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 homemeal planning 뽈뽀 프레스

오늘의 요리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요리는 무엇인가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면 하루 종일 분주해진다. 상대의 입맛을 파악하고 메뉴를 정해 장보기에 나서는 것이 그 시작.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생각에 이것저것 고르다 보면 바구니는 금세 꽉 차버린다. 부엌은 비좁고 칼질은 서툴고 시간은 빠듯하지만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식탁에 올리고 나서야 한숨을 돌린다. 상대가 음식을 한술 뜨면 마음 깊숙이 밀려오는 뿌듯함. 이건 작은 부엌에서 가정식을 만드는 뽈뽀 프레스Polpo Press의 일상이다.

마음에 드는 작은 식당

언젠가부터 샐러드, 파스타, 피자가 주를 이루는 외식 문화에 익숙해졌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먹고 나면 그뿐, 누군가 추천하는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도, 자주 드나들던 단골집을 가도 비슷한 메뉴들이 줄을 이었다. 삼청동에서 재동초등학교로 향하는 길,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뽈뽀 프레스를 발견했을 때 새로운 맛집이 아니라 나만의 아지트를 찾은 기분이었다. 한옥을 개조해 테이블 대여섯 개를 놓은 작은 공간, 요리책으로 빼곡한 책장과 정갈한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빈 차고를 하나 빌려 주말에만 여는 식당을 하고 싶었어요. 벌써 10년 전 얘기네요.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모습을 막연하게 꿈꿨는데 정말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패션·뷰티업계에 종사하며 새로운 곳, 좋다는 곳을 수없이 오갔던 박현진 대표, 그렇게 다양한 음식을 접하면서 더욱 간절해진 것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였다.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당시 런던에서 공부 중이었던 남편을 따라 유럽에서 생활한 5년이 그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을 남편을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재래시장에서 신선한 채소를 잔뜩 사와 몇 가지 음식을 만들다보니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고기반찬은커녕 특별한 양념 하나 없이도 맛이 좋았다.

구체적으로 식당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부부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다. “이탈리아는 모든 사람이 쉐프 같은 나라였어요. 한번은 마켓에서 사과를 고르는데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가 사과를 왜 맨손으로 만지는 거냐며 화를 내더라고요.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어요. 과일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질 좋은 재료를 부엌에 들여 요리하고 나누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죠.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대형마트 수가 가장 적은 나라라고 해요. 그래서 여전히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고, 골목마다 식료품점이 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가게에 들어앉아 지금 막 만들어낸 소박한 요리를 먹고 있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유럽에서 보았던 델리카트슨* 개념의 식당을 열기로 했다. 1인 가구가 많은 요즘,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싶었던 것. 그래서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고, 다 같이 오면 더 좋은 곳, 매일 먹어도 속이 편안한 음식, 소박하지만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운영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델리카트슨에 대한 인식이 저조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제외하면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델리카트슨Delicatessen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식품을 판매하는 일종의 식료품점 겸 카페

하나의 접시로 말하는 것들

뽈뽀 프레스가 문을 연지는 1년 6개월 남짓, 애초에 계획했던 델리 음식점은 아니지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유럽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소문이 퍼지자 단골손님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곳의 대표적인 메뉴는 뽈뽀 플레이트, 물론 다른 메뉴도 있지만 플레이트에 쓰이는 재료가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는다고. ‘유럽 가정식’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내걸고 난 뒤로 세운 그들만의 기준이다. 하나의 접시에 다섯 가지 샐러드가 올라가는데 그에 필요한 재료만도 열 손가락을 훌쩍 넘긴다. 채소와 과일, 드레싱 정도가 올라가는 기존의 샐러드가 아니라 각각의 조리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개별 메뉴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다섯 가지 요리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것. 뽈뽀 플레이트의 또 다른 특징은 메뉴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시즌마다 재철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그래서 매주 재래시장을 찾아 어떤 재료가 새로 나왔는지 조사하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어울리는 레시피를 고민한다고. “거의 두 달마다 새로운 메뉴가 나와요. 그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지난 9월까지 진행했던 가지 요리가 맛있어서 다시 가게를 찾은 손님이 있었는데 10월부터 그 메뉴가 없어진다는 걸 알고는 아쉬워하셨어요. 가지는 지금도 제철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분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드렸죠.”

매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뽈뽀 프레스만의 원칙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두 사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니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뽈뽀 플레이트는 오롯이 박현진 대표의 몫이고, 남편은 가게 관리와 홀을 담당하며 그녀의 요리 보조를 맞춰주는 자상한 파트너다. 

