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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일상을 되돌아보는 엄마들
김소진 ‘미디어창비’ 북 디자이너
열 살 예준이의 엄마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던 작업, 《마음 쓰는 밤》
고수리 작가님의 《마음 쓰는 밤》 원고를 읽다가 굵은 눈물을 후드둑 떨어뜨렸어요. 같은 워킹맘의 심정이 고스란히 적힌 문장들 때문이었을까요.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거든요. 작가님 글들은 그런 지난날을 모두 안아주듯 다가왔어요. 고생했다고 힘껏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원고를 디자인한다니 무척 기쁘고 잘하고 싶어서 그림도 여러 장 그리고 표지 시안도 열 개나 준비했어요. 그런데 이걸 어찌하나, 욕심이 앞섰던 걸까요? 작가님 마음에 와닿는 표지가 없어 재시안을 준비하게 되었죠. 하루 만에 시안을 바삐 작업했고, 다행히 결이 맞는 표지를 골라 지금의 책이 완성되었답니다. 과거에는 제가 만든 책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판권에서 이름을 볼 때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저 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돼요. 힘든 순간,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고요. 작은 일이라도 책에 기여했다는 마음으로 보람을 느껴요. 오늘도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해주고 싶어요. 책이 가진 물성과 함께 오래 이 일을 하고 싶은 게 저의 바람이자 꿈입니다.
일상을 함께하는 든든한 책 동료들
저에게는 책 동료들이 있어요. 회사에서는 미라, 예은 편집자님과 시간을 함께합니다. 다녀왔던 전시나 공연 이야기를 하거나 책 이야기들을 나누죠. 다들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넘쳐서 저까지 선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회사 밖에서도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고 관심사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꺼내요. 직장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큰 행운이죠. 이외에도 저는 가족들과 친구처럼 마음을 나누고 추억을 쌓아요. 반려인 남편은 따뜻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는 친구, 아들 예준이는 삶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철학자 친구 같아요. 제가 보지 못하거나 놓치는 많은 것들이 그들의 눈에는 담겨 있죠.
북 디자이너 소진의 물건
1 팬톤컬러칩 컬러 인쇄로 구현이 어렵거나 또렷한 색상을 원할 때 사용한다. 보기만 해도 비싼 팔레트를 가진 기분.
2 종이 샘플지 종이를 만져보며 책과 어울리는 걸 찾아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다.
3 박샘플 책에 날개를 달아줄 후가공 도구로 업무에 꼭 필요하다.
남지현 《아 요가》 콘텐츠 디렉터
열세 살 재이의 엄마
가치와 의미를 확인한 《아 요가》 팝업 행사 ‘숨숨쉼쉼’
《아 요가》는 모든 사람이 부담 없이 요가를 즐길 수 있도록, ‘위트 있고 야릇하게’ 우리 다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잡지예요.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고 밝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았죠. 최근 《아 요가》 5호를 발간하면서 처음으로 오프라인 팝업 행사를 했어요. 인터뷰이의 공간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서 소규모 발간 기념행사를 연 건데요. 준비 시간이 짧았는데도 온 마음을 다해 ‘요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생기 있으면서도 차분하고, 정신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결코 현실에 뒤처지지 않은 친구들을 만난 거죠. 오프라인 행사를 하면서 우리가 느리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사실 일은 현실이에요. 주어진 시간 내에 최상의 결과를 낼 방법을 모색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죠. 일은 넘치지 않게, 나는 넘어지지 않게 조율하면서요. 고되긴 하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작업할 수 있어 정말 재미있어요.
언제나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사이
낮에는 주로 친구들과 전시를 보거나 친구들이 진행하는 행사에 가요. 저녁 시간이 자유롭지 못하니 보통 친구들이 저희 집으로 놀러 오는데요.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마시거나 귀한 차를 내려 마시기도 해요. 저를 위해 항상 집으로 모여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취향과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남는 것 같아요. 이해타산보다는 서로 어떤 도움이 될까 먼저 생각하고 지지해 주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어요. 한때는 저에게 암이라는 병이 찾아와 일상이 버거웠는데 친구들의 응원 덕분에 그 시기를 잘 건너왔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아픔을 보듬다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라는 책에서 ‘친구는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지 공허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참 좋더라고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이고 싶어요.
콘텐츠 디렉터 지현의 물건
1 Plan Do See 플래너 하루 동안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깨달았는지 돌아보는 과정을 기록할 수 있어내면 성장에 도움을 준다.
2 라미 만년필 부드러운 촉감,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고 마음이 편해진다.
3 보이차 집에서 일할 때 항상 마신다.
4 유스트 31오일과 괄사 틈틈이 머리와 턱, 목과 쇄골을 마사지한다.
