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gers Crossed!

Photography 만나다공원

매일매일 도담도담

남쪽 끝 섬에서 지내는 가족과 만나게 됐네요.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제주에서 ‘만나다공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화, 남춘식, 그리고 함께 지내는 남예호 어린이예요. 2010년에 결혼했으니 저희도 벌써 13년 차 부부가 되었네요. 시간이 흐른 만큼 변화도 많았어요. 지금은 부부가 함께 만나다공원이란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결혼할 당시엔 둘 다 아티스트였거든요. 남편은 영상, 저는 그림과 설치미술 작업을 했죠. 그런데 아무래도 수입이 적어서 작업만으로는 생활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당시 살던 곳에 작업할 만한 작은 공간을 마련했어요. 

 

그게 망원동 시절의 만나다공원이군요. 

맞아요. 그때만 해도 망원동엔 홍대, 합정과 달리 개인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을 만한 카페가 거의 없었어요. ‘카페 만나다공원’을 3년 정도 운영하면서 예호를 낳았고, 옷 만드는 데 취미를 붙여 ‘야호 만나다공원’으로 2년 동안 옷 가게를 함께 꾸리기도 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즈음엔 ‘키친 만나다공원’으로 2년간 식당을 운영했고요. 가게가 작아 60센티미터 싱크대와 가스버너가 전부인 공간이었죠. 

 

아담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참 다정한 곳이었어요. 업종이 몇 번 바뀌었지만 이름은 그대로였네요. 만나다공원이란 이름은 어떻게 정한 거예요? 

처음 카페를 시작할 때 단순히 음료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영감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갇히는 느낌보다 확장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고민했는데 ‘공원’이란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둘 다 지방에 살다 와서 그런지 공원을 참 좋아해요. 도심 속의 자연 같아서요. 외국 여행을 가도 공원에서 영감을 받곤 하죠. 도심과 맞닿아 있는 자연은 항상 매력적이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어우러지고 만나다.’라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만나다공원이라고 이름 짓게 됐어요. 

 

‘만나다’라는 말도 ‘공원’이라는 단어도 공간과 참 잘 어울려요. 만나다공원을 사랑한 손님이 많았는데 2019년에 제주로 이전한다고 공지하셨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던 기억이 나요. 

서울에서는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소비가 중심이고 생활이었어요. 그게 늘 아쉬워서 자주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주에 오고 나서는 생활이 서울과 완전히 반대가 된 것 같아요. 자본으로 소비하고 그것을 누리는 일보다는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설렘과 마주하는 일이 훨씬 많거든요. 흔들거리는 나무와 꽃, 새소리, 매일 오는 고양이…. 자연을 보는 게 즐겁고, 반복되는 나날이 사랑스러워요. 여기에 오고부터 작년 이 계절을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어요. 작년 이맘때 뭘 했는지 곱씹을 때마다 행복한 기억만 잔뜩 생각나더라고요. 계속 좋은 장면을 떠올리고 싶어서 풍경이나 날씨, 식탁 위반찬과 과일 같은 걸 사진으로 남기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죠. 내년 이맘때, 오늘의 사랑스러운 풍경을 다시 보고 싶어서요. 제주 생활은 하루하루 지루할 틈이 없어요. 자연과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무척 만족스러워요.

제주, 그것도 시골에서 만나다공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없어요? 

있죠. 제주는 장 보기가 쉽지 않고 다양한 재료 수급이 어려워요. 그래서 처음엔 고충도 많았어요. 보통 제주시로 장을 보러 다니는데, 몇십 군데를 다녀도 구할 수 없는 재료가 있더라고요. 식재료 상태도 매번 달라서 장 보는 데 에너지 소비가 컸어요. 가격을 따질 틈도 없었죠. 필요한 재료가 눈에 띄면 우선 많이 사두기 바빴으니까요. 물론 육지에서 배송받을 수도 있지만, 최소 3일이 걸리니까 식당을 운영하는 저희에겐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단일 메뉴로 운영하던 망원동 시절과는 달리 재료 수급이 가능한 메뉴로 고정해두고 반복해서 만드는 방식을 택하게 됐어요. 요리하는 게 지루해지지 않도록 계절별로 그때그때 식재료에 맞춰 메뉴에 변화를 주고 있죠. 특히 제철 과일과 채소를 이용한 샐러드와 음료 메뉴는 자주 바꿔주고 있어요. 

 

제주로 이전할 때 “궁금한 게 많아 섬 유학을 떠납니다.”라고 공지하셨죠. 왜 제주였어요? 

