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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야 할 자리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더라도, 여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박현정 ESFJ | 디자인 문구 브랜드 ‘공장’ 운영
일곱 살 르하와 네 살 서하의 엄마
2002년도에 ‘공장’의 문을 열었다고요. 긴 시간 동안 브랜드를 이어나가고 있는 게 정말 놀랍고 멋져요.
대학생 때 그저 제가 사용할 아트 북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을 딸이 둘이나 생긴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벌써 내년이면 20주년이 되는데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저도 20이라는 숫자가 놀랍게 느껴져요. 이렇게 오랜 기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문구에 대한 애정이 지속되어 가능했던 일 같아요. 특히 종이의 매력은 끝이 없고 아이디어도 아직 무궁무진하거든요. 제품 제작은 항상 여러 변수를 동반하는 일이라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순간순간 발현된다는 느낌은 받고 있어요. 이제는 딸이랑 문구를 같이 고르게 되어 감회가 새로워요.
현재는 주택에 오프라인 매장인 ‘원써드 스토어’, 오피스, 주거 공간을 같이 꾸려놓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죠?
전에는 10년 정도 서교동 사무실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 생활을 김포에서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일을 거의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좋은 기회로 연희동에 제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어요. 육아와 일을 한곳에서 한다면 생활 패턴을 좀더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를 진행했죠. 결과적으로 시간 분배는 잘 할 수 있지만, 한곳에 주거와 오피스 공간이 함께 있으니 육아와 일이 섞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일을 하다가 올라가 빨래를 널기도 하고 아이 숙제를 봐주기도 하고요. 남편과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고, 아이들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평일에는 누구보다 빡빡한 스케줄을 보내고 있어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엄마와 아빠가 항상 집 아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고, 일하면서도 챙겨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일과 육아로 지친 순간에는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나요?
업무와 육아 사이에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하고 있어요. 첫째를 출산하고 허리디스크가 왔어요. 장시간 일하기가 어려워서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저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일을 잠시 미루더라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남편이 거의 관리하긴 하지만, 마당의 잡초를 뽑고 나무를 전지하면서 개운한 느낌을 받기도 해요. 집을 짓고 나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자연과 늘 가까이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좋은 휴식은 없는 것 같아요.
엄마에게 육아 외에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건 왜 필요할까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건 삶의 원동력이자 나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에요. 저 역시 아이들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20년간 쌓아온 작업들을 통해 제 삶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의 삶이 보람되고 행복하다는 걸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죠.
요즘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뭐예요?
사랑과 분노 사이, 그리고 기대감이요. 아무래도 육아를 하며 드는 감정이 지배적이네요. 둘째 아이가 미운 네 살이라고 불리는 36개월이 다 되어가면서 자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이 첫째 때와는 또 다르게 느껴지는데, 고집도 첫째보다는 더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사랑과 분노 사이를 오가고 있어요(웃음). 또 내년이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일과 육아의 패턴이 달라지는 새로운 시기가 시작될 것 같아요. 이런저런 기대감으로 아이와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하나 ISFP | 린넨숍 ‘라마홈’ 운영
아홉 살 준형이와 다섯 살 재형이의 엄마
린넨 의류, 리빙 소품에 취향이 묻어 있는 것 같아요. ‘라마홈’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결혼 전에는 런던의 작은 브랜드에서 일을 오래 했어요. 한국오피스에서 제품 기획부터 생산까지 총괄하는 일이었죠. 제 숍을 내는 꿈은 늘 품고 있었고,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며 즐겨 사용하던 지속 가능한 생활용품과 오랜 시간 사용하고 있는 린넨을 소개하고 싶어 그 꿈을 꺼내보게 됐어요. 그래서 서촌의 생활 양식에 맞는 작은 숍을 열게 됐죠.
