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Morning To Night Under My Hanok

처마 밑에 수 놓은 하루 : 작가 장보현 · 사진작가 김진호

90년 된 집을 골조만 남기고 뜯어냈다. 신기하지. 한 땀 한 땀 다듬어갈수록 일상이 미세하게 변해간다. 처마 아래로 스미는 은은한 볕이 고맙고 흙벽과 나무 냄새에 느긋해지더니 옥상에서 키운 허브로 요리하는 날도 늘었다. 집을 캠퍼스 삼아 선을 그리고 색을 입혔다. 통인 시장의 어수선함을 지나 좁은 골목, 가장 안쪽 문을 열면 펼쳐지는 그림이다.

집의 시간을 먹고 산다

일상의 집
형태 도심형 개량 한옥
거주 8년
나이 90년

모두가 집 안으로 숨어드는 이 시기에, 대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공간을 보면서 집을 소개해 주실래요?

보현: 어서오세요. 이 집은 1930년에 지어진 도심형 개량 한옥이에요. 1970-80년대 아파트 붐이 일어나기 전까지 도시인의 흔한 주거 형태였죠. 현대인의 주거 방식이 아파트로 옮겨 가면서 한옥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어요. 이 집은 재개발 틈 속에서 살아남은 한옥이에요. 광화문 주변으로 북촌과 서촌 등 구도심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보존될 수 있었던 거죠. 집 구조는 ‘ㄷ’자 도넛 형태예요. 지금 저희가 이야기 나누는 곳이 거실인데요, 큰 테이블은 저희 둘이 있을 땐 자주 쓰지 않고 집에 손님을 초대하거나 미팅을 할 때 사용해요. 제가 하루 중 가장 오래 있는 곳은 소파 테이블이 놓인 저 자리예요. 소파에 기대서 차도 마시고 글도 써요. 중앙에 부엌이 있고 그 맞은편 방은 침실이에요. 밖에는 창고 방으로 쓰는 방이 하나 더 있고 침실 옆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옥상 텃밭이 나오죠. 예전 세입자는 여기서 삼대가 살았대요. 바깥 방은 고모가 쓰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들 내외, 아이들이 안채에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두 분 소개도 부탁드려요.

보현: 글을 쓰고 있어요. 여행, 라이프스타일, 요리의 순간을 모아 남편과 공동 작업을 해요. 남편은 제가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공백을 이미지로 완성해 주고, 반대로 이미지 사이에 드리운 간극은 제가 텍스트로 메워요. 아직은 저도, 남편도 설익었기 때문에 글과 사진 혹은 영상을 크로스오버하죠. 지금은 여행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각자의 영역에서 심도 있는 작업을 위해 서로 의존도를 줄여볼까 싶어요.

진호: 사진과 영상을 찍고 만들어요. 지속 가능한 작업을 모토로 ‘서스테인 웍스SUSTAIN WORKS’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 집을 통해서 삶 안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하루 종일 빛이 가득한 공간에서 아내가 요리하는 음식을 함께 먹고 생활하는 모습을 브런치 플랫폼에 올렸죠. 계속 쌓이고 발전해서 책을 두 권 냈어요. 

 

그중 하나가 이 집에서의 사계절을 모은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죠? 그런데 생각처럼 극적인 만남은 아니었다고요.

보현: 저희 둘 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꼭 어린 시절을 꼽아요. 남편은 평택의 농가 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저도 종갓집 고택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지냈어요. 그 시절 누린 달콤했던 공간의 감각을 되찾고 싶어서, 제가 서른이 되는 해 함께 서촌을 오가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땐, 꿈에 그리던 한옥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어요. 한옥이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마당 지붕으로 살짝 튀어나온 처마 끝 서까래를 제외하고 모든 벽면과 천장이 합판과 도배지로 둘러싸여 한옥의 구조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거든요. 기억 속 간직한 한옥의 모습과 괴리가 있었지만, 딱히 대안도 없었어요. 새로운 공간이 가져다줄 삶의 변화가 절실했거든요. 그 괴리는 살면서 차근차근 간극을 좁혀 나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어요.