사실 박현진 대표는 정식으로 요리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들의 손맛을 기억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보면서 익혔을 뿐이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Fine-dinning의 비싼 코스 요리가 부럽지 않은 건 마치 엄마의 전매특허 요리처럼, 이곳에서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바다낚시를 다녔어요. 직접 물고기도 잡고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구해 요리를 해먹었죠. 할머니는 남해에서 한정식집을 하셨는데 실제로 장을 잘못 담그면 망치로 깨셨던 분이에요(웃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두부를 깍둑썰기하시고 직접 요리에 참여하세요. 가족들과 함께 먹던 그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이 모든 요리의 기준이 된 것 같아요.” 나는 가게 곳곳에 그려진 문어 그림을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국자를, 한 손에는 요리책을 들고 있는 이곳의 캐릭터인 문어는 새로운 맛과 건강한 음식, 신선한 재료, 특별한 조리법, 손님들의 입맛 그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박현진 대표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INTERVIEW

박현진, 김준호 부부

가게 이름이 특이한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뽈뽀Polpo는 이탈리아어로 문어를 뜻하고 프레스Press는 말 그대로 출판물을 의미해요. 가정식 요리와 함께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요리책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거든요. 이름 때문에 문어 요리 전문점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큰 의미는 없어요. 아, 메뉴에 문어 요리가 하나 있네요(웃음).

제철 재료는 어떻게 공수하시나요?
저희는 공수받지 않고 직접 시장에 나가요.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락시장을 주로 이용하고, 가장 근거리에 있는 농산물을 쓰려는 편이에요. 친환경 먹거리를 먹는 건 좋지만 또 다른 부분을 배제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운반에 필요한 기름, 인력, 거리 그리고 신선도 같은 부분이요. 되도록이면 서울·경기권에서 나는 것들을 쓰는데 근처에 바다가 없어 문어만 통영에서 받고 있어요. 퀴노아*는 국내 재배가 어려워 볼리비아산을 쓰고 있고요. 

혹시 직접 기르는 건 있나요?
사실 저희 집 옥상이 아주 좋아요. 그런데 수도 시설이 안 되어 있어요. 일제시대 때 지은 양옥인데 당시 주인이 수도 설치를 하지 않았나 봐요. 텃밭을 제대로 가꾸려면 물을 계속 써야 하는데 안타깝죠. 대신 가게 앞에 조그마한 공간을 마련해 허브를 기르기도 해요. 자주 쓰는 바질이나 파슬리, 세이지 같은 것들. 가을 메뉴에는 세이지를 쓰고 있어요. 팬에 살짝 볶기만 해도 향이 온 가게에 퍼져요.

채소를 많이 이용하지만 채식 식당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네, 생선과 고기 요리도 만드는데 고기 메뉴는 유일하게 한가지에요. 10시간 동안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인 소고기가 들어간 라자니아Lasagna요. 하지만 고기를 쓰기 전에 반드시 동물보호인증마크를 확인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어떤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길 바라는 것과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뿐이네요. 

요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가정식이 까다로워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요. 저희는 ‘식육’이라고 부르는데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탁 위에서의 예절 등 많은 것을 포괄한 단어에요.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받고, 영어 수업을 받는 것처럼 ‘먹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단순히 아이들은 채소를 싫어해, 밥 먹을 때 어리광을 피우고,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한다고 여기는 건 이 교육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유럽의 아이들이 식사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을 봤어요. 어른들은 대화 중인데 당연히 어른들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지루할 테죠. 하지만 그들은 다 함께 대화하고 있었어요. 음식에 대한 얘기, 아이들의 얘기, 어른들의 얘기…. 누군가 나를 위해 요리했고,그걸 식탁에 바르게 앉아서 잘 먹는 것이 기본적으로 음식에 대한 존중인 거죠.

*퀴노아Quinoa 안데스 산맥의 고원에서 자라는 곡물로 일반 곡류에 비해 단백질, 칼슘, 식이섬유 함량이 풍부하여 전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슈퍼푸드.

단순히 식탁 예절만을 말하는 게 아니군요.
네, 식육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해요.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즐기는 것 자체가 식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게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재료와 조리법, 건강에 이로운 점을 하나하나 말씀드려요. 서로에게 번거로운 과정일 수도 있지만 그런 노력을 통해 우리의 식문화가 조금 더 나아진다고 믿어요.

