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if it’s not a special goal

목표도 없이, 결심도 없이

스무 살의 어린 여자애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토요일마다 다도 수업을 들으며 중년 여성이 되어간다. 되는 대로 살아가던 서른두 살의 여자는 우연히 본 복싱 시합에 반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러브를 끼게 된다. 새로운 습관과 의식에 몸과 마음을 맞춰 나가며 이 여자들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발견하게 될까?

언젠가부터 나는 새해 목표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새해 다짐도 없고 결심도 없다. 전혀 없다. 연말이라고 한 해를 정리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지도 않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그저 아, 올해도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가급적이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된 걸까? 한때는 나도 다이어리의 시작을 올해의 목표 리스트로 빼곡하게 채우던 사람이었다. 그 리스트에 적힌 것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5킬로그램 감량하기(안 되면 3킬로그램이라도), 영어 마스터하기, 일본어 시작하기 등등. 그러나 매년 5킬로그램을 감량하기는커녕 5킬로그램이 더 찔 판이었고, 영어를 대체 무슨 수로 1년 만에 마스터할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망상에 빠졌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미국 사람에게도 어려울 것이다), 일본어는 매번 시작은 하는데 히라가나에서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걸 보니 나와는 인연이 없는 언어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수년간 거의 엇비슷한 목표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연말이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를 반복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무의미한 리스트 만드는 일을 그만두었다.

ⓒ일일시호일

영화 <일일시호일>의 주인공은 스무 살의 어린 여자 노리코다. 덜렁대는 성격에 아직 뭘 해야 할지 꿈도, 계획도 불확실한 노리코는 사촌 미치코와 함께 동네의 한 아주머니에게서 다도 수업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수업은 무려 24년이나 계속된다. 아이고, 무슨 다도 수업을 20년이 넘게 듣는 걸까? 그 정도면 선생을 하고도 남았을 세월 아닌가?

그러나 이어지는 다도의 절차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구와 손을 닦을 때 쓰는 수건 한 장을 접는 방법만 해도 너무 길고 복잡해서 나는 10년이 지나도 배우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손님이 있는 방으로 들어오는 걸음의 수부터 다다미의 어느 부분을 밟아야 하고 밟지 말아야 하는지, 몸은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물은 어느 손으로 어떻게 떠야 하는지, 말차를 갤 때는 어느 방향으로 개야 하는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차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춤이라고 해도 좋았다. 자유라고는 1도 없는 느리고 고요한 춤. 아마 내가 스무 살의 노리코였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런 수업, 두 번 가지는 않았겠지.

“의미는 몰라도 되고 아무튼 그렇게 해요.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도가 그런 거예요.”

왜 이렇게 하는 것이냐고 노리코가 물었을 때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듯 이렇게 답한다. 이유 없고 목적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것을 최고의 낭비로 여기는 나는 무슨 저런 답이 다 있나 싶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 아닌가요?

그러나 1년 내내, 그리고 또 다른 1년과 1년과 1년이 이어지는 동안 고요한 선생님의 다다미방에 앉아 차를 내리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러다가 문득 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계절의 소리와 공기를 가만히 느끼면서 계속되는 노리코의 다도 수업을 지켜보며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몸이 그것에 익숙해지게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이 달라져 간다. 아, 그런 것이 의식이라는 것이구나.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을 붙들어 맬 아무런 의식이 없기에 마음이 자꾸만 닻 없는 배처럼 떠도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납득하고 다잡으려 하기에 자꾸만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호기심에 시작한 노리코의 다도 수업은 언젠가부터 그런 의식이 되어버린다. 빼먹으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고 허전해지는 것. 그것을 하고 있을 때는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되고, 그것을 하고 나면 빠져 있던 무언가가 맞춰지는 것처럼 충만한 기분이 드는 것.

ⓒ백엔의 사랑

염색이 빠진 헝클어진 머리, 늘어진 티셔츠와 바지, 펑퍼짐한 몸매의 골초 이치코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호감형은 아니다. 하는 일이라곤 밥이나 축내는 것이 전부인 이치코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 동네 백엔숍의 점원으로 일하게 된다. 영화 <백엔의 사랑>은 그 이치코가 우연히 복싱에 빠져 시합에까지 출전하는 이야기다.