진호: 처음 집을 보러 온 날 흐리고 늦은 오후였어요. 통풍보다는 단열 위주로 집을 꽁꽁 싸매서 어두침침하고 꿉꿉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소개해 주신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은 저희가 망설이는 걸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저한테 인생의 멘토가 있는데 그분 역시 한옥에 살아보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면서 저희를 질책했어요. 이후 한낮에 다시 방문해봤는데 빛이 가득 차 있더라고요. 이거면 됐다, 싶었죠.

(미셸이 거실로 나온다.) 이 아이가 미셸인가요?

보현: 맞아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었던 저와 남편의 첫 고양이, 이 집의 터줏대감이에요. 올해로 열 살인데 고양이의 원형 같은 모습을 가져서 묘한 매력이 있어요. 미셸 별명이 ‘인왕산 새끼 호랑이’예요. 옛날 옛적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잖아요. 미셸은 자기 영역을 점검하고자 매일같이 옥상에 올라요. 옥상에서 바라보면 기와지붕 너머로 인왕산 실루엣이 걸치거든요. 그 풍경 속 미셸은 영락없이 인왕산 새끼 호랑이인 거예요. (꼬망이 포토그래퍼 주변을 맴돌며 탐색하기 시작한다.)꼬망은 푸른 눈과 그러데이션이 멋진 샴고양이예요. 집 계약이 연장된 추운 겨울날 이곳에 왔어요. 사실, 미셸이 새벽 4시마다 깨워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기도 했어요. 꼬망이 온 뒤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됐네요(웃음). 고양이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친구예요. 

 

새끼 고양이도 보이네요.

보현: 작년 초여름 지붕 배수로에서 어미 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어요. 옥상 정원의 식물을 돌보듯 정성껏 고양이들을 챙겼죠. 길고양이들의 텃세와 추워진 날씨로 그중 한 마리를 집으로 들였어요. 아직 한 살도 안 됐어요. 노란 태비 무늬라 이름을 ‘금동’으로 지었죠. 미셸과 꼬망이 사이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이 집만의 온도와 공기가 있어요. 두 분이 직접 공간을 다듬었다고요.

보현: 이 집이 재미있는 건 도심형 개량 한옥으로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양옥 또는 아파트의 주거 형태를 덧입어 왔다는 점이에요. 이 집을 포함해 주변 이웃의 한옥들도 뼈대를 제외하고 내부를 여러 번 리모델링하면서 한옥의 모습을 숨겨왔어요. 처음 2년은 처마 밑의 따스한 볕과 수시로 변하는 계절에 만족하며 지냈는데, 이건 집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많은 못이 나무에 박혀 있고 대들보는 무거운 상부장을 지탱하느라 숨을 헐떡였죠. 재계약을 하고 주방부터 공사를 시작했어요. 싱크대 옆에 싱크대만 한 가벽이 세워져 있었거든요. 가벽을 드러내고 상부장을 뜯어내고 타일을 붙였어요. 그렇게 구색을 갖추니 옥상의 채소로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고 깊은 밤 따뜻한 차를 곁에 두고 식탁에 앉아 사색하는 시간도 늘었어요. 다음 해에는 안채에 있는 합판을 뜯어냈어요.

 

지금 천장엔 서까래가 보여요. 원래는 합판이 있었다는 거죠?

진호: 맞아요. 천장도 낮았어요. 어느 날 서까래가 부식돼 그 틈 사이로 흙과 기왓장이 쏟아져 내렸어요. 이 합판 위가 어떻게 생겼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처음에는 핸드폰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어서 사진을 찍어봤어요. 가운데 부분이었는데 생각보다 나무 상태가 괜찮은 거예요. 뜯고 보니 여기만 괜찮은 거였어요. 흙이랑 돌덩이가 다섯 포대는 나왔어요. 그럼에도 마감이 안 된 흙벽, 날것의 자태가 정말 멋졌어요.