음, 제주에 궁금한 점도 있었지만 그전에 망원동 생활에 아쉬움이 생겼어요. 망원동에 상권이 형성되면서 가겟세나 집값이 비싸져서 손님과 친구들이 많이 떠나갔거든요. 새로운 가게는 계속 생겨났지만 점점 개성은 없어지고 어느덧 조용하지 않은 동네가 되었죠. 재미가 없단 생각이 들면서 떠나고 싶어졌어요. 남편은 바다, 저는 밭에서 자라서인지 시골에 대한 향수가 늘 있었거든요. 농사꾼의 딸로 자란 덕에 어린 시절 맨발로 밟은 흙의 느낌, 시골 공기와 소리가 성인이 된 지금도 너무 생생해요. 예호도 시골에서 성장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아이가 여섯 살일 때라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의 시간은 무척 빠르니까요. 시골 환경이 좋은 자극이 될 거라는 걸 알았기에 떠날 만한 곳을 알아보게 됐어요. 근데 가고 싶은 곳이 눈에 잘 안 띄었어요. 그러다 수학여행 때 한두 번 가본 제주도가 떠올랐고, 문득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 몇 번 가본 게 다인 데다가 특별히 좋아한 곳이 아닌데도 ‘가볼까’ 싶더라고요. 애매한 시골보다는 배를 타고 섬으로 떠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특별한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거죠. 

 

즉흥적으로요? 귀촌할 땐 한달살기 같은 것도 해본다는데! 

그러게요(웃음).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람 같아요. 적응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고, 적당한 행운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주에 왔을 땐… 마치 모든 게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적응 능력을 테스트하는 과정 같았어요. 다사다난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어요. 이 정도면 성공적이지 않을까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손님을 향한 마음도 남다를 듯해요. 망원동 시절을 기억하는 손님이나 제주 관광객, 동네 사람도 오가는 공간이 되었을 것 같은데, 어때요? 

망원동 시절을 이야기해 주시는 손님을 만나면 정말 반가워요. 마치 타지에서 고향 사람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코로나19 이후로는 아는 얼굴인데도 마스크 때문에 못 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만나다공원은 제주 도심지가 아닌 한적한 중산간 마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와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크죠. 시내가 아닌 시골이라 이 동네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이에요. 그래서 여기 자리를 잡으면서도 동네 분들이 오실 거란 기대는 거의 안 했어요. 근데 여든 넘으신 할아버지도 종종 와주시고… 그런 경험을 하면 마음이 참 좋아요. 

 

와, 어떤 분이세요? 

어느 날 카페에 가고 싶어 바다 쪽으로 걸어 내려가다가 만난 이웃 할아버지세요. 84세이신데도 걸어서 함덕까지 내려가시더라고요. 몇 마디 나누며 함께 걸었는데 “나는 걷는 직장에 다녀.” 그러시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막걸리를 드시러 항상 함덕까지 걸어 다닌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카페에 가는 길이라고 하니 2천 원짜리 커피 집을 알려주시기도 했죠. 그날 이후로 동네에서 뵐 때마다 “걷는 직장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지내곤 해요. 한 번은 그분이 친구분과 저희 가게에 오신 적이 있거든요. 돈가스 두 개와 맥주 한 병을 시켜두곤 함께 칼질하시는데 그 뒷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멋지던지! 최근엔 대기 손님이 많아져서 자주 못 뵈어서 안부가 궁금해요. 요즘에도 막걸리 마시러 함덕으로 걷고 계시겠죠(웃음)?

이번엔 가족 이야기를 해볼게요. 전 항상 아이들 이름 뜻이 궁금하던데, 예호를 소개해 주실래요? 

이름은 남예호, 열 살 남자아이로 대흘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밝을 예叡, 부를 호呼, 그래서 예호예요. 어릴 때부터 “야호야!” 하고 불러서 지금도 귀엽게 부르고 싶을 땐 “야호야!” 하고 부르죠. 

 

벌써 3학년이 됐군요. 요즘 예호가 좋아하는 건 뭐예요? 