이치코는 매일 백엔숍에 와서 바나나만 사 가는 복싱 선수가 준 티켓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복싱 시합이라는 것을 관람한 후 복싱 도장의 문을 두드린다. 도장 사람들은 이치코를 다이어트를 하러 온 여자로 알고 받아들이지만, 이치코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링 위에서 누군가와 박력 있게 싸우고, 경기가 끝나면 이기든 지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링에 오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복싱하는 폼부터 익혀야 한다. 팔은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주먹은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발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하나부터 열까지 익혀야 한다. 복싱이라는 기예가 몸에 익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되는 대로 어기적거리며, 사회성이라고는 없이 살아오던 서른둘의 이치코는 아주 오랜만에 어떤 룰에 굴복해야 하는 것이다. 개싸움으로는 링 위에 설 수 없으니까. 링 위에 펼쳐진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없으니까.

“너 말이야. 복싱 왜 시작했냐?”

“서로 싸우고 또 서로 어깨도 두드려주고 그런 모습들. 왠지 그런 걸 하고 싶더라고.” 

누가 밀어 넣은 틀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틀이었기에 이치코는 기쁘게 그 룰에 복종한다. 그렇게 이치코는 달라진다. 일터에서도, 길에서도, 도장에서도 복싱 연습에 여념이 없다. 두툼하게 붙었던 군살들이 빠지고 흐리멍덩하던 눈빛은 살아난다. 어기적거리던 걸음걸이마저 날렵해진다. 운 좋게도 늦은 나이의 신인에게 기적적으로 시합 출전의 기회까지 주어진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술술 풀릴 리가 없다. 호기롭게 출전한 첫 시합에서 이치코는 팔 한 번 제대로 뻗지 못한 채 무력하게 얻어맞고 얻어맞고 또 얻어맞는다. 그럼에도 이치코는 일어난다. 수없이 쓰러지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서,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디고 선 채로 깨끗하게 패배한다. 패배한 후에는 그토록 바라던 일, 그러니까 상대를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일을 해낸다. 죽도록 얻어맞고서도 상대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데 성공한다.

ⓒ일일시호일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건 지나가도록 두면 된다. 그러나 금세 알 수 없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씩 깨달아 간다.” 

<일일시호일>의 노리코는 차를 마신 지 10년도 훌쩍 지난 후에야 선생님댁 족자에 걸린 ‘일일시호일’이라는 글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듣고, 눈 오는 날에는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에는 추위를 느끼는 것. 매일 좋은 일이 일어나서 좋은 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날들이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다도를 통해 노리코가 체득한 것은 살아 있는 매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므로 겸손할 필요가 있다. 이유를 알 건 모르건 우선은 해본다. 그 형식에 내 몸을 맞춰본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익힌다. 커다란 목표도 없이, 엄청난 결심도 없이, 그저 해본다. 사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어떤 기술을 익히는가’, ‘얼마나 잘하게 되는가’는 진짜 문제가 아니다. 답은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그것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하는 시공간 속에 있어 보는 것, 그것을 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다가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올해의 목표가 있기는 있다. 내 목표는 대개 무척 심플하다. 열 글자, 아니 다섯 글자를 넘지도 않는다. 작년 목표는 ‘용감해지기’였다. 올해 목표는 ‘천천히’다. 작년 목표를 내가 이루었는지, 얼마나 이루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용감해지는 것은 점수나 도량형 같은 것으로 측정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용감함에 대해 절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쩌면 조금은 용감해졌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길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언제나 현재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 내게 중요한 일들을 하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순간에 집중하며 천천히 살아가자. 올해 목표는 그것이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아마 해탈하지 않는 한 어렵겠지. 어쩌면 내게도 다도나 복싱 같은 의식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엇일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사실 나는 올해의 마지막 날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해였다’ 하고 이해를 회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올해의 진짜 내 목표다. 커다랗고 엄청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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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