보현: 한 달 내내 철거만 했어요. 힘들었지만, 옷을 벗겨내는 순간마다 집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환상이 들었어요. 무거운 짐을 벗겨줘서 고맙다고요. 나무에 박힌 못을 하나씩 뺄 때마다 못 자국 사이로 환희의 탄성이 새어 나오더라고요. 벽지도 열 겹 정도 벗겼어요. 벽지마다 그 시대를 엿볼 수 있었죠. 묘한 벽지 냄새를 맡으면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했어요. 철거를 마치고 서까래가 드러난 높은 천장이 주는 개방감이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처마 끝을 타고 실내 공간으로 스미는 은은한 채광, 흙벽과 돌, 나무에서 풍기는 자연스러움도요. 

 

세 들어 사는 집이라고 하셨는데….

진호: 단순해요. 1년을 살든 2년을 살든 내가 살고 있으면 내 집이라고 생각해요. 금전적으로 큰돈이 들어가는 상황도 아니었고, 나중에는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꿈도 있거든요. 이 집은 참 특이해요. 서까래가 방향이 다르고 나무 색도 제각각이에요. 좋은 경험이고 배움이 되었죠.

계속 ‘이 집’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두 분은 이곳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대하는 게 느껴지는데요. 이참에 집에 이름을 붙여 보면 어떨까요? 

보현: 그 생각을 못 해봤네요.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듯이 접근해 보면 어떨까요? 음…. ‘일상의 집?’ 근처에 ‘이상의 집’이 있으니까(웃음). 농담이고요. 돌이켜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귀한 집이거든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집에서 계절과 시간의 감각을 느끼며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지낸 공간이기도 하고요. 

 

좋아요. 이제부터 일상의 집이라고 부르기로 해요. 일상의 집에서 대개 하루를 어떻게 보내요? 

보현: 계절에 따라 기상과 취침 시각은 조금씩 달라요. 겨울엔 해가 늦게 뜨다 보니 기상 시간도 자연스럽게 늦춰지고 반대로 여름엔 새벽에 일어나요. 여름의 새벽빛을 사랑하거든요. 고정된 의무나 책임이 없다 보니 해이해지기 쉬운 편이에요. 작년 위에 문제가 생겨서 아침 점심 저녁을 조금씩이라도 꼭 챙겨 먹고 일과를 규칙적으로 꾸려 나가기 위해 노력해요. 집에서 발견한 작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면서 매일 하는 일들을 이어나가요. 물론 늘어질 땐 하루 종일 드라마만 보기도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어떤 즐거움인가요?

보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좋아요. 여름이 오면 무더위에 노출된 몸은 자연스럽게 땀을 흘리고, 겨울이 오면 건조한 살결은 갈라지고 트기 시작해요. 오래 살다 보니 어디에 언제 어느 정도 빛이 들어오는지 알아요. 제 안에 시계가 생긴 것처럼요. 빛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계절을 감각할 수 있어요. 오늘 오후에는 주방 타일을 비추는 햇살이 새삼 밝아진 걸 보고서 봄이 왔음을 실감했죠.

진호: 일상의 집이 외부로 창이 거의 없는 구조예요. 막혀 있는 구조 안에서 빛이 안으로 순회하면서 돌아요. 오전에는 소파 옆 문에서 빛이 들어오고, 오후가 되면 주방이 빛으로 가득 차요. 빛의 각도는 움직이지만 방향은 일정해요. 여러 빛이 섞이는 게 아니라 한쪽 방향으로 잘 돌아가기 때문에 사물이 덩어리감이 생기고 매력이 더해져요. 피사물들이 빛을 따라 움직이는 거 같아요. 하루의 루틴 안에서 제가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에요.

자연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거네요.

