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My Child, To Every Children

마음스튜디오 이달우 대표

디자인 스튜디오인 ‘마음스튜디오’는 밝은 색감과 귀여운 도형, 곡선과 직선이 이루는 조화로 멀리서 바라보아도 눈에 띌 만큼 선명한 작업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유독 개성 넘치는 어린이 공간은 스튜디오를 이끄는 이달우 대표가 아들 상민이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완성해 나간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둘째 하림이가 태어나자 아빠의 시야는 더 넓어져서, 이제는 모든 어린이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는 공간을 무언가를 담는 그릇이라 말한다.

그릇이 되려는 마음

“공간 자체로 콘텐츠가 되는 게 아니라 공간이 어떤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 놀이터의 경우 놀이터가 그릇이고 색색의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거죠. 느슨한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걸 보여주는 게 오히려 예술과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마음스튜디오라는 이름이 참 예뻐요.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마음스튜디오는 그래픽부터 상품, 제품, 공간까지 시각물을 디자인해요. 이곳은 저희 작업들을 소품 형태로 다시 만들거나 자체 제작한 상품들을 선보이는 쇼룸이에요. 쇼룸 이름은 ‘LOVE PEACE MAUM’이에요.

 

쇼룸 이름도 따뜻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네요. 이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스튜디오라고 부를 만하게 된 건 7년 정도 됐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클라이언트 잡을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개인일러스트 작업을 했는데 1년에 한 400만 원 벌었나(웃음)? 혼자 하려니 어렵더라고요.

 

스튜디오 차리기 전에는 직장에 다니셨죠?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 궁금해요.

첫 회사는 BTL 회사였어요. 4대 매체인 티브이·인쇄·라디오·옥외 광고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광고를 하는 곳인데, 좋게 말하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했고 나쁘게 말하면 온갖 허드렛일을 다 했죠. 소품 구하러 방산시장 가고 을지로 가고…. 다행히 재미있게 일했어요. 그땐 그래픽, 패키지, 상품디자인 회사가 모두 따로 구분되어 있던 시기여서 한 쪽으로 깊게 파고들 수도 있었는데,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의 경계가 흐려졌어요. 이후에 ‘피죤’에서 디자인 전략팀장으로 일하면서 제품 용기 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경험을 했고, 다음 직장인 ‘딸기’에서 ‘딸기 키즈 뮤지엄’이라는 공간을 기획하면서 공간 디자인이라는 영역에 발을 디뎠죠.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편인가 봐요.

물론 제가 좋아서 덤벼든 일들이지만 현실적인 상황도 맞물린 시기였어요. 피죤에 있을 때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겼거든요. 누군가 저를 관심 있게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주어진 일이면 무조건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스튜디오를 차릴 때는 다른 계획이 있었던 거예요?

음… 아니요.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잘 세우지 않아요. 대신 현재에 최선을 다해요. 마음스튜디오가 그래픽을 기반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영역을 넓힌 것도 그때그때 충실하게 임해 온 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마음스튜디오는 현재 어떤 과정 위에 있어요?

요즘에는 모든 디자인에서 힘을 조금씩 빼는 중이에요. 특히 어린이 공간이 그래요. 이전에 작업한 공간들은 그래픽적인 요소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공간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게 아니다 보니, 공간 구성을 그래픽적으로 먼저 푼 다음 결과물로 옮기는 편이었어요. 사이니지도 많이 들어가고 색감도 밝았죠. 최근 작업한 공간들은 대부분 화이트 컬러예요. 바닥에 색을 까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부딪히지 않게 안전 문제를 고려하는 선에서 색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공간 자체로 콘텐츠가 되는 게 아니라 공간이 어떤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놀이터의 경우 놀이터가 그릇이고 색색의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거죠. 느슨한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걸 보여주는 게 오히려 예술과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우리 멋지지?” 하고 뽐내는 공간보다는 “우리 지금 여기 있는데 궁금하면 말 걸어볼래?” 하는 느낌이고 싶어요.

밝은 색감의 조화가 마음스튜디오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변화를 겪고 있군요.

뭔가를 창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만의 스타일을 발견하잖아요. 물론 기쁜 일이지만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는 건 한계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 한계를 넘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예전 걸 더 좋아할 수도 있지만요. 대단하게 뭔가를 깨달은 건 아니에요. 그냥 그런 과정인 거죠.

