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Picture Tells a Story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

윌리는 꿈을 꾸지만 독자 역시 꿈을 꾼다. 작가도 꿈을 꾼다. 그렇다면 윌리는 하나의 꿈일까….

– 앤서니 브라운, 《앤서니 브라운 나의 상상 미술관》

INTERVIEW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 그림책 작가

그림책을 처음 낸 지 33년이 지났어요. 그림책을 만들기 전부터 해오던 상상 놀이가 있다고요.

맞아요. 모양 상상 놀이Shape Game예요. 제가 어린 시절 형과 발명한 놀이죠. 이 놀이가 제 상상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는 놀이인가요?

규칙은 매우 간단해요. 종이와 펜만 있으면 돼요. 한 사람이 먼저 종이 위에 분명하지 않은 모양을 그려요. 다음 사람은 다른 색깔 펜으로 그 형태를 다른 걸로 바꿔요. 상상을 하는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모양 상상 놀이는 재미있지만 진지한 면도 있었어요. 본질적으로 창의성 자체에 관한 게임이거든요.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음악을 작곡할 때마다 모양 상상 놀이를 하는 셈이에요. 아이들은 늘 저에게 물어요. 어디서 영감을 받느냐고요. 저는 이렇게 답해요. 너희들이 있는 그곳에서 얻는다고요. 제가 어렸을 때 겪은 일과, 제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거든요. 세상에는 수많은 영감의 원천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그림, 꿈 등이요.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 때 거기에 스스로에게 일어난 경험을 더하게 되죠. 그것이 그림, 책, 또는 음악으로 변형되어 나오는 거고요. 이렇게 자신만의 모양 상상 놀이를 하는 거예요. 


지금도 모양 상상 놀이를 하는 거네요?

그럼요. 아마도 예전보다 더 자주 모양 상상 놀이를 하는 거 같아요. 비교적 최근에 낸 《겁쟁이 빌리》, 《우리는 친구》, 《나와 너》도 모양 상상 놀이를 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든 거예요. 모양 상상 놀이는 제 삶과 일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리예요. 어린 시절 심심해서 하던 놀이는 어느덧 제가 하는 모든 일의 핵심이 된 거죠. 


처음으로 책을 만든 때를 기억하나요?

미술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할 땐 제가 어린이책을 만들게 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학교에서 링 제본기를 구입했어요. 그때 책 만드는 데 관심이 생겼어요. 이전에도 연작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앞뒤 표지를 두고 그 사이에 그림들을 한데 묶어 페이지를 넘기자 한층 진전된 것처럼 보였어요. 그 순간 정말 짜릿했어요. 제가 그 시절 만든 가장 자랑스러운 결과물 중 하나는 《경기, 그러니까… 경기일 뿐》이에요. 


그림책 작가 이전의 이력이 독특해요.

대학을 졸업할 때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돈은 벌어야 했죠. 도서관 직업 코너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을 발견하고 지원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인체에 관한 저의 매혹을 모두 만족시키는 완벽한 직업처럼 보였거든요. 제 일은 수술을 집도하는 의대 교수가 개발한 새로운 수술 접근법을 학생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그리는 일이었어요. 교수는 제 그림을 강의에 사용하거나 논문에 첨부했어요. 해부학 책을 참고했지만 상당한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모양 상상 놀이랑 비슷했죠. 그러고 보니 모양 상상 놀이로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된 일이었네요.

위에서부터《겁쟁이 빌리》 더미북, 2006년,《경기, 그러니까… 경기일 뿐》 중에서, 1966년,《코끼리 책》의 일러스트레이션, 1974년 무렵

《헨젤과 그레텐》, 1981년

《숲 속으로》 초안, 2004년

그림책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그림책 시장에 적합할 듯한 카드 디자인 몇 장을 골라 어린이책 출판사들에 보냈어요. 그러다 해미시 해밀턴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제 그림책을 만들어 오라고 하더라고요.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에 관한 책을 찾아보다가 ‘정글에서 헤매는 아기 코끼리’라는 스토리로 책을 만들었어요. 아트디렉터인 마크 브라운은 제 실수를 지적하면서도 제 잠재력에 관심을 보였어요. 그때 어린이책 편집자인 줄리아 맥레이를 소개해줬죠. 그렇게 그림책의 세계로 들어왔어요. 저는 그녀에게 그림책에 관한 교훈과 조언을 들으며 성장해 나갔어요.

 

창작 과정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계가 궁금해요.

책에 따라 달라요. 어떤 책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가장 흥미롭고, 어떤 책은 그림을 그릴 때 흥분되기도 해요. 또 어떤책은 단어와 그림이 모일 때 즐거워져요. 때로는 프로젝트를 마칠 때 가장 만족감이 크기도 하고요.