보현: 맞아요. 자연을 느끼니 서두르지 않게 됐어요. 계절이 순환하는 원리를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요. 그 여유는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중심을 잃지 않고 일상을 이끌어가는 데 도움을 주고요. 일상을 좀더 섬세하게 가꿀 수 있는 기준인 거죠.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망종, 가을은 한로, 겨울은 대설의 시기를 가장 좋아해요. 더디게 다가오는 봄을 인내하다 보면 청명의 시기 즈음, 고대하던 맑은 하늘과 따스한 봄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요. 여름의 세 번째 절기인 망종이 오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세계를 만끽해요. 한로는 절정을 맞이한 한 해의 기운이 서서히 소멸하는 시기라 건강에 특히 유의해야 하고요. 차분히 앉아 따듯한 차를 마시며 떠오르는 생각을 한번 정리하면 좋아요. 대설은 세상이 하얗게 덮인 아름다운 설경을 만날 수 있는 시기예요. 설국으로 여행 온 듯 매서운 동절기 추위를 한 번쯤 사르르 녹여준다고나 할까요. 눈 덮인 풍광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잖아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언젠가부터 여름 대신 ‘망종’이라고 답해요. 모든 사물이 초록으로 빛나는 시기고, 완벽한 온도와 습도의 청량한 공기 속에서 만물이 유연하게 흘러가거든요. 망종이 펼쳐지는 2주 동안은 꿈속에 사는 기분이에요.

일상의 집에서의 하루

아침 9시 일어나서 전날 밑준비 해둔 재료를 손질해 아침 식사를 만든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로 티타임을 가진다.

아침 10시 새벽에 고양이 특공대가 신나게 어질러 놓은 물건을 제자리에 옮겨 놓고 청소를 시작한다. 

아침 11시 미셸이 옥상을 향한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 애처로운 눈빛으로 구슬피 운다. 한겨울을 제외하고 같이 옥상에 올라 과실수와 허브들을 살핀다. 옥상에서 내려오면 따온 허브 잎을 띄워 낮 동안 마실 물병을 채운다.

낮 12시 간단하게 요구르트에 제철 과일을 곁들여 점심을 해결한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써 내려가 노을이 지기 전까지 줄곧 작업한다. 

저녁 6시 가장 사랑하는 시간으로 해 질 녘이 다가오면 서산에 지는 태양의 잔광을 음미하기 위해 산책을 나선다. 낮 동안 써 내려간 활자들도 정리할 겸 걸으며 휴식한다. 

저녁 7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반주를 곁들일 수 있는 메뉴로 하루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밤 9시 간단한 요가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밤이 오면 잠들기 전까지 다시 글을 쓴다.

 

나다운 공간을 찾아서

유년 시절에 한옥에 살았다고 했어요. 현재의 삶에 영향을 많이 준 걸로 보여요.

보현: 경상북도 영주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조선 초중기 무렵 형성된 인동 장씨 집성촌이에요. 15세기에 지어진 종가 고택의 사랑채와 조상의 신주가 모셔진 사당을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숨바꼭질을 하고, 설날과 추석이 오면 동성의 친인척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구경했어요. 놀 거리라고는 500년이 훌쩍 넘은 고목을 올라타는 일, 재미없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졸거나, 동네 강아지를 쫓아 둑방길 따라 배회하는 게 전부였죠. 뒷산에서 마주친 토끼와 고라니에 일상성이 전복될 정도로 권태로웠어요. 그때는 몹시 지루해서 그 삶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대학에서 한국예술학을 공부하는데 책 속 내용이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과 맞닿아 있는 거예요. 전통이란 거대한 주제가 아니라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던 거죠. 그 가치를 너무 당연하게 여겨 알아차리지 못했나 봐요. 작은 깨우침 뒤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온 일상 속 사물과 정서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권태롭거나 너저분한 게 아니었죠. 저만의 방식으로 일상 속에서 우리 문화의 가치를 녹이고 싶어요.

 

내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인가요?

