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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내가 잘하는 일에서 오직 나여야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엄마들의 이야기.
유성은 | 수필가
열 살 예원, 여섯 살 예주의 엄마
얼마 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로 등단한 후, 《나를 찾아가는 직업》이라는 책을 출간했죠. 작가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나를 찾아가는 직업》은 가정주부로 살며 희미해지는 꿈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에세이예요. 제 경험과 생각이 오롯이 들어간 책이죠. 글을 쓰게 된 건 사실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마음의 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주부로 살며 가족과 집안을 돌보는 시간도 소중했지만, 스스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한 동화작가의 글을 읽었는데 큰 위로를 받았고 내리 글쓰기 수업까지 듣게 되었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글을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알았고요. 신춘문예도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 의식보다는 그저 심사평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공모했는데, 운이 좋게 당선되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많은 직업 중에서도 작가는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클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나요?
유달리 특출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공상을 잘하던 아이였죠.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상상 속의 이야기를 친구들과의 놀이로 확장하기도 했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상이 이어지다 보니 엉뚱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글의 재료를 모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해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틈틈이 공상을 하며 생각의 재료를 모으고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글을 써나가고 있죠. 어릴 때처럼 공주나 왕자가 주인공은 아니지만요(웃음).
가정주부에서 작가라는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많은 고민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글쓰기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재능’ 덕분이라고 말해요. 겉으로 특별하게 드러나는 재능은 소수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그 외의 보통 사람들은 절망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죠. 저는 작가라는 총알이 불발될까 두려워 꽤 오랜 시간 방아쇠만 잡고 망설였어요. 잘하겠다는 마음을 포기하고,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용기를 가지니까 이렇게 늦게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되었죠. 세상의 많은 일은 한 번에 맞춰야 하는 과녁이 아니라 언젠가 뚫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너무 잘하려는 것보다 계속 시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에 와닿는 말이네요. 아이들은 무엇을 잘하는 것 같아요?
첫째 예원이는 기발한 상상력을 갖고 있고, 둘째 예주는 탐구심이 뛰어난 편이에요. 하지만 지금 잘하는 것이 어떤 분야의 직업으로 이어질 만큼 대단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도 가정을 이루고 육아를 하다가 제 길을 찾게 된 것처럼,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요. 아이들이 가진 재능의 씨앗을 꽃피우는 것에 대해서 부모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뿐 아닐까요?
김수미 | 킨츠기 공예가
세 살 도요이의 엄마
킨츠기 공예가라는 직업이 새로워요. 킨츠기는 어떤 작업인가요?
킨츠기는 상처 나고 깨진 그릇을 옻으로 이어 붙이고, 사라진 부분의 조각을 만들어 무의미해진 그릇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에요. 일본의 옻칠 장식 공예 기법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는 ‘나전칠기’가 대표적인 옻칠 장식 기법이라면, 일본에서는 옻칠 위에 금과 은박으로 장식하는 칠공예가 대표적이죠. 단순히 그릇을 붙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술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세밀하고 감각적인 능력이 필요해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도자기 작업을 해온 지는 오래되었는데, 소성 과정 중에 흙이 터지거나 갈라져서 도자기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 와중에 교토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가 킨츠기를 소개해 주었죠. 친구가 연결해 준 선생님을 통해 타지 생활을 하며 공예 기법을 몸으로 습득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소규모 수업을 하다가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고요.
공예와 관련된 재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과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이과에 가까운 머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독 ‘예쁜 것’에 관심과 동경은 많았어요. 다섯 살 즈음, 겨울에 귤을 먹는데 평범하게 먹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알맹이 하나하나를 조금의 실타래도 없이 손으로 다 까고, 엄마가 가진 접시 중 가장 예쁜 것에 일렬로 놓고 먹었어요. 시간이 걸려도 그렇게 하는 게 좋았고, 저한텐 당연한 일이었죠. 부모님은 그냥 별난 아이, 멋 부리는 아이로만 생각하셨대요(웃음). 아름답고 규칙적인 것에 시선과 마음이 향했던 성향이 지금의 일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재능과 흥미를 반영한 일을 해오면서 어떤 고민을 마주했는지 궁금해요.
킨츠기 기법과 함께 도자기 수리 공예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도 했고, 스스로 예쁜 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 미적 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작업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요. 다만 이런 재능에 몰두하다 보면, 방대한 자료와 정보에 갇혀 제 눈을 믿지 못하거나 지루해질 때도 있어요. 그렇게 권태기 같은 느낌이 들면 오히려 클래식한 생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고전이나 클래식음악을 듣고 잠시 인사이트에서 멀어지는 거죠.
아들 도요이가 요즘 빠져있는 건 뭐예요?
도요이는 자동차를 정말 좋아해요. 마음이 여리고 친구를 좋아하고, 어리광도 많은 아이죠. 재능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어리지만 가끔 놀랄 때가 있어요. 아이가 굉장히 예민한 부분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동차의 틈이 벌어진 걸 싫어한다거나, 장난감의 각이 맞춰져 있는 걸 좋아하죠. 남편과 제가 예리하게 작업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물려준 감각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이가 자라면 재능을 어떻게 이끌어 줄지 혹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제 육아 스타일은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넘어지면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나서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이끌어 주고 싶어요. 또 열린 시각으로 사물을 보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규칙은 있지만 얽매이진 않는 일상을 주고 싶어요.