 

현대카드, 대림미술관, 모나미 등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해왔어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클라이언트를 사랑하면 업무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애정이 중요하죠.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일하다 보면 애정은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에 평소에 잘 모르던 브랜드라도 그런 부분은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마무리예요. 우리는 모두 죽기 위해 살아간다고도 하잖아요. 모든 일의 마지막 모습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나미 콘셉트 스토어 때도 기획 단계부터 프로젝트를 어떻게 ‘잘’ 끝낼지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스토어는 영영 사라지지만 그 시간, 그 자리의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었어요. 오픈 행사에 초대한 153명에게 스토어를 철거하면서 나온 목재로 필통 153개를 만들어서 선물로 드렸어요. 153은 모나미라는 브랜드의 상징적인 숫자고, 목재에는 그곳을 찾아주신 분들이 해놓은 낙서들이 적혀 있어서 더 의미 있었죠. 그래서인지 한 번 인연을 맺은 클라이언트와는 오래 함께하게 되네요.

 

아이들에게도 영감을 많이 받으시죠?

맞아요. 첫째 상민이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데, 딸기 키즈뮤지엄을 만들 때는 네 살이었어요. 딱 상민이만 한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곳이니까 상민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놀까, 어떻게 하면 상민이가 더 즐거울까 생각하면서 구상했어요. 몸으로 노는 걸 워낙 좋아하고 놀이하는 순간의 기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거든요. 한번 놀기 시작하면 푹 빠져요. 뮤지엄 곳곳에 텍스트가 제법 적혀 있는 편인데 그것도 모두 제가 상민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었어요. 만약 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했다면 거국적이고 진부한 말을 했겠지만,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그만큼 솔직해져서 공간에도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상민이가 없었다면 어린이 공간은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상민이 덕에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선물할 수 있었네요. 공간에 관한 대화도 많이 나누세요?

정말 짧게 해요. 한 5분(웃음)? 평소에 함께 있을 때 그냥 툭 던지는 거지 작정하고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아요. 북서울 시립미술관에 ‘하트 탱크’라는 기구를 만들 때도 그랬어요. 아빠가 미술관에 딱 너만 한 친구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건데 뭐가 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탱크래요. 전쟁놀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래요. 하트 모양 탱크에서 하트가 발사되면 사람들이 다 웃을 것 같대요. 그렇게 상민이가 낸 아이디어와 상민이가 그린 그림으로 하나의 공간을 채우게 됐죠.

이제 나이대로라면 상민이보다 둘째 하림이에게 아이디어를 얻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개구쟁이인 상민이와 달리 하림이는 얌전한 편이에요. 상민이가 어릴 땐 아이가 노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디어가 됐지만 하림이 성향 상 그런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이제는 ‘모든 아이를 잘 담아주는 그릇’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자기 아이의 성장에 따라서 변화를 맞으시더라고요.

정말 그렇네요. 그릇이라는 역할도 나이 차가 있는 상민이와 하림이를 아우르고 싶은 마음에서 가닿은 지점인 것 같아요. 상민이도 하림이도 즐겁게 놀아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예전에는 한 아이의 성향에 맞추느라 일방적이었던 부분이 지금은 좀 더 양분화됐어요. 두 아이가 함께 자라는 모습을 통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지금 깨달았어요. 계속 ‘그릇’을 강조해 왔는데 저도 몰랐던 이런 이유가 있었네요. 이야기하다 보니 이렇게 퍼즐이 맞춰지네요(웃음).

 

재미있네요(웃음). 어린이 공간은 디자인, 창의성, 안전성을 다 같이 고려해야 하잖아요. 이런 요소들의 균형을 맞추는데 힘든 점은 없나요?

힘들다기보다는 어려운 부분이죠.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나면 정말 큰일이니까요. 어린이 공간이라 더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해외 자료를 보며 참고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에 비해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국내 시설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아요. KCL의 기준에 부합하는 선에서 어린이 놀이 운동가들의 마인드에 최대한 맞춰 가려고 해요. 편해문 선생님께서 항상 ‘위험한 놀이터’의 역할을 강조하시는데요. 위험해야 안전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저도 너무 잘 알거든요. 가만 보면 높은 데보다 낮은 데서 사고가 많이 나더라고요. 기구가 높으면 아이들도 무서우니까 조심하게 되는데, 만만하다는 생각이 방심으로 이어지는 거죠. 아이들 스스로 위험을 마주하고 판단하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마음스튜디오의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무엇을 얻어 가길 바라나요?