보현: 공간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그 반대를 모두 겪었어요. 어린 시절 눈앞에 펼쳐진 공간을 내 세상으로 여기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즈음 독립된 방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내 공간에 욕심이 생겼어요. 색종이를 잘라 벽을 꾸미고, 잡지를 찢어 좋아하는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책과 음반을 나만의 취향대로 잘 진열한다거나…. 문 하나 달린 세 평 남짓한 그 방이 저의 세계이자 모든 것이었죠. 

대학에 진학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나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제 방을 고스란히 옮기려고 고군분투했어요. 다른 방 학생들이 제 방으로 구경 올 정도로요(웃음). 졸업하고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왔고 기숙사의 짐들도 돌아왔어요. 원점 같았어요. 취업 준비생 신분으로 정서적인 불안감에 휩싸인 채 책만 읽으면서 방 안에서 반년을 보냈어요. 그때 경험이 아주 특별했어요. 제 20대의 자화상이 그 방 안에 그대로 녹아들었으니까요.

 

독립 후 처음 가진 방은 어땠어요?

보현: 취업을 위해 서울로 다시 오게 됐고, 복합 문화 공간 레지던시에서 지냈어요. 낮에는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고, 밤이 되면 예약이 없는 빈방을 전전하며 지냈죠. 불시에 방을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더라고요. 제가 가진 전부가 칫솔, 치약, 갈아입을 속옷, 옷가지 등으로 갈색 종이 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였으니까요. 무언가를 소유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라이프스타일이 아주 단순했어요. 덕분에 정서적 동요가 심했던 20대 후반기를 잘 보낼 수 있었어요. 마치 무소유 수행을 위해 방을 옮겨 다니는 수도사의 마음으로 말이에요. 이때 저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공간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듯해요.

 

삶의 주기가 변할 때마다 공간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기도 억제하기도 한 거네요. 그럼 일상의 집은 어디에 가까워요?

보현: 돌이켜보면, 나의 집이란 처음부터 활짝 열려 있었어요. 어릴 땐 집 구석구석이 그저 놀이터였고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부 제 것이었죠. 공간에 대한 경계가 없었어요. 그러다 사회화를 거치며 점점 작아졌어요. 어느 순간 굴을 만들어 바깥 세계와 단절된 도피처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독립의 기로에 섰을 땐,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텅 빈 공간의 기억이 지배적이었어요. 물건이나 공간을 소유하지 않다 보니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요. 삶의 단계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살아왔어요. 

일상의 집에서의 생활은 그 중간 즈음이에요. 이제는 공간과 취향이 나를 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 않아요. 대신 스스로 집을 가꾸고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어요. 일과 일상의 경계도 실험해 보고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접합점을 모색해 나갔죠. 환경과 여건이 주어진다면 다음 목표는 직접 집을 짓고 사는 거예요.

집을 스스로 가꾸고 공간을 창조해 나간다는 건,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며, 어떤 순간 행복한지를 찾았다는 말로 들려요. 

보현: 맞아요. 일상의 집에 살면서 저는 많이 성장했어요. 집을 일터 삼아, 놀이터 삼아 생활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잘 사는 거에 만족해요. 전처럼 최선을 다해 버티거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 않아요. 현재진행형으로 살아요. “어제는 지나간 역사이고, 내일은 미지의 수수께끼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것이 현재를 선물이라 말하는 이유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연스러운 공간의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솔직해질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껴요. 자연스러움과 오래된 것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충직하게 현재를 보내고 지난날 내 모습을 반추해요. 이 시간이 쌓여 먼 훗날 또 다른 나를 우연히 만날 수 있겠죠. 

진호: 아내와 살고 같이 집을 고치면서 집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집을 휴식 공간으로만 생각했거든요. 집이 뭔가를 생산하고 영감을 얻을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편안하게 쉬면서 작업도 이어 나가는 지점이 되면서 일과 생활이 같이 성장해 갔어요. 작고 사소한 일들도 다 이 안에서 이뤄졌거든요.

 

포기하면서 사는 부분도 있나요?

