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theater De Uitkijk

Filmtheater De Uitkijk, 한 세기, 그러니까 100년 이상 한 곳을 지키고 있는, 무려 1912년부터 운영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방문하진 못 했지만, 암스테르담에서 1912년부터 운영된 ‘The movies’라는 이름의 극장도 존재한다). 이곳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1912년 백화점이었던 공간이 시티 시네마(City Cinema)로 바뀐 이후, 1929년 필름리그(Filmliga, 암스테르담 중심으로 활동한 영화 제작자와 마니아 집단)에 의해 현재 상호로 변경된다. 파리에 거주하며 프랑스 아방가르드(선발대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예술에서는 새로움, 혁신, 실험 등을 추구하며 비전통적인 경향을 선보이는 작품이나 인물을 칭한다) 영화들에서 영감을 얻은 네덜란드의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인 매너스 프랑켄이 공간 조성에 힘을 보탰다. 

Filmtheater De Uitkijk는 극장 전망대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직역된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를 뛰어넘어 예술을 보여주는 영화관’을 지향한 프랑켄 감독의 정신을 이어 다양한 쇼케이스 진행 및 깊이 있는 프로그램 기획에 힘쓰는 이 극장의 현 상황을 이해한다면 전망대라는 단어가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

각종 쇼핑몰과 음식점이 즐비한 암스테르담 중심부에서도 세 대의 트램(1, 2, 5번)이 다닐 만큼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지만, 규모가 작아서인지 의식하지 않은 채 걷는다면 극장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듯하다. 홍보 차원의 커다란 입간판이 있는 것도, 대단히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운하 곁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 사이에 소담한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극장의 모양새가 꽤 정겹다. 간판(사진을 본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간판이라는 표현보다는 조금 큰 알림판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에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진행 중인 프로그램 타이틀이 새겨져 있다.

산책 중 에드워드 양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속 주인공 양양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를 본 덕에 이곳이 극장이란 것을 알았고, 자연스레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방문했던 2019년 9월 당시 매주 화요일에는 대만 영화 특집으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허우 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 차이밍량의 <흔들리는 구름>, 이안의 <와호장룡> 네 편을, 목요일과 일요일에는 에릭 로메르의 ‘여섯 개의 도덕’ 시리즈를 특별 프로그램으로 상영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큰 계획 없이 여행하고 있었지만, 파리에서 한 약속을 떠올리며 대충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던 터. 우연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갔던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위의 작품 중 한 편을 보기 위한 선택지는 단 하나, 일요일 상영작밖에 없었다. 물론 영화를 보지 않는 선택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게 유효하지 않은 가정이었다. 다음날의 영화를 그 자리에서 예매했다. 그날 아침, 미루고 미루던 파리행 버스를 예약했는데 영화 티켓을 끊은 뒤, 수수료 물고 교통편은 취소해버렸다. 이때 매표소를 지키던 직원은 버스 시간에 대한 조언을 보탰고, 갑자기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당황하던 날 위해 기어이 자신의 휴대폰의 핫스팟을 켜주는 친절을 보여주기도 했다. 야무지게 음료까지 한 잔 마신 뒤, 내일을 기약하며 안녕을 전했다. 

다음 날, 아무리 생각해봐도 보이지 않는 손 혹은 어떤 힘이 내 여행을 조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파리에서 여러 가지 영감을 얻어 꾸며진 암스테르담의 가장 오래된 영화관에서 파리로 떠나기 직전 관람하게 된 영화가 파리 배경으로 만들어진 에릭 로메르의 <오후의 연정>이라니. 2017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했는데, 당시의 포스터도 이 영화의 한 장면(아래 스틸컷에도 첨부했다)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내 방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떠올리며, 달뜬 얼굴로 극장에 들어섰다.

 

만들어진지 40년이 훌쩍 넘었고 이미 DVD까지 출시되어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위해 일요일 밤 극장이 꽉 차는 것 보다 더 신기했던 건 네덜란드어가 아닌 영어 자막의 존재였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네덜란드는 전 세계 비영어권 국가 중 국민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에 속한다. 호주의 교육 회사 EF(Education First)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지난 10년간 단 한 차례도 영어 능력 지수(EPI, English Proficiency Index)에서 3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최근 4년 중 3회나 1위 자리를 지켰다. 또 네덜란드 인구의 90~93%가 영어로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한다. 이들이 유창한 영어 실력의 이유를 분석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더빙의 부재다. 이는 이번 영화 상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랑스어로 만들어진 원본 영화에 네덜란드어를 더빙하거나 네덜란드어 자막을 붙이는 작업을 추가하는 대신, 애초에 영어 자막이 입혀진 상영본을 수급해 영사한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럽의 자막과 더빙 문화에 관련한 얘기는 추후 더빙을 선호하는 다른 국가에서 다시 한번 풀어보겠다.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요금은 11유로, 반가운 것은 ‘only pin’(카드만 허용)의 연속이던 암스테르담 극장들 사이에 처음으로 현금 결제가 가능한 곳을 만났다는 점이다. 암스테르담 시티카드(I Amsterdam) 소지자나 학생 등은 9유로로 할인받을 수 있으며, 시네빌(Cineville,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등 14개 지역의 모든 영화관에서 일반 및 특별 상영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월간 구독 카드로 29세까지는 17.5유로, 30세부터는 21유로에 구매할 수 있다) 소지자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모든 좌석은 자유석이며, 보통 극장은 첫 영화 시작 30분 전에 문을 연다고 한다. 

1층 카페에 앉으면, 상영관 입구와 화장실, 직원들이 카페와 매표 업무를 보는 미니바와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까지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계단 끝에는 2층 상영관(발코니 좌석)이 있는데, 이곳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샴페인 패키지’도 판매한다. 보통 두 병의 프로세코 와인(이탈리아의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 초콜릿, 스낵이 제공되며, 발코니 좌석에서 먹고 마시며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가격은 36유로. 전화로 예약할 것을 권장한다. 2층의 발코니 좌석을 의식해서인지 1층에서 영화를 보기에 스크린의 위치가 약간 높은 감이 있다. 이번처럼 자막이 있는 영화를 관람할 때, 1층 1~2열의 관객은 목덜미가 뻐근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특이한 부분은 언론 간담회, 회사 워크숍, 파티나 모임뿐만 아니라 결혼식을 위해서도 공간 대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극장에서 하는 스몰 웨딩이라…. 영화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도 특별한 순간이자 로망일지도 모르겠다.

유럽 어느 국가의 수도, 그것도 번화가 한 중심에 한 세기 이상 보존된 극장이 존재한다. 이 한 줄만으로 극장의 가치와 독창성이 인정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세월을 10번 이상 견뎌왔다. 이곳의 존재 자체가 한 편의 영화와 같다고 말한다면, 이건 조금 과장된 감상일까.

 

Filmtheater De Uitkijk

 

A. Prinsengracht 452, 1017 KE Amsterdam, Netherlands

H. uitkijk.nl

T. +31 20 223 2416

We Around Project

내가 사랑한 유럽의 극장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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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나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