어린이들이 본인의 흥미와 역량을 깨닫는 경험을 하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항상 카테고리를 정하잖아요. 공간을 구성할 때도 이만큼은 뛰어노는 존, 이만큼은 프로그램 진행하는 존, 이만큼은 책 읽는 존…. 그런 구분을 없애고 싶어요. 실제로 그렇게 작업하고 있고요. 제가 여의도 물빛광장의 분수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참 자유로워 보여요. 물이 확 올라오면 어떤 아이는 물을 먹고 어떤 아이는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그 안을 누벼요. 그럼 따라 하는 아이들이 생기죠. 물을 맞고 피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면서 몇 시간을 놀더라고요. 그런 게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저희 공간도 어떤 안내나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기도 하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높이의 미끄럼틀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장난감은 집에도 있으니 저희 공간에서는 집에서는 몰랐던 즐거움을 경험했으면 해요.

지치지 않고

응원하는 마음

“아이들도 그걸 느끼면 좋겠어요. 고비를 넘기고 찾아오는 쾌감. 작은 쾌감들이 축적되다 보면 엄청난 자신감이 생겨요. 다 끝내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으면 해요. 부모는 아이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상민이와 하림이, 어떤 아이들인지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둘이 성향이 정말 달라요. 상민이는 어릴 때도 지금도 몸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예요. 좋아하는 일은 열정적으로 해내는 편이고요. 하림이는 사회적인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부도 숙제도 열심히 하는 우등생이에요.

 

상민이가 2학년 때부터 영월에서 학교생활을 했다고 알고있어요.

맞아요. 아내와 아이들은 2년간 부모님이 계시는 영월에서 지냈고 저는 주말마다 내려갔어요. 상민이가 1학년 때 학교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자유분방한 면이 있어서 ADHD 검사도 받아 봤는데 아니래요. 그냥 개구쟁이 성향이 짙은 거였어요. 저도 어릴 때 엄청난 개구쟁이였는데, 그때는 운동회도 있고 평소에도 뛰어놀 시간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등교도 일주일에 두 번밖에 못 하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만 하니…. 저라도 답답했을 거예요. 코로나19전에 내려간 거지만 그전에도 힘들어했거든요.

 

시골로 내려가는 것도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도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아내는 늘 씩씩하고 쿨한 사람인데 아이 문제는 태연하게 넘길 수가 없었나 봐요. 오랜 고민 끝에 내려가기로 결정했고, 원래는 1년만 있으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시골 학교는 참 여유롭고 완전히 자연 안에 있어서 다행히 마음에 안정을 찾았던 것 같아요. 정말 작고 예쁜 동네예요. 저희 가족은 수영장이 딸린 펜션에서 지냈는데요. 수업이 끝나면 수영하기 바빴어요. 맨날 개구리 잡으러 다니고요(웃음). 아내도 아이 낳고 계속 일을 쉬다가 영월에 있는 동안 작은 책방을 운영했어요. 더 있고 싶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가족이 함께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라오게 됐어요.

 

서울로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시골에서 지내다 올라오니 아내와 아이들이 자연의 충만함을 가득 채워온 것 같아요. 예전에는 캠핑을 자주 갔는데 요즘엔 잘 안 가려고 하더라고요(웃음). 주말에는 무조건 가족들과 있으려고 하는데 저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가족들은 집에서 쉬고 싶어 해요. 나가자고 하면 아내는 대번에 그러죠. 집 나가면 괜히 돈 쓰고 시간도 버린다고요.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대부분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잖아요. 시골은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문화적인 혜택이 더 많아요. 어딜 가도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공간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어요.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굳이 한강을 찾아가서 주차를 하고, 사람 많은 시간을 일부러 피할 필요가 없는 거죠.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문화적 혜택은 잠깐씩 열리는 팝업 스토어라고 생각해요.

팝업 스토어를 서울의 문화적 강점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굳이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도시의 강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계획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보이는 것에도 신경을 더 쓰게 되고요. 몰튼 자전거 타고 멋진 가방 멨으면 망리단길 정도는 가줘야 하거든요(웃음). 시골은 보는 사람이 없으니 내려놓을 수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취미 활동도 있나요?