양유미 ‘이쁜꽃’ 대표이자 양조사
15개월 리사의 엄마
우리의 의도가 구현된 술 ‘황새’
황새는 1.8L, 됫병 술이라 부르기도 해요. 그렇게 큰 술을 만든 이유는, 첫째로 가족의 술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구성원의 세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이 한 병을 매개로 모두가 연결되는 순간을 상상했어요. 둘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맛을 즐길 수 있어서예요. 병 안의 산소와 술이 만나 더 맛있게 익는 거죠. 약 2주에 걸쳐서 마치 꽃봉오리가 만개했다가 지는 풍미를 즐길 수 있어요. 황새를 만들기 위해 3개월 정도 서천에 위치한 옥순가 양조장 분들과 협업했는데요. 마케팅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됫병이 생소하잖아요. 용량이나 병 크기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 부담감을 상쇄하고 이 술이 됫병이어야만 하는 필연성을 인스타툰을 비롯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전달하고자 애썼습니다. 구매자분들께서 떠난 가족을 기리며 황새를 제례주로 올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우리가 술을 만든 의도가 구체적인 경험으로 구현된 모습을 보게 되어서 정말 감격했습니다.
익숙한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
요즘엔 ‘Stay True To Who You Are’이라는 슬로건 아래, 친구들과 ‘마음의 문제’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양조를 매개로 마음의 형태를 조망해 보는 건데요. 삶의 족적과 마음의 모양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쌀을 어루만져 술을 빚고 완성된 술을 나눠 먹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오래전부터 알아온 사람들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관계로 만나 대화했는데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서로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서 관계에서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친구들과 쌓는 추억이라는 건 나로서 있던 순간의 집합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죠. 서로 그런 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건 축복이지 않을까요?
양조사 유미의 물건
1 텀블러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작업하는 걸 좋아해서 항상 가지고 다닌다.
2 모자 일할 때는 머리를 감싼 느낌을 좋아해서 자주 쓴다.
3 오래된 샤프 마음에 드는 샤프는 한 번 사면 오래 쓰는데, 지금 샤프는 무려 6년째 쓰고 있다.
이해인 ‘숲소리’ 브랜딩팀
일곱 살 이안, 이선의 엄마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발견한 전시
<Start from scratch: Pinto Point>
미국에 3~4년간 살았는데, 사슴 떼가 지나다니고 뒤뜰에 거북이가 들어오기도 하는 한적한 동네라 맛있는 빵집이 없었어요. 스스로 구워 먹고 요리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식탁 위의 시간이 재미있어지는 커트러리를 만들게 되었죠. 한국에 와서도 작업실을 얻어 조금씩 만드는데 문득 ‘나는 올해 꼭 전시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마음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죠. 커트러리 전시를 준비하면서 남편은 가장 큰 조력자이자 냉정한 조언가로, 아들 이선이는 전시 포스터를 그려주며 저를 도왔어요. 나중에 아이가 전시장에 와서 포스터를 보고는 “좀 전시하는 것 같군!” 했다더라고요. 전시 전까진 여유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했을까 자책하기도 했지만, 제가 만든 걸 살펴보고 써보는 사람들 곁에서 행복했어요. 낮부터 새벽까지 몰입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게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그동안 그리워하던 감정이어서 반가웠어요. 일을 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곤 해요.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저를 조금씩 키워주는 것 같아요.
몰랐던 걸 발견해 주는 존재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친구이자 동료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송이예요. 송이와는 스무 살부터 친구였는데 원래는 일 년에 두세 번 보다가 지금은 주 3일씩 만나서 일과 육아를 넘나들며 고민을 나눠요. 저희끼리는 요즘 너무 많이 만나서 앞으로 몇십 년 안 만나도 될 것 같다는 얘기도 해요(웃음). 얼마 전엔 또 다른 친구들과 만나서 고등학생 때 스키장 갔던 이야기를 했어요. 다섯 명이 가서 저는 츄러스를 먹고, 둘은 보드를 타고, 한 명은 스키, 한 명은 수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 일이 있었어?’ 하는 순간이 있어요. 나 혼자 기억하지 못할 추억들을 나눠 갖고, 다시 만났을 때 그 조각을 맞춰보는 것 같아요. 그럼 신기하게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요.
브랜딩팀 해인의 물건
1 ANYTHING 가위, 스테이플러, 테이프 디스펜서 세트 오랫동안 써온 도구다. 주변 분들이 스테이셔너리는 실장급이라며 웃곤 한다.
2 커피믹스 당 중독이라 하루에 한 잔은 꼭 마신다.
3 브랜딩 관련 도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느껴서 틈나는 대로 책장을 넘긴다.
4 FREITAG 하와이파이브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중 360일 정도 들고 다닌다.
에디터 이명주
사진 김소진, 남지현, 양유미,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