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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대한 새로운 인상
한강주조
성수동, 그리고 한강에 가까운 자리. 어느 도시 건물 안에서 정감 어린 막걸리 냄새가 풀풀 새어 나왔다. 한강주조 양조장에서는 매일 그날의 술이 빚어진다. 오늘의 대화 역시 막걸리를 마시며 시작되었다. 담백한 단맛에 목 넘김이 깔끔한 술이 기분 좋게 입속을 타고 들어간다.
나는 소주와 맥주가 익숙한 세대라 막걸리를 생각하면 괜히 넓적한 잔과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 시골의 어느 풍경이 떠오른다. 친구는 이런 나를 망원동의 막걸리 집, ‘복덕방’으로 데려갔다. 안주는 육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들이켠 ‘나루 생 막걸리’는 막걸리에 가졌던 선입견을 단숨에 잡아냈다. 친구는 막걸리를 쭉 들이켜고서 한강주조라는 양조장 이야기를 했다. 요즘 ‘힙하다’는 양조장이라고. 막걸리와 힙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어울렸다. 젊은 사람들이 만드는 전통주, 막걸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왜 하필 서울이고 한강이며 성수동이었을까. 여러 의문을 갖고 도착한 양조장에서 다시 나루 생 막걸리를 마셨다. 술집에서만 보던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풍경을 직접 보는 건 막걸리의 맛을 더 깊게 만드는 일이었다. 막걸리를 사이에 두고 한강주조 사람들과 전통주에 관한 매력을 묻고 답했다. 막걸리는 시간과 온도, 날씨, 크게는 계절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도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가득 담긴 막걸리 한 잔을 모두 비웠을 땐 친구가 말했던 한강주조가 가진 ‘힙’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들이 가진 힙은 새로운 무엇에서 오는 감각이 아닌 오랜 과거와 오롯한 현재를 이어가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멋’에 가까웠다.
고성용 한강주조 대표·이상욱 한강주조 이사
한강주조가 올해 우리 술 품평회에서 탁주 부분 대상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웃음).
상욱: 감사합니다(웃음). 한강주조가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고,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요. 이런 시기에 품질 측면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상이었어요.
한강주조의 나루 생 막걸리는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경복궁 쌀’이 주재료예요. 어쩐지 ‘서울의 전통주’라는 개념이 아직 익숙하진 않은 것 같아요.
성용: 그 점이 한강주조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었어요. 타 지역 막걸리는 굉장히 많잖아요. 막걸리뿐만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도 많고요. 안동소주, 한산소곡주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서울은 딱히 대표하는 술이 없어요. 수도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인데 딱 떠오르는 술이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그래서 서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술을 우리가 만들어 보자고 한 거죠. 서울의 전통주라는 정체성을 다잡기 위해서 경복궁 쌀을 선택했고, 양조장 위치도 한강주조만의 개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동네인 ‘성수동’에 자리 잡게 됐어요.
한강주조와 성수동은 어떤 점에서 이어져 있나요?
성용: 성수동은 원래 공업지역이었어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많이 생기면서 변화했는데 가로수길이나 비슷한 결을 가진 다른 동네들과는 달라요. 과거와 현재가 잘 섞여 있죠. 띄엄띄엄 핫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곳들과 여전히 운영중인 공장들이 함께 자리해요. 이런 모습들이 막걸리, 전통주문화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고요. 과거의 술이라고 여겨지는 막걸리를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과 일맥상통하니까요.
조금씩 서울의 전통주라는 개념이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두분이 만나 한강주조를 만들자고 했던 계기는 어땠나요?
상욱: 시작은 구의동의 노가리 슈퍼에서였어요(웃음). 당시에 저는 건축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고성용 대표는 성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했는데요. 카페 공간 인테리어를 제가 맡게 되면서 연이 닿았어요. 그러고는 거의 매일(웃음) 술을 마시는 사이가 됐는데, 서로 하던 일에 고민이 많던 시기가 찾아왔어요. 각자 하던 일에 권태를 느끼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주고받기 시작했죠.
성용: 그러다 전통주 얘기가 나왔어요. 막걸리가 참 좋은 술인데 그저 옛날 술이라고만 평가되는 점이 아쉽다는 말에 공감했죠. 우리라면 막걸리를 재미있게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바로 가양주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을 찾아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시장 조사도 하고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기타 교육 관련 자격증을 수료하는 과정을 밟고 전통주 공부를 이어갔어요.
요즘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전통주 인기가 높아진 것이 그 바탕이 되고요.
상욱: 요새 급격히 많아졌죠. 지금 자격증 수업을 받으려면 1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해요.
왜 갑자기 전통주 수요가 높아졌을까요?
성용: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첫째는 더 이상 해외 문물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해외 문화와 물건을 동경하거나 좇으려는 시선이 옅어졌고 K문화가 인기를 끈 것도 요인 중 하나고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한국의 과거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큰 바탕이 됐죠.
상욱: 젊은 사람들의 주류 소비 습관의 변화가 영향을 주기도했어요. 저희 세대가 대학교 다닐 땐 술이 소주와 맥주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술을 그렇게 마시지 않아요. 취하려고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맛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격이 좀 있더라도 더 좋은 술, 더 다양한 술을 찾죠. 그중 하나로 전통주가 주목을 받고 있고요.