김지희 | 카페 ‘잔물결’과 ‘오그커피’ 운영
다섯 살 수민이의 엄마
제주에서 카페 잔물결과 오그커피, 독채 숙소인 스튜디오 노이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열정이 많은 편 같아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잠시 제주살이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내려왔다가 제주가 고향인 남편과 만나게 되었고, 4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하고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제주는 좋은 곳이었지만 서울과는 달리 외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나만의 일을 해야 이곳에 적응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꽃을 배우거나 제과 수업을 들으러 다녔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직접 겪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니 카페를 해보자는 판단이 들었고, 협재 인근에 적당한 곳을 찾아 카페를 지었어요. 다행히 손님이 많이 찾아와 주셨죠.
타지에서 새로운 재능을 찾은 거네요.
맞아요. 그런 기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더 맛있는 디저트를 기획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인 휴무 날에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가서 디저트 수업을 듣기도 했죠. 동시에 베이킹 입문자나 카페 초보 사장님들을 위해 경험담과 노하우를 나누는 온라인 클래스도 열게 됐고요. 이때는 정말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 주고 곁에서 육아도 함께해 주어서 제가 바라던 일들을 해낼 수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무언가 기획하고 실행하는 걸 좋아했나요?
사실 아주 어릴 때는 수줍고 내성적이었는데 일곱 살 때 엄마가 웅변 학원에 보낸 이후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격이 바뀐 것 같아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장기자랑을 준비하거나 소풍 때 함께할 게임을 짜는 게 참 재밌더라고요. 팀 의견을 조율하면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건 뿌듯함과 성취감을 주잖아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도 기획력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재능을 직업으로 연결한 사람은 아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 종종 찾아와요. 공간을 운영하는 건 기획과 밀접한 분야니까요. 제가 운영하는 업장의 콘셉트를 정하거나, 디저트나 음료의 신메뉴를 기획할 때 굉장히 재밌어요. 이제는 많은 직원과 함께하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기획하고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커졌고요. 요즘은 브랜딩과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서, 제 강점을 잊지 않고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딸 수민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수민이는 언어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글자는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비교적 빠른 시기에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어린이집 선생님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어휘력과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해주셨고요. 아주 어릴 때부터 매주 사촌 언니, 오빠들과 함께 뛰어놀던 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리고 달리기도 정말 잘해요. 어릴 때 육상 선수였던 아빠를 닮아서인지 공터만 보이면 무조건 달려가죠(웃음). 자연과도 친해서 숲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걸 사랑하는 아이랍니다.
수민이의 강점과 장점을 어떻게 이끌어 주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수민이가 자라면서 이 재능들을 잃지 않도록 대화도 많이 하고 맘껏 뛰어놀 만한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여행이나 캠핑도 가고요. 재능을 꼭 직업으로 연결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거죠. 지금처럼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좋겠네요.
공에스더 | 가구 브랜드 ‘한샘’ MD
여섯 살 이나의 엄마
가구 브랜드의 MD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MD는 상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하는 역할이에요. 하나의 상품을 내놓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매력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제안하죠. 현재 직장에는 대학교 4학년 때 입사해서 13년 넘게 일하고 있는데요. 출산 전후로 자연스레 아이를 위한 가구와 공간에 관심이 많아졌고 키즈팀의 팀장을 맡게 됐어요. 육아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밀접한 솔루션이 가능해졌죠.
어릴 때는 무엇을 잘했는지 궁금해요.
여섯 살부터 중학생 때까지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쳤어요. 피아노 연주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는데 능숙했던 것 같아요. 여러 콩쿨에 참여하면서 즐거움과 뿌듯함,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고등학생 때는 사춘기의 성장통을 크게 앓으면서 누구의 권유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미술 입시를 시작했죠. 예체능 분야를 경험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표현력과 몰입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의 재능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는 영향을 주었나요?
감각을 표현하는 작업에 익숙하다 보니 트렌드를 기획으로 풀어내거나 디자인을 살펴볼 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다만 지금의 일에는 마케팅이라는 기술도 필요했기 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고 노력했죠. 재능을 업으로 삼든 혹은 그렇지 못하든, 어떤 일을 할 때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들잖아요. 그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고 극복하면서 성숙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능뿐만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결국 자신의 내공과 무기가 될 테니까요.
딸 이나와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고요. 아이와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는 이유가 있나요?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충만한 사랑은 물론이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나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즐겁게 배우고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있어요. 잘하기 위해서 시키는 게 아니라 못해도 즐기길 바라는 거죠. 발레와 미술, 과학 수업을 듣다가 최근에는 동물과의 교감을 위해 승마를 시작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친구와의 교류가 제한적이라 아쉬운 부분을 동물이나 자연으로 해소해 주고 싶었거든요. 또 한글과 영어 수업은 작년부터 하려고 했다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멈췄는데, 올해는 딸이 먼저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인 이나는 무엇을 할 때 유독 즐거워 보이고 잘하는지 궁금해요.
재주가 많은 딸이지만 특히 그림을 잘 그려요. 어릴 때부터 저와 미술관에 자주 가며 여러 가지 색채를 본 덕분인지 컬러를 자유롭게 사용하죠. 대상의 특징을 잡아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도 잘하고요. 감성도 매우 풍부해서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자동 반사적으로 발레를 춰요. 아이를 예체능 쪽으로 키우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나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잘하는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꾸준히 관찰 중이에요. 자신의 미래를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부모가 아이의 능력에 대해 제안하고 대화하면서 열심히 응원하는게 재능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터 이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