그림을 그리면서 두려울 때도 있나요?

정확하게는 공포는 아닌데요, 가끔 그림이 제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걸 잘 풀어내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이 있지요.


대부분 가족의 이야기를 다뤄요. 특히 어린이가 가정에서 겪는 심리적 내면 세계가 잘 녹아 있는 거 같아요.

제 이야기는 보통 제가 아이였을 때, 부모로서 그리고 조부모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돼요. 어떤 생각이 이유 없이 떠오를 때, 사실적인 상황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면 관련된 서사를 더 발견하려고 해요.


작가님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 속에서 변형된 요소가 많은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에요.

아마도 제 작품에서 가장 흔한 주제는 변형일 거예요. 사실상 저의 모든 책은 줄거리의 중요한 부분, 배경에서의 작은 사건, 이야기에 미묘하게 짜인 암시적 변화를 특징으로 해요. 때로는 캐릭터들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가 두 가지 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에요. 《헨젤과 그레텔》의 계모가 마녀로 변형되거나《고릴라》에서 고릴라가 한나의 이상적인 아버지로 변신하는 게 그렇죠. 《돼지책》의 남성 캐릭터는 더 명확하게 변하고요. 저는 글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을 그림 속에 숨겨놓고 그 디테일을 찾아가는 방법과 유사하게 변형을 활용해요. 그것들은 캐릭터가 다음에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계획할 것인지에 대한 단서가 돼요.


대표 캐릭터로 윌리가 떠올라요. 걱정이 많고 약한 듯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윌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제가 왜 윌리를 침팬지로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윌리의 성격을 만든 상황은 잘 기억해요. 윌리는 고릴라의 세계에 사는 침팬지예요. 고릴라는 윌리보다 더 크고 강하고 힘이 세며 중요해요. 우리의 삶도 그렇죠. 우리는 평생 동안 대다수의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며 살아요. 저는 그 상황이 특히 아이들에게 더 익숙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성인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그들은 더 작고, 더 약하고, 더 무지하며, 영향력이 적어요. 그들은 자신의 삶을 형과 누나,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지배 받으며 보내요. 아이들의 인생은 어쩌면 압도적으로 위협적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윌리가 삶에 대처하는 방식에 아이들이 공감하는 거 같아요. 저는 윌리가 어느 정도는 저라고 생각해요. 이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큰 그룹에 제가 속하는 거겠죠.

《꿈꾸는 윌리》, 1997년

고릴라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렸다고요.

맞아요. 아버지는 크고 강렬하고 사나운 남자였어요. 럭비 경기장과 권투 링처럼 전투할 공간에서 공격적인 스트레이트를 내뿜는 사람이었죠. 이런 면이 형과 저에게 아버지를 영웅이라 여기게 했어요. 우리는 아버지와 같은 걸 하고 싶었죠. 그런데 신체적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던 아버지에게 지극히 온화한 또 다른 면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시를 썼어요. 힘든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쳐줬고요. 저는 고릴라를 볼 때 아버지를 생각해요. 고릴라는 자신이 필요할 때 엄청나게 강력한 생물체지만, 가족을 대할 때는 애정과 보살핌을 보여줘요.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있죠.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면서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제 책이 종종 어려운 상황을 다루고 있죠. 그런 이야기가 어둠과 걱정스러운 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 독자를 안심시키는 유머로 밝음을 전하고 싶거든요.


그림책이 특별하다는 믿음이 있나요?

아이들이랑 밤마다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하면서 그 유대감이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것은 우리가 전에 경험하던 것과 완전히 달라요. 어른들이 글을 읽는 사이 아이들은 그림을 읽어 내려가요.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아채면서요. 그리고 글과 그림 사이에서 아이들은 질문해요. 다른 시간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대화를 하죠.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야. 너희가 느끼는 행복, 슬픔, 기쁨, 질투, 지루함, 분노 또는 외로움은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겪어가는 자연스러운 경험이란다.”

《숲 속으로》, 2004년

앤서니 브라운 나의 상상 미술관
글 앤서니 브라운, 조 브라운 | 옮김 홍연미 | 웅진주니어

앤서니 브라운의 삶과 그림책을 한 권에 담았다. 평범한 아이에서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아들 조 브라운이 질문을 하고, 아빠인 앤서니 브라운이 답하면서 말이다. 보기 힘든 앤서니 브라운의 어린 시절 스케치와 그림, 초기 더미북과 함께 그림책의 제작 과정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의 모양 상상 놀이를 지켜보며 그의 작품에깃든 특징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에디터 김현지

자료 협조 에릭양, 웅진 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