드럼이요. 어릴 때부터 리듬감이 좋았어요. 주방에서 조리 도구를 두드리면서 다양한 소리와 리듬을 만들면서 놀았죠. 젓가락, 숟가락, 거품기로 스테인리스 볼, 플라스틱 볼, 유리컵, 밥그릇, 채반 같은 걸 두드리면서요. 어떤 재료인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서 더 재미있어요. 집에 항상 음악을 틀어둬서 거기 맞춰 뭔가를 두드리곤 했죠. 하교한 예호가 책가방을 뒤집고 두드리는 걸 보면서 우리 집 타악기 파트라고 부르기도 했어요(웃음). 그러다 근처에 드럼 학원이 생겨서 예호랑 같이 가봤는데, 원장님이 연주하는 걸 보고 반해서 바로 드럼을 시작하게 됐어요. 배운 지는 몇 개월 안 됐지만 좋아하는 게 제 눈에도 보여요. 최근엔 작은 연주회에 참가하게 돼서 식당 영업을 잠깐 중단하고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드럼 연주하는 건 처음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힘도 세고, 자신감도 넘치고, 여유도 있더라고요.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 감동한 날이었죠. 남편이랑 소리 지르고, 리듬 타고(웃음) 그날 완전히 예호 팬이 됐어요. 

 

예호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그림도 잘 그리던데요! 

아기 때부터 제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아와서인지 그림이 자연스럽게 놀이가 됐어요. 지금도 같이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그리면 더 재미있어요. 저는 기술적으로 잘 그린 그림보다 매력이 얼마큼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호 그림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에요. 스케치하고 색을 입히는 게 꽤 즉흥적인 편인데, 그렇게 구성되는 미완성의 느낌이 너무 좋거든요. 앞으로도 완성에 대한 집착 없이 과정이 즐거운 사람으로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어요. 

 

최근에 ‘#예호의일기’에 흠뻑 빠졌어요. 예호의 만화 일기를 해시태그로 모으고 있죠. 이 일기는 처음에 어떻게 보게 되었어요? 

예호 책가방을 정리하다가요(웃음). 종종 노트나 교과서에 그림이 한 편씩 숨어 있더라고요. 만화 안에 이야기도 있고, 상황 묘사도 잘되어 있어서 재미가 있었어요.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표현해 내는 게 기특하기도 했고요. 종종 훔쳐보다가 해시태그로 모으게 됐네요. 예호가 아빠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일기 쓰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그걸 만화로 그려내는 것 같고요. 선 굵기나 색감 차이를 잘 활용해서 느낌을 살려내는 게 특히 멋져요.

부모로서 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면 지원해 주고 싶을 것 같아요.

의외로 그런 건 하나도 없어요. 바라는 것도 없고요. 저는 그저… 예호와 대화를 많이 하고 싶어요.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대화에서 캐치해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재미나 기쁨도 대화로 나누고 싶고요. 저도 고민이나 어려움이 생기면 예호와 이야기하거든요. 그럴 때 예호가 순수한 마음으로, 편견 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주곤 하는데, 명쾌한 해답이 될 때가 많아요. 

 

굉장히 듬직한 느낌이에요. 예호는 어떤 아이예요? 

현을 잘해요.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요. 특별한 날이면 재미있는 일을 곧잘 준비하더라고요. 작년 제 생일엔 자기 용돈과 함께 직접 카드를 만들어 저한테 주면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원피스를 사 입으라 더라고요(웃음). 그때 산 원피스를 입을 때마다 예호 생각이 많이 나요. 이렇게 다정한 생각을 하다니… 참 대견해요. 

 

예호는 마음이 참 넉넉한 친구군요. 이런 천천한 마음은 자연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무를 볼 수 있단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설렜죠. 아이는 여기로 와서 자주 그러더라고요. “엄마! 하늘이 커서 좋아!” 제주에서 지내다 보니 집 밖에서 만나는 모든 게 자연이라는 걸 자주 실감해요. 굳이 찾지 않아도 쉽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늘 펼쳐져 있는 집 앞 풍경이 제가 원한 시골이란 걸 매일 느끼며 살고 있죠. 마트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걸을 때 만나는 들꽃, 풀, 바람, 새소리… 일상은 늘 반복되는데 자연은 매일 달라져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집 앞 산책이 곧 바다 산책이고, 말을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볼 수 있다고 했죠. 제주 산책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매일 다니는 길도 좋은데요, 익숙한 길을 두고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거나 차 타고 오가던 길을 걸어서 다닐 때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이 특히 좋아요. 매번 새롭거든요. 길에 핀 풀을 손에 쥐어보는 일, 담 넘어 들어온 귤을 따서 맛보는 일, 돌담 안을 구경하다 눈이 마주친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 그러다 건네주신 무나 배추 같은 작물을 한 아름 얻어 오는 일…. 이런 게 제주의 산책이에요. 산책하다 얻은 재료로 요리해 먹는 재미도 있고요. 사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는 텃밭 작물들이 있고, 어떻게 해 먹어도 맛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지죠. 

