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A Tangle Of Love And Hate

사랑하고 미워하는 나의 가족

잠결에 가족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는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고 언니와 남동생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 과일을 먹고 있다. 눈을 뜨니 보라보라 섬, 꿈이었다. 이럴 때, 나는 깜짝 놀란다.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 막상 한집에 살았을 때는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으면서, 사소한 일로 미워하고 지겨워했으면서. 가족이란 건 정말 뭘까. 사랑하고 미워하는, 힘 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약이고 병인 사람들. 이건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은 우리,
행복을 놓지 말자

마농이 여행에서 돌아왔다.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내가 올 때까지 수영을 하고 있겠다고 했다. 보라보라 섬의 따뜻한 바다가 너무 그리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듣는 사람까지 덩달아 호랑이 기운 솟아나게 하는 웃음소리는 여전했다.난 마농을 동네 체육관에서 처음 만났다. 줌바를 추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천으로 대충 감아둔 치마에 레몬색 티셔츠, 그리고 틀어 올려 꽉 묶은 헤어스타일이 여름 그 자체였다. 단번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마농은 아이를 낳으며 약해진 몸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체육관 밖으로 나가자 남편이 아이를 안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농은 아직 모자라다며 체육관을 또 몇 바퀴씩 뛰었고, 남편은 아이를 안고 스쿼트를 했다. 어떤 운동이든 세 번 이상 해본 적 없는 내가 반년이나 꾸준하게 체육관을 갈 수 있었던 건 이 건강한 가족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마농이 곧 휴가를 떠난다고 했다. 우선 태국으로 가보고, 내키면 다른 나라에도 갈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남편과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도 함께였다.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삶의 방식이었다. 안전할까. 병원은 있을까.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내 걱정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거기서도 아이들이 자란다고.” 맞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다. 이런 걱정은 마농에게도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실례였다. 아이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만지자 아이가 싱긋 웃었다. 그걸 보는 마농마지막으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불행햐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경계가 희미하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도 웃었다. 매 순간을 새롭게 사는 듯한 호기심 가득한 이 아이의 눈에 부디 좋은 사람들만 비치길 바랐다.

마티라 해변에서 다시 만난 마농은 얼굴이 조금 탔을 뿐, 달라진 데가 없었다. 아이는 그새 많이 자랐고, 남편은 살이 많이 빠졌다. 마농은 달려와 내 볼에 뽀뽀를 진하게 해주었다. “여행은 즐거웠어?” 뜻밖에도 그녀와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안 갈 거야. 사람들이 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안 가는지 알겠더라고. 그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야. 부모를 위해서 안 가는 거야. 돈도 많이 드는데 체력적으로도 정말 힘들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마농은 아이의 볼을 간질이며 출근하는 게 반가울 정도라고 말하며 또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들을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갔을 거야. 그때 산후 우울증이 심해지고 있었거든. 행복이 필요했어. 떠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거야.”

아이가 잠에 들자 마농은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남편도 같이 들여보내고 내가 아이의 옆에 앉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어른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마지막으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불행햐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경계가 희미하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괜찮아?” 바다에서 마농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괜찮아.”라고 대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마농도 손을 흔들었다. 그런 마농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행복하게 자랄 거라고.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가 어찌 불행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인간은 어리석고 마농은 또 온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불행햐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경계가 희미하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당연한 매일과
당연하지 않은 당신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가계부 정리가 끝이 났다. 달력을 보니 벌써 31일이었다. 하루가 가는 건 너무 느린데, 한 달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당연한 매일의 반복이었다. 출근을 했다. 퇴근을 했다. 집안일을 했다. 저녁을 먹었다. 잤다. 또 출근을 했다. 집세를 냈다. 전기 요금을 냈다. 수도세를 냈다. 의료보험비를 냈다. 30일간의 수입과 지출을 주욱 적고 나니 남는 돈이 없었다.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말은 누가 한 말일까. 모르긴 몰라도 자영업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이 내일은 꼭 마트에 다녀오자고 했다. 고양이 사료가 다 떨어졌단다. 다짐을 받았다. “우리 정말 고양이 사료만 사고 나오는 거야.”