일하는 시간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잘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숍을 오픈하고 6개월은 정말 일에만 몰두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들었어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거죠. 그래서 숍 근처로 이사를 했어요. 이제 아이들이 이 근방에서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어요. 함께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숍도 일주일에 3일만 열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해질지 자주 생각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같이 좋아하는 일을 찾곤 해요. 경복궁 주변 산책하기, 바다와 숲에 가기, 좋아하는 식당과 서점에 가기…. 아이들에게만 맞춰주는 자상한 엄마는 아니지만 취향의 교집합을 찾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과 육아로 지친 순간에는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나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아이들을 할머니 댁으로 보내고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요. 집안일이 하기 싫을 땐 예산 안에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알아보고 가족과 여행을 떠나 집안일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요. 일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해요. 중간중간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영업시간을 줄이고 긴 방학을 갖기도 하고요. 참고 인내하기보다는 마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요. 돈이나 여건을 아주 무시하지는 못하지만, 제 마음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엄마에게 육아 외에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건 왜 필요할까요?
엄마들은 모두 엄마이기 이전에 온전한 ‘나’ 한 사람이었어요. 온전히 아이만 바라봐야 할 시기가 지나면 아이만 위하며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자립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까지가 부모의 역할이니까요. 아이가 자라는 시간 동안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을 잘 알고 버티게 하는 힘을 찾는 게 중요해요. 꿈을 갖고, 이루기 위해 하나씩 시작해 본다면 그 경험들이 쌓여 지친 마음을 일으켜주고 언젠가는 그 꿈 앞에 다시 데려다줄 거라 믿어요. 제가 그 순간을 잡아 라마홈을 연 것처럼요.
요즘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뭐예요?
라마홈을 꾸려가면서 많은 분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받고 있어 감사한 나날이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주변의 기대감도 점점 커져 부담스럽기도 해요. 될 수 있으면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이 부담감을 긍정적으로 바꿔보고 싶어서 올여름, 자체 여름 방학을 만들어 긴 휴식을 가졌어요.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다시 시작해 보려고요.
강서영 INTJ | 편집숍 ‘TKOE’ 브랜드 디렉터
열한 살 그린과 여덟 살 잎새의 엄마
TKOE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취향을 담고 있나요?
코에TKOE는 라이프 앤 컬처를 주제로 한 편집숍이에요. Studio TKOE는 공간 대여를 하거나 전시를 열 수도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고요. 저는 그래픽 디자인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인테리어나 패션에 늘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조향사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함께 향수 브랜드를 만들자고 뜻이 맞았죠. 그게 코에의 시작이에요. 향수는 단순히 좋은 향이라는 범주를 넘어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패션이나 리빙, 아트 같은 취향의 카테고리까지 함께 보여 드리고 있어요.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열심히 향수 런칭을 준비 중이에요. 그동안 보여드린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은,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아주 근사한 향들이 될 거예요.
일하는 시간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잘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아이들을 낳고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집에서 작업을 많이 했어요.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한 건 둘째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네요. 아이들 어릴 때 가정 보육을 하며 최선을 다해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힘을 좀 빼는 중이에요. 초등학생이 되니 손이 많이 안 가기도 하고요. 아이들을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있어서 아이들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평소엔 각자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주말엔 함께 뒹굴뒹굴하죠. 같이 청소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도 들으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요. 특별한 걸 하려고 노력하진 않아요.
일과 육아로 지친 순간에는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나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은 아니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편이에요. 잠이 없는 편이라 보통 다섯시쯤 눈이 떠지거든요. 커피 한 잔 내리고 멍하게 해 뜨는 걸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이번 주 식단부터 일에 관한 것까지 고민하며 고요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최근 운동을 시작했어요. 원래 운동을 정말 싫어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근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어요. 8개월 정도 된 ‘헬린이’인데, 마인드 컨트롤에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운동복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 뒤 등굣길을 배웅하고, 그 길로 바로 트레이닝 센터로 가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일요일빼고 매일 40~50분 정도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한 만큼 달라지는 체형을 보는 것도 좋지만 운동하는 시간 동안 잡다한 생각을 안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같아요.
엄마에게 육아 외에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건 왜 필요할까요?