주말에 아이들이랑 같이 그림을 그려요. “이리 와 얘들아, 그림 그리자!”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이것저것 스케치하는 걸 좋아해서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제 옆으로 슬쩍 와요. 하림이는 주로 고양이 동구를 그리고, 상민이는 워낙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요. 3학년 때부터는 드로잉으로 애니메이션도 만들더라고요.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웃음). 주말엔 몇 시간이고 그러고 놀아요.

 

혼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니 놀라운데요.

공부보다 그런 걸 재미있어해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좋은가 봐요. 정작 상민이는 항상 자기가 아무것도 못하는 애라고 생각해서 잘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어요.

 

아빠로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꼭 마음에 두고 살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인사나 식사 예절처럼 가족 간에도 꼭 지켜야 할 태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안 되면 좀 화가 나요. 평소에 친구처럼 재미있게 놀다가 그런 부분에선 갑자기 엄하게 돌변하니까 아이들도 혼란스러워할 때가 있어요. 아내는 가끔 그러다 아이들과 멀어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지만, 만일 그렇더라도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지금 익혀 놓은 태도가 아이들 삶에 기본으로 자리 잡힐 테니까요. 또, 아이들이 내면의 평화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아빠가 되고 싶고요. 아내가 아이들 마음을 정말 잘 다스려줘요. 저는 표현이 좀 서툴거든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말을 잘 들어주니까 제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단점을 알아가고 있어요. 표현 방식 때문에 아이들과의 사이가 비뚤어지지 않게 잘해나가고 싶어요.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하신 편이라고 했어요. 아이들도 그러기를 바라나요?

네. 현재에 충실하다는 건 끈기가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이 일 시작하고부터는 ‘마감일’이라는 게 정말 중요해졌어요. 마감일이 있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하던 일을 끝마치고, 끝내고 나면 거기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죠. 아이들도 그걸 느끼면 좋겠어요. 고비를 넘기고 찾아오는 쾌감. 작은 쾌감들이 축적되다 보면 엄청난 자신감이 생겨요. 다 끝내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으면 해요. 부모는 아이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아빠가 화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웃음) 나름대로 많이 응원해 주고 있어요.

 

아이들이 그 응원을 강요라고 느끼지 않으면 좋겠네요.

그게 숙제예요. 제가 평이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아이들은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앞서 말한 끈기에 관한 것도 그래요. 아내는 “당신이 생각하는 끈기의 수준과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끈기는 다르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많이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가끔은 모른 척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예 빠지고 아내에게 맡기려고요. 아내를 한 번 거치고 오면 그게 무슨 일이든 좀 더 넓게 바라보게 돼요. 제가 아내를 존중하고 아내에게 의지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이번 호의 주제가 ‘문화’예요. 아이들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방법이 있나요?

저와 아내가 전시 보는 걸 좋아해서 미술관에 많이 다녀요. 저희가 좋아서 데려가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억과 경험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아내는 작가의 풍부한 표현 방식에 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내는데, 저는 어느새 또 강요를 하고 있어요. 하림이는 저랑 전시 보다가 “나 엄마한테 갈 거야.” 하고 가버려요(웃음).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역할이라면 아내는 스토리텔러 역할을 해줘요. 바스키아를 본 날엔 바스키아처럼, 키스 해링을 보고 온 날엔 키스 해링처럼 그림을 그려보기도 해요.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아이들 데리고 해외도 나가고, 가족 모두가 매년 태국 치앙마이에 전시를 보러 다녀오곤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죠. 어서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RECOMMENDED PLACE

신기한놀이터

어린이 놀이 운동가 편해문 선생님이 만드신 놀이터예요. 모래놀이터 세 개에 각각 다른 기구들이 채워져 있어요. 높은 미끄럼틀과 그물로 된 기구도 있고요. 장난감도 빌릴 수 있어서 아이들이 한참을 놀아요. 상민이 또래 남자아이들도 여섯 살짜리 아이들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는 걸 보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놀이터의 위대함을 다시 느껴요. 공공 놀이터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을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산41-31

헤이리 예술마을

가끔 파주 아울렛에 들러 쇼핑도 하고 헤이리 예술마을을 돌아다녀요. 409스페이스 앞 광장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요. 그리고 카페에서 쉬면서 같이 그림 그려요. 집에서처럼 누구 한 사람이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하면서 두세 시간은 앉아 있어요. 예술마을이라는 이름답게 곳곳에 구경할 거리가 많아서 가족끼리 시간 보내기에 좋아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0-21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