사히 구매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가 고른 숫자들을 미리 캡처해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첨 여부를 아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구입한 로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구매 내역에서 당첨 여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쉬워 한 건 어떤 숫자가 맞고 또 맞지 않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첨 여부보다 내 운이 얼마 확률로 당첨에 가까운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홈페이지 어디를 뒤져도 내가 입력한 숫자를 찾을 수 없었다. 하릴없이 어렴풋한 기억을 안고 로또 추첨 방송을 시청했다. 공이 굴러가고, 뽑아서 보여주는 숫자들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분명히 몇 분 전에 내가 찍은 숫자들이었다. 조금씩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2!” ‘했지.’ “6!”‘했지.’ “13!” ‘했지.’ “17!” ‘했는데?’ “36!” ‘했다고!’ 부르는 족족 마킹한 번호라니! (이렇게 벼락부자가 되는 건가?) 문제는 구입한 다섯 장의 로또에 추첨 번호가 얼마나 분포돼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과를 알기까지는 약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동행복권 홈페이지를 연신 새로고침하며 결과를 고대했다. 한 시간에 가까워질 즈음, 새로고침 된 페이지에 변화가 보였다. 당첨? 당첨?! 두 글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등은 아니었지만 제법 화려한 불로소득이었다. 이런 행운이 내게로 온 것은 분명히 어린 시절 롯데껌을 수도 없이 까보았기 때문이라며 거실에 있는 아빠·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아빠! 나 로또 됐어!” 어린 시절 ‘네잎크로바’를 뽑던 솜씨는 죽지도 않고 이렇게 행운을 가지고 온다. 아,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