성용: 전통주는 익숙한 매력이 있어요. 일단 원재료가 우리 주식인 쌀이기도 하고 요즘 양조장은 접근성이 좋아졌잖아요. 단순한 소비에서 끝나지 않고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배경이 생겼죠.
상욱: 저는 전통주가 솔직해서 좋아요. 원재료의 질감이 술에 그대로 녹아난다고 해야 할까요. 부재료가 들어가도 그 향이 덜 느껴져서 편안하기도 하고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술인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이런 시기에 나루 생 막걸리가 요즘 젊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첫 막걸리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뭐였나요?
상욱: 가장 기본이 되는 ‘맛’이었어요. 가양주의 특징이 단맛이 지만,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면 너무 달아져서 고민이었죠. 맛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게 첫째 목표였어요. 탄산감이 덜하고 적당한 단맛에 목 넘김이 깔끔한 술을 만들고 싶었고, 그 맛을 찾는 과정이 지난했어요(웃음). 결국 100번째 테스트에서 지금 나루 생 막걸리의 맛을 찾아냈죠.
성용: 그다음이 품질 유지와 일정한 맛을 구현하는 거였어요.막걸리는 만들 때마다 맛에 조금씩 차이가 생겨요. 크게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요. 사실 매번 빈티지에 가까운 술이 만들어진다고 봐도 무방해요. 저희가 만드는 막걸리에 딱 튀는 맛이 없어서 더 예민하게 관리하는 면도 있죠.
과정에 정성이 필수인 술이네요. 술을 빚는 사람에게 좋은 술이란 어떤 걸까요?
상욱: 질리지 않는 술. 도드라지는 맛이 있어서 몇 잔 마시고나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술이 아니어야 하죠.
성용: 모든 음식과도 잘 어울려야 하고요.
한강주조의 막걸리는 그 기준에 부합하나요?
성용: 항상 그런 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요. 개인의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그런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야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죠.
공장을 둘러보면서 느꼈는데 한강주조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상욱: 저희 둘 빼고는(웃음) 평균 30세로 직원들 나이가 젊은 편이에요. 전통주에 관한 관심은 물론 요리나 패션,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들이 모여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 보면 남들과 다른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모인 것 같아요. 뻔하게 사는 걸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모두 특별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용: 확실히 전통주에만 관심이 있어서 저희 회사 들어온 친구들은 아니에요. 양조장을 넘어서 한강주조라는 브랜드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친구들이죠. 최근에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각자의 술을 만들어 품평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했어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다행히 다들 좋아하더라고요(웃음).
한강주조가 양조장을 넘어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개성도 돋보이는 것 같아요. 한강주조가 서울에서 어떤 브랜드로 보였으면 하는지 궁금해요.
성용: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또는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는 브랜드로 봐주셨으면 해요. 여러 이유로 저희를 ‘힙하다’는 말로 표현해 주시는 걸 텐데요. 정말 단순하게 ‘멋있다’ 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 멋에 담긴 의미는 뭘까요?
성용: 자연스러움이요. 인위적인 의미에서 찾는 멋이 아니라, 저희가 가진 자연스러움이 표현됐을 때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상욱: “한강주조 is 뭔들”이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한강주조가 술과 연관성을 넘어 신뢰성을 가진 하나의 브랜드로 여겨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나루 생 막걸리보다 한강주조라는 양조장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한강주조의 목표는 브루잉 펍 같은 공간을 만드는 거라고 했어요. 그 공간이 어떤 풍경을 가질지 궁금해요.
성용: 한강주조는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요. 브루잉 펍은 여러 목표 중 하나예요. 나중에 제조장이 확장되면 단순히 술을 만드는 장소를 넘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방문해서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만들고 싶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멋이 담겨서 지나가다가도 감탄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고요. 마침 어제 둘이서 ‘주막’을 만들어 보자는 얘기도 했어요(웃음).
주막이라고 하니까 확 정감이 생기네요(웃음).
상욱: 명칭은 그럴 수 있지만(웃음), 지금까지 한강주조가 보여줬던 이미지처럼 공간 자체에서 주는 느낌은 모던에 가까울 거예요.
성용: 더 나아가서는 술이라는 분야를 넘어 더 다양한 카테고리에 도전하고 싶어요. 스트리트 브랜드처럼 우리가 사용하고 입고 먹는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해요. 조금 산만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흐름을 유연하게 만들어갈 한강주조만의 자연스러움을 믿고 있어요.
6도 나루 생 막걸리
“한마디로 드링커블 막걸리예요. 꿀꺽꿀꺽 삼키기 좋고 청량감이 있죠. 원재료인 쌀에서 나오는 적당한 단맛과 산미의 밸런스가 좋고요. 안주는 매콤한 떡볶이를 추천해요. 막걸리가 쿨피스 같은 역할을 하거든요(웃음).”
11.5도 나루 생 막걸리
“6도 막걸리와 맛이 조금 달라요. 텍스처도 비교적 꾸덕한 느낌이 있어요. 소주잔에 따라서 조금씩 술맛을 음미하듯 마시는 방법이 어울려요. 안주는 족발처럼 기름진 음식이 잘 맞아요.”
표문 막걸리
“밀 누룩에서 나오는 경쾌하고 깔끔한 맛, 다양한 향미가 느껴지는 막걸리예요. 나루 생 막걸리보다 끝이 좀 더 간결하죠. 안주는 피자, 혹은 과일과 먹어도 좋고요. 크래커와 치즈 조합도 추천해요.”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