졸린 걸 이겨내고 아침부터 찾아간 마트는 근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손 가득 장을 봐버렸다. 나는 그래도 야채나 고기 같은 식재료를 샀는데 남편은 달걀 모양의 초콜릿을 한 박스나 샀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워즈 장난감이 랜덤으로 들어있다나. 운전하고 돌아오는 내내 한 번도 남편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차를 세울 때까지는 그랬다. 놀란 내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더니 그는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차로 돌아온 남편은 트렁크를 열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모른 척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따라 내렸다. “뭐 찾아?” 그는 대답 대신 낡은 천 아래서 꺼낸 공구 통과 펌프를 보여주었다.남편은 길 건너편으로 곧장 걸어갔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잡고 서있었다. 낯이 익었다. 여행자들에게 구걸하는 할아버지였다. 남편은 허리를 숙이고 타이어를 꾹꾹 눌러보더니 공구 통을 열었다. 펑크가 난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했다. 나도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남편을 기다렸다. 타이어 안쪽 면을 만지는 남편의 손이 이내 새까매졌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티셔츠가 부풀어 올랐다. 정수리에 쏟아지는 햇볕에 졸음이 몰려왔다. 잠깐 눈을 감았다. 임시로 고친 거니 꼭 수리점에 가보라고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했다.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손을 씻었다. 나는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채웠다. 어제 정리했던 가계부가 식탁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잘 덮어서 책장에 꽂았다. 밥을 했다. 고기를 구웠다. 맛이 좋았다. 남편은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달걀 모양의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에 따라 좋아했다가 실망했다가 했다. 그만 먹으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이 모습이 너무도 이 남자다웠다.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또다시 별일 없을 한 달을 반복할 힘이 났다.

가족의 탄생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막내였다. 목소리에 졸음이 묻어났다. “조촌동에 있는 샵으로 열 시까지 와.” 하품 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하품을 했다. 몸이 아직 보라보라 시간대를 살고 있었다. 시차 적응이 점점 오래 걸리는 건 몸이 노화하고 있다는 증거랬는데….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커튼을 걷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서둘러 씻고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다. 몇 걸음 못 가고 다시 돌아왔다. 충전하려고 꽂아둔 배터리를 깜빡했다. 자꾸 깜빡깜빡하는 것도 노화의 증거 아닌가…. 현관문 앞에 서서 빼먹은 게 없는지 생각해봤다. 카메라, 충전기, 지갑…. 아 맞다 한복! 택시를 타고 가면서 카메라를 켜보았다. 충전은 잘 되었는지, 메모리는 충분한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찍어주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나의 노화로는 변명이 될 수 없는 중요한 하루였다. 괜히 긴장이 돼서 창문을 내렸다. 따뜻한 공기가 들어왔다. 봄이다. 

막내가 장가가는 봄.

막내의 결혼식에 가려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니, 친구가 “남매가 사이좋네.”라고 말했다.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서로 별 관심이 없달까. 보라보라 섬에서 며칠씩 걸려 집에 왔을 때 받아본 가장 격한 환영은 (현관문 열어주며) “어, 너 왔냐?”였다. 게임한다고 문 앞에 세워둔 적도 있었다. 나도 잘한 건 없었다. 막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는 ‘주제에 연애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귀한 집 아가씨한테 무슨 민폐냐고 다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말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웨딩샵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를 곱게 말아 올린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손으로 올려 잡고 내 옆을 총총총 지나갔다. “누나.” 돌아보니 막내가 있었다. 메이크업을 받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신부는 어딨냐고 물었더니 안쪽을 가리켰다. 헤어롤을 가득 달고도 사랑스러운 신부가 거울 앞에 앉아있었다. “잘 잤어? 시집가는 기분이 어때?” 신부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웃었다. 막내는 연신 하품을 했다. “잠 못 잤어?” 내 물음에 막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엄처엉 푹 잤는데?” 그럼 그렇지. 결혼식이라고 긴장할 인간이 아니었다. 신부에게 다시 물어봤다. “정말 괜찮겠니, 이 결혼? 아직 늦지 않았어.”그래도 가까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왔다. 두 사람은 각각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나,

우리가 쉴 틈 없이 바빠지기 시작한 건. 커피 맛도 제대로 못 보고 식장으로 이동했다. 나도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하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진을 찍었다. 축의금을 정리했다. 식권을 나눠드렸다. 정작 결혼식은 볼 시간이 없었다.그날 밤, 한복을 정리해두고, 엄마 머리에 가득한 실핀을 뽑아주고, 그제야 배가 고파져서 주방에 갔다. 반찬을 꺼내놓는데, 식탁 유리에 뭔가가 끼워져 있었다. 옛날 사진이었다.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막내가 핫도그를 입에 물고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이런 꼬맹이를 키워서 장가도 보내고, 엄마 고생했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엄마는 왜 이제 와서 우냐며, 웃기다고 깔깔깔 웃었다. 그날 밤, 무언가 먹먹해져서 막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평소와는 다르게 진심을 듬뿍 담아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문자라기보다는 편지에 가까운 장문의 글이었다. 답은 무척 빨리 왔다. 

‘ㅇㅇ ㅋㅋ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눈물이 쏙 들어갔다.

괜히 긴장이 돼서 창문을 내렸다.
따뜻한 공기가 들어왔다. 봄이다.
막내가 장가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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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