보현: 아무래도 불편함은 감수해야죠. 한옥 생활은 시절에 따라 해야 할 일거리를 던져줘요. 집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손을 써야 하니까요. 장마철 비가 새거나, 한겨울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위에 노출되기도 해요. 봄이 오면 겨우내 얼었던 흙벽이 바닥에 떨어져 분진을 일으키고요. 건축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데 말이에요. 

진호: 저는 주차가 제일 불편해요. 지붕의 배수로 관리도 신경써야 하죠. 나뭇잎이 쌓이면 나뭇잎을 타고 어디론가 물이 새요. 돌봐줘야 하는 집인데 저는 그 점이 좋아요. 집을 사거나 세 들어온 뒤에 관심을 뚝 끊는 게 아니고 괜찮은가 계속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손이 안 간 데가 거의 없어요. 여기 스위치 설치 같은 전기 공사도 제가 했거든요. 집 구석구석을 정말 잘 알죠. 

저희 부모님, 할아버지 시대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지붕도 잇고 기둥도 세우면서 집을 스스로 지었대요. 일터와 집이 구분되지 않았고 한 집안의 가장은 집을 스스로 짓고 한평생 손수 집을 고치며 가꾸고 살았어요. 잘 지은 집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도 했고요. 그 감각과 노하우가 살아 있는 시대가 분명 있었는데 근대화 이후 생활 방식이 급변하면서 본래의 집이 가진 다양성이 사라지고 그런 기술과 지혜의 축적이 필요 없어진 거죠. 뭔가가 고장 나면 ‘사람 불러야지.’ 하잖아요. 삶의 다양성과 개성도 함께 사라진 거 같아요. 한옥에 살면서 아주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하나씩 얻고 깨어나요. 아파트에 살면 형광등 가는 거 정도 제가 하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이 공간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나만의 지속 가능한 생활을 꿈꿔요. 나다운 공간을 찾아온 사람으로서 조언해 준다면요?

보현: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어 해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가 가진 물건에 어울리게 조금씩 공간을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주어진 공간을 그대로 활용해 가구 배치를 바꾸고, 조명을 바꿔 달거나, 소품을 놓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남편 후배가 가져다 놓은 소파가 있었거든요. 그걸 기준으로 스피커를 놓고 테이블을 배치했어요. 

하나의 덩어리가 생기면 조금 더 확장해 나가는 식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꿨어요. 그러다 공간 전체가 눈에 들어오면서 주방 공사를 하거나 합판을 뜯어 집을 고쳐 나갔죠. 나아가 마당이나 옥상 정원, 골목길, 더 나아가 동네 역사까지 영역이 확장되어 저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 거예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집에선 언제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공간이 인간의 삶의 행태를 규정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생활 방식도 그에 따라 변하니까요. 지금 나의 일상과 어울리는 공간에 산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진호: 빛을 컨트롤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가장 편안하고 좋아하는 빛의 컨디션을 찾아보는 거예요. 지금 굉장히 부드러운 빛이 들어오잖아요. 제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요. 거실 창이 백유리였다면 아마 느낌이 다를 거예요. 아파트엔 모든 공간에 형광등이 쫙 깔려 있잖아요. 반투명 블라인드를 달아보든가 형광등을 떼고 간접 조명으로 살아보길 추천해요. 내가 드러내고 싶은 건 드러내고 감추고 싶은 건 감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큰돈 안 들이고 자기 공간으로 만드는 시작인 거 같아요.여기서 가장 고심하며 자리 잡은 살림살이가 궁금해요.

보현: 조명이 어려워요. 공간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할 만큼 영향력이 크잖아요. 조도나 빛의 색깔도 고려해야 하고, 펜던트가 차지하는 공간의 영역도 살펴야 해요. 이 집에서 가장 마지막에 달린 조명이 노만 코펜하겐의 NORM 06 수련 시리즈예요. S·M·L 사이즈가 있는데 중간으로 선택했죠. 사이즈가 커질수록 점점 꽃이 피거든요. 지금은 삶의 단계에 있어서 중간쯤 와 있는 것이라 여겼나 봐요. 만개한 수련을 달 날이 올까요(웃음)?

