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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놀이
날마다 놀이
물과 기름으로 우주를 만들고 달걀 껍데기로 악어가죽을 만드는 아이가 있다. ‘놀이 조력자’ 엄마는 휴지심과 이쑤시개 같은 재활용품을 모으고, ‘놀이 지지자’인 아빠는 퇴근길에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줍는 게 일상인 가족. 오늘도 가족은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이라는 ‘놀잇감’을 탐색한다.
INTERVIEW
이수나 중학교 영어교사
가족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이수 엄마 이수나예요.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남편의 직장 일로 미국에 머물고 있어요. 잠시나마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죠. 이수는 이제 30개월이 됐어요. 밝고 다정한 아이랍니다. 이수 아빠는 이수와 저의 놀이를 항상 응원해주는 저희 작품의 첫 관객이에요.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는 것 같아요.
이수가 직접 해볼 수 있는 놀이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촉감놀이부터 시작했는데, 월령이 높아지면서 미술놀이, 과학놀이, 자연놀이, 수학놀이 등으로 놀이를 점차 확장하고 있어요. 제가 의도를 한 건 아니고 이수의 관심사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맞춰 놀이에 변화를 줘요.
하루 중 언제 아이랑 놀이를 하나요?
이수가 하고 싶어 할 때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부터 잠들기 전까지 대중없지만 주로 낮잠 잔 직후에 노는 경우가 많아요. 이수가 자는 동안 저는 놀 준비를 하죠. 이수도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난 후 몰입도가 뛰어나요.
규칙적으로 아이와 놀이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현재는 휴직 중이지만 언젠가 직장에 복귀하는 예비 워킹맘으로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재밌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오감이 즐거울 수 있는 놀이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에게 놀이가 왜 필요할까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매일 꾸준히 놀이를 하니까 이수는 사물을 볼 때 이걸로 뭘 하고 놀 수 있을까 생각하더라고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놀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해요.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놀잇감처럼 즐겁게 탐색하니 즐거울 수밖에요.
놀이 과정에서 선별한 재료의 색감과 디자인이 감각적이에요. 놀이 준비를 할 때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요?
아이에게 빈 종이를 주면 흥미를 갖지 못해요.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간단한 그림을 그려주고, 스토리텔링을 더해줘요. 그럼 아이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더라고요. 항상 아이의 현재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요. 이수는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이 한참 단골 소재였어요. 동물들의 특징을 이용한 놀이를 준비했죠. 이제 점차 관심사도 다양해져서 아이가 흥미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놀이의 폭이 넓어졌어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함께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좋아한 것이 있다면 놀이로 만들어주려고 해요. 책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게 그렇죠. 야외 활동 중에 인상 깊은 건, 바로 소재가 되기도 해요. 쇼핑하다가 본 인형, 스티커, 책 등 놀이에 쓸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카메라로 찍어두고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게 가장 기본인데 그게 또 가장 어려워요. 고맙게도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놀이나 소재를 먼저 이야기하기도 해요.
엄마가 재료를 준비해주면, 아이는 어떻게 놀이하나요?
아이답게 재료를 보자마자 바로 놀기 시작해요. 그래서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는 직관적인 놀이가 주를 이루죠. 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놀기도 해요. 또 단순한 놀이보다는 변화가 있는 놀이를 좋아해요. 예를 들면, 선을 따라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면 안에 물감을 칠한 뒤 드라이어로 물감을 말리고, 마지막으로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보는 식으로요. 한 가지 놀이 안에서 계속 변형이 되니 흥미를 잃을 틈이 없더라고요.
이수는 집중력이 강하고 끈기 있어 보여요.
다양한 모습이 있지만 대체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이에요. 좋아하는 놀이나 이야기가 있으면 반복하는 걸 좋아하고요. 놀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해하기도 해요. 다양한 무늬의 종이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자른 후에 같은 것끼리 찾 아서 선을 그어 연결해보자고 했거든요. 아이한테는 선 긋기도 쉽지 않은데 제가 난이도를 잘못 맞춘 거죠. 생각대로 되지 않자 몹시 속상해하며 울음을 터뜨리더라고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나요?
어떤 점이 잘 안 돼서 어려움을 겪었는지 공감해주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속상한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더라고요. 그 후의 엄마 몫은 그 놀이를 다음에 더 즐겁게 소개할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아이가 가장 흥미로워한 놀이는 뭔가요?