 

어르신이 많은 동네라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있을 것 같아요. 예호가 벌판에서 축구하는 사진을 봤는데 여러 사람이 섞여 있더라고요. 또래가 아닌 이웃과 어우러지는 걸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이 동네엔 아이가 몇 없어요. 그래서 누구든 모이면 모두 친구가 돼요. 학교에도 학생 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서로 알고 있고, 함께 더불어 어울리는 편이라 모두가 친구라는 인상이 있어요. 작년까진 동네 형이 주말마다 예호를 돌봐주기도 했어요. 형한테 구구단도 배우고, 덧셈과 뺄셈도 배웠죠.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누구와 살아가는지는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힘을 빼는 사람보다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게 좋아요. 사람은 생각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기에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요. 많은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보단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서 저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내요.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요.

제주의 초등학교도 궁금해지네요. 예호 학교생활은 어때요?

예호는 일곱 살 때 제주에 왔어요. 3월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갔죠. 이사한 지 이틀 만에 유치원에 간 건데, 새 학기에 맞춰 들어간 던 게 특히 운이 좋았어요. 환경은 바뀌었지만 모두가 처음인 시기이기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거든요. 예호는 명랑한 편이어서 초등학생이 되고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학교생활에 만족도도 높고요.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걸요! 학교에서 밥 먹는 것도 좋아해요. 학교가 맛집이라나(웃음). 반장·부반장을 도맡기도 했는데, 학교를 노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교하고도 운동장에서 형들과 축구나 농구하면서 한두 시간씩 더 있다 오더라고요. 하도 밖에서 놀다 보니까 마스크 쓰지 않은 부분만 피부가 타서 요즘엔 얼굴이 꼭 배트맨 같아졌어요(웃음). 얼마 전엔 학교 앞에 작은 분식집이 생겼는데, 용돈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더라고요. 5백 원짜리 슬러시를 하나 사선 친구와 나눠 먹으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것 같아요. 

 

너무 귀여운 풍경이에요(웃음). 요새는 시골 학교들이 많이 폐교하는 추세라는데 예호네 학교는 괜찮나요?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오히려 육지에서 이주하는 분이 많아졌어요. 저학년은 원래 학급이 하나였는데 하나가 늘어 두 개 반이 되기도 했고요. 제가 이 학교를 좋아했던 건 학생 수가 적고, 학교가 아담해서였거든요. 작은 운동장에 전 학년이 섞여 노는 게 시골 학교의 전형 같아서 낭만적으로 보였어요. 처음엔 한 학년에 20명 남짓이었는데요, 이주민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은 확장 공사까지 했어요. 시골 학교 느낌이 사라져서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울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학교겠죠? 

 

한적한 시골로 이사했다가 교육이나 문화를 이유로 다시 도심으로 오는 가족도 적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곳은 오히려 외부인이 더 많아지고 있네요. 

원주민 학생이 거의 없는 정도예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오히려 제주 시내 쪽으로 나가거든요. 학원도, 셔틀도 없어서 고학년이 되면 어려운 점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호네 반 친구들도 거의 육지에서 온 아이들이에요. 오히려 예호가 가장 시골 아이 같죠(웃음). 저는 예호를 도심으로 보내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어요. 어릴 때 자연과 가까이한 기억은 평생토록 남고,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제가 직접 경험해 봐서 알거든요. 정서는 공부로 습득되는 게 아니니까 지금 우리가 제주에 머무는 게 그 자체로 좋은 교육이라고 믿으면서 지내고 있어요. 가끔은 남편이랑 예호를 부러워해요. 예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제주 생활을 기억할 테니까요. 아, 예호는 좋겠다(웃음)! 

 

자연의 힘을 아는 부모님을 둔 예호도 좋겠는걸요(웃음). “노는 것도 공부다.”라는 문장을 보고 정화 씨는 참 멋진 엄마라고 생각했어요. 

잘 노는 사람이 멋지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혼자 노는 예호를 관찰하는 걸 좋아했어요.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터치하지 않고 두고 보려고 했죠. 컵에 든 물을 쏟고, 손으로 만지고, 쏟은 물로 테이블에 그림을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아이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재미를 느끼는 건 자연스럽게 커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뭔가에 집중할 힘을 기르는 과정 같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자기만의 생각도, 계획도 생겨나겠죠? 잘 놀다 보면 잘하는 무언가가 생길 거라 믿어요.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잘 놀길 바라는 거고요. 

 

예호도 곧 고학년에 접어드네요. 엄마 인터뷰를 어떻게 읽을지 궁금한데, 마지막으로 예호한테 한마디 남겨주실래요?

마주 볼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말할래요. 사랑해!

에디터 이주연

Photography 만나다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