엄마로서의 나도 분명히 나의 한 부분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은 스스로 채워야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두 딸의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저를 요리 잘하는 엄마, 다정한 엄마로 기억해 주는 것도 좋지만 멋있는 엄마로 기억해 주면 더 좋겠어요.
요즘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뭐예요?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편이지만 굳이 선택하자면 즐거운 긴장감이 아닐까 싶네요. 새로운 일을 한다는 설레는 마음, 잘 해내고 싶은 긴장감이 복합적인 요즘이에요. 곧 사춘기가 올 큰아이를 보며 기대 반, 걱정 반의 감정도 있어요. 마냥 어릴 것 같던 아이들도 이제 많이 컸구나 하고 자주 느껴요. 제법 대화가 되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만큼 감정을 더 섬세하게 보살펴 줄 때가 온 것 같거든요.
남솔지 INFP | 포토그래퍼
세 살 루다의 엄마
아마추어 사진가로 활동하다가 이제 막 상업적인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요. 사진을 접하고 일로 이어나가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중학생 때 캐논 DSLR을 처음으로 선물 받은 이후 사진은 꾸준히 찍어 왔어요. 대학교 때는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학부 전공인 영문학과로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까지만해도 사진은 취미의 영역이었어요. 석사 수료 후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새로운 커리어를 찾기 위한 긴 방황을 시작하게 됐죠. 이후 플로리스트, SNS 마케팅, 가장 최근에는 요식업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는데, 결혼하고 출산까지 경험하면서 정말 ‘내 일’이라고 느껴지는 분야를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중단된 커리어들이 쌓여가는 지난 한 시간 속에서도 사진만은 유일한 취미이자 장기로 남아 있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찍게 된 사진들에 대한 반응이 좋아 자연스럽게 다른 작업들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포토그래퍼로서의 커리어를 다져나가고 있어요.
루다가 태어나며 일하는 마음가짐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아이가 태어난 뒤 취미 수준이던 사진에 더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리게 되더라고요. 그나마 잘 운영하던 레스토랑까지 코로나19로 폐업을 결정하게 되면서,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와 집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어요.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일에도 이런 절박함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진 찍을 때도 그렇고요. 아들이라는 존재가 삶에 들어오면서 예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시선으로 제 주변과 일상을 바라보게 됐어요. 예전 같았으면 정돈되지 않은 일상의 장면들은 카메라 프레임 밖으로 밀어냈을 텐데, 이제는 그 자연스러움을 어떻게든 담고 싶어지더라고요.
일과 육아로 지친 순간에는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나요?
아직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진 않지만 감사하게도 양가 부모님께서 자주 육아를 도와주고 계셔서 요즘은 저의 시간을 확보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아요. 처음엔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집 안을 청소하거나 정리하면서 전쟁 같던 육아의 흔적들을 조금이라도 지워보려고 애썼어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지쳐 있는 심신을 회복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혼캉스’를 몇 번 해봤어요. 가사와 완전히 분리된 정돈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니 확실히 재충전되어서 육아에 몸도 마음도 지친 엄마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경험이에요. 호텔에 매번 갈 수는 없으니 좋아하는 동네 사진 책방에 가서 사진집을 구경하거나 전시회를 보러 가기도 하고, 아이 낳기 전에 자주 가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최대한 엄마로서의 나와는 동떨어진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엄마에게 육아 외에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건 왜 필요할까요?
육아를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아야 ‘엄마가 아닌 또 다른 나’가 있다고 믿을 수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탐닉하는 시간 속에서 엄마이기 전의 나 자신, 또는 엄마가 되기 전의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로서의 자신이 싫은 건 아니지만, ‘엄마로서의 자아’가 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싫거든요. 엄마이면서 포토그래퍼이기도 하고, 내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여러 자아를 가진 사람이고 싶어요.
요즘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뭐예요?
평정심이요. 육아를 하면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감정인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시간에 하는 많은 일들도 거의 평정심을 지켜내기 위한 것들이에요.
에디터 이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