 

다음 공간을 눈여겨볼게요(웃음). 이제 일상의 집의 기록을 더 빛나게 해주는 요리 이야기를 나눠봐요. 정말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인데요, 태생적으로 요리는 거부해 왔다고 했어요. 어떻게 된 거죠?

보현: 저희 세대가 자연스럽게 요리를 잘하거나 즐기는 세대는 아니라 저도 그렇게 살아왔어요. 하지만 시골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해주신 제철 음식을 먹은 기억이 있어요.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간접 경험도 있고요. 제 안에 그런 감각이 있었는데 남편이 영감을 줬어요.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는 감각을 곁에서 일깨워 줬다고나 할까요? 음식에 대한 소견이 있거든요. “이 계절에는 이걸 먹어보자. 이런 걸 넣으면 더 맛있어.” 하면서 옆에서 영향을 많이 줬어요.

 

직접 하진 않고요(웃음)?

진호: 저는 어시스턴트죠. 옆에서 다듬거나 도와요. 어머니가 전라도 분이신데 때 되면 먹는 게 있었어요. 쑥 나오면 쑥으로 된장 만들어 주시고 전어 나오는 철에는 연탄불에 구워 주셨죠. 어릴 때부터 인상 깊었고, 커서 어머니가 음식을 하면 옆에서 도왔어요. 지금 아내 옆에서 돕듯이요. 잔소리처럼 안 느껴지게 조심히 조언하는 게 중요해요(웃음). 제가 보고 먹은 걸 이야기했는데 아내가 잘 만들던걸요.

 

매 끼니를 해 먹는 거예요?

보현: 매번 그러진 못해요. 가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은 날엔 남편과 하나를 끓여서 나눠 먹기도 해요. 다만 재료를 만지면서 느끼는 손의 감각이 좋아요. 그걸 잃고 싶지 않아요. 따지고 보면 삶의 모든 행위가 거의 다 손끝을 거쳐 이뤄지죠. 요리를 완성하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기록하면 제 작품 포트폴리오가 쌓이는 거 같아요. 이 과정들을 통해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가진 힘을 깨달았어요.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선별하기 위한 배경지식, 하나의 완성된 요리를 구상하기까지 발현되는 창의력, 맛에 도달하기 위해 곤두세우는 감각, 요리를 접시 위에 담는 프레젠테이션까지. 예술가가 창작하는 행위와 꼭 같은 거예요. 그 감각을 통해 일상을 조금 더 온전히 채워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 있어요. 결과물이 사라져 버리기에 가치를 평가할 수 없지만 맛의 감각이 누군가의 기억을 지배하겠죠.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요. 언젠가는 ‘Jang’s Diner’라는 이름의 사적인 취향의 식당을 꾸미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집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바깥 세계와 교감도 필요하잖아요. 두 세계 사이에서 나에게 맞는 균형은 어떻게 찾아가고 있어요?

보현: 집에서 시간을 대부분 보내다 보니 외부 자극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해요.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일상이 팽팽해지는 걸 경험하거든요. 손님을 맞이하기 전까지 긴장감을 즐겨요. 괜히 청소도 한 번 더 하게 되고 물건들도 어루만지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도 돌아보고. ‘잔치’라는 순우리말이 있잖아요.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 그 전통문화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딱히 기쁜 일이 있지 않더라도, 역으로 음식을 매개로 함께 모여 즐기며 기쁜 일을 만들어나가는 거죠.

진호: 밖에서 경제 활동을 위해 사람들과 만나고 작업을 수행하는 건 관점이 명확하고 역할이 정확해요. 집에 들어오면 다 걷어내고 온전히 제가 좋아하는 걸 해요. 사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집에서는 제가 좋은 쪽, 편한 쪽으로 접근해요. 20대에 스튜디오에서 일할 땐 사진이 경직되었고 상업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압박이 있었어요. 집에서 풀어내면서 저만의 색을 찾아간 거 같아요.

 

요즘 바이러스라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집에 머물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집 안의 생활이나 물건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하게 되고요. 생기를 주고 싶을 땐 어떤 변화를 주나요?

보현: 저는 색깔을 찾아요. 늘 비슷한 배경 속에서 살잖아요. 마치 흑백 사진에 붉은 사과를 중앙에 배치하듯 집 가운데 놓인 식탁 한쪽에 총천연색 제철 과일을 차곡차곡 쌓아 둬요. 대부분 먹어 없어지지만, 모양이 가장 예쁜 한두 개는 끝까지 살아남아요. 썩을 때도 있고 통째로 말라 박제되기도 해요. 평소에는 꽃을 자주 안 꽂아 놓는데, 오늘 오신다고 해서 남편에게 꽃을 사 오라고 부탁했어요. 꽂아봤는데 기분이 너무 좋네요. 앞으로 2주일에 한 번씩 만 원 한 장 들고 꽃을 사야겠어요.

진호: 청소도 좋아요. 물건이 다 놓인 상태에서 청소만 하는데,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미묘하게 공기가 다르잖아요. 먼지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개운하고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요. 냄새도 바뀌고요. 그게 참 신기하면서 좋아요.

 

힘들거나 우울할 땐 어떻게 보내요?

보현: 기승전결이 완성되는 행동을 해요. 빵을 굽거나, 잼을 만들거나, 피아노 한 곡을 완주한다거나. 행위에 과정이 있고 완성된 결과가 눈앞에 보이잖아요. 그 과정을 통해 감정이 해소되는 걸 느껴요. 괴로움의 덩어리가 클 땐, 나만의 도피처로 여행을 떠나요. 시골집 아버지 포도밭 근방의 습지로요. 습지 가운데 홀로 자생한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나무와 만나는 거죠. 나무는 늘 아무 말이 없어요. 언제고 불쑥 찾아와도 곁을 내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치유해요. 내면에 풀리지 않는 욕구 불만이 한 꺼풀 벗겨지는 기분이에요.

진호: 신기하게도 일상의 집에 살면서 힘들거나 우울한 적이 많진 않은데요, 슬프면 울고 자요. 다음 날 또 울고. 아내에게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거라 뭘 한다고 해소가 되진 않더라고요.

 

점심 즈음 이곳에 왔는데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네요. 저는 하루를 마감할 때 제 딸과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질문을 주고받거든요. 마지막으로 두 분께 묻고 싶어요. 오늘의 기분은 어떤가요?

보현: ‘In Dreams’ 꿈결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잠에서 깨어나기 전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꿈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날이 있어요. 1년에 한 번 정도. 오늘이 그런 날이네요. 다시 돌아온 계절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눴잖아요.

진호: 원래 이 시간이면 찬장 주변에 빛이 가득 차는데 오늘 좀 흐려서 아주 부드러운 빛이 들어오네요. 제 기분도 편안해요. 오랜만에 대청소를 해서 묵은 때도 씻었고 개운해요. 저도 오늘 기분 좋은데요?

구석구석

사적인 즐거움

그릇

매일 사용하기에 일상에 아주 가까운 물건이다. 하나둘씩 쌓인 그릇을 봤더니 어딘가 비슷한 형태의 백자만 모였다. 백자처럼 단순하고 솔직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살고 싶다.

페인트 자국

상부장을 드러내고 남은 자국. 이 집의 세월만큼 덧씌워진 페인트를 결국 벗겨내지 못해 남겨둔 흔적.

만 원의 꽃

오늘 남편이 직접 고른 꽃이다. 만 원으로 각기 다른 세 종류의 꽃을 사 왔는데 집안 곳곳에 꽂았더니 집에 생기가 돈다.

나무 조각

부러진 서까래 사이로 쏟아져 내린 흙과 돌무더기 사이에 지지대로 있던 나무. 형태가 아름다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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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