이수가 가장 좋아한 놀이 중 하나는 앙리 마티스 놀이예요. 종이를 자유롭게 오린 후에 붙이는 놀이죠. 아직 가위질을 겁내 해서 제가 미리 종이를 오려놓아요. 뭔지 알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이기 때문에 흥미 없어 하진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준비한 놀이였는데, 그 형태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해석하더라고요. 별, 꽃, 말 이런 식으로요. 아이의 창의성은 어른과 참 다르구나 싶었어요. 이 놀이는 계속 반복해서 하고 있어요. 이수가 가위를 쓸 수 있게 되면 스스로 종이를 자를 수 있으니 더욱 좋아하겠죠.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이가 흥미 없어 할 때도 있을 텐데요.
수준에 맞지 않는 놀이를 했을 때가 그렇죠. 놀이에 관심이 없을 때는 다른 재료를 줘요. 종이를 줬는데 관심이 없다면 폼폼을 준다던가, 물감을 줬는데 흥미가 없다면 쉐이빙폼을 섞어보는 식으로요. 그래도 관심이 없다면 바로 그만 해요.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인데, 억지로 할 순 없으니까요!
놀이가 가족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줬나요?
저는 재활용품을 모으게 되었어요. 전에는 생각 없이 버렸을 휴지심, 플라스틱 물병, 병뚜껑, 이쑤시개, 면봉, 택배 상자, 달걀 껍데기 등이 놀이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집의 수납공간 중 한곳에 이런 재활용품을 따로 모아놓고 있어요.
이수 아빠는 이수 작품의 관객이자 지지자예요. 이수가 아빠에게 늘 놀이의 결과물을 자랑하거든요. 그러면 아빠는 이수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저한테는 피드백을 해주죠. 또 출퇴근길에 놀이에 쓸 돌이나 나뭇가지 등을 주워오기도 해요. 이수는 일상의 대부분을 놀잇감으로 여겨요. 바다에서 조개를 주워오거나, 산책을 하며 나뭇잎이나 돌을 주워오죠. 식탁 위의 소금이나 후추를 가지고 놀기도 해요. 요즘은 자기가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러요. “엄마가 찰흙을 준비해줘서 집을 만들었다.”라는 가사였어요. 재료와 결과물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달라져요. 혼자 중얼거리며 부르는 노래를 듣는데 감동적이고 뿌듯했어요.
재활용품 외의 재료는 어디서 구해요?
과학놀이 재료는 주로 슈퍼마켓에서, 미술놀이는 문구용품점에서, 자연놀이 재료는 야외에서 구해요. 또 온라인 오프마켓도 적극 이용하고 있고요. 공예 재료 쇼핑몰을 검색하면 다양한 재료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색다른 놀이로 꾸준히 아이와 노는 건 사실 쉽지 않아요.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 있을까요?
부엌에 있는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적극 활용해보세요. 베이킹소다, 식초, 얼음, 밀가루, 전분, 두부, 식용 색소, 쌀, 파스타, 탄산음료, 후추, 소금, 식용유, 젤라틴, 야채 탈수기, 콜랜더, 뒤집개, 이쑤시개 등 모두 놀이의 훌륭한 재료가 되거든요. 밀가루나 전분에 물을 부어 반죽을 하거나, 종이에 풀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거나, 피규어를 넣은 얼음볼을 만드는 식으로요! 원두커피 찌꺼기는 흙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향도 좋아서 쓸모가 많아요.
아이의 놀이에 동참하는
부모를 위한 안내서
아이의 관심사와 연계된 놀이를 한다
아이의 발달에 맞는 놀이를 선택하되 평상시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기억해두었다가 놀이에 활용해보자.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나 경찰관 같은 역할놀이나 거울, 달걀 껍데기, 나뭇잎을 이용한 놀이도 좋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긴다
부모는 아이와 만들기 놀이를 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거 좀 이상한데?”, “이게 무슨 공룡이야,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중에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놀이를 판단하는 것이다. 결과나 평가를 신경 쓰게 되면 아이는 놀이를 과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와 놀 때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기도록 해보자. “우와, 이런 토끼라니 정말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아이의 놀이를 이해하고 응원해주자.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아이와 놀이하는 시간을 가진다
일하는 부모라면 일을 마치고 나서, 또는 주말마다 아이와 시간을 정하고 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0분, 20분이라도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놀아보자. 규칙적인 놀이는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고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도 좋다. 아이가 놀이 시간에 맞춰 스스로 하고 싶은 놀이를 구상하고 계획을 세우게 해주자. 놀이를 통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게 될지도 모른다.
에디터 김현지
사진 이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