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For What It’s Worth
※ 사물의 의견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마포구에서 의정부까지 차로 달리고 다시 마포구로 돌아왔을 때 자동차 옆면이 허전해진 것을 발견했다. 오른쪽 문 아래쪽에 있던 범퍼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마도 고속도로 중간쯤에서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열여섯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내 차는 이미 많은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 누가 박아도 모를 정도로 여러 군데가 찌그러져 있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이력도 있다. 하지만 무쇠처럼 단단해 보이는 겉모습을 하고 있기에 나는 이 차를 한 번도 낡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범퍼가 떨어지면서 내 자동차는 나이를 들켜버렸다. 범퍼가 떨어진 부분은 텅 비어 있었고, 빨갛게 녹슨 각파이프가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흡사 틀니가 빠져버린 노인의 얼굴처럼 초라해 보였다.
자동차 수리점에 들러 부품을 구할 수 있을지 물었는데, 그걸 어따 쓰려고 그러느냐는 농담을 했다. 나는 서운했다. 아직 잘 움직이는 자동차를 이미 끝나버린 양철 주전자 취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우체통엔 ‘노후 경유자동차 운행 중지 안내문’이라는 것이 꽂혀 있었다. 노후 경유자동차로 운행해서는 안 되는 구간을 알려주는 안내문이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오래된 경유자동차는 서울 시내와 서울을 벗어난 곳에선 운행을 할 수 없다. 자동차를 폐차시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만 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제 내 차는 관상용이 되었음을 통지하는 글이었다.
2002년 이케아 광고에는 길바닥에 버려진 스탠드가 하나 등장했다. 어린아이가 학생이 되기까지의 추억을 간직한 스탠드 조명이었다. 스탠드는 어둠 속에서 차가운 비를 맞으며 자신을 버린 아이의 창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애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레인코트를 입은 한 남성이 다가오고, 그는 불쑥 카메라를 응시하고 이런 말을 남긴다. “이 스탠드가 불쌍해 보인다면 그건 당신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는 더 좋은 새 제품을 사라고 말한다. 그렇게 광고는 냉담하게 끝을 맺는다. 이 광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아주 당연한 사실은 사물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물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잔인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하지만 이 광고에서 말하는 바는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물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내 자동차는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소통을 필요로 한다. 시동을 켤 때 브레이크를 천천히 떼줘야 시동이 걸리고 처음에 너무 속도를 많이 내면 나중에 속도가 잘 붙지 않는다. 처음에 천천히 달리며 조금씩 달아오르게 해줘야 나중에 으앙 으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덜덜 떨리는 핸들을 잡고 있으면 차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한 날 진동이 덜한 편이다. 이런 소통은 일종의 길들임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차는 계속 상태가 나빠져 가고 있는 것이며, 일방적으로 길들고 있는 쪽은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편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의 비위를 맞춰준다는 것은, 이케아 광고에서 말하는 것처럼 미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타던 아버지의 자동차가 박살이 나서 폐차장으로 끌려갈 때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오랫동안 쓰던 만년필이 깨졌을 때 나는 굳이 정성스럽게 본드로 땜질하고 사포로 갈아주었다. 애정을 쏟는다는 건 색을 칠하고, 모양을 바꾸고…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등 사물의 기대에서 벗어난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물의 기대에서 벗어난 어떤 일을 하며 사물에게 애정을 쏟는다. 반면 사물은 어떤 경우에도 기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가며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나씩 보여주는데, 녹슬고 삐뚤어지고 이상한 소리가 나는 방식으로 사물은 자신의 변형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사람은 사물의 이런 부분에서 애틋함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새로 산 물건이 삐걱거리는 건 용납할 수 없어도 오래된 물건의 변형은 마음 아파하며 이해해주려 노력한다. 그런 식으로 기대에 벗어난 사물의 행동을 솔직한 말로는 고장, 혹은 오작동이라 부른다. 인간이 사물을 사랑하는 데 있어 그것은 가장 큰 딜레마다. 기대에서 벗어난 사물은 사랑할 수 있지만, 사용할 수는 없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오늘도 아파트 주차장에서 몇 번이나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평행주차에 유독 재능이 없어서 그런지, 뒤로 앞으로 아무리 반복해봐도 차는 좀처럼 주차선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조금씩 옆으로 가기는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행주차를 할 때 한 번도 주차선 안쪽으로 진입해본 적이 없다. 앞뒤로 아무리 요동을 쳐봐도 차에서 내려서 보면 두 바퀴는 아슬아슬하게 주차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사물에 애착을 갖는다는 건 이와 비슷한 노력이 아닐지. 편리함과 애착 사이에서 계속 오가면서 결국 어떤 정답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모더니스트는 생각한다. 사물은 사용하거나 아님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려야 한다. 결국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장식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사물로서는 가장 끔찍한 결말이다.
“가방을 무척이나 아낀 한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가방은 단단한 캔버스 천과 질긴 가죽 끈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는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이 가방을 들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며 천이 닳고 닳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가방으로 바꿨지만, 가죽 끈만큼은 이전에 쓰던 것으로 바꿔 달았다. 이제 그에게 그대로인 것은 가죽 가방이 아닌 가죽 끈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샐러리맨이 되어서, 노년이 되어서까지 가죽 끈은 평생을 그와 함께했다. 몸을 거동하기조차 힘든 시절이 다가와 그는 자신의 가죽 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가방을 메지 않았고, 그러므로 이 끈을 만질 일도 없었지만 그는 유독 이 끈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에, 그는 이 끈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끈을 관 속에 함께 넣는 것도, 끈과 함께 재가 되는 것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끈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소수 중의 소수의 의견이지만, 사물의 의견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고장 나는 것도 버려지는 것도 아닌, 사물의 입장에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사물을 향한 사람의 애틋한 마음에는 ‘사물은 반드시 사용되어야 한다.’는 무서운 전제가 깔려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