실제로 개선된 부분이 있나요?
평소 당근에 손도 대지 않던 아이들이 저희 메뉴에 있는 제주 당근 샐러드를 맛있게 먹더라고요. 제주도의 채소들이 아주 맛이 좋아요. 해풍을 맞고 자라기 때문에 단맛이 있거든요. 보통 집에서는 엄마들이 당근을 먹이기 위해 최대한 당근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요. 주먹밥 속에 숨겨서 먹이는 식으로요. 하지만 자기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미리 예약하면 공간 전체를 빌릴 수도 있다고요.
맞아요. 크리스마스나 생일, 회사에서 중요한 모임을 할 때 미리 연락 주시면 가게는 일반 영업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식탁을 준비해요. 기본적인 메뉴는 있지만 모임의 성향이나 손님의 취향에 따라 주문을 받기도 하고요. 한번은 외국 손님들이 한국식 요리를 주문하셔서 한우 갈비찜과 흑미 주먹밥을 만들었어요(웃음).

단골 손님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정말 다양해요. 제일 신기한 건 아저씨 손님들이요. 어떻게 알고 오신 건지 작은 테이블에 무릎이 닿을 듯 말 듯 마주 앉아서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오시는 분도 있는데 꼭 구석 자리에 앉아 창가 너머에 꽃사과나무를 보곤 하세요. 저희 가게 맞은편에 있는 옻칠 공방의 할머니께서 심어놓으신 건데 사계절 모양이 다르고 예쁘더라고요. 

간판이나 포스터에 있는 일러스트는 직접 그리신 건가요?
큰 시누이 솜씨에요(웃음). 시누이가 두 명 있는데 다들 재주꾼이거든요. 큰 누이는 ‘앤틱햄’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북아티스트로 가끔 한국에 들어오실 때마다 가게 꾸미는 걸 도와주세요. 작은 누이는 파티시에라서 디저트를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요리 수업을 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사실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모두 하지는 못하고, 식습관을 바꿔서 병을 고쳐야 하는 분들에게만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중년 아주머니도 있고, 아토피가 심한 아이들도 있어요. 

안식년처럼 한 달씩 가게 문을 닫는다고 들었어요.
가게를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용감한 것 같아요(웃음). 주변 분들은 그렇게 해서 운영이 되겠느냐고 걱정하지만 정작 손님들은 모두 이해해주시는 분위기에요.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시장조사를 하고, 요리책도 사오고, 부지런히 다니거든요. 저희가 좋은 분들을 만난 것 같아요. 

얼마 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자유의 언덕>에 등장했어요.
저희가 홍 감독님의 오랜 팬이에요. 런던에 있을 때도 개봉할 때마다 보러 갔어요. 감독님의 영화는 유럽에서 더 인기가 있거든요. 이번 영화에 나온 건 우연이었어요. 예전에 <북촌방향>을 촬영하실 때 삼청동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마침 들고 있던 요리책에 사인을 받았어요. 그때는 가게를 운영할 때도 아니었죠. 그러다 작년 여름, 가게 문을 열었는데 바로 근처에서 또 다른 영화를 찍고 계신 거에요. 그래서 영업시간을 피해 촬영 공간으로 내어드리겠노라 먼저 제안했어요. 가게가 마음에 드셨는지 현장에서 대본 수정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고요. 일본배우 카세 료씨와 문소리 씨가 저녁을 먹으면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그분들이 오기 전까지 출연 배우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웃음). 

앞으로 뽈뽀 프레스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사실 요리책들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싶어요. 요리책을 비롯해 우리 생활에 영감을 주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어우러진 작은 책방이요. 그리고 이 가게는 저희 능력이 되는 한 지금처럼 운영하고 싶어요. 활짝 열려있는 부엌에서 좋은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 거죠. 가끔은 원칙주의자라는 말을 듣지만 사람이 먹는 음식에서만큼은 아무리 완벽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해요.

Autumn Polpo Plate

뽈뽀 플레이트
가을 메뉴

10월 1일에 처음 개시한 가을 메뉴, 다섯 가지 요리가 한 접시에 담긴다. 완연한 가을에 가장 맛이 좋은 감자와 연근 같은 뿌리채소들, 호박, 버섯, 무화과에 퀴노아도 들어간다. 바뀌지 않는 한 가지는 바로 제주도 당근 샐러드, 뽈뽀 프레스의 김치 같은 역할을 하는 메뉴다.

01. 병아리콩으로 만든 중동식 고로케 팔라펠
02. 구운 연근과 크림 버섯 파스타
03. 가을 제철 무화과와 부드러운 마스카포네 치즈, 프로슈토 햄
04. 구운 땅콩호박과 퀴노아에 루꼴라를 곁들인 곡물 샐러드
05. 구운 견과류를 곁들인 제